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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대학생의 독서일기/이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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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342회 작성일 05-03-07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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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자와 신이치의 '곰에서 왕으로'(역자 김옥희, 동아시아, 2003)

비대칭에서 대칭의 시원으로

이해운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우리는 단군신화를 읽으면서 ‘한겨레는 단군의 자손이며 단일민족이고, 따라서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단군을 낳은 웅녀는 곰이었으므로 ‘나의 어머니도 곰이었다. 따라서 곰을 어머니처럼 모셔야 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일까. 다윈의 원숭이가 인류의 조상이라고 믿으면서도 곰을 한민족의 조상으로 믿지 못하는 것은 ‘과학’에게 우리의 신화적 믿음에 관한 헤게모니를 양보했기 때문이다. 진리라는 것이 당대의 대다수가 인정하는 통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는 시대에 와서는 논리적 분석과 해석의 타당성이 보다 중요시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특정 상황과 논리에 의해 신화의 의미가 다양하게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곰에서 왕으로>의 저자 니카자와 신이치는 책에 언급된 신화들이 현재의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지를 밝히고 나아가 ‘국가, 그리고 야만의 탄생’ 이후에 야기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제1장의 제목처럼 ‘잃어버린 대칭성을 찾아’내기 위해 동북아시아와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신화 읽기로부터 출발한다. 이에 따르면 인간과 동물이 상호 대칭성을 확보하던 시기에는 곰이나 야생염소나 범고래 등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살았으며, 자연의 생명체 모두는 호혜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에게 ‘날카로운 무기’가 주어지면서, 또한 대칭성의 저울이 국가와 문명화의 과정으로 기울면서 비대칭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곰은 고기와 가죽을 넘겨주고, 인간은 엄숙한 의례를 통해 동물의 영혼을 위로하는 ‘주고받는 관계’에서 일방적 수탈의 형태로 바뀐 셈이다.
이러한 약육강식에 의한 지배 현상은 오늘날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족과 문화권 사이에서도 작용하여 많은 현안들을 낳고 있다. 강의로 진행되었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문명이 야기한 문제들에 대해 공감하게 된다. 신화가 단지 먼 우주의 시원을 밝혀내기 위한 인류학적 탐구의 대상에 그치지 않고 일상의 공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현재를 조명하는 실천적 철학으로서의 위치까지 확보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의 해석이나 논리 적용의 타당성은 검증을 거쳐야 하겠으나 독자에게 신선한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게 한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를 갖고 있다.
저자는 지금의 비대칭적 사고가 가져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화적․대칭적 사고의 회복을 주장한다. 신화가 진행되던 고대 이후 인류의 역사는 점차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진보(발전)’에의 믿음에 의해 과거보다 현재를 우위에 둔다. 과학을 기반으로 한 물질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종족을 미개인 혹은 야만인이라 부르며, 또한 옛 조상들의 믿음을 무속이니 미신이니 하는 족쇄를 채워 문명인이라면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터부로 간주하게 한다. 이렇게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나온 우월의식 역시 비대칭적 사고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거나 혹은 반대로 받아야만 한다는 믿음 속에서는 결코 대칭성이 회복될 수 없을 것이다. 광우병과 조류독감으로 인해 행해지는 소와 닭의 매몰 광경을 지켜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고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는 영혼들을 본다. 이것이 우리가 이룩한 거대한 문명의 암울한 뒷모습인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와 함께 논밭을 일구던, 시골집 외양간에 무엇이 있었던가.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울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그 무렵 동백꽃이 피면 점순네 수탉에게 쫓기던 우리 수탉에게 고추장도 먹여 보았을 것이고 안타까운 마음에 대신 때려주기도 하였으련만. 처갓집 장닭은 물론 어린 조카의 말랑말랑한 똥을 받아먹던 누렁이조차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다만, 은은한 조명이 부끄럽게 누워있는 침대 위에서 우리 인간도 한 마리의 건강한 수컷과 암컷이었음을 잊어버리지 않았다는 데에 희망을 걸어본다. 황소가 울고 닭의 홰치는 소리가 들리던, 누렁이가 멍멍대던 그들의 밤, 밤, 밤은 얼마나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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