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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특집/인천과 근대문학 100년/류수연/소설, 그리고 인천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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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61회 작성일 20-01-0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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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특집/인천과 근대문학 100년/류수연/소설, 그리고 인천의 얼굴


소설, 그리고 인천의 얼굴


류수연



#1. 근대의 경유지, 그 너머


한국소설에서 인천이라는 도시가 구체적인 장소성을 획득하게 되는 순간을 짚어보자. 그것은 아마도 개항이라는 사건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리라. 식민지 근대의 관문. 그것이야말로 인천이라는 도시에 각인된 첫 번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 중심에는 바로 근대교통의 거점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놓여 있다. 기차와 화륜선, 철도에서 항만으로 이어지는 근대적인 교통이 보여주는 ‘낯섬’이야말로 인천이 보여주는 근대의 가장 뚜렷한 모습은 아니었을까?
실제로 근대 초기의 소설 속에서 인천은 근대로 가는 여정 그 자체를 의미했다. 신소설 시기까지 인천은 작은 어촌에 불과했고, 소설 속에서는 주로 “기차를 타고 인천으로 와서 항구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는 여정 가운데”(이현식, 「항구와 공장의 근대성」, 『한국문학연구』38집,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2019, 170쪽) 등장했다.


“그러면 오늘이라도 인천으로 보내서 어용선을 타고 일본으로 가게 할 것이니, 내 집은 일본 대판이라. 내 집에 가면 우리 나무라가 있는데, 아들도 없고 딸도 없으니 너를 보면 대단히 귀애할 것이니 너의 어머니로 알고 가서 있거라.” 하면서 귀국하는 병상병病傷兵에게 부탁하여 일본 대판으로 보내니, 옥련이가 교군 바탕을 타고 인천까지 가서 인천서 윤선을 타니, 등 뒤에는 부모 소식이 묘연하고 눈앞에는 타국 산천이 생소하다.
─이인직의 「혈의 누」(『신소설』, 한국소설문학대계1, 두산동아, 1995, 31쪽)


청일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한 이인직의 『혈의 누』에서 등장하는 인천의 모습은 이 짧은 한 단락에 불과하지만 작품의 서사 안에서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것은 주인공 옥련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길목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전쟁 중에 부모를 잃고 헤매는 옥련이에게 일본인 군의관 이노우에는 구원자였고, 근대를 향한 주인공 옥련의 첫 번째 발길은 인천이라는 경로를 통해 확정된다. 아직 철도는 등장하지 않지만, 인천의 랜드 마크라 할 수 있는 항구의 인상은 뚜렷하다.
이후 1910년대 후반까지도 인천의 모습은 『혈의 누』가 그려낸 이미지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무엇보다 ‘탈조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이는 아직 이 도시가 식민지적 근대의 경유지 이상으로 인식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익숙했던 모든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관문, 근대 인천의 얼굴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따라서 어떤 여정이 아닌 삶의 장소로서 인천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작품은 아마도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1979)일 것이다. 이 작품은 근대의 관문이라는 외면적 풍경의 스펙트럼으로부터 벗어나 하층민의 삶이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장소로서의 인천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거기엔 관문으로서의 근대라는 풍경에 가려졌던 실제 인천의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물론 이 작품은 한국전쟁 이후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거기에 녹아든 인천의 모습은 식민지 시대의 기억 위에서 조형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시를 남북으로 나누며 달리는 철도는 항만의 끝에 이르러서야 잘려졌다. 석탄을 싣고 온 화차는 자칫 바다에 빠뜨릴 듯한 머리를 위태롭게 사리며 깜짝 놀라 멎고 그 서슬에 밑구멍으로 주르르 석탄가루를 흘려보냈다.
집에 가봐야 노루 꼬리만큼 짧다는 겨울 해에 점심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우리들은 학교 수업이 끝내는 대로 책가방만 던져둔 채 떼를 지어 선창을 지나 항만의 북쪽 끝에 있는 제분 공장에 갔다.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유년의 뜰』, 문학과지성사, 2017, 77쪽)


여기서 회상이라는 매커니즘을 통해 형상화된 인천의 얼굴은 좀 더 슬프고 애잔하다. 사실 이러한 인천의 모습은 「중국인 거리」 이전에도 우리 소설사에서 꽤 익숙한 것이다. 현덕의 「남생이」(1938)에서부터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2000)까지, 인천은 상당 기간 동안 밀려난 사람들의 공간으로서 비애의 감수성을 드러낸 바 있다. 어쩌면 거기엔 근대의 경유지로서 인천이 겪어야 했던 근대사의 굴곡이 그대로 드리워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1883년에 개항한 인천은 서울과 가깝다는 이점 때문에 개항 초기부터 한반도에 진출하고자 하는 외국인들의 거주지로 떠올랐다. 가장 먼저 생긴 것은 맨 처음 개항에 사인을 요구한 일본의 조계였고, 그 뒤를 이어 청 조계와 각국공동조계가 설치되면서 바야흐로 인천은 조선 안에서도 가장 국제화된 도시로 절로 변모하게 되었다. 인천의 해안매립이 활발해진 것도 이 무렵부터라고 한다. 이미 1890년대 후반 무렵이면 인천의 조계지는 포화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일본은 적극적으로 해안매립을 추진했다. 이미 개항 초기부터 논의되었던 해안매립 문제는 1898년부터 본격화(박진한, 「개항기 인천의 해안매립사업과 시가지 확장」, 『도시연구』, 도시사학회, 2014, 81-83쪽)되었고, 이로 인해 인천은 개항과 함께 조선 안에서도 가장 먼저 외국의 자본에 의해 잠식당하는 공간이 되었다.
더욱이 그러한 첨단시설들의 이면에는 그 첨단을 유지하기 위해 더 극악한 노동이라는 조건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곳에는 그 노동마저 간절했던 가난한 이들의 삶이 배치되었다. 이들의 삶은 그대로 인천의 얼굴이 된다. 수도와 가장 가까운 항구였기 때문에 근대의 관문이 되었지만, 동시에 바로 그 점 때문에 일제의 식민지 경영과 수탈의 통로가 되어야 했던 바로 그 얼굴 말이다. 그리고 여전히 인천에 남겨진 적산가옥과 신사의 흔적들은, 이러한 식민지 조선에서 시작된 인천이라는 도시의 풍경이 우리의 오늘에도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인천이라는 도시는 그 위에 새겨진 근대라는 흔적들을 통해서만 비로소 고유의 민낯이 확인되는, 어제의 기억 위에 오늘을 세운 도시인 것이다. 따라서 그 시간의 중첩이야말로 인천, 그리고 그 인천을 담아낸 소설에 담긴 진짜 가치일지로 모른다.


#2. 공업도시와 노동자의 탄생


현재 인천은 거대한 광역시를 이루고 있지만, 개항 이전까지만 해도 지금의 동인천을 중심으로 해안가를 따라 구성된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 따라서 1920년대 무렵까지도 아직 인천은 소설의 장소로서 격상될 만큼 매력적인 공간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비록 1899년 경인선 철도가 영업을 시작하면서 한반도의 바깥으로 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관문이 되었지만, 1920년대까지도 인천은 근대로 나아가는 경유지 이상의 가치를 확보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따라서 인천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가 문학적으로 형상화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인천 앞바다의 갯벌이 매립되고, 조계지와 공장이 들어서고,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아든 사람들이 모이면서 인천의 모습도 상당히 변화되는 1930년대 중반 이후, 마침내 인천은 본격적으로 소설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조선의 심장지대인 인천의 이 축항은 전 조선에서 첫손가락에 꼽힐 만큼 그 규모가 크고 또 볼 만한 것이었다. 축항에는 몇천 톤이나 되어보이는 큰 기선이 뱃전을 부두에 가로 대고 열을 지어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검은 연기는 뭉실뭉실 굵은 연돌 위로 피어 올라온다. 월미도 저편에 컴컴하게 솟은 섬에는 등대가 허옇게 바라보이고 그 뒤로 수평선이 멀리 그어 있었다.
노동자들이 무리를 지어 쓸어나온다. 잠깐 동안에 수천 면이나 되어보이는 노동자들이 축항을 둘러싸고 벌떼같이 와와 하며 떠들었다. 그들은 지게꾼이 절반이나 넘고 그 외에 손구루마를 끄는 사람, 창고로 쌀가미니를 메고 뛰어가는 사람, 몇 명씩 짝을 지어 목도로 짐을 나르는 사람, 늙은이, 젊은이 어린애 할 것 없이 한 뭉치가 되어 서로 비비여 돌아가고 있다.

─강경애의 『인간문제』(창작과비평사, 1992, 263-264쪽)


강경애의 『인간문제』는 풍경으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현장으로서 실재實在하는 인천을 그려낸 사실상의 첫 번째 근대소설이며, 근대적 공업도시 인천을 통해 “식민지 시대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드라마”(이현식, 앞의 글, 178쪽)라는 점에서 문제적인 작품이다. 무엇보다 『인간문제』는 “용현의 농민들이 인천에서 노동자로 재탄생하는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과정을 축도적으로 형상화한 전형적인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최원식, 「인간문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성과와 한계」, 『인간문제』, 문학과지성사, 2006)이며,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근대적 공업도시로서의 인천’(최학송, 「인간문제』와 인천」, 『한국학연구』,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08, 8쪽)을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인간문제』를 통해 인천은 작은 어촌이나 경유지가 아닌 근대도시로서의 실감實感을 획득하게 된다. 그 동력은 무엇보다 인천이라는 도시를 살아가는 인물 그 자체로부터 도출된 것이고, 이로부터 인천은 근대소설의 장소로서 적극적으로 호출된다. 인천의 공장지대, 노동자인 주인공 선비의 각성과정은 인천이라는 도시를 단순히 배경화하지 않는다. 선비의 성장은 또 다른 주인공 신철의 변절과 비교되는데, 그들 각각은 인천과 서울이라는 도시를 대변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대비 속에서 인천은, 훨씬 긍정적인 가치를 지닌 장소로 부각된다.
공업도시, 그리고 노동자의 탄생이라는 과제 속에서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인천은 확실히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 개항 이후 반세기가 지난 1930년대 중반, 이미 인천은 식민지 조선의 명실상부한 공업도시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강경애의 『인간문제』에서 드러난 근대 공업도시 인천의 면면은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인천이 오늘날 어떻게 거대한 광역시를 형성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항만과 철로로 수도를 가장 가깝게 연결한다는 지리적 이점이야말로 오늘날의 인천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요건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본다면 노동문학이 중심을 이루었던 1970-1980년대 소설 안에서 인천이 매우 중요한 장소로 등장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1883년 개항과 더불어 국제적 무역항으로, 산업 도시로 발달한 은강의 역사를 배운다. 은강 공업 지대는 금속·도자기·화학·유지·조선·목재·판유리·섬유·전자·자동차·제강 공업이 성하고, 특히 판유리는 한국 최고의 존재로 교과서에 나와 있다. (중략)
공장 지대는 북쪽이다. 수없이 솟은 굴뚝에서 시커먼 여기가 오르고, 공장 안에서는 기계들이 돌아간다. 노동자들이 그곳에서 일한다. 죽은 난장이의 아들딸도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그곳 공기 속에는 유독 가스와 매연, 그리고 분진이 섞여 있다. 모든 공장이 제품 생산량에 비례하는 흑갈색·황갈색의 폐수·폐유를 하천으로 토해낸다. 상류에서 나온 공장 폐수는 다른 공장 용수로 다시 쓰이고, 다시 토해져 흘러 내려가다 바다로 들어간다. 은강 내항은 썩은 바다로 괴어 있다. 공장 주변의 생물체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조세희의 「기계 도시」(『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성과힘, 2000, 185-186쪽)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1978)은 1975년부터 여러 잡지에 발표했던 12편의 연작소설을 묶은 것이다. 그 가운데 인천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바로 위에서 인용한 「기계 도시」이다. 이 작품의 주요배경인 가상도시 “‘은강’은 인천이고, ‘기계도시’로 설명하는 공장지대는 동구 만석동”(김명래, 「책 읽는 인천, 문학 속 인천을 찾다」, <경인일보>, 2014.11.06.)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강경애의 『인간문제』가 근대적 노동자의 탄생에 초점을 맞추면서 공업도시 인천의 가능성을 포착했다면, 조세희의 『난쏘공』 연작은 그러한 노동의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심화된 1970년대 후반의 인천을 담아낸다.
실제로 1970-1980년대 인천은 수도 서울과 근접해 있으면서 국제무역에 유리한 항만을 끼고 있다는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수출집약적 중공업이 매우 발달한 도시로 성장했다. 조세희 소설에서 ‘기계 도시’로 지칭되는 만석동 일대는 비록 그 활기는 1970년대와 비교할 수 없지만 ‘현재에도 전체 면적의 59%가 공장지대’(김명래, 위의 글)일 만큼 인천의 대표적인 공업지역이다. 
식민지 시대 이후 인천이 공업도시로 성장한 배경에는 무엇보다 인천이 명실상부한 근대 교통시설의 거점이었다는 점이 놓여 있다. 1899년 일찌감치 경인철도가 부설되었고, 인천의 항만에서는 식민지 시대 내내 일본·중국·러시아를 향하는 배들이 매일같이 항해에 나섰다. 말 그대로 국제무역을 위해서는 최고의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공업도시 인천의 풍경을 바꾼 것은 새로운 교통시설, 바로 공항의 등장이었다. 인천공항의 신설은 인천을 무역이나 공업의 중심지만이 아닌 여객의 중심지로, 다시 현대적인 물류의 허브로 만들었다. 공항은 섬과 섬 사이를 다리로 이어지게 만들었고, 점이 선이 되면서 인천 연안의 가치도 변화한다. 대규모 매립작업을 통해 지금도 계속 확장되고 있는 송도 신도시는 국제금융과 교육의 허브로서 인천의 랜드 마크를 변화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인천을 담아낸 소설은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가?


#3. 아직, 그리고 여전히 인천


오늘날 문학이나 다양한 미디어 속에서 인천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설 속에서 구현되는 인천의 모습은 애초의 출발점이었던 경유지로서의 가치나 밀려난 사람들이 모여드는 변방으로서의 성격을 완전히 벗어난 것 같지는 않다. 아니, 어쩌면 그 거대한 첨단의 계획도시보다 인천을 더 매력적이게 만드는 것은 여전히 오늘의 위에 중첩된 어제의 시간들일지도 모르겠다.


언덕을 따라 중국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차이나타운, 더 정확히 말하면 그 거리가 끝나고 자유공원으로 오르는 계단이 지난 뒤였다. 회색 건물의 작은 마당에서 아버지가 남자 셋과 화투를 치고 있었다. 전보다 더 야위어서 볼이 움푹 파였지만, 염색했는지 머리카락은 검었다. 건물은 사회단체에서 만든 노숙자를 위한 자활센터였다.
─김금희의 「너의 도큐먼트」(『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창비, 2014, 51쪽)


사라진 아버지를 찾기 위해 인천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는 주인공이 마주하는 것은 ‘인천’ 그 자체이다. 퇴색한 근대의 흔적들이 남겨진 차이나타운의 끝자락, 스스로 실종을 선택한 아버지의 모습은 이 도시의 풍경 속에 그저 스며든다. 여기서 인천은 밀려난 사람들에게조차 한 자락의 자리를 내어주는 가장 마지막까지 남은 가능성의 공간이다.
이렇게 김금희를 통해 인천은 또 한 번 자신의 맨얼굴을 내보인다. 그리고 여기서 인천을 가장 인천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가 다시 한 번 확인된다. 그것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소설 속에 비친 인천이라는 도시의 문학적 실감實感이었고,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숙제처럼 남겨진 근대의 흔적들이다. 그 얼굴을 긍정할 것인가, 아니면 그 위에 새로운 얼굴을 입힐 것인가? 그것은 오늘의 인천 소설에 남겨진 숙제일 것이다.




*류수연 2013년 《창비》로 평론 등단. 인하대 프런티어학부 교수. 저서 『뷰파인더 위의 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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