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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 신작시/이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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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099회 작성일 05-05-30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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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너를 미치게 하는 것들․1
―현대판 調信의 꿈



인간의 마을에서 살고 싶었다
집도 없고 절도 없던 그대 아내를 만나
벽체를 이루고 지붕이 되어
비바람을 막듯이 낙숫물을 받듯이
체온을 나누며 미움도 쌓으며
그렇게 한번 살아보고 싶었겠지

사랑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돈인가 가족이 한집에 살 수 있게 하는
돈이 돈을 낳고 빚이 빚을 낳는다
대출금 납부일에 납부를 못하면?
카드 결제일에 결제를 못하면?
세금을 제때 내지 못하면?
연체가 누적되면?
점점 줄어드는 가계
날이면 날마다 조여드는 것들

그대 살아본 세상은
돈이 있어야 했다
가족이 흩어지지 않으려면
돈이 있어야 했다 돌아버리지 않으려면  
아옹다옹 다투며 아득바득 부대끼며  
체온을 나누며 음식을 나누며
살고 싶었으나

가족이여 우리[柵]가 허물어진 가축들이여
그대 지금 미칠 도리밖에 없는…….





너를 미치게 하는 것들․2


1
인터넷 세상은 하나의 우주
쇼핑, 게임, 영화관람, 은행업무……
내 모든 생활 인터넷으로 시작되고  
E-메일, 채팅, 메신저, 컴섹……
타인과의 모든 커뮤니케이션 인터넷으로 이루어진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안방에서 화장실까지.

2
가상의 마을에 홍등이 켜지면
매춘의 역사는 늘 새롭게,
다시금 씌어진다 인터넷에 의해
“함 하실래여?”
“돈 얼마 줄 건데?”
“15만원 드릴게요.”
“지금 어딘데?”
불륜과 외도를 위한 만남의 장소를 제공하는
인터넷, 너보다 안전한 홍등가는 없었다.

3
날이 밝았다
화면에 불이 들어오면 세상은
게임의 천국 혹은 게임의 지옥
죽고 죽이고, 피하고 싸우고, 때리고 도망치고
아, 이 정글에서는
지느냐 이기느냐 그것뿐
죽느냐 죽이느냐 그것뿐.

4
한 대학생이
자신이 운영하는 게임 관련 홈페이지에
아래의 글을 올려놓고 자살했다.
“줄넘기나 해야지. 어, 줄에 걸렸네. 아파라. 그냥 이대로 있어도 괜찮겠지……. 지금 나야 처자식도 없고 레벨도 낮으니까 별달리 왜 사는지 모르겠다면, 또 자신을 바꿀 힘이 없다면 이런 게임 관두면 되는 거잖아.”

5
레벨을 높여야 한다
업그레이드를 시켜야 한다
새로운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
아바타를 더욱 멋지게 꾸며놓아야 한다
불법적인 아이템 거래를 해서라도
남의 아이템을 강탈해서라도
학교를 가지 않고서라도
밤을 꼬박 새워서라도.

6
인터넷 세상 안에서
미친 혼들이 떠돌고 있다
나는 미치지 않았다고 외치고 다니는
프로게이머들의 아류
우리 모두 자, 다시, 게임을 하자
이 세상에는 다행히도 신이 없다.


이승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ꡔ욥의 슬픔을 아시나요ꡕ 등
․시론집 ꡔ한국의 현대시와 풍자의 미학ꡕ 등

추천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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