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12호 단편소설/김찬기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73회 작성일 05-03-07 11:38

본문

회화나무

김찬기




이번이 네 번째라고 했다. 어머니가 마치 둠벙에 돌 던지듯 툭, 아내에게 던진 말이었다. 아내도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네 번째라니요?”
“영수 애비 말이다. 다시 사람이 생겼다는구나.”
그러고 보면 엊저녁부터 아버지는 내내 속이 편치 않은 듯 바깥마당 한켠에 나 있는 회화나무 주변을 자주 서성거렸다. 수령 이백 년의 오래된 고목이었다. 아버지는 이 나무 하나로 우리집 자체가 빛나는 집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곤 했다. 이백 년을 성하게 키워온 걸 보면 그럴 만도 했다. 문제는 어머니에겐 바로 이 회화나무가 감옥이란 사실이었다. 아버지의 외도를 끊게 한 것도 저 회화나무였지만, 그 반대로 더 견딜 수 없어서 그만 아버지와 구단을 내려고 할 때마다 어머니의 어깨를 지그시 감싸 마음 가라앉힌 것도 바로 저 회화나무였다고 했다.
뒤란 굴뚝 옆, 추녀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무연히 바라보며 담배나 태우고 있어서였던가. 히뜩, 유년의 기억 한 언저리에 매장되었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도 바로 저 빗방울처럼 뚝뚝 집을 나서곤 했었다.
아버지는 겨울 농한기가 되면 으레 장터나 시골 마을을 돌며 족제비 가죽을 사 모았다. 겨울 한철을 그냥 놀고 지낼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버지는 열흘이고 닷새고를 훌쩍 떠나 집에 돌아올 때마다 족제비 가죽을 한 봇짐씩 메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사랑에서 겨울 내내 족제비 가죽을 손질해서 이듬해 봄이면 다시 중간 상인에게 되넘기는 방식으로 족제비 가죽을 팔아넘겼다. 나와 어머니는 족제비 가죽에서 나는 그 노린내가 너무 역겨워 겨울 내내 사랑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형은 달랐다. 형은 겨울 방학 내내 그 한 겨울을 사랑에서 지냈다. 형은 무두질이 끝나지 않은 그 물컹물컹한 족제비 가죽을 만지는 걸 좋아했다.
“족제비가 주로 뭘 잡아먹는지 알아?”
마당의 살얼음 조각을 주워내고 있던 나에게 와 내 볼을 부벼대며 형이 한 말이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족제비는 생각만 해도 징그러운데.”
“음, 그렇지. 넌 특히 족제비를 싫어하지.”
“그런 줄 뻔히 다 알면서 내게 왜 족제비 얘기를 꺼내느냔 말야?”
내가 형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그때까지 내 볼을 계속 부벼대는 형의 손끝에서 족제비의 그 노린네가 풍겨나와 울컥 헛구역질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그건 네가 몰라서 그래. 족제비가 뭘 잡아먹는가를 알면 너도 족제비에 대해서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될걸.”
말을 마치기 무섭게 형은 곧바로 나를 사랑채로 데리고 갔다.
“네가 사랑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하니까, 넌 잠시 여기 있어라.”
형이 사랑 앞의 섬돌을 밟으며 한 말이었다.
“지금 뭐 할려고 그래?”
그렇잖아도 족제비의 그 역한 냄새를 맡으면서부터 몹시 기분이 상해 있던 판이었다. 내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잔뜩 짓고 있었는데도 형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문이 열리며 사랑의 벽장 속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황갈색의 족제비 가죽더미가 쿡 눈을 찔러오는 듯했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대로 더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바깥 마당으로 뛰쳐나와 회화나무 아래에 서서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이건 말이지 꼬리가 한 뼘 반도 안 되는 걸로 봐서 암놈이 분명하지. 아참, 아직 가죽을 벗기지 않았으니까 …… 하긴 거기를 보면 더 분명하겠지, 흐흐흐.”
형이 어느새 사랑에서 나와 족제비 한 마리를 꼬리부터 거꾸로 잡아 들고 서 있었다.
“그 족제비 당장 버리지 못해.”
나는 얼른 회화나무를 안고 돌아 몸을 반쯤 숨기며 악을 썼다. 가죽을 벗겨내지 않은 족제비여서인지 더 징그러워 보였다. 게다가 얼핏 보기에 꼭 새끼라도 밴 것처럼 배가 불렀다.
“넌 참 몰라도 한참 모른다니까. 왜 그렇게 족제비를 미워하는 거야. 넌 이놈이 닭이나 토끼,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강아지만 잡아먹는 줄 아는 모양인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니까.”
형이 그렇게 말하자 작년 유월의 그 끔찍한 기억이 다시 생생하게 되살아오는 듯했다.
그날 식구들은 아침부터 서둘러 밀을 베기 시작했다. 모두 내가 성화를 부려서 그런 것이었다. 나는 기말고사를 핑계로 대었지만, 사실은 밀 베기를 빨리 해치우고 친구와 인근의 포구에라도 놀러가 기분이라도 어떻게 풀어볼 요량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에 아랫도리에 나기 시작한 음모를 본 후부터는 괜시리 마음이 싱숭생숭해져 있던 참이었다. 더더군다나 열흘 전부터 내가 그렇게 귀여워하던 강아지들까지 까닭 없이 한두 마리씩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어저께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강아지마저 그예 사라져서 마음은 온통 시꺼멓게 타 있던 판이었다. 물론, 나보다 두 살이 더 많았던 형은 더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입시가 코앞에 있었기 때문에 한가하게 밀 베기나 할 처지는 아니었다. 특히, 아버지는 일찍부터 형을 인근 대처에 있는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시켜야겠다는 생각을 일찍부터 굳혀 놓고 있는 판국이었다. 한 중학교에서 두셋도 가기 어려운 명문학교였다. 형이 아무리 전교에서 다툰다고는 해도 말 그대로 장담할 수만은 없는 거였다. 그래서인지, 형은 몹시 신경질적으로 밀을 한 겨드랑이씩 잡아 물고는 스적스적 빠른 낫질을 해댔다. 그렇게 한참을 앞서 나가며 부지런히 밀을 베 가던 형이 갑자기 우욱, 소리를 내며 겨드랑이에 끼어 베었던 밀 묶음을 아래로 그대로 쏟아놓았다.
“왜 그래?”
내가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훔쳐내며 한 말이었다.
“너, 이리 좀 와 봐라. 이거 분명히 우리 강아지 맞지?”
형이 뒷걸음질을 치며 급히 나를 부르는 손짓을 해댔다. 형이 저렇게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것도 처음인 듯싶었다.
“강아지?”
명치끝에서 뭔가가 쿡 걸리는 듯싶었다. 그래서인가. 선뜻 형 쪽으로 가고 싶지가 않았다.
“빨리 좀 와 봐.”
형이 다시 다그치듯 소리쳤다. 그런데도 당최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내가 그렇게 잔뜩 오그라들어 멈칫거리고 서 있자 형이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다시 밀밭 이랑 사이를 헤집고 앞으로 몇 걸음 더 나갔다. 형 앞쪽 이랑에 분명히 뭔가 있는 것이다. 더운 바람이 후욱 불어왔다. 그러자 희멀건 살색 같은 밀밭이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형이 허리를 구부려 뭔가를 줍는가 싶었다. 그리고는 동시에 형 쪽에서 분명히 돌멩이는 아닌 듯싶은 흰 물체가 획 날라왔다.
“맞지? 어저께 사라진 흰둥이 강아지가 분명하지?”
그것은 분명 어제 아침에 감쪽같이 사라진 강아지의 잘린 머리였다. 내가 정수리 부분에 그려놓은 붉은색 왕(王)자 글씨가 선명했다. 이놈만은 사라지지 말라는 뜻으로 사흘 전에 그려 넣은 것이었다.
“이건 족제비 짓이야. 살쾡이는 목을 따 죽이지 저렇게 목을 잘라 먹지는 않거든.”
형이 어느새 내 쪽으로 와 낫 끝으로 강아지의 잘린 목을 굴리며 한 말이었다. 낫 끝이 햇빛을 받아 반짝, 하는가 싶었다. 목젖이 콱 막히는가 싶더니 금세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리고는 자꾸 어질머리가 난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고,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어머니가 황급히 달려오는 모습만 아련하게 보일 뿐이었다.

가을비가 제법 내리는지 추녀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굵어져 있었다. 이미 어둠이 짙게 내려와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와 몸을 한참 섞고 있는 터였다.
나는 벌써 담배를 다섯 개비째 연신 태우는 중이었다.
“이해할 수 없구나. 네 시아버질 말이다.”
어머니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버님을요?”
그때까지 입에 빗장을 지르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 말이 없었던 아내가 반문한 말이었다.
“아무래도 영수 아비가 저렇게 살다가는 제 명에 못살 것 같지 않니? 꼭 사잣밥이라도 짊어진 사람 같구나.”
어머니는 뭔가 집히는 게 있는 듯 잠시 말을 멈칫거렸다. 형이 왜 저렇게 한 여자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이 여자 저 여자 사이만 오가며 얼멍덜멍하게 사는지 도대체 그 까닭을 알 수 없다는 거였다.
처음에는 형수와 결혼 삼 년 만에 사별한 게 원체 충격이 커서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다듬던 파를 가슴에 꼭 안고 부엌에서 쓰러진 후 끝내 일어나지 못한 그 형수의 발그레한 복숭아 빛 홍조가 지금도 내 눈에 환한 창호지처럼 선한 것을 보면 형이야 오죽했을까, 싶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도 했다. 첫 형수에 대한 기억 때문만은 아닌 또 다른 곡절이 형에게 분명히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얻었던 여자야 한두 달 살다가 훌쩍 야반도주한 여자여서 그렇다고 쳐도, 그 다음에 데리고 온 세 번째 여자와는 첫 형수 못지않게 살갑게 정이 들어 있었다. 그러기에 형은, 살똥스러운 데가 덕지덕지 붙은 의붓딸조차 첫 형수의 소생이었던 영수랑 똑같이 귀엽게 봐주곤 했었다.
“처음에는 영수 애비가 지집 복이 없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구나.”
어머니가 긴 한숨 소리를 내며 한 말이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아내가 더 말을 이으려다 그만 멈춰 버렸다. 저렇게 애 오줌줄기 가늘어지듯 슬그머니 말을 멈춰버리는 방식으로 아내는 종종 나를 옥죄곤 했다. 언젠가 현주가 ‘식육 식물을 보면 더 섬뜩하잖아요. 사모님이 꼭 그래요.’ 라며 몸서리치는 흉내를 낸 적이 있었다. 정말이지 아내는 식물 같은, 무섭도록 말이 없는 여자였다. 내가 현주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고작 제자하고요.’라는 소리를 좀 크다싶게 한 번 낸 것이 전부였다.
“아무래도 네 시아버지가 영수 애비를 그렇게 만든 것 같기도 하구…….”
“아버님이라니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투로 아내가 물었다.
“이 마당에 무슨 숨길 것이 있겠냐. 사실 영수 애비는 애초에 싹이 잘못 터진 사람이 아니었던가 싶다. 고등학교 때부터 속옷에 고름을 묻혀왔어.”
“고름이요.”
아내의 그 음색이 마치 이마에 와 사정없이 달라붙는 눈발처럼 싸늘하게 느껴졌다.
사흘 전, 페니실린 주사를 함께 맞고 나오며 아내는 ‘우리 이제 더 바닥으로는 내려갈 곳이 있을까요.’라는 말을 병원 계단이 끝나는 곳에 이르렀을 때쯤 혼잣말처럼 했었다. 그때도 꼭 이랬다. 마치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부끄러운 마음의 중력이 내 안 어디에선가 끊임없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고, 그때마다 아내의 그 싸늘한 눈발 같은 말이 내 안을 함께 난도질했었다. 속수무책인 나를, 아니 속수무책이어야 하는 내가 훤히 보인다는 듯, 의사는 날짜에 맞게 페니실린 주사를 반드시 맞아야 한다는 말을 되짚어 환기시켜 주었다.
“그 때 네 시아비가 너무 쉽게 넘어갔어. 다 그럴 수 있다며 덮어놨으니.”
어머니가 흡사 주리라도 참는 듯한 소리를 냈다. 관절염이 심한 어머니였다. 이렇게 비가 꾸물거리는 날에는 더욱 심한 것이다. 게다가 형 문제로 심화까지 끓이고 있는 판이었다.
“그냥 놔두세요. 제가 할께요.”
“아니다. 너는 양파랑 당근이나 좀 큼직큼직하게 썰어 놔라.”
어머니가 뭔가 부엌일을 하려고 일어나는 모양이었다. 저렇게 앉았다가 일어날 때마다 신음소리가 날 정도로 관절염이 자심하게 진행되고 있다면 이제 어떤 식으로든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탁탁탁, 도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갈비에 칼집을 내는 모양이었다.
“인공 관절을 넣으면 많이 좋아진대요.”
“칼을 대라고?”
“어차피 수술해서 통증을 줄이는 수밖에 없대요.”
“수술해서 낫지 않을 병이라면 그냥 이대로 살란다. 진짜 수술할 건 따로 있어.”
어머니의 감정이 격해지는지 칼집 내는 소리가 한층 더 빠르고 둔탁하게 들려왔다.
“수술할 게 따로 있다니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양반이구나. 이 백년도 채 못 된 나무라는데, 천연기념물이 다 뭐냐. 가당찮게시리.”
회화나무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회화나무 주변에 그동안 없었던 사각의 철제난간이 둘러져 있었고 그 옆으로 일 미터 남짓의 사각 기념석이 서 있었다. 영조 때 좌의정을 지낸 중시조(中始祖)의 이름과 그 분이 집안의 화평을 위해 식수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는 내용의 글귀가 새겨진 기념석이었다.
“올봄 내내 그 짓이었단다.”
올봄이었다. 식전 댓바람부터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아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아무래도 내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어.’라며 허두를 떼었다. 시간도 시간이었지만 그 음색이 워낙 비장해서 무슨 유언이라도 미리 말하려는 게 아닌가, 하고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렇잖아도 전날 현주와 너무 몸을 심하게 섞어서인지 아침까지 샅이 뻐근하면서 정신까지 혼몽한 상태였다. 아내는 이미 영준이를 데리고 주일 낮 예배에 간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올해에는 어떻게든 회화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야겠는데 자금이 만만찮게 든다는 것이었다. 결국, 돈을 내려 보내라는 전화였다.
천연기념물이라고? 문득, 현주의 얼굴이 떠올랐다. 현주와 처음 잠자리를 하고 난 후 현주로부터 들었던 첫말이 바로 ‘나 사실 천연기념물이었어요.’란 말이었다. ‘천연기념물’이란 현주의 그 말 때문이었을까. 그 말은 내 일상의 빈틈이 보일 때마다 수시로 마치 벼린 칼날처럼 파고들었다. 나를 끝내 허방다리로 빠뜨릴 것 같은 느낌, 바로 그 느낌 때문에 난 한동안 현주를 어떻게든 피하려 안간힘을 쓴 적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허사였다. 현주와 외도도, 그렇다고 사랑도 아닌 어정쩡한 관계에서 나는 한 발짝도 더 벗어날 수 없었다.
“귀한 나무 같던데요.”
아내의 목소리도 엷게 들려 있었다. 비웃는 말은 분명 아닌 듯한 목소리였다. 그렇다고 다 수긍해서 한 말도 아닌 듯했다.
“나무야 귀하지. 또 귀하지 않은 나무가 이 세상에 어디 있냐? 사람이 문제지.”
“무슨 말씀이신지요?”
“나무 하나 귀하면 모든 것이 다 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 나무를 지켜온 종자가 영 귀하지 않은데……, 동네 사람들이 다 웃는다. 그걸 모르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게 참으로 답답하다는 것이야.”
어머니는 마치 이삭을 훑어내리듯 아버지를 족족 깎아내리고 있었다. 늘그막에 저렇게 서로를 우겨쥐고 물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 부부인 것이다. 이제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이의 그 메마른 세월은, 더 정확히는 아버지 때문에 사십여 년 동안 언걸만 먹으며 살아온 어머니는 결국 아버지와 비껴서서 남은 생을 보내야만 하는 것이다.
“자랑스러운 것일 수 있어요, 어머니. 이백여 년을 아무 탈 없이 건사시킨다는 것이 그리 쉬운가요.”
속절을 헤아릴 수 없는 소리였다. 정말 자랑스럽다고 여겨서 하는 소리인지 그냥 어머니의 덧난 마음을 헤아리고 넘기려고 하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였다. 하긴 남편이 바람을, 그것도 열 살이 더 아래인 제자와 바람이 났는데도 눈꼬리 하나 떨지 않고 2년을 살아온 여자였다. 아내가 저를 정말로 사랑하는 게 아닐까요,라며 그 모든 사정을 다 털어놓은 정 선생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정 선생은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근데 정말로 그렇다면 더 무시무시한데요. 그건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복수일 수 있으니까요’라는 얼비친 그림자 같은 말을 했었다. 현주와의 일이 발각이 난 그 다음날 아침도 어김없이 아내는 아침상을 차리고 있었다. 정 선생 말처럼 그것은 적의로 가득 찬 복수 같기도 했다. 나는 잘 사육되어 도살될 돼지들처럼 아내에 의해서 매일 밥상에 끌려나와 그렇게 사육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아내와 함께 영준이 재롱이 잔치에 갔다 오는 귀가길 차 안에서 ‘이제 멱이 따이면 되는 건가.’라며 아내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아내는 처음으로 탁, 소리를 내며 켜지는 형광등처럼 분명한 응답을 딱 한 번 했었다. 알고 있었어요? 너무도 단호한 반문이었다.
“네 시아비나 영수 애비 모두 그 회화나무 잎새 어긋나듯 도무지 똑바로 갈 줄 모르는 사람들이야.”
어머니에겐 겹잎으로 어긋난 회화나무 이파리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유년의 아버지는 겨울이 되면 지긋지긋하게 밖으로만 돌았다. 어머니는 그 아버지의 외도가 지긋지긋하게 싫어서 그야말로 회화나무 이 집에서 산벚꽃처럼 떨어지고 싶었던 것이다. 그 어머니를 꽉 붙잡고 늘어진 것이 바로 저 회화나무였으리라. 그러고 보면 유년의 몇몇 풍경 중에는 어머니가 치마를 에후리쳐 둥굴게 감아쥐고 대문턱을 훨훨 넘어가던 기억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 더 가지 않아서 어머니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곤 했다. 어머니는 회화나무를 끝내 더 넘어서지는 못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외도를 어떻게든 견뎌내면서 가정의 화평을 지켜내야만 하는 그 에움길을 가는 고단한 존재가 된 셈이었다. 어머니는 회화나무 밑둥을 부여잡으며 무릎을 꿇는 아버지를 매몰차게 뿌리칠 만큼 강한 분이 결코 아니었다.
“영수 애비가 바로 그 못된 씨알머리를 받은 거야.”
어머니가 너무 많이 덧나 있었다. 저렇게까지 격한 말을 쓰는 분이 아니었다. 아마도 형이 네 번째 또 새 형수를 데려온다는 게 영 마음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방을 같이할 여자라니, 어디 그게 제대로 박힌 여자겠니? 이놈이 이제 막 들어서는 거야.”
“다 생각이 있으실 거예요. 너무 맘 쓰지 마세요.”
“화냥년 하나 데려다 놓고 지집 장사하겠다는 거지.”
“어머…….”
그 다음 말은 더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부엌에서 삐익, 하는 신호음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돼지머리를 넣어야겠다.”
“어머님, 생강도 좀 같이 넣어야죠?”
“그럼, 생강을 안 넣으면 누린나가 나서 먹질 못한다.”
편육을 만드는 모양이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지극 정성이었다. 여태까지 아버지 생일 음식으로 편육을 빼놓은 적이 없었다. 올해 생일도 어김없는 것이다. 어디 편육뿐이었던가. 떡산적이나 누름적 같은 손 가는 음식이 늘 아버지 생일마다 뚜르르 하게 차려졌었다. 두 양반의 그 텅 빈 거죽 같은 세월을 생각하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기사 아내도 그랬다. 현주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 들통이 난 후, 오히려 더 맛나고 손이 가는 음식이 종종 밥상에 올라왔었다. 쇠고기 살코기를 곱게 다진 데다 표고까지 곱게 채쳐 넣은 장국죽을 쑤어 내는가 하면, 올이 굵은 국수를 맛있게 삶아서 만든 내장 전골도 심심찮게 밥상에 올라왔었다. 나는 마치 병든 사람처럼 기력을 놓고 그 까닭 모를 음식을 먹어야 했다. 그러던 것이 며칠 전부터 이상스럽게 몸이 달았고, 거의 2 년 만에 아내의 몸을 보듬는 것인 데도 전혀 낯설지가 않았었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외려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내 몸을 애무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미욱하게도 그날 나는 아내와의 성관계가 쩍, 하는 소리를 내며 아내와 나 사이의 그 꽝꽝 얼어붙은 마음의 얼음장을 갈라놓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 다 허사였다. 그 이전부터 나는 현주로부터 매화꽃이 온몸을 타고 행렬하는 그 몹쓸 병을 얻었던 것이다.
현주는, 천성이 홀몸을 견딜 줄 모르는 여자였다. 그 누군가가 옆에 없으면 데쳐진 파처럼 흐물거릴 수밖에 없는 여자였다. 그 몹쓸 병도 나와 만나지 않던 서너 달을 이기지 못해 얻은 것이리라. 오류동에 사는 보일러공이 그 몹쓸 병의 전염자일 거예요,라고 현주는 희떱게 웃었다. 분명 과장이었을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 쉽게 웃을 수 없는 것이다.
“영준 애비가 올봄에 보낸 돈도……, 더 말해서 뭐 하겠니.”
“무슨 말씀이신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였다. 아내는 돈과 관련된 얘기를 할 때마다 버릇처럼 꼭 저렇게 톤을 낮췄다.
“옛날부터 선생똥은 개도 안 먹는다고 했다. 그렇게 속 끓여 번 돈을 가져다 지집 장사하는데 줘? 그게 어디 제정신이니?”
“이제 다 지난 일이잖아요. 시숙께서 잘 되면 좋겠어요.”
아내가 무슨 말을 더 이으려다가 말을 멈췄다. 그리고 대문 쪽에서 문을 여닫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온 모양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엉거주춤하게 일어났다. 다리가 절여왔다. 나는 그동안 뒤란 굴뚝 곁에 쭈그리고 앉아서 어머니와 아내의 이야기를 그렇게 묵연히 듣고만 있었던 셈이다. 나는 부엌과 반대쪽의 길로 에둘러 뒤란을 나왔다. 어둠 속에서 저만치 회화나무 가지가 비 내리는 가을 저녁을 장악하듯 펼쳐진 채 서 있었다.
예상대로 아버지가 술이 얼근해진 채로 안방에 누워 있었다. 팔베개를 하고 한쪽 다리를 다른 한쪽 다리에 포개어 얹은 채였다.
“영수 애비는 끝내 안 올 모양이다.”
아버지가 상체를 반쯤 일으켜 장롱에 기대며 한 말이었다. 문득 아버지의 노랗게 뜬 얼굴이 기어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오래된 담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말처럼 함부로는 살았을지언정 결코 악하게는 살 수 없는 사람이 아버지가 아닌가 싶었다.
“형이랑 연락은 안 하냐?”
“가끔은요.”
“형이 부끄럽냐?”
꼭 형을 두고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몹시 적막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는 엊저녁부터 여태 으레 내가 내려올 때마다 내놓던 족보도 꺼내놓질 않고 있었다. 아버지는 형과 내 앞에서, 혹은 며느리들 앞에서 거의 습관처럼 족보를 읽어 내려가며 그 끝없는 가계도를 환하게 데쳐놓곤 했었다. 물론 그 가계도 톺아가기는 회화나무를 식수하셔 오늘에 이르게 한 중시조(中始祖)의 뜻과 학덕을 기리는 것으로 늘 마무리되곤 했었다.
“그럴 리가요.”
아버지도 다 아는 대답을 다시 한 번 들어보고 싶은 것이다. 아버지는 당신의 속심을 헤아리지 못할 만큼 내가 어둡고 흐리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황혼에 와서도 자기 뱃속을 다 드러낼 수 없는 자의 쓸쓸함이 아버지에게서도 어김없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 발짝만 더 가면 결코 헤어날 수 없는 허방다리를 짚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아는 사람의 그 할쭉한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제 아버지에게 더 이상의 또 다른 해찰은 있을 수 없는 터였다. 그러니까 올봄이 그 경계였던 듯싶다. 아버지는 올봄 이후로 마치 늦게 아이를 본 여자처럼 몸을 사리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참 허망한 짓인 것 같기도 한 아버지의 그 몸사림은 예상대로 어머니에 의해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었다. 어머니는 ‘네 애비는 거죽만 보고 알 수 없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곤 했다. 둘 사이의 그 깊은 골은 도무지 메워질 성싶지 않았다. 어찌 보면 그건 너무도 당연한 귀결인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아버지는 외도가 너무 잦았던 것이다.
“너도 내가 같잖은 얼렁수나 부린다고 생각하냐?”
“얼렁수라니요?”
언뜻 들어오는 말이 아니어서 내가 다시 반문한 말이었다.
“늘그막에 와서 형 붙들고 얼렁뚱땅 뭔 술수라도 쓰는 사람으로 보이냐는 말이다.”
“어머님 늘 속마음과 겉마음이 다른 것 아시잖아요.”
“네 에미가 속으론 날 다 용서했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너도 내가 죄진 사람이란 건 인정하고 있구나. 하긴, 네 에미한테 죄 많이 진 건 맞다.”
“그럼 그것으로 됐어요. 이제 다툴 일이 뭐 있겠어요.”
“좀 달라, 특히 형 문제에 관해서는.”
“엄마는 네 형이 이미 글러먹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네 형은 좀 묘한 구석이 있어서 사람 만들려고 이렇게 저렇게 당조짐하려 들면 외려 더 엇나갈 사람이 네 형인 듯싶다. 그러면 결국 쪽박 깨고 나갈 사람이라니까. 그걸 네 엄마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몹시 답답하구나.”
아버지의 말은, 얼핏 이해할 수 없는 말로 들릴 수도 있는 터였다. 아버지의 말은 형을 그대로 내동댕이쳐 버리자는 것과 진배없는 말로 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네 에미는 영수 애비가 나랑 닮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건 아니다. 난 부채 하나만 있어도 내 얼굴 다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었어 …… 네 에미처럼 대쪽 같은 사람이 견디기 어려웠을 게다. 난, 내 뒤에는 항상 단단한 돌이 있고, 그 돌이 날 항상 지켜줄 수 있다고 믿었던 거지.”
“형은…….”
“그 애는 아니야. 영수 애비는 뒤를 믿지 않는 사람이야. 나랑은 다르지.”
말하자면 형은, 어머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허약하지도 음충맞지도 않다는 것이다. 늘 뒤만 보고 있는 사람에게 뒤돌아보라는 것처럼 객쩍은 말이 없듯이, 억패듯 앞만 보고 있는 사람에게 앞을 보라는 말처럼 의미 없는 말도 없다는 것이 아버지 말의 요지였다. 앞만 봐도 무탈한 사람은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형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뒤를, 아니 먼 데 것을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과거 같은 걸 말이다. 그러자 불현듯, 다방이면 어떤가,라며 불끈 몸을 일으키는 형의 모습이 확 들어오는 듯했다. 그리고는 동시에 아랫도리 고샅 주변이 쑤셔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화독(花毒). 내 몸 안에서 매화 잎새 사정없이 휘날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항생제를 복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부엌에 들어가 물 한 컵을 떠올 수가 없었다. 내 몸이 절망을, 거역할 수 없는 뒤를 돌아보지 않을 경우 화독(花毒)은 치유될 수 없으므로. 그러나 여전히 끔찍스런 뒤의 기억을 안간힘을 써가며 잊으려는 늙은 어머니와 아내가 거기 부엌에 오롯이 있는 한 결코 오입할 수 없는 공간이 부엌이었다. 현주를 잊는 것이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듯이, 아내를 얻는 것 또한 이제 내 소관이 될 수 없을 터였다. 어느 날 현주가 불쑥 나타나 또 그 끔찍스런 화독을 준다 해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또 다른 뒤의 기억 때문에 몸부림을 치며 잊으려 할 것이며, 그 가운데 또 누군가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난 그렇게 끊임없이 위험한 원운동을 해야만 하는 존재인 것이다. 나의 유년의 기억 한 자락 안에는 여전히 아버지가 스쳐지나가듯 한 그 말, ‘네 형보다 사실은 네가 더 위험하구나. 너는 나를 너무 꼭 빼닮았어.’라는 그 컴컴한 말이 몬존히 서 있는 것이다. 나는 끝내 부엌에 가 물 한 컵 떠오지 못하고 날로 항생제를 털어 넣었다.
새벽녘이었던가.
꺼어이, 꺼어이.
뭐라고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울음소리가 부엌 쪽에서 들려왔다. 늙은 어머니인지, 그보다 더 늙어버릴 것 같은 아내의 울음 소리인지 당최 가늠이 안 되는 울음 소리였다.
얼마가 흘렀을까.
내가 누워 있는 방, 그 완자창 앞에서 바들바들 몸을 떨며 서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뜬 실눈 안으로 들어왔다. 창을 밀고 들어오겠다는 건지, 아니면 그대로 창 앞에서 돌부처가 되겠다는 건지 모를 듯한 기묘한 자세로 어머니는 한참을 몸을 떨며 그렇게 서 있다가 바깥을 향했다.
그제서야 찌르륵, 감전되듯 어머니의 한쪽 손에 쥐어져 있던 금속성의 물건이 떠올랐다. 회화나무가 밑동부터 흔들릴 것이리라. 화독(花毒)인 것이다.

김찬기
․ 1965년 충남 당진 출생
․ 199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 창작집 ꡔ달마시안을 한 번 보러와 봐ꡕ

추천1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