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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신작시/이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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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682회 작성일 05-03-0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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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풀잎의 풀잎



풀잎은 바람의 힘만으로
혼자 그렇게 빨리
누웠다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뿌리와 발목의 힘만으로
또 혼자 그렇게 빨리
여린 몸을
뒤틀었다 펴는 것이 아니다
지평선 끝까지 빨랫줄처럼 쭉 뻗어 있는
저 초록의 적막과
고요의 힘으로
풀잎은 혼자 그렇게 빨리
누웠다 일어나는 것이다
지평선을 타고 흐르는 저 외로움과
그리움의 비애까지도 다 싸고도는
사랑의 힘으로
풀잎은 혼자서도 그렇게 기꺼이
초록의 여린 몸을
힘껏
뒤틀었다 펴는 것이다
풀잎은 또 그 초록의 힘만으로 혼자 그렇게
검푸른 것이 아니다
봄과 여름의 힘만으로 혼자 그렇게
넓은 바다와
검푸른 파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수평선 너머로 조용히 짧게 지는 해와
落照의 붉은 힘으로
풀잎은 혼자서도 그렇게
검푸른 바다가 되는 것이다
겨울에도
수평선 너머까지 힘차게 뻗어가는 뿌리의 힘으로
풀잎은
가을까지도 그렇게
검푸른 것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내가 검푸른 파도가 되는 것도
풀잎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풀잎에 누워
풀잎의 풀잎이 되기 때문이다






모래처녀의 독백



나의 자궁은 모래 서식지
오줌을 눌 때마다
수만의 모래알들이 변기통을 넘쳐 흐른다
하수도를 넘쳐 흐른다
넘쳐흐른 내 새끼들이 도시로 간다
도시로 가서
빌딩이 되고 아스팔트가 되고
아파트 숲이 된다
그러고 보면 저 도시의 모든 빌딩과
아파트 숲과 아스팔트는 사랑스러운
나의 자식
나 또한 저 모든 빌딩과 아파트 숲과
아스팔트의 어머니
밤이 깊을수록 나는 더욱 따뜻한 모성의 본능으로
나의 자식들을 바라본다
빌딩과 아파트 숲과 아스팔트를 응시한다
그러나 나는 모래가 되지 못한다
모래가 되어 모래의 집이 되어주지 못한다
그들의 집이 되어주지 못한다
새끼들의 집이 되어주지 못한다

아무도 내가 모래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처녀의 몸으로 모래알을 수태한
모래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사막의 동정녀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세상은 모두 모래로 이루어져 있다
나의 알로 이루어져 있다


이진영
․1958년 전남 영광 출생
․198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ꡔ수렵도ꡕ ꡔ퍽 환한 하늘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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