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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신작시/유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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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임
봄나무에서는 비누 냄새가 난다
상수리나무 곁을 지나
백양나무 곁을 지나
굴참나무 곁을 지난다
문득
풋오이 냄새 같은
비누 냄새가 난다
겨우내 상한 속 다 씻어내고
막 마른 수건질 끝내고 서있는 걸까
밖으로 향한 눈들이 환하다
그 눈 속에 파란 길들이 있다
길 앞에 노란 꽃등 촘촘히 걸어놓은
산수유나무, 생강나무,
그리고 팥꽃나무, 진달래
몇천 번의 물經으로 그 속 닦아냈으면
다 죽었던 몸뚱어리에
저리 환한 길 냈는가
되새 한 마리
그 속에서 목욕 중이다
유리 속에서 얼룩지다
너무 청명한 날은
유리창에 얼룩이 유리보다 더 선명하다
한번 지워진 흔적까지
다시 살아난다
그럴 땐
내 안의 얼룩이 유리 밖으로 번진다
마른 눈물 자국 같은
상처로 더께 진 딱지 같은
엷은 그늘로도 쉽게 숨길 수 있는
미세한 먼지 같은 것들이
살아서, 고물댄다
유리 속에 얼룩으로 내가 있다
유리는 이제 유리가 아니다
우주의 커다란 얼룩인 세상이 유리 밖에 있다
유정임
2002년 ≪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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