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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를 내면서/장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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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023회 작성일 05-03-0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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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호를 내면서


미래는 미래의 신이 준비한다

장종권(본지 주간)



이상한 일이다. 과거와 역사와 전통과 교육과 인륜과 상식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오랫동안 자나깨나 그리워하던 고향마저도 문득문득 소멸되어 가고 있다. 지난 것은 어떤 것도 소중하게 거두어지지 못하고 싸잡아 개혁의 도마 위에 올려지고 있다. 그럴수록 세상은 불확실성으로 흔들리고, 사람들은 언제 무엇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두려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동안 절망적인 불신 속에서도 끈질기게 길러왔던 신뢰가 무너져가고 있다. 가혹한 부정의 시대다. 새 천년의 희망찬 출발은 이삼 년도 지나지 않아 이렇게 때 아닌 절망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에겐 정체불명의 잡히지 않는 미래만이 환각 속에 마치 꿈처럼 펼쳐지고 있다. 그런 인상이다.
발전을 위한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필요 이상의 부정은 결코 새로운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이런 현상이 비록 당분간의 흔들림으로 끝날지라도 그 흔들림 속에서 고통 받는 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절대적 개혁이라도 진정한 개혁답지는 못하다. 민중은 역사적으로 권력에 의해 줄기차게 속아왔으며, 더 이상 속지 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으로 권력에 대항해 왔다. 그러다가 참을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하면 불길처럼 일어나 속인 자들을 모조리 불살라 버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이 작업이 끝나면 또 다른 권력에 의해 다시 속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국민이 주인인 시대에도 민중은 결코 권력자가 될 수 없으므로, 이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아무도 의하지 않을 것이다
부정은 궁극적으로 아름다운 긍정으로 돌아오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긍정으로 돌아오기까지 이 아픈 혼돈의 깊은 골짜기를 우리는 얼마나 해매야 하는가. 세상은 이렇게 변해가고 있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변해갈 것이 분명하다. 변화에 대한 대처 방식이 미흡했던 사람들에게는 살이 떨리는 공포와 다름이 없다. 무엇으로 나를 지킬 것인지, 누구를 믿어야 내가 살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런 혼란 속에서도 빛나는 예지의 시각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사람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사람이 존재하는 한 세상은 충분히 살만한 가치가 있으며, 그런 가치는 누군가에 의해서라도 계속해서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문학이라고 다르겠는가.
우리는 청년기나 장년기도 없이 일찌감치 늙어가고 있는 한국문학을 안쓰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식민 치하에서도 신선한 생명력으로 꿈틀대며 싹텄던 유년의 한국문학은 7,80년대를 거치며 절망 속에서도 순수한 사랑과 도전과 희생으로 고통이 가득한 극한의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이제 왕성한 가슴과 힘으로 문학 본연의 자세를 다스리면서 꿈을 실현해야 할 청년기를 맞이하고서도 이미 애늙은이가 되어 소중한 시간을 상실해 가고 있다. 문학은, 특히 정통문학은 문학 그 자체로 귀족처럼, 아니 황제처럼 군림하지는 아니했는지 돌아볼 일이다. 새롭게 열려야 할 가슴과 눈에 빗장을 지르고, 윤기 나는 몸에는 빛나는 비단옷을 걸치고, 칼집에 꽂힌 칼을 무시로 흔들어 허망한 바람을 잡으며, 그 권력으로 독자들을 웃기고 울리지는 아니했는지. 그럴 수 있다고 착각하지는 아니했는지. 저 혼자 황홀경에 빠져 독자들에게 감동을 강권하지는 아니했는지 돌아볼 일이다.
이제 미리감치 늙어버린 문학이 과감하게 자살해도 좋을 때이다. 이런 극단적 처방을 아껴두고 기다려보는 시간은 아마도 버려지는 시간이 될 가능성이 많다. 문학은 이미 독자들에게 뒤쳐져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도 할 것이다. 아니면 이미 독자들은 문학을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수준으로 추락해 버렸다 믿고도 싶을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등 돌린 독자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지는 아니하는가. 어리석게도 그런 순간을 기다리고 있지는 아니하는가. 늙은 문학이여, 세월도 없이 손쉽게 늙어버린 문학이여, 늙은 시여, 늙은 소설이여, 그리고 늙은 평론이여, 이제 모두 무덤 속으로 사라져라. 그래서 그 무덤 위에 피게 될 전혀 상상도 못했던 한 떨기 들꽃을 꺾어갈 새로운 존재들에게 시간과 영광을 돌려줘야 한다. 리토피아는 그곳에 있게 될 것이다.
이번호의 특집은 ‘21세기를 여는 한국 문학⋅문화’이다. 좀더 여유 있고 심도 있게 다루기 위해 년간 특집으로 정하고 그 첫 번째를 시작한다. 시, 영화, 연극 부문에 네 분의 필자를 모셨다. 강동우는 이 시대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결론적으로 시의 죽음과 미학의 죽음으라고 역설하고 있다. 이경수는 서정시, 여성시, 노동시의 새로운 모색을 새 시대를 여는 얼굴로 평가했으며, 김남석은 젊은 연극인 턱없이 부족한 연극계를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면서 이 시대의 다소 상투적이긴 하나 과감하고 도전적인 면을 긍정적인 면으로 평가하고 있다. 강성률은 2000년대 초를 영화계의 허울뿐인 황금기로 규정하고, 그 출로를 극장문화와 배급구조의 개선을 통해 관객들이 다양한 영화를 선택할 수 있어야한다는 데 열어두고 있다.
이번 호부터 ‘지난 계절 작품 읽기’가 계간평을 대신한다. 시, 소설 부문 각 다섯 분께 위촉을 드렸다. ‘북-리뷰’도 ‘대학생들의 독서일기’로 바꿨다. 미래 한국을 이끌어나갈 젊은 대학생들의 참신하고 날카로운 안목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동안 4회에 걸쳐 연재했던 김동호 시인의 ‘시로 쓰는 시론’은 이번 호가 마지막이다. 충분한 지면을 제공해 드리지 못한 점 두고두고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다음 호부터는 ‘외국문학 순례’가 연재될 예정이어서 그동안 부족했던 외국문학 부문에 박차를 가하게 될 것 같다. 젊은 시인 조명에 이미 관록을 인정받은 배용태 시인의 작품을 선보인다. 그러나 이 지면은 침묵 속에 숨겨진 보석의 얼굴을 닦아주는 역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초점란에 김경숙님의 ‘북한시의 요체․1’과 이은주님의 ‘가면이 되어버린 역사’, 그리고 이윤숙님의 ‘생태 위기 시대, 에코페미니즘을 둘러싼 이해와 오해’를 수록했다. 지난 호부터 연재를 시작한 ‘원작이 있는 영화’로 이주연님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이어 류상욱님의 글 “소설과 영화, ‘각색의 윤리학’-조루즈 베르난노스와 모리스 피알라의 <사탄의 태양 아래서>”를 싣는다. 신작소설에 중량감이 느껴지는 두 분 작가의 작품을 모셨다. 그러나 아직도 소설 부문은 리토피아가 극복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문학작품과 문예지는 상호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나 그렇다고 동일한 존재는 아니다. 창작의 방향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든 문예지는 문예지 나름대로의 속성을 갖고 있다. 현재 이 땅에 기존하는 문예지들의 문제점은 무엇이었는가. 출발은 아름답고 건실하였으나 그 마지막은 참담하였다. 그렇다면 그 안에 내재한 숱한 문제점들을 극복해 가면서 앞으로 문예지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답답한 일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대안다운 대안이 없다. 개인의 꿈과 사회적 꿈이 일치할 때 영웅적 존재의 탄생이 가능하다고 보면, 이 시대 문예지의 꿈은 과연 사회적 꿈과 어디에서 얼마큼이나 일치를 시킬 수 있을지가 중요한 문제이다. 리토피아의 정신은 훌륭한 목표가 아니라 당당하고 자유스럽게 걸어가는 과정이길 바란다. 세상은 온통 어둠뿐이다. 새로운 북극성은 쉽게 창조되지 않을 것이다. 어둠에 눈을 익혀 스스로 길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리토피아는 좋은 필진과 좋은 독자가 최대의 목표이길 바란다.
창간 3주년을 맞는다. 지난 삼 년 동안 리토피아는 온실에서 키우는 고귀한 꽃은 아니었다. 리토피아는 들판에서 아무렇게나 자라는 들꽃이고자 했다. 리토피아는 엉겅퀴 같은 자유와 강인함을 생명으로 한다.
피 흘리는 것이야말로 진정 살아 있다는 유일한 증거일 수 있다. 피의 대가가 현실로 돌아온 아름다운 세상에서 웬일로 황당한 얼굴로 떨고 서 있는 저 어둠 속의 위대한 별꽃들을 바라보라. 당장은 비록 기묘하고 황당하게 흔들리고 있지만, 과거는 과거의 신이 이미 가져가 버렸으며, 미래는 미래의 신이 새로이 준비할 것이다.
--장종권(시인, 본지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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