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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신작시/이윤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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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훈
그 집을 지나며
길이 휘어드는 곳
뿌리혹처럼 달린 토담집
에워싼 담쟁이 잎들이 반짝인다
살짝 문이 열려있다
여기 사는 이 누구일까
울타리를 따라 어우러진 능소화 넝쿨이
쓰윽 내 발목을 감는다
잠시 나는 안을 기웃거린다
지붕 너머로 훌쩍 휘파람새가 날아가고
눈부신 적막
나는 서둘러 그 길을 빠져나왔다
화엄 푸줏간
문을 열면 맑은 홍방울새 소리
고막에 도드라지는 붉은 꽃무늬
노을이 지는 넓적한 칼을 쥐고
험궂은 우람한 善男이 나를 맞는다
그가 썰어주는 살덩이들
쥐어보면 말랑한 꽃송이 같다
푸줏간 뒤쪽 꽃밭을 일구어 그는
비릿한 속을 만지던 손으로 푸짐히
꽃들을 키워낸다
그의 식욕처럼 왕성하게
함박만한 입을 벌렸다 닫는 꽃들
나도 이 세상 뒤편 한 구석
그의 식욕으로 붉디붉게 피어나고 싶다
이윤훈
․200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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