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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신작시/안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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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희
新 박씨부인전 1
봄날 내 몸은, 눈 내리는 겨울이다 양손에 들려 있는 보퉁이 펼치면 안방, 펼치면 부엌, 겨울 스웨터 구멍으로 삐죽 나온 사진 한 장, 아이는 나를 보며 웃는다 하루를 끌던 커다란 신발 소리는 두고 온 아이의 기침처럼 쿨룩거린다 지하철은 멈추었다 또 달리고 사람들은 휩쓸리듯 사라진다 나는 지상으로 나아간다 머리카락은 바람 없어도 흩어지고 나뭇가지에 앉은 새털구름 갈 곳을 잃는다 한때의 마당 좁은 집, 영산홍 붉게 피는 오월이 습관적으로 어깨 위에 앉는다 툭툭 먼지를 턴다 헌 박스 한 장 주운 날 눈부신 햇살 속에서 코끝 찡해 온다 사람들은 곁에서 떠나가도 밤하늘 별은 내게로 안긴다 나의 생은 오로지 나의 영혼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新 박씨부인전 2
또 한 장, 나를 넘긴다 연산로터리 지하철역 주변에서 때밀이 수건을 펼친다 등 굽히고 종일 앉아 있어도 수건은 팔리지 않는다 오래도록 빛 바래고 시간이 닳은, 닳은 귀퉁이를 넘겨 책을 본다 장화홍련전이다 장화와 홍련이가 물에서 걸어나온다 박씨부인전이다 박씨 부인이 하늘을 날아다닌다 또 한 장, 사각의 닳은 어깨를 넘긴다 지하철역 안에서 지상을 향하여 나비가 날고 새가 날아 나온다 사람들의 얼굴은 켜켜로 피는 꽃잎이 되고 두 팔과 다리는 싱싱한 줄기, 향기로운 몸이 되어 걸어 나온다 돌아오기 위해 또 하루를 열었던 생의 길목, 그곳을 지키는 일은 쉬 끝나지 않는다
안효희
․부산 출생
․1999년 ≪시와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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