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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신작시/정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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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옥
명옥헌 못가에서
문드러진 내장
불근불근 드러난 갈비뼈 사이
포크레인이 샅샅이 긁어내고 있다
굉음 소리 쩍,
물밑 허공 금이 간다
이무기가 텃새 누리며
수수백 년을 살았던 못
물을 갈아 넣겠단다
그렇게 한들,
땅 속에 묻힌 7년 억하심정
누에 실 뽑듯 통울음 물레 잣는
매미소리만 할까
풍화되어 백일홍 밑둥치에
흙으로 섞인 억새 거름만 할까
아무리 비틀어 짜낸들
제 가슴 속 붉게 입 다문 舍利
스스로 뜨겁게 밀어내는
백일홍 혀끝만 할까
그리하여
언젠가는 수심 깊은 淨淨한 못에
양수 기운 번져
잘생긴 달 하나 덩그러이 받아낼 것을
미루나무
먼 길 걷고 있는 미루나무
아득한 소실점에 걸어둔
제 생 바라보느라
고개 뻣뻣하다
한 발짝 다가서면 그만큼 멀어지는 신기루
깨금발 딛고 있는 갈고리 발가락들
땡볕 아래 티눈으로 온통 어지럽다
성한 잎들 배불뚝이로
왁자하게 허공 휘어잡던 때를 떠올리며
늑골 사이 수시로 넘나드는 햇무리에도
미루나무는 춥다
나이만큼이나 긴 그림자 물 속에 누이고
발치에 매달린
어린것들 한사코 내려다보며
강가에 촉수 디밀어
우듬지까지 힘껏 물 빨아올린다
마른 물관부에 샛강 흐르는 소리 들리자
비로소 벌레 먹은 노란 몇 잎
신작시|정혜옥․
강물 위에 떨구며 제 길 지운다
정혜옥
2002년 ≪시와 사람≫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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