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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신작시/신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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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현
碑銘들
은행나무 물든 거리에
바람이 부풀고 있다 날아봐 날아봐
이파리들
안돼 안돼,
곤두박질하는 소리
나뒹구는 소리
바스라지는 소리
자꾸 차이는 碑銘에 멈칫
발을 멈춘다
한 생애 고스란히 젖어 든 빛깔, 덧없음
몰려든 자동차들, 사람들
휘청거린다
내려다보던 잿빛하늘도 기우뚱
쓰러진다
사람 사는 일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꿈 또는 희망이라 불리는 것들
발끝에 힘을 주어보지도 못하고
목청껏 소리를 내질러 보지도 못하고
풀 풀 풀 날아보지도 못하고
저 혼자 부풀다 지는 것이 아닐까
떨어져나갈까 두려운 것, 사랑 같은 것
碑銘들,
왕성한 식욕으로 한 시절 소화시키고
나이테로 굳은 뜻 모를 글자들
발길에 채이며 아파 아파
피가 도는 것은 움트는 것이라고?
雨水
자꾸 흘러내렸어요
가방 끈을 끌어 올렸어요
얼어붙은 햇살이 쟁그랑거리다가
마른 풀 더미 속으로 얼굴 묻고 졸고 있어요
한 걸음 멈추고 고개 드니 나뭇가지가 반짝
눈을 뜨고 있었어요 어느새,
움이 삐죽 나왔어요
팔 한껏 벌려 끌어안았어요
그 연두빛깔 다시 틔우고 싶어서요
나이테가 하나 더 생기는
이맘때면 온몸에 물이 돌아 출렁거려요
구둣굽 또각또각 울리며
공원으로 큰길로 걸었어요
뭇 시선과 마주치고 싶었지요
어쩌지요
벌써부터 어깨가 근지러우니
봄이 가까웠나봐요
가방 끈이 자꾸 흘러내려요
신수현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추천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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