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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신작시/이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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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
그림 속으로 비행하다
새벽 하늘이 타오르고 있었네
지평선 같기도 하고
수평선 같기도 한 붉은 띠 위에
하얀 겨울 햇덩이가 무리들 속에서 벗어나고 있었네
나는
어둠이 벗겨지는 붉은 밀림 속으로 막 들어서고 있었네
유황 냄새가 진동하는 아득한 지점에서
눈을 뜰 수가 없었네
서서히 난장은 시작되고
하늘과 땅, 바다와 바람들의 혼숙은
군데군데 새카만 멍이 들기도 하고
핵의 입자 같은 슬픔들이 터질 듯이 팽창하다가
단 한번
“꽝”
하고 뚫리는 우렛소리를 들었을 뿐이네
멀리서, 검은 가시들을 툭툭 내밀고 서있는
이름 모를 나무들의 긴 얼굴이 붉게 일그러지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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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교 하나 아득한 섬으로 이어져 있다
새벽바다는 지금 산고 중, 산처럼 밀려오는 진통이 전율하고 있는 땅 끝에 하트형 팻말 하나가 샛노랗게 웃고 있다
이 직선의 철교로 모시겠습니다 한 발 상큼히 올라와 보십시오 출렁, 스릴을 느끼며 단단하면서도 탄력 있는 물 위를 걸어보십시오 가다가 물컹한 바다가 덮쳐올 땐 짜릿한 사랑도 느끼지요 편서풍 때문에 한 목숨 아차 할 때도 있겠지만 거미줄처럼 보이지 않는 그물망이 걸려있습니다 설사 폭풍이 들이친다 해도 수준 높은 모험을 안전하게 하는 닷컴, 믿으십시오
직선을 보장합니다 부패하지도 않습니다 광활한 바다를 당당하게 걸어가 보십시오. 아득한 곳에 호화선 한 척이 정박해 있는 미지의 섬으로 나와 함께 열두 달 긴 밀월여행을 떠나보실까요 때로는 태풍의 장엄한 오케스트라를 즐기면서
그때, 바다 속에서 바알간 샛눈을 반짝 뜬 햇덩이가 모든 것을 지워나간다 한순간이
이정숙
공주 출생
1994년 ≪한겨레문학≫으로 등단
시집 <하늘은 상처를 입기 위해 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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