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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신작시/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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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욱
한없이 낮은 옥상
미안해.
당신을 밀어버릴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자
무수한 방향에서 쏟아지는 소나기.
화요일에서 월요일로
부서진 사월에서 시월로
나의 손가락 사이로.
그리고 손바닥에 묻어있는
반짝이는 당신의 파편들.
반짝이는 햇빛.
반짝이는 손톱.
그랬을지도 모르지.
그냥 당신의 손톱이 아주 약간
깨진 것일지도.
혹은 잠깐 내가
눈을 붙였을 뿐일지도.
정말 미안해.
손바닥에서 반짝이는 당신.
당신의 눈 속에서 반짝이는 그를
당신이 아니라
내가 잊을 수가 없었어.
느린 여름
맑고도 무거운 날이었다
그는 쓱 웃으며
나의 한쪽 어깨를 지웠다.
햇빛이 나를 힘주어 눌렀고
그를 비낀 자세로만 나는
그에게로 기울 수 있었다.
이런 식의 시간이란
이제 다시는 없을 것이다.
내가 먼저 움직이고 싶었지만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어
쓱 웃으며 나를
나의 의미를 미리 지워버렸다.
신해욱
199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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