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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신작시/정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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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겸
푸른 고목들
권선고등학교 인근 문화센타
노부부들의 댄스 강좌가 한창이다
꽃대 같은 여강사의 몸놀림
하나 둘 셋 넷
보~옴 여름 가을 겨울
보~옴 여름 가을 겨울
구령과 박자에 맞추어 노부부들의 워킹이 계속되고 있다
저들은 얼마만큼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주문처럼 외우고 살아 왔을까
교문을 빠져나온
학생들의 소란거림이
문화센타 댄스교실로 스며들고 있다
느리게 움직이던 율동이
갑자기 살사댄스 음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서로가 손을 맞잡고 빙빙 돌다가
손바닥을 마주 대며 밀어낸다
때로는 혼자서 돌다가 격렬하게 몸을 흔든다
삐끗, 가끔은 엇박자에 휘청거리지만
파트너는 양손을 내밀어 다시 잡아준다
나는 천천히 춤판 속으로 걸어간다
창가 놓여진 늙고 허리 굽은 소나무 분재
봄볕 속에서 푸른 속살을
촘촘히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꽃은 뿌리가 피운다
꽃샘추위는 여전히 일간지 경제면을 더듬거리고 있다
사회면 가십 기사란에는
사오정 삼팔선 시리즈가 빙점을 향하여 나뒹굴고 있다
은행나무 묘포장에서
솎아내기 작업을 하고 있다
어린나무들은 황사가 눈 속으로 들어와도
종과 횡을 맞추며 몹시 긴장하고 서있다
군데군데 불거져 나온 개미집이
아총(兒塚)처럼 을씨년스럽다
면적과 밀도에 따라 퇴출 대상이 결정된 순간
높새바람이 우~ 우 울면서 지나갔다
가느다란 가지마다 작은 경련이 일어난다
병든 녀석과 허리가 굽어진 놈
영양실조에 걸린 놈들을 뽑아낼 때마다
튼실한 놈들도 덩달아 딸려 올라왔다
호미로 조심스럽게 땅속을 파내려갔다
땅속의 뿌리들이
깍지를 끼고 서로를 놓지 않고 있다
서쪽 하늘
뒤엉킨 흰 뿌리들 사이로
붉은 꽃부리가 제 몸을 한껏 부풀리고 있다.
정 겸
․2000년 ≪세기문학≫ 2003년 ≪시를사랑하는사람들≫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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