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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권두칼럼/장종권/시대의 아픔을 생명의 노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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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72회 작성일 20-01-05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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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권두칼럼/장종권/시대의 아픔을 생명의 노래로


시대의 아픔을 생명의 노래로


장종권



  기억이 난다. 연두빛 이파리들이 새록새록 짙어가는 시절에서부터 노오란 은행잎이 분분하게 날려 쌓이던 시절에까지, 그리고 하얀 눈발이 날리던 계절에까지도 수년간을 오르내리던 대성로. 무엇이 슬로건이었던지는 정확히 생각해 낼 수 없지만, 그래도 피 끓는 마음으로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며 교정을 뒤흔들다가, 종로 거리로, 동대문으로, 시청으로, 서울역으로 내달렸던 그런 시절이 네게도 있기는 있었다. 교정은 물론 명륜동 학교 진입로에도 자욱한 최루탄 냄새로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걷기조차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시위대에 섞여 맹렬하게 돌을 던지다가 휴강으로 결강으로 학기 전반을 까먹는 시기였지만, 그래도 잠깐 강의실에 들러 수업을 듣기도 하다가, 저녁이면 막걸리집에 모여 다시 깡술을 마시면서 시국을 성토하던, 심장이 시도 때도 없이 거칠게 뛰던 시절이 내게도 있기는 있었다. 앞장서서 교문으로 몰려나가다가 무언가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정신을 잃기도 했지만, 정신이 돌아오면서 꿈처럼 다가오던 여학생들의 애틋한 모습이 생생하기도 하다. 교외 진출을 막는 경찰들의 강력한 방어로 피투성이가 되어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학우들이 부지기수였다. 최루탄 가스가 독해서 울었고, 피빛이 꽃처럼 붉어서 울었고, 끓는 피를 어쩌지 못해 울었다. 돌아보면 암울한 시기였다. 그럼에도 순수와 자유를 열망하면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시위대에 뒤섞여 노래와 구호를 부르짖었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이 시기에 유명을 달리한 학우들이 있었다. 무너진 육체적 인격적 모멸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학우도 있었다. 그의 부친마저도 분노를 견디지 못해 사라진 자식을 따라 스스로 몸을 불살라버린 슬픈 기억도 있다. 그 시절 그토록 치열했던 민주화운동에 나는 그러나 다른 학우들만큼 치열하지는 못했다. 시를 쓰기 시작한 시기였지만 시에도 치열하지 못했다. 그러니 나는 사실 시대적 명분뿐만 아니라 내 자신에게조차도 부실한 70년대와 80년대를 보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 시절의 선후배들은 지금 각자의 전선에서 혹은 무대에서 나름 제 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우들은 누구나 참여했던 민주화운동의 소소한 역할에 만족했고 이후 개선되어가는 시대 상황에 다만 다행스러워할 뿐이었다. 어쩌면 그 시절은 사라진 자들은 그저 사라질 뿐이고, 파탄이 난 가정은 파탄이 난대로 그냥 잊히게 되는 허망한 시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사라진 영혼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때 파탄 난 가족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때 상처 받은 사람들은 이후 얼마나 보상을 받았을까. 아니면 대접이라도 받았던 것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이번호 새로운 기획 ‘감성의 건넌방’에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몸 바쳤으나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고, 그 상처를 이 땅에서 치유 받지 못해, 산중 자연 속에서 치유 받고자 한 김씨돌 선생의 글을 소개한다. 봉사와 희생으로 가득한 치열했던 인생의 결과가 이토록 참담하다면 이 땅에 다시는 민주화운동에 몸 바치는 이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나라 이 시대를 만들기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을 향해 따뜻한 반성의 시선을 보낼 필요가 있다. 앞으로만 무작정 나아갈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더 아픈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지는 않는지 돌아볼 필요도 있어 보인다.
자연 속에 깃들어 신비로운 생명의 세계를 읽어내는 그의 감성과, 더 없이 추악해져가는 세상에 경종을 울리려는 그의 처절하도록 순수한 정신을 엿보고자 한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면서 아직도  서정 속에 자신을 담아두고 있는 그의 가슴과 언어를 통해 이 시대가 겸허한 반성의 자세를 갖기를 마라는 간절한 마음에서다. 시대의 아픔을 생명의 노래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그에게 박수와 용기를 주고 싶은 어쩌면 부끄러운 마음에서다.





*장종권 198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전설은 주문이다』외. 인천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본지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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