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14호 신작시/이건청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07회 작성일 05-05-30 11:56

본문

이건청

투구풍뎅이



지친 몸을 쉬러 산사를 찾아가는 길에 벽제시립묘지 옆을 스쳐가게 되었다. 묘지는 바로 아스팔트 포장도로 옆으로부터 온 산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묘지가 묘지끼리 등을 댄 채 붐비고 있는 거기, 길가 낮은 언덕 어딘가,  나는 그곳이 20여 년 전 한 시인의 주검을 묻었던 곳임을 기억해냈다. 시인을 담은 목관을 들고 오르던 가파른 비탈이 거기 있었다.
시인은 그때, 아내와 두 딸을 두고, 그의 아파트 입구에 쓰러졌고, 40 초반의 어깨를 저물녘 땅에 누인 채 숨이 멎었었다. 돌연사였다. 유신 치하의 어느 날인가, 공군 대위 정복에 권총도 찬 그와 가난한 나의 셋방에서 소주를 마신 적도 있었다. 시를 안주삼아 밤을 새웠었다. 금성사에서 만든 축음기를 내게 준 것도 그였다. 시인협회 세미나가 열렸던 불국사 근처 주점에서는 내 멱살을 틀어쥐기도 하였다. 그는 정훈장교였다. 정훈장교가 웬 권총이냐는 나의 힐난을 멱살로 꺾으려던 그였다. 힘의 시인,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무지막지하던 시인, 제대 후 시인으로, 국어 교사로, 대학원 공부로, 참고서 집필로, 마구 몸을 내던졌었다. 초조했을까-그랬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모두 몸을 던지며 벅차게 살았었다. 수난의 시대만을 골라 딛고 살았던 억척의 세대- 그 속에 나도 있고 그도 있었다. 용산역 근처 대학병원 영안실, 영정 속의 그를 보면서 나는 울었었다. 숨차게 달려온 우리들의 생애가 억울했었다.

그를 땅에 묻는 날은 봄날이었다. 무덤가 골짜기 갯버들이 보오얗게 눈을 뜨고 있었다. 묘지와 묘지 사이 비좁은 터를 파고 겨우 그를 묻었다. 시인은 향수를 섞은 잉크로 시를 썼다고 하였다. 향수처럼 향기롭진 않았지만 난폭한 그리움의 잉크를 찍어 시집 ꡔ실내악ꡕ의 시편들을 썼다. 그의 아내가 그의 관 위에 시인이 남기고 간 향수를 뿌리고, 남은 사람들이 절망의 시신 위에 흙을 뿌렸었다.

그리고, 예순셋, 노안에 안경을 걸친 시인 하나, 피정의 시간을 찾아 어느 산굽이를 돌아가다가 한 시인을 묻었던 골짜기를 기억하느니, 까마득히 잊고 살던 숨찬 시대, 아, 미망의 시간이여, 무늬도 선연한 투구 풍뎅이여, 갑옷 속에 숨겨두었던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라라. 무심한 일상에 지친 내게로 날아와 붕, 붕 날갯짓하며 쎄세 쎄게 날아라.




노고지리


2월 찬 바람 속, 노고지리를 찾아갑니다. 들판, 채전 작년 배추밭엔 말라붙은 배추잎들이 널려 있습니다. 간혹, 버려진 채 겨울을 난 지즈러기 배추도 2월 찬 바람 속에 봄동 푸른 잎으로 살아납니다. 봄동 푸른 잎 사이를 날며, 기며, 들판에 와 있는지, 노고지리를 찾아갑니다. 노고지리 소리가 청명하게 울렸던 때도 있었습니다. 노고지리는 푸른 보리 물결 속에서 솟구쳐, 제 자리 날갯짓으로 솟아오르며 또르르 또르르 울었습니다. 머리 위에 깃을 단 뿔종다리 울음소리가 온 들판을 채우고 나면, 들판을 넘쳐 난, 나머지 소리가 아지랑이가 되어 아른거리곤 했습니다. 가물가물 솟구쳐 오르는 노고지리를 따라 고개를 치켜들고 바라보다 보면 두 눈에 눈물이 괴곤 했습니다.
2월의 찬바람 속 노고지리를 찾아갑니다. 흐린 눈으로 바라보는 하늘은 며칠째 황사입니다. 혹시 와 있을지도 모를, 머리 위에 깃을 단 작은 새를 찾아, 작년 채전 말라붙은 배추잎 사이 봄동 푸른 잎을 찾아갑니다. 노고지리를 찾아갑니다.

이건청
․196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ꡔ석탄형성에 관한 관찰 기록ꡕ 등

추천2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