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13호 신작시/신용묵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763회 작성일 05-03-07 12:23

본문

신용목

봄 물가를 잠시



봄 물가를 잠시 머뭇거렸는데
햇살이 바지를 벗고 내려와 뿌려논 개나리 그 노란 숨의 입김이 드세 설사를 할 것 같다

비나 내려야 고이는 못물에는 뱀이 물살이 되어 흐름을 만든다

봄볕에 주름이 잡힌다 그림자가 방죽을 잘못 디뎌 꺾여진 것을
언제부턴가 내 발목은 저 높이를 넘어서지 못한다

깨금발의 아이가 뛰어간다
외발로도 서는
환한 얼굴의 망울짐

지팡이의 노인이 걸어간다
죽은 나무를 짚고
남은 목숨의 꽃핌

속이 불편하다 노란 꽃덤불 속에서 일제히 쏟아져 나온 눈망울들이 고여 있는 나를 쳐다본다

내 머리 속엔 언제쯤 그 너비를 건너간 뱀이 알을 슬었는지 거품처럼 허옇게 자라고 있다 너무 오래
머뭇거렸다 저것들의 서식지가 되기까지



바다시장


바다시장에서는 바다를
팔지 않는다 밀물처럼 드는 사람들이
저마다 죽음을 흥정하는
그곳에는 살아 있는 것이 없다, 아직
마르지 않은 바다를 담고
눈깔들은 쌓여 있다 벌렁이는 아가미는
죽음을 위한 마지막 유혹, 다만
한 마리 상어만이
살아 좌판 사이를 헤엄쳐 다닌다
길게 잘라 엮어댄 튜브가
비늘 대신 하반신을 감싸고
플라스틱 바구니 하나 지느러미처럼 달려 있다
수초 같은 다리들 사이를 힘겹게
기어가는 형상이지만,
간혹 던져지는 거스름돈을 먹고 사는
상어는 유일하게 그곳을 바다로 만든다
파도처럼 높은 이문으로도
바다시장에서는 상어를 살 수 없다
그가 사라지면, 아무도 그곳을
바다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너무 넓은 해협을 가르며
파장의 달이 뜨고,
썰물처럼 사람들 빠져나간 자리에
상어만이 외로운 저녁을 건너고 있다
그가 잃어버린 다리처럼
바다시장은 바다를 잃어버리고 산다

신용목
․1974년생
․2000년 ≪작가세계≫로 등단


추천2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