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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초점/고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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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온 길, 가야 할 길
고 명 철
(문학평론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젊은작가포럼은 올해의 <아름다운 작가상> 수상자로 소설가 김남일을 선정하였다.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작가는 무척이나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과연, 자신이 이 상을 수상할 만큼의 자격이 충분히 있는지,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름다운 작가상> 수상과 관련하여 그의 문학 활동과 소설 세계에 대한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 그는 내게 “젊은작가포럼의 고영직 회장으로부터 올해의 <아름다운 작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대단히 부담스러웠습니다. <아름다운 작가상>은 말 그대로 ‘아름다운’ 작가에게 수여되는 상인데, 제가 이런 상을 덥석 받아도 되는 것인지, 선후배 작가들과 제 자신에게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 땅에서 작가들에게 수여되는 크고 작은 문학상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 많은 문학상 중에서 <아름다운 작가상>은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도 않고, 문학적 권위 또한 없는 상이다. 하지만 이 상이 동료 작가들, 특히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젊은작가포럼이 주관하고 있다는 것은 그 어떠한 문학상보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문학적 성과와 문학 활동에 대한 전반적 사항을 고려하는 가운데 젊은작가포럼에 소속된 동료 회원들의 추천과 자유로운 논의 과정을 통해 선정되는 만큼, 이 상은 말 그대로 삶과 문학이 일치된 ‘아름다운 작가상’이다. 그래서인지, 김남일은 이 상의 취지에 자신이 부합되는지의 여부를 두고 고민을 하였으며, 나와의 인터뷰도 몇 차례 고사하였다.
김남일은 1983년에 무크지 ≪우리세대의 문학≫ 2집에 단편 「배리」를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한다. 그가 첫 작품을 발표하게 된 통로와 시기가 웅변해 주듯이, 그는 1980년대의 광기에 대해 전위적으로 대응한 무크지운동과 함께 창작 활동을 하게 된다.
“사실, 무크지운동은 80년대 초반 문학이 할 수 있는 민주화운동의 성격을 지녔다고 볼 수 있지요. 제 기억으로는 자유실천문인협의의 활동이 기반이 된 ≪실천문학≫이 무크지 형태로 발간되었는데, 1980년 창간호가 대략 1만 부에서 2만 부 정도 발간되었으니, 무크지운동의 현실적 유효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저는 그 당시 ≪실천문학≫의 민중민족학적 이념에 기반한 문학운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니까요.”
김남일 문학의 출발점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에게 문학은 사회적 실천의 한 형태인바, 5.18광주의 비극으로부터 시작된 1980년대의 폭압적 세계에 맞서 저항할 뿐만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누려야 할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사회변혁운동에 복무해야 하는 역할로서 인식되었다.
이러한 그의 문학적 입장은 그와 동세대의 작가, 비평가들과 함께 1980년대의 민족문학운동 속에서 구체화되었다. 그는 그 당시의 민족문학운동을 돌아보면서 그의 동료들과 함께 한 창작 활동의 한 사례를 들려주었다. 이른바 ‘하나방’이란 소모임을 가졌는데, 여기에는 김영현, 위기철, 정도상, 김인숙, 백진기, 현준만, 이재현, 김재용 등이 소속되어 있어 창작을 하기 위해 각자가 취재한 정보-가령, 대우조선노조의 탄압, 상계동과 목동의 철거민에 대한 탄압, 도시빈민의 참담한 실상 등-를 공유하고, 작품에 대한 강평을 하면서 민족문학운동을 펼쳤다는 점이다.
그런데 김남일의 이러한 80년대 민족문학운동에서 망각할 수 없는 것은 문학평론가 채광석의 존재다. 김남일에게 채광석은 자신의 소설을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문학평론가 이상의 존재다. 1970년대의 민족문학을 한 단계 진전시킨 채광석은 민중적 민족문학을 정초시키는데, 김남일은 이러한 채광석의 민족문학을 자신의 창작 영토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한다. 여기에는 문학평론가로서의 채광석뿐만 아니라 민주화운동의 전위에 선 운동가로서의 채광석, 그리고 지극히 평범한 자연인으로서의 채광석과 김남일이 맺은 두터운 관계가 놓여 있다.
“90년대 이후 민족문학의 위기가 논의되면서, 맨 먼저 떠올랐던 사람이 문학평론가 채광석 선배였습니다. 그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 꼭 필요한 사람이야말로 채광석이란 존재가 아닌가, 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삶과 문학에 대한 그 뜨거운 열정, 결코 도식적이고 경직되지 않은 넉넉한 인간됨, 선배와 후배를 잇는 가교 역할로서의 채광석이란 존재가 요즘처럼 그리운 적이 없습니다.”
김남일의 문학에 채광석이 드리운 그늘은 그의 단편 「길」(1991)에서 잘 엿볼 수 있다. 채광석의 기일(忌日)을 맞아 그의 묘지를 찾은 작중 화자인 ‘나’는 소설가로서 혹은 운동가로서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게 된다. 채광석이 부재한 90년대의 현실 속에서 ‘나’가 가야할 창작의 길과 운동의 길은 어디인지, “한 번도 기계를 만져보지 않은 자의, 한 번도 흙을 파보지 않은 자의 소설…… 그러면서도 이 일이 년 사이 나는 그러한 자괴감마저 잊고 살았다”(「길」에서)며 자신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이것은 채광석이 죽어 소멸한 존재가 아니라 김남일에게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로 남아 있음을 말한다.
사실 김남일의 문학을 관통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채광석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1987년 6월 항쟁의 시대적 성과를 담아낸 그의 첫 장편 ꡔ청년일기ꡕ(1987)는 그 대표작 중 하나이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의 상승 국면을 다루어내면서, 무엇보다 노동자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지식인의 하강 국면을 동시에 포착하여 작가의 민중지향적 소설쓰기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농민의 문제적 현실에 대해서는 단편 「다시 서는 땅」(1988)에서 여실히 형상화하고 있다. 물론 이들 작품 외에도 두 권의 소설집 ꡔ일과 밥과 자유ꡕ(1989), ꡔ세상의 어떤 아침ꡕ(1997) 및 대하소설 ꡔ국경ꡕ(1996, 전 7권) 등에 자리하고 있는 공통된 문제의식은 민중의 현실이다. 그는 1980년대 후반 자신의 소설에 대한 창작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소설가로서의 자부심에 대한 의견을 내놓은 바가 있는데, 그 전언의 핵심은 민중에 대한 무한한 신뢰다.
그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 점을 들 수 있겠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그동안 열악한 우리의 현실 속에서 끈질기도고 가열찬 민주화투쟁을 벌여 나온 이 땅의 무수한 민중들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그들이 아니라면, 오늘의 소설이 없다. 역사의 발전법칙을 스스로 익히는 이 땅의 무수한 민중들의 강고한 투쟁이야말로 소설의 역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 또한 밝다. 우리의 운동이, 우리의 삶이 거꾸러지지 않는 한, 우리 소설의 미래는 빛날 것이다.
김남일의 위 전언은 1990년대 이후 변화된 정황 속에서 현실적 유효성이 상실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이것은 비단 김남일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1980년대 내내 민족문학운동을 펼쳤던 작가들인 경우 싸워야 할 대상이 분명했고 그 테제가 선명했던데 비해, 1990년대 이후 전개된 현실은 1980년대와 같은 방식에 근거한 민족문학운동이 더 이상 현실에 착근할 수 없다는 사실이 설득력을 지닌 바, 민족문학이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음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을 터이다. 나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그에게 민족문학의 현재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김남일은 우선 1990년대 초반의 후일담류에 대한 항간의 평가절하에 대해 이견(異見)을 내놓았다.
“후일담류를 향해 가해진 비판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부정적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조하고 싶은 것은, 1980년대로부터 1990년대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이른바 진보적 진영의 작가들이 자신의 글쓰기와 실존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이 바로 후일담류들입니다. 제 자신을 비롯한 진보적 작가들이 1980년대의 시대적 중압에 짓눌려 있었고,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문민정부의 출범으로 인해 팽팽했던 문제의식이 순간적으로 이완되면서 겪은 실존적 불안에 대한 형상화가 후일담류거든요.”
1990년대 초반 후일담류에 대한 그의 의견은 분명해 보였다. 후일담류가 상투화되면서, 급기야 천박한 문학상업주의와 결탁하여 이른바 진보상업주의로 전락된 것은 응당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 요소가 후일담류 전체의 생산적 요소마저 덮어버릴 수 없는 셈이다. 오히려 그는 1990년대 이후 위축된 민족문학의 위기를 갱신하기 위해서는 변화된 문제틀에 의해 민족문학의 새로운 과제에 대해 숙고해야 할 것임을 힘주어 강조한다.
“이미 많은 논자들에 의해 지적된 바입니다. 1990년대 이후 삶과 문학의 진보를 향한 운동은 달라져야 합니다. 노동 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생산력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노동의 생산성 향상이, 지구의 생태계 문제를 도외시하는 한, 우리의 삶의 미래가 어떨지는 명약관화한 일입니다. 노동해방, 인간해방을 실현하기 위한 진보적 과제는 1980년대와 다른 구체적 현실 속에서 좀더 섬세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민족문학 내부에서 이러한 문제들과 관련된 치열한 자기비판을 거쳐야 할 듯 합니다.”
김남일은 고민하고 있었다. 1990년대 이후 진보적 문학이 가야 할 길은 어디일까. “진정한 작가라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세계를 그 본질적인 측면에서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김남일, ꡔ다시 쓰는 문학 입문ꡕ, 청년사, 1991, 205쪽)라는 문학적 신념을 지닌 그는, 어떻게 그 길을 가야할까.
그의 이러한 고민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사무국장을 역임하면서 회원들의 내부 결속과 작가회의의 실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구체화된다. 그런가 하면 그는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을 통해 민족문학의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였다. 이 모든 문학 활동은 그가 봉착한 진보적 문학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최근 오랜만에 발표한 그의 단편 「사북장 여관」(ꡔ문학과경계ꡕ, 2003년 가을호)은 바로 이러한 그의 현재적 입장이 투영되어 있는 것으로 읽힌다. 표면적으로 볼 때 그 역시 1990년대의 소설에서 자주 읽혔던 남녀 불륜을 다룬 듯하지만, 정작 그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어떠한 희망도 출구도 보이지 않는 세계에 놓인 주체의 막막함과 절망감, 그 비관적 세계관에 대한 형상화다. 그는 「사북장 여관」에서 1980년대의 삶을 냉철히 진단한다. “분명하게 보이던 것들이 실은 얼마나 허망하게 우리를 배반하는가”(217쪽)라는 작중 인물의 자조(自嘲) 섞인 성찰에서 단적으로 파악할 수 있듯, 김남일은 1980년대의 사회변혁운동을 향해 치열히 살았던, 작중 인물 철휘로 표상되는 동세대 진보적 운동가들이 1990년대 이후 급변한 정세 속에서 그들이 그토록 부정해마지 않던 타락한 권력에 영합해 들어가는 데 대해 부끄러워한다. 하여 작가에게 당면한 문제는 이 사막과 같은 불모의 대지를 어떻게 횡단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김남일은 정직하다. 보이지 않는 전망을 위해 억지로 그 전망의 출구를 찾지 않는다. 말하자면 전망주의의 도식성․맹목성의 감옥에 갇혀 있지 않다.
「사북장 여관」에서 전망의 출구는 태백이다. 하여 작중 인물들은 혹한의 겨울 속에서 강원도 태백을 향해 간다. 하지만 그들에게 태백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다. 태백은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간단히 도달하여 악다구니치는 그들의 영육(靈肉)을 편안히 해 줄 수 있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왜냐하면 태백으로 난 새로운 터널을 통과해 가면 쉽게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태백은 그렇게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태백을 향해 난 새로운 터널의 입구는 왠지 그들을 막다른 곳으로 안내하는 블랙홀의 입구처럼 보인다. “주변의 어둠보다도 더 까만 터널 입구”(223쪽)로 빨려 들어가는 그들이 터널을 빠져나와 태백에 도달할 수 있을까.
작가 김남일은 인터뷰를 마감하면서 솔직한 심정을 내게 토로하였다.
“적어도 지금, 이곳에서 저는 희망을 품을 수 없습니다. 다시, 출발점에서 시작해야 할 듯합니다. 제가 직면해 있는 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맞대면하는 데서부터 시작하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사북장 여관」은 최근 제 삶과 소설적 고민 그 자체라 해도 무방합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지금부터 제 소설을 본격적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남일은 그동안 소설쓰기를 게을리 해온 자신이 부끄럽다고 하였다. 이제부터 소설쓰기를 열심히 하고 싶다는 그는 어떤 확신에 차 있었다. 비록 「사북장 여관」의 결말처럼 우리의 미래를 향한 출구가 불투명할지라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1980년대의 그 암흑기를 견뎌왔듯이, 삶과 문학의 진보를 향한 길을 계속 갈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있었다.
고명철
․1970년 제주 출생
․저서 ꡔ‘쓰다’의 정치학ꡕ ꡔ비평의 잉걸불ꡕ 등
․현재 광운대 겸임교수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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