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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신작시/허청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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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31회 작성일 05-01-2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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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청미

선운사 동백나무



오백 살 여자가 아이를 뱄다고
노산(老産)의 산통이 온 산을 흔들 거라고
동박새는 제 부리를 콕콕 쪼아
무성한 소문을 전송하네

분만을 준비하는 동백 숲속
앙칼진 꽃샘바람이
이월의 짧은 꼬리를 뜯고 있다
늙은 임부는 진통이 와 몸을 떨고

언 산방에 불을 지피는
오후의 햇살
오! 눈부셔라
저 선홍의 무녀리
산방 문이 열리네

선운사 뒤란에 불이 붙겠네
동백꽃불 속 어디쯤
내 어머니 꽃등 하나 켜고 계실 것도 같은

환생의 씨앗 품고 모질도록
동백나무는
긴 겨울밤 깨어있었다





바람, 바람, 바람



오층에서 바라보는
미루나무 우듬지
내 눈높이와 수평이다
제 키만큼 부풀은 생의 부피
휘어졌다가 천천히
몸을 세우고, 또 휘어지고
온종일 사방으로 흔들린다
사람들은
오늘도 바람 부는 날이라고 말한다

나는 야맹증을 앓고 있어
밤마다 청맹과니
검은 밀실의 음모(陰謀) 같은
바람이 또 간밤에 불었나
어제 곧았던 창 밖의 나무들이
굽어있는 아침

티브이 모니터 속에는 거대한 불바람
공룡 닮은 정복자의 불꽃놀이 한마당으로
아라비안 나이트는 날이 새고 있다
차도르를 두른 눈이 큰 여자가 빈 터번을 들고
선홍의 유혈을 밟고 서서
뭉크보다 더 절규한다
오프 버튼 누르면 저 불바람 사라질까

열린 창 문틈으로 꾸역꾸역
들어오는 바람, 바람, 바람


허청미
2002년 ≪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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