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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단편소설/조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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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889회 작성일 05-03-0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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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상




1.
아내마저 외출해 버린 집안이 무덤 속처럼 적막하다.
더구나 창문을 통하여 쏟아져 들어온 가을 햇살이 거실 바닥을 온통 황톳빛으로 가득 채우고 있어서 거실이 마치 황토로 뒤덮인 무덤 같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나는 거실 바닥에 길게 누워 천장의 잔잔한 꽃무늬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무섬증 같은 외로움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계절 탓인가? 나는 서럽도록 외로운 감정의 근원을 짐짓 계절한테 덮어씌우려는 심술을 부려 보았다. 그러나 계절을 느끼며 살아온 것이 언제였는지 모르도록 계절은 그저 달력 속에서 머물고 있었을 뿐 내 감정의 촉수 하나 건드리지 않고 나를 외면한 채 겨드랑이 사이를 빠져 달아나는 바람처럼 나를 비껴갔을 뿐이다.
늙어가는 탓일까? 이번에는 쓸쓸하게 느껴지는 내 감정의 정체를 나이 탓으로 돌려 보았다. 내 나이 어느새 예순셋을 향해 허위단심 기어오르고 있으니 제아무리 마음은 아직도 청춘이라고 뻣대 보았자 예순셋의 나이는 인생의 황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였다. 갑자기 헛헛한 공허감이 가슴 한복판에 동굴 같은 구멍을 내고 그 구멍 속을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파충류의 긴 몸체처럼 빠져 나가고 있었다.
물론 누구를 꼭 만나고 싶다거나 꼭 무슨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는 아니었지만 아내마저 외출해 버린 텅 빈 집안에 혼자 남아 있는 일요일 오후가 이처럼 적막하고 외롭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소름이 끼치도록 쓸쓸하고 무료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세 들어 살고 있는 아래층 사람들도 일요일을 틈타 어딘가로 모두들 나들이를 떠났는지 현관문 여닫는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아서 다가구 주택 건물 전체가 찍어 누른 듯이 고요하다.
나는 햇살을 피하기 위하여 보던 신문을 얼굴 위에 덮고 눈을 감았다. 신문에서 풍겨 나오는 인쇄잉큰 냄새가 마취제처럼 스멀스멀 졸음을 몰고 왔다.
어렴풋한 잠 속에서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도 만나고 누군가와 거나하게 술을 마시는 꿈을 꾸면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팔베개에 의지한 채 얼마 동안이나 잠이 들었는지 모른다.
그때 벼락치듯 닫히는 현관문 소리와 함께 외출에서 돌아온 아내가 볼멘소리를 내지르는 바람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202호 할아버지 때문에 속상해서 정말 죽겠어. 왜 자꾸 밖에서 폐품을 줏어다가 집안으로 끌고 들어오는지·······.”
나는 누워있던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며 거실의 계단을 오르는 아내의 발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윽고 열린 거실 문으로 아내의 모습이 나타났다. 창문을 통해 비쳐든 초가을의 마지막 햇살이 아내의 등뒤에서 벌겋게 타오르고 있었는데 역광 탓으로 아내의 얼굴에서 표정을 살필 수는 없었지만 두 손에 부피가 만만찮은 여러 개의 쇼핑백과 비닐봉지를 나누어 들고 있는 아내는 무척 화가 난 듯했다.
그렇지 않아도 우람한 체구의 아내인데, 내가 선잠에서 깨어난 탓인지 부피가 큰 짐꾸러미를 들고 역광이 만들어 내고 있는 시커먼 그림자까지 동반한 아내의 일렁이는 실루엣은 거인처럼 우락부락해 보였고, 더구나 무거운 짐을 들고 3층까지 계단을 올라오느라고 숨이 찬 아내가 터뜨리는 볼멘 불편의 목소리는 거인이 뿜어내는 숨결처럼 거칠게 들렸다.
나는 아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생각에 성큼 자리에서 일어나 아내의 손에 들린 쇼핑백들을 부랴부랴 받아들며 안쓰럽다는 듯 끌끌끌 혀를 찼다.
“저 땀 좀 봐, 받으러 나오라고 전화라도 하든지······.”
나는 아내가 홧김에 손에 든 물건들을 내팽개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순순히 나에게 그것들을 넘겨주고는 주방의 냉장고를 향해 돌진하듯 달려가서 냉수 한 컵을 숨돌릴 사이도 없이 벌컥벌컥 비우더니 아까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평온한 걸음으로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
“202호 할아버지가 또 무엇을 들고 들어왔는데 그래?”
“말도 마세요.”
아내는 소파 위에 무너지듯 주저앉으며 풀어 헤친 앞가슴에 활랑활랑 부채바람을 일으키더니 기가 막혀 죽겠다는 표정과 함께 손사래를 쳤다.
“이번에도 끈인가?”
“끈뿐인 줄 아세요? 이번에는 모가지 없는 인형에다가 벌겋게 녹슨 칼도 있어요.”
아내는 친구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아이처럼 202호 노인의 해괴한 소행을 들뜬 어조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무거운 짐보따리를 들고 숨이 차서 계단을 오르는데 계단 옆에 장식용으로 늘어놓은 올망졸망한 화분 틈에 무언가 상자곽 같은 것이 숨겨져 있더라는 것이다. 들고 오던 보따리를 내려놓고 상자곽을 열어보니 그 속에는 어른 주먹만한 크기의 비닐끈이 실타래처럼 촘촘히 감겨져 있고 몸통만 남은 인형과 과도로 보이는 녹슨 칼이 들어 있어서 섬뜩하더라는 것이다.
“우리 다가구 건물 안에서 그런 짓거리 할 사람은 그 할아버지밖에 또 있어요? 어찌나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나는지 그것들을 죄 쓸어다가 쓰레기통에 팽개치고 오기는 왔지만·······.”
아내의 설명을 듣고 보니 그것은 202호 노인의 소행임이 틀림없었다. 그 노인은 이미 여러 차례 그런 짓을 하다가 우리들에게 현장을 목격당한 장본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든 살이 넘었다는 노인인데도 외양이 멀쑥하고 차림해도 깔끔해서 우리들로부터 멋쟁이 할아버지라고 불리던 202호 노인이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노인이 우리 다가구 주택에 입주한 지 몇 주일이 지나서였다.
처음 202호 노인이 우리 다가구 주택에 입주할 때도 약간의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 다가구 주택은 주인인 우리가 3층 전체를 사용하고 지하층과 1,2층은 복도를 사이로 각각 두 세대씩, 우리를 포함하여 도합 일곱 세대가 살도록 되어 있는데 입주자들 대부분이 맞벌이 신혼부부거나 갓난애가 딸린 젊은 부부들인데 지난 봄에 202호에 세를 들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이 의외로 노인 부부라는 사실을 알고 나와 아내는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꺼림칙한 생각이 들어서 이들의 입주에 대하여 허용 여부를 망설였던 것이 사실이었다.
반갑다고 생각한 이유는, 모든 세입자들이 부부가 함께 직장에 나가느라고 낮에는 건물 전체가 텅 비어 있다시피 적적하고 집안의 관리도 엉망인 편인데 노인들은 직장에 나가지 않으니까 주로 집안에 있으면서 사람 사는 냄새를 풍기며 이웃들과도 오손도손 인정을 나누면서 살아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고, 꺼림칙하게 여겼던 이유는 입주자가 워낙 고령이어서 건강문제로 안 좋은 일이라고 생기거나 혹은 이웃간에 세대 차이로 인한 공동생활에서의 불협화음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바깥노인에 비하여 부인인 할머니는 그보다 열대여섯 살은 젊어 보이는 노인인데 이런저런 일을 앞장서서 처리하고 성격이 활달하여 능히 바깥노인을 대신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반가운 쪽보다 꺼림칙한 쪽에 가까웠다. 물론 꺼림칙한 쪽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처음에 우리가 우려했던 사연들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꺼림칙한 것은 사실이었다.
202호 노인은 겉모습과는 달리 여든 살이 넘은 고령인데다가 치매증상이 있어서 입주 첫날부터 여러 가지 해프닝을 일으켰다.
자기 집인 줄 알고 바로 위층인 우리집 초인종을 눌러대는 것은 생소한 곳에 새로 이사해 왔기 때문에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나와 정중하게 인사까지 나누고 잘 부탁한다느니 환영한다느니 하는 인사말까지 서로 주고받았는데도 몇 시간 뒤에는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며 누구시냐고, 몇 호에 사시느냐고 물어오는 데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이처럼 202호 노인은 어쩌다 정상적일 때는 겉으로 풍기는 점잖은 노인의 풍신에 어울리게 나에 대해서 이것저것을 묻기도 하고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도 조리 있게 설명하는 등 인자스럽고 품위 있는 노신사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지만 대체적으로 노인의 언행은 치매 노인의 기행(奇行)을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노인은 고향이 함경도 북청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북청 사자놀음과 북청 물장수라는 말이 있는 그 북청이 고향이시냐고 아는 척을 했더니 그렇다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런데 왜 북청 물장수가 유명한지 아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내가 갑작스런 질문에 선뜻 대답을 못하고 어리벙벙해 있으니까 노인은 강경한 어조로, 물지게나 날라서 생계를 유지하는 촌놈들이라고 깔보는 말이 아니라 북청 사람들은 자녀 교육에 열의가 대단해서 물장수 노릇을 해서라도 자녀 교육만은 꼭 시킨다는 자랑스런 뜻이 담겨있다고 북청 출신의 긍지를 내비치기도 하는 등 도저히 치매 노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노인은 북청 출신의 월남 인사 중에서 누구누구가 훌륭하고 또 누구누구가 사업가로서 성공했다는 등 정보도 정확했고 사리 판단도 분명했다. 그런데 이런 노인이 치매 노인으로 전락하여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였다.
우편함에 정돈되어 꽂혀 있는 우편물을 뒤죽박죽으로 뒤섞여 놓기 때문에 다른 입주자들로부터 핀잔을 먹는가 하면 10년 전부터 키워 왔다는 해피라는 이름의 늙은 치와와 한 마리와 함께 언제나 담배를 입에 물고 동네의 골목길을 하루에도 여러 차례 산책을 하는데 집을 찾지 못하여 하루 종일 엉뚱한 곳에서 헤매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노인과 함께 산책을 나갔던 늙은 치와와가 혼자서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밖에서 긁어대는 바람에 할머니가 개를 뒤따라가서 길 잃고 남의 집 대문 앞에 앉아 있던 노인을 찾아오기도 했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개보다 못 한 늙은이라고 우리 다가구 주택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농담인지 욕설인지 모를 말을 퍼부어대는 통에 나와 아내는 허리를 잡고 웃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 같은 일들은 치매 노인의 실수쯤으로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와 아내가 가장 골칫거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길거리나 골목을 걸어다니다가 버려진 폐품을 집으로 가져오는 버릇이었다. 가져오는 물건들은 여러 가지였는데 살이 부러진 우산이나 플라스틱 용기와 헌 구두 등도 있고 특히나 철사나 끈에 대하여는 맹목적인 집착을 보일 정도였다.
물론 노인이 들고 들어오는 물건들은 먼지를 떨어내거나 조금만 손을 보면 훌륭히 재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물건 아까운 줄 모르고 걸핏하면 내다버리기 좋아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물건 아껴 쓰기의 모범을 보이는 사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노인은 아들이 어떤 사업체의 사장으로 있다니까 생활의 어려움이나 물자의 궁핍을 느끼는 그런 처지가 아닌 것 같은데도 그런 짓을 하고 있으니 치매 노인의 기행으로밖에 달리 취급될 수 없는 것이었다. 또 노인이 그것들을 고쳐서 쓴다거나 일상생활에서 그것들을 활용하는 것 같지도 않아서 물자 절약이나 재활용의 의미와도 거리가 먼 오로지 수집의 의미밖에는 없었다.
노인은 수집한 물건들을 처음에는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모양이었으나 할머니의 호통과 핀잔에 제동이 걸렸는지 나중에는 층계의 화분 틈이나 건물 밖의 화단 구석에 몰래 감춰두는 방법을 동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답답한 것은 집주인인 우리였다. 노인이 건물 안팎에 하루가 멀다하고 감춰놓은 폐품들을 찾아내어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일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부피가 작은 것이라면 그래도 괜찮겠는데 그렇지 않아도 허섭쓰레기에 골머리를 앓는 도시생활에서 자루가 긴 우산이나 플라스틱 용기, 그리고 철사 묶음 등은 어떻게 처치할 방도가 없어서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견디다 못한 아내가 202호의 초인종을 누르고 할머니에게 이런저런 상황을 설명하고 할아버지의 그런 습관을 막아달라고 하소연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언젠가는 할머니가 아내 앞에서 직접 할아버지한테 야단을 치니까 할아버지는 오히려 역정을 내며 내가 언제 그랬느냐며 딱 잡아떼는 바람에 하소연하러 갔던 아내가 오히려 거짓말을 한 꼴이 되어버리더라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어쨌거나 이런 온갖 해프닝 속에서도 노인의 폐품 수집과 그것의 은밀한 은닉작업은 한결같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이에 대한 노인의 집념이 워낙 끈질기고 강해서 누구의 설득이나 제지로 포기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이에 따라 나와 아내는 노인이 숨겨 놓은 수집품을 찾아내어 폐기 처분하는 일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몇 차례의 적발 사례를 종합해 볼 때 노인이 수집품을 은닉해 두는 장소는 극히 제한적이어서 그곳만 점검하면 은닉품의 적발은 비교적 수월했다. 따라서 이 같은 일이 계속되다 보니 나와 아내는 바깥출입을 할 때마다 거의 습관적으로 예상되는 은닉처를 흘끔흘끔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고, 이 같은 버릇이 굳어져서 이제는 속옷을 뒤져서 이를 잡다가 이가 안 보이면 서운하듯이 은닉품이 없을 때는 전과를 올리지 못한 수사관처럼 맥이 빠지고 허전한 마음이 들기까지도 하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2.
내가 202호 노인의 아들이라는 이장섭 씨의 전화를 받은 것은 가을이 깊어가는 시월 중순의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지루한 장마 끝에 두 차례의 태풍이 또다시 논밭을 쑥대밭으로 만들더니 하늘도 미안했던지 남은 곡식이나마 잘 거두라고 연일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어서 나라가 온통 태풍의 뒤치다꺼리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나는 지난 태풍 때 몰아친 폭우로 선영의 산소 몇 군데가 훼손되었다는 당숙의 전화를 받고 이틀 동안 고향에 다녀왔던 피로가 채 풀리지 않아 그 동안 밀린 신문을 뒤적이며 딩굴딩굴 하루를 보낼 심산으로 거실에 누워 있는데 이장섭 씨의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그런데 202호 노인이 어쩌구, 아버님 이영호 씨가 저쩌구 하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올 때 처음에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잘못 걸려온 전화가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낯선 남자의 토막진 말들을 입 속에서 읊조리고 되뇌는 사이에 전화의 내용에 대한 얼개가 그려지기 시작했고 드디어 나는 202호 노인의 아들이 집주인인 나를 찾는다는 사실을 간파하기에 이르렀다.
202호 노인의 아들인 이장섭 씨는 정신이 혼미한 아버지 때문에 여러 가지로 폐단이 많을 것이라며 한 번 찾아뵙고 인사라도 드린다는 것이 차일피일 늦어졌는데 시간을 내 주신다면 약주라도 대접해 올리면서 말씀이라도 나누고 싶다는 뜻을 정중한 어조로 청해 왔다.
그런데 나의 입장에서는 세를 들어 살고 있는 당사자의 초청이라고 해도 주인 된 도리로서 그 초청에 냉큼 응하기가 망설여지는 판인데 당사자도 아닌 그의 아들로부터 초청을 받는다는 사실이 왠지 주저되는 바였지만 그가 워낙 간곡히 청하는 바람에 그만 승낙을 하고 집에서 가까운 중화 요리점에서 그를 만난 것은 그날 저녁 6시였다.
이장섭 씨는 풍채도 그럴 듯하고 예의도 깍듯한 오십대쯤의 남자였다. 허리를 꺾어 인사하며 그가 내미는 명함에는 취급하고 있는 업종을 분명히 알 수 없는 무슨 회사의 이름 앞에 대표이사 사장 이장섭이라는 이름이 검은 활자로 선명히 박혀 있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기업하기 어려우시죠?”
기업이니 경제니 하는 분야에 대하여 나는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이런 정도의 인사말로 나는 초면의 이장섭 씨에게 예의를 갖췄다.
“원래 아버지께서 경영하던 회산데 멋도 모르고 뛰어들어서 손을 대다가 죽을 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어느 기업체건 빨리 그만둘수록 이익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불경기니 말해 뭣합니까.”
이장섭 씨는 첫 대면인데도 시원시원한 태도 때문인지 오래 전부터 사귀어오던 사람처럼 마음 편하게 느껴지는 그런 위인이었다. 배부른 맥주보다는 독한 고량주가 어떻겠느냐며 이장섭 씨는 거의 일방적으로 몇 가지 요리와 중국산 고량주를 시켰다. 그리고 술이 몇 순배 돌고 나자 화제는 자연히 이장섭 씨의 부친인 202호 노인에 관한 이야기로 모아지고 있었다.
“늙으신 부모 직접 모시지 않고 월세방에 사시도록 하는 제 행동을 아마 못마땅하게 생각하셨을 거예요.”
이장섭 씨는 내 눈치를 흘낏 살피며 이렇게 서두를 열기 시작했다.
“글쎄요, 어머님은 그렇지 않아 보이던데 아버님 연세는 워낙 고령이셔서 두 분만 사시는 게 좀 의아했었습니다만······.”
“지금 어머니는 제 생모가 아니라 새어머니예요. 그래서 두 분의 연세 차이가 많이 나죠. 그런데 제가 아버지를 못 모시는 이유는 새어머니의 뜻이에요. 부자간의 반목을 확대시키지 않겠다는······.”
초면인 나에게 이장섭 씨는 차마 꺼내기 어려운 가정사까지 은근히 내비치며 자기 부친의 생애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자신은 이제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하고 풍문으로만 들어서 알고 있는 함경도 북청이 부친의 고향인데 부친은 소년시절에 집안이 가난하여 일본으로 만주로 떠돌아다니며 공장 직공으로도 일했고 신문배달이나 행상노릇을 하며 약간의 돈을 모을 수 있었는데 때마침 만주에서 해방을 맞아 패전한 일본군이 쫓겨가는 혼란기에 일본인이 경영하던 식료품 가게를 헐값에 인수하여 큰 돈을 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친은 귀국하여 고향인 북청에서 사업을 계속 이어갈 생각도 품었으나 개인의 재산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주의 체제가 점점 뿌리를 내리려는 기미를 알아채고 홀로 남한으로 내려왔다. 해방의 혼란기에 누구 하나 아는 사람이 없는 남한사회에서의 생활도 부친에게는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가 브로커의 사기에 걸려 수중의 돈을 모두 날려버리고 알거지가 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남북의 장벽이 생기고 왕래가 끊기는 바람에 부친은 북청 땅에 다시는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부모와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부친의 나이 스물여덟 살 때였다. 그로부터 외톨이가 된 부친은 그야말로 밑바닥 인생의 길이 어떻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청계천 주변에 밀집되어 있는 무허가 판잣집 한 구석에서 새우잠을 자며 넝마주이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골목을 쏘다니며 등에 지고 있는 넝마바구니 속에 깡통이며 미국 잡지책이며 철근 도막이며 함석 쪼가리며 재활용이 가능한 모든 물건들을 수집했다. 깡통은 철물점에서 두드려 펴서 다시 용접 과정을 거쳐 연통이나 쓰레받이나 양동이로 화려한 변신을 하는 통에 귀중한 재활용품이었고 미국 잡지책은 잘 찢어지지 않고 가벼워서 일회용 봉투를 만드는 데 인기 있는 재활용품의 하나였다.
“나중에 부친은 넝마주이 생활을 청산하고 직접 폐품을 이용하여 물건을 만드는 철공소를 열고 드럼통을 두드려 펴서 탁자도 만들어 팔고 함석 조각을 이용하여 세수 대야와 각종 용기를 제작하여 나름대로 쏠쏠한 재미를 보았다고 해요.”
이장섭 씨는 그 당시에 부친이 생활의 토대를 잡기 시작하면서 개성에서 살다가 피난길에 부모를 잃고 어느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도우며 그 집에 얹혀살고 있는 열아홉 살 된 처녀와 동거생활을 시작하여 가정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어린 시절의 일이어서 잘 알 수는 없지만 부친은 그때부터 승승장구 사업이 번창하여 청계천 주변에서는 맨주먹으로 성공한 인물로 알려졌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나는 비로소 202호 노인의 생애와 가족사가 어렴풋하게나마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아서 한동안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 동안 노인에 대하여 의문스러웠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심정으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제 말씀으로 대강 아버지의 생애를 짐작하셨겠지만 아버지는 아직도 정신이 혼미한 중에도 폐품에 대한 어떤 한(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거지요.”
이장섭 씨가 나지막한 음성으로 한 동안의 침묵을 깨며 이야기의 결론을 내렸다.
“그건 나이 드신 분들의 공통점 아니겠어요? 모두들 어렵게 살아왔던 시절의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서······.”
나는 이장섭 씨의 표정이 너무나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는 것이 안돼 보여서 짐짓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가볍게 말을 받았는데 이장섭 씨는 여전히 그늘진 표정을 풀지 않은 채 내 말에 단호히 이의를 달았다.
“그러나 저의 아버지 경우에는, 물론 정신이 혼미하시니까 행동에 대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자체가 무리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물자 절약이니 폐품 활용이니 하는 목적에서 그런 행동을 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아버지는 뭐랄까, 당신의 생애에 있어서 많은 것들에 어떤 한을 품고 있어요. 당신 자신에 대한 한도 있고, 자식에 대한 한도 있고,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한도 있고,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한도 있고······. 말하자면 아버지는 당신과 연계되어 있는 모든 것들과의 관계가 끊어져 버렸다고 생각하는 절망감에서 한을 품고 살아가는 분이지요.”
이장섭 씨의 어조가 갑자기 비장감을 띠며 심각해지는 바람에 나는 어리벙벙해서 한동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노인의 치매와 그에 따른 기행에 대하여 무슨 의미를 그렇게 심각하게 부여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언제까지 상대방의 가라앉은 분위기에 그냥 침묵으로만 일관할 수 없어서 앞에 놓은 술잔을 훌쩍 비우고는 이장섭 씨에게 들이밀며 화가 난 듯이 말했다.
“그만한 연세까지 그만큼 건강하게 사시는 것만 해도 큰 복이시지요. 과연 이 세상에 자신의 생애를 통하여 만족스럽게 살다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초년 고생은 있으셨던 모양이지만 자손도 훌륭하게 키워 놓으셨겠다, 지금은 노령으로 사업에서 손을 놓으셨지만 사업 경영도 그만큼 하셨겠다, 여한이 없으실 것 같은데 무슨 한이 그렇게 많으시겠어요. 그건 다 효자이신 이사장께서 노년의 아버님이 안타까워서 하시는 말씀이시지······.”
이장섭 씨는 내가 건넨 술잔을 받으며 나를 말없이 쏘아보더니 채운 술잔을 홀짝 비워 버렸다. 그리고 그 술잔을 다시 내게로 내밀었다. 나도 그가 따라주는 술을 홀짝 비워 버렸다. 그리고 그 술잔을 다시 그에게로 돌렸다. 어느새 술병 두 개가 거덜이 났다.
그날 밤 우리는 술 한 병을 더 시켜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술에 취해 푸념처럼 횡설수설 지껄이는 쪽은 주로 이장섭 씨였고 술에 취하기는 매일반이었지만 정신만은 새록새록 맑아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쪽은 나였다.
그런데 이장섭 씨의 이야기는 순서를 잃고 토막토막 끊어져서 내용이 불분명한 점도 있었지만 술꾼의 주정이나 푸념으로만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요지는 분명했다.
그의 푸념은 자기 위로 형이 하나 있었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는 그 형이 국민학교 3학년 때 물놀이 갔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 그것도 부친과 자신과 형이 함께 갔다가 형의 시체를 안고 둘이서만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기절해서 쓰러졌다가 사흘 만에 깨어났다는 이야기, 형이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때 벼랑 끝에 서 있던 부친이 안타깝게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러자 부친이 황급히 허리띠를 풀어 한 끝을 손에 잡고 물 속에 던졌지만 형은 이미 물살에 밀려 허리띠를 잡지 못하고 멀어지더라는 이야기, 그로부터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긴 끈만 있었더라도 아들을 살렸을 텐데 자식 죽인 애비가 됐다면서 가슴을 치며 통곡을 했었다는 이야기를 소설책 읽듯이 쉴 새 없이 지껄였다.
“요즘 아버지가 밖에서 끈을 자꾸만 집어 들고 오신다는데, 내 생각에는 말입니다, 형의 망령이 떠올라서······, 그 끈으로 형을 살려내려고······, 그래서 자꾸만 끈만 보면 모아들이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든다는 말입니다.”
풀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장섭 씨의 얼굴이 마치 웃고 있는 하회탈처럼 보였다. 나는 그 얼굴이 섬뜩해서, 아예 그런 엉터리 추측일랑 집어치우라고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들며 그의 술잔에 내 술잔을 부딪쳐서 분위기를 끌어올리려고 허세까지 부려 보았다. 그러나 이장섭 씨는 전혀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이야기를 계속했다.
“형은 나보다 두 살 위였는데 공부도 잘 하고 생기기도 잘 생기고 마음씨도 착해서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었지요.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형을 많이 질투했어요. 그래서 심지어는 형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이런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형이 죽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형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 때문에 형이 죽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무서웠어요. 말이 씨가 된다는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갑작스럽게 죽은 형의 이야기가 튀어나오고, 아버지의 기행을 죽은 형의 망령과 연계시키는 등 이장섭 씨의 독백은 현실과 심령의 세계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음산한 야기(夜氣)처럼 내 의식을 친친하게 휘감아 돌고 있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피로와 무력감에 젖어들어 그만 일어서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탁자 위에 놓은 담배갑을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고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자세를 취했다.
내가 일어서려는 기미를 보이자 이를 간파한 이장섭 씨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만 일어서시게요? 제 얘기가 지루하고 재미없으실 텐데 자꾸 혼자서 씨부렁대기만 하고······. 그럼요, 일어서셔야지요. 선생님, 이제 일어서십시다.”
그리고 이장섭 씨는 비틀거리며 나보다 한 발 앞서서 방문을 나서더니 계산대로 다가가서 신용카드로 셈을 치렀다.
밖에는 서늘한 가을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이거 초면에 염치없이 술만 얻어먹고······. 댁이 어디시던가요?”
집 방향으로 꺾여 들어가는 골목길 어구에서 이장섭 씨와 나란히 걸어가던 내가 발길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역삼동이니까 택시 타면 금방이에요. 그러나저러나 제가 오늘 엉망진창이었지요? 할 말 안 할 말 지껄인 것 같아서······.”
이장섭 씨가 풀이 죽은 어조로 고개를 들어 허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런 그의 모습이 너무나 쓸쓸해 보여서 나도 그의 시선을 따라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캄캄한 하늘에 몇 개의 별이 떠있었다. 매연에 찌든 도시의 하늘에서 별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게 느껴져서 나는 한동안 허공을 올려다보다가 그를 향해 나지막하게 말을 건넸다.
“아버님을 모셔다가 함께 사시는 것이 어때요?”
그러자 허공을 올려다보던 그가 몸을 한 번 움찔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흘낏 바라보며 공허한 음성으로 말했다.
“함께요?”
“네, 함께요. 부친께서는 지금 외로워서 그래요. 부친의 외로운 마음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은 가족들의 정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모셔다가 함께 살면서 잃어버린 정을 되찾도록 보살펴 드리면······.”
그러자 오가는 차량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에 잠깐잠깐 드러나는 이장섭 씨의 표정이 금방이라도 울듯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그는 절규하듯 외쳤다.
“그러고 싶지만 저에 대한 아버지의 오해가 너무 깊어요. 아버지 몰아내고 사장 자리에 앉은 놈이라고 계속 적대감을 품고 계시니······. 그리고 이런 불화를 어머님이 적절히 통제하지 못하시니까·····.”
“참, 아까 말씀하시기를 부자간의 반목 때문에 어머님의 뜻으로 부모님이 따로 떨어져 나와 사신다고 했는데 그 반목의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반목이라기보다 오해에서 빚어진 불신이죠. 허기야 불신이나 반목이나 그게 그것인 거지만······.”
이장섭 씨의 음성이 투정을 부리듯 다소 냉소적으로 들린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그와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이형, 우리 어디 가서 술 한잔만 더 하십시다.”
나는 대뜸 그의 호칭을 ‘이형’으로 부르며 난데없는 제안을 했다. 그러자 그의 표정이 잠깐 놀란 듯 움찔하더니 이내 이쪽의 분위기를 간파한 듯 선뜻 그러자고 응답해 왔다.
나는 이장섭 씨의 허리를 감싸안고 윙크하듯 점멸하는 네온사인 밑으로 멀리 보이는 호프집의 간판을 바라보며 행진하듯 걸어갔다.
3.
이장섭 씨를 만난 이후 202호 노인을 보는 나의 시각에도 변화가 왔다. 단순히 어떤 치매 노인의 기이한 행태를 동정과 호기심 속에서 바라보던 종전의 시각에서, 이제는 사사건건 어떤 의미 속에서 그의 행동을 연계시켜 생각하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그동안 202호 노인의 수집벽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특히 그가 수집하고 있는 끈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장섭 씨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장섭 씨의 생각으로는, 끈이 없어서 물에 빠진 아들을 살려내지 못한 데 대한 아버지의 한이 끈에 대하여 그처럼 애착을 갖게 된 이유라고 했는데, 그것의 사실 여부는 판단할 도리가 없지만 어쨌든 익사한 아들과 끈과의 관계 속에서 자꾸만 노인의 행동이 바라다 보이는 것을 나로서도 어쩌는 도리가 없었다.
202호 노인은 언제나 입에 담배를 문 채 애완견인 해피와 함께 하루에도 여러 차례 바깥출입을 했다. 그래서 노인이 오르내리는 202호실에서부터 주택의 출입구 층계까지에는 언제나 담뱃재와 개털이 여기저기 떨어져 흩어져 있어서 아내는 불결해서 죽겠다고 눈살을 찌푸리며 짜증을 부렸다.
202호 노인은 지독한 골초였다. 그래서 그가 지나간 흔적은 담배 냄새로써 간파해 낼 수 있을 정도로 노인은 줄창 담배를 입에 달고 살았다. 여든이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줄담배를 피워대는 노인을 볼 때마다,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는 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뱃속의 태아가 입으로 담배 연기를 뿜어대는 엽기적인 화면으로써 흡연의 폐해를 줄기차게 경고하고 있는 TV의 금연 캠페인도 이 노인한테만은 예외적으로 빛을 잃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202호 노인과 마주치는 기회가 많아진 것은 방학 기간 동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까닭이었다. 그러나 그의 건망증은 여전해서 그 동안 여러 차례 낯을 익혔는데도 나를 빤히 쳐다보며 누구시더라 한다거나 몇 호에 살고 있으며 언제 이사 왔느냐고 천연덕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나를 당황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노인이 항상 치매성 건망증에 빠져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어쩌다가 정신이 반짝 들 때가 있는데 그때의 노인은 전혀 딴사람의 모습이 되었다.
며칠 전, 나는 노인과 참으로 오랜만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일이 있었다. 건물 밖에 있는 수돗가에서 흙먼지를 뿌옇게 뒤집어쓰고 있는 승용차에 고무호스로 물을 뿌리고 물걸레질을 하고 있을 때 주춤주춤 다가온 202호 노인이 아는 체를 해 왔고, 나 역시 정중히 반색을 하며 노인을 맞았더니 노인은 오랜만에 말 상대자를 만난 것이 반가운지 내 옆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것이다.
노인은 처음에는 내가 닦고 있는 차에 대하여 관심을 보였다. 이런 차는 얼마쯤 값이 나가느냐, 관리를 잘 하면 대략 몇 년이나 탈 수 있느냐, 한 달 운영비는 얼마쯤이나 되느냐는 등등의 이야기였다. 그러다가 노인은 기계와 인간과의 유사점에 관하여 이야기를 진전시키기 시작했다. 이를 테면 기계 관리를 철저히 해서 항상 깨끗하게 기계를 유지시키면 기계의 수명이 오래 가듯이 인간도 몸 관리를 잘해야 건강하게 품위를 유지하며 오래 살 수 있을 거라는 요지의 논리였다. 나는 이때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노인의 신상 문제에 접근하여 이야기를 끌고 나갔다.
“어르신께서는 여든이 넘으셨다는데 이렇게 건강하시니 몸 관리를 잘 하셨던 모양이지요?”
“나이만 많이 먹었지 기리치도 않아요. 몸이 많이 망가졌시요. 정신도 혼미하구요.”
“그만한 연세에 흔치 않은 일이지요. 정신이 혼미하신 거야 노인이 되시면 다 그런 거구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총기가 좋았는데 이제는 틀렸시요. 정신이 기리니까 마음도 영 뜻대로 안 되구요. 이제는 거저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는 셈이지요.”
노인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켜는 노인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담배를 무척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유일한 낙이지요. 이놈마저 없었으면 내가 어드렇게 살아왔을지 모르지요.”
“어르신께서는 이제까지 많은 일을 하시고 보람 있게 살아오셨어요.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옛날 생각 다 잊으시고 아드님과 함께 사시면서 마음을 편하게 가지시면 노후가 더욱 즐거우실 텐데요.”
차의 앞 유리를 닦아내던 손을 잠시 멈추고 나는 노인을 바라보면서 은근히 의중에 품고 있던 말을 건네 보았다. 그런데 노인의 대답은 의외였다.
“내겐 아들이 없시요. 아들은 죽었는걸요.”
나는 뒤통수를 주먹으로 얻어맞은 듯한 얼얼한 기분으로 멍하니 있다가 다시 노인에게 말했다.
“아니, 어렸을 때 죽은 아들이 아니라 지금 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아들이 있잖습니까?”
“글쎼······, 없시요, 죽었시요.”
노인의 응답은 모호했지만 완강하고 단호했다. 그러나 나는 둘째 아들인 이장섭 씨의 존재를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아들이 없다고 말하는 노인의 말을 추궁해서라도 그 이유를 밝히고 싶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죽은 큰아들을 무척 사랑하셨던 모양이지요?”
“그 애는 내가 죽인 거나 다름없시요. 물에 뛰어들어서 구해야 하는데 겁이 나서 주춤거리는 사이에······, 밧줄이라도 던져 주어야 하는데······, 끈도 없고······, 그래서 죽었시요.”
노인은 자신의 입으로 큰아들의 죽음에 대하여 사전에 나에게 설명한 바도 전혀 없고 나 또한 그걸 캐물은 일도 없었지만 나와 노인의 대화는 그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의 대화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노인은 그 점에 대하여 전혀 의혹도 품지 않은 채 그때를 회상하듯 눈에 핏기를 세우며 처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노인은 이장섭 씨의 말대로 큰아들의 죽음에 대하여 어떤 한을 품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래서 정신이 혼미한 중에도 아들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치부하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고, 아들을 살릴 수 있었는데도 끈이 없어서 살리지 못한 데 대한 통한의 기억을 일생의 한으로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큰아들의 죽음에 관해서 충격이 컸다 하더라도 작은아들인 이장섭 씨의 존재가 전혀 안중에도 없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물론 나는 노인과 이장섭 씨 사이에 있었던 저간의 일들을 이장섭 씨의 입을 통하여 들은 바 있어서 두 사람의 사이가 원만치 못한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죽은 아들에 대한 기억은 뚜렷하면서도 현재 살아 있는 아들의 존재는 애써 부정하는 노인의 마음이 너무 모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밤, 그러니까 이장섭 씨와 첫 대면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질 무렵에 내가 이장섭 씨에게 술 한잔 더 마시자고 제안을 한 후 우리는 호프집에서 어울렸는데 그때 이장섭 씨는 노인과의 불화와 반목에 대하여 심경을 털어놓은 바가 있었다.
그날 이장섭 씨의 말에 의하면 부친은 형만한 아우 없다는 말처럼 큰아들보다 됨됨이가 못한 작은 아들에 대한 실망감 때문인지, 아니면 큰아들을 잃은 충격과 아쉬움 때문인지 자신을 향한 부친의 마음이 항상 닫혀 있었다는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나름대로 가정을 이룬 어엿한 성인이 되었지만 이장섭 씨는 부친이 경영하는 토건회사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못하고 항상 변두리에서 맴돌기만 했다. 관장할 만한 업무를 그에게 맡겨주지 않고 부친이 독단적으로 모든 업무를 처리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당시에 부친은 왕성한 의욕을 가지고 활기차게 사업을 추진했기 때문에 때마침 불어닥친 주택 건설의 붐을 타고 회사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따라서 그런 바닥의 생리를 잘 모르는 이장섭 씨로서는 업무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가 사실상 불가능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부친의 사업을 먼발치에서 지켜보아야만 했던 이장섭 씨로서는 극심한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장섭 씨의 나이 서른다섯 살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일곱 살 아래인 막내 여동생마저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이장섭 씨는 주변이 갑자기 텅 빈 듯한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남아 있는 혈육은 부친과 자신밖에 없었다.
어머니를 잃은 부친도 한동안 날갯죽지 부러진 독수리처럼 풀이 죽어 지냈다. 그러다가 부친이 재혼을 했다. 새 어머니는 요정을 경영한 적이 있는 쉰 살이 넘은 여자였다. 며느리의 껄꺼름한 시중을 받고 지내던 부친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이었는지도 몰랐다.
이장섭 씨 내외도 새 어머니의 출현이 달가운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무거운 짐을 벗은 듯한 홀가분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부친의 사업이 몰락하기 시작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구태의연한 경영이 살아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부친의 연세도 일흔이 넘고 이따금 정신이 혼미한 치매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부친의 사무실에는 옛부터 사귀었던 같은 연배의 노인들이 무슨무슨 이사니 감사니 하는 직함을 얻어 가지고 진을 치고 앉아서 술타령이나 마작노름에 영일이 없었다.
그때 이장섭 씨는 회사에서 도장 하나 찍을 권한도 없는 부사장의 자리에 있었는데 이 같은 사태를 방관만 할 수 없어서 몇몇 젊은 간부사원들과 함께 회사 중흥의 기치 아래 경영 혁신의 칼을 뽑아 들었다. 그래서 우선 기구를 축소하고 불필요한 인력을 감축했다. 우선적으로 부친의 주위에서 무위도식하던 노인들이 모두 제거된 것은 물론이었다.
노인들의 반발이 컸고 부친의 노기가 충천했다. 그러나 이장섭 씨는 물러서지 않고 부친을 설득했으나 부친은 화병으로 몸져누우면서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부친은 드디어 이장섭 씨와 부자지간의 인연을 끊겠다고 선언하며 회사를 정리할 태세를 취했다. 그러나 이장섭 씨는 부친을 명예회장으로, 그리고 자신을 신임회장으로 하는 서류를 꾸며서 부친의 의도를 사전에 봉쇄해 버림으로써 일단 사건은 봉합 단계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 이후 부친은 가출하여 여관방 생활을 하다가 지금처럼 전세방 생활로 전전하며 이장섭 씨와의 반목을 계속해 오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동안 이장섭 씨는 부친의 노여움을 가라앉히기 위해 호소도 하고 애원도 했었지만 부친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고 새어머니 또한 부자간의 반목이 단시일 내에 끝나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전세방 생활을 자청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처럼 나는 노인과 이장섭 씨 간에 있었던 저간의 사정을 나름대로 알고 있는 터수여서 노인의 심사를 헤아리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정신마저 혼미한 상태에서 집요하게 둘째 아들인 이장섭 씨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노인의 집념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노인은 그 사이에 또 하나의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참으로 담배를 즐기는 노인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피우는 사이에 노인의 격앙되었던 감정이 나름대로의 평온을 되찾은 듯 노인의 눈에 핏발이 가시고 있었다. 나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또다시 말문을 열었다.
“둘째 아들 이장섭 씨가 아버님을 모시고 함께 살고 싶어 하던데 웬만하면 노여움을 푸시고······.”
그러자 노인이 갑자기 눈을 흡뜨며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놈이 언제 그럽디까? 그런 놈의 말을 믿고 있나요? 그놈이 또 무슨 사기를 쳐서 애비를 속이려고······.”
갑자기 흥분한 노인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나는 당황하여 한동안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노인은 아들인 이장섭 씨를 내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혹은 언제 만났는지에 대하여는 전혀 관심도 없고 의문도 품지 않은 채 내 이야기 자체에만 반응을 보이며 흥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도 말의 진실성이나 이야기의 맥락에 합리성 따위를 다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즉흥적으로 꾸며낸 이야기를 통하여 노인의 반응을 살피면 그만이었다.
“둘째 아드님은 지금이라도 아버님 모셔다가 화목하게 살았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날마다 눈물을 흘리며 지내고 있는데 아버님께서 과거를 용서하시고 댁에 들어가셔서 함께 사세요.”
“뒤늦게 철들었나? 내가 정신이 혼미할 때 내 주변사람 해고시켜서 지 앞으로 재산 빼돌리고 회사 명의 바꿔놓을 때는 언제고······.”
노인은 나의 마술에 걸린 사람처럼 천연덕스럽게 내심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아버님은 연세도 있으시고 그동안 사업에 매달려 고생도 많으셨으니까 젊은이에게 일을 맡기시고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시라는 뜻이었겠지요. 어른들 생각에 요새 젊은이들이 미덥지 않으시겠지만 사람 나름이지 요새 젊은이들도 속이 꽉 찬 사람 많아요.”
내친김에 나는 술술 풀려 나오는 이야기를 더욱 그럴싸하게 꾸며서 노인의 마음을 떠보았다.
그런데 노인은 여기에서 갑자기 내 얼굴을 빤히 건너다보더니 치매성 건망증의 징후를 또다시 내보이기 시작했다.
“참, 댁이 누구신데 지금 나하고 무슨 얘기를 하는 중인가요?”
노인의 갑작스런 이 말에 나는 오랜 장마에 흙담이 지질러 내려앉듯 그만 사지의 힘이 쏘옥 빠지며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한 허탈감에 빠져 들었다. 노인은 이렇듯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정신이 들어왔다 나왔다 하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물 묻은 걸레를 번쩍 들어 3층을 가리키며 노인을 향해 말했다.
“3층에 사는 주인이잖아요. 몇 번이나 인사를 나누었는데 또 잊으셨어요?”
“아, 그렇던가요? 이거 미안합니다. 이젠 늙어서 자꾸만 정신이 혼미하고······.”
고개까지 숙이며 진정 미안해하는 노인의 이마 위에 내가 3층을 가리키느라고 엉겁결에 번쩍 들어올린 물걸레에서 튕겨나온 물방울이 묻어 있었다.
노인은 손으로 이마의 물방울을 쓰윽 문질러 닦으며 다시 한 번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돌아서서 등을 보이며 걸어가는 노인의 껑충한 뒷모습이 푸석한 지푸라기처럼 느껴졌다. 언젠가의 내 모습도 저럴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노인의 애완견 해피가 졸랑졸랑 방울소리를 내며 쓸쓸한 노인의 그림자를 뒤따르고 있었다.

조건상
․1941년 충남 서천 출생  ․1972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창작집 ꡔ증발된 여자ꡕ ꡔ이웃사람 엄달호ꡕ
․저서 ꡔ한국현대골계소설연구ꡕ ꡔ소설 쓰기의 이론과 실제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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