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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신작단편소설/박병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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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669회 작성일 05-02-2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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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공방을 놀아보자

박 병 례




순태네가 고개 너머 새로 생긴 공장에 취직한 지는 벌써 일년이 넘었다. 실제 나이로는 꿈도 꾸지 못 할 걸 다행히 호적 나이가 일곱 살 줄어 그나마 가능했던 것이다. 그녀는 공장 다니는 틈틈이 푸성귀라도 심어 장에 내갈 계획이었다. 다른 땅은 엄두를 못 낸다 하더라도 마당 앞 논 서너 마지기와 집터를 끼고 앉은 밭은 부쳐먹을 생각이었지만, 점심때가 못 되어 사단이 일어날 줄이야. 오토바이 소리가 나서 우체부가 왔거니 여겼지만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남자가 서류봉투를 꺼내들었을 때 그동안 얼마나 헛된 꿈을 꾸고 있었는지 뼈 절이게 깨달아야 했다. 낯선 남자가 내민 서류는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만 했다. 땅이 누구한테 넘어갔느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집터도 반이 넘게 잘려 나갔으니 다리 뻗고 잠자기는 글렀다. 오죽 했으면 순태가 지난 가을 목장에 취직을 했을까. 아들 내외가 목장 집으로 옮겨간 뒤 공장에 다니는 신세가 되었는데도 미련을 버리지 못 해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다. 언젠가는 넘어갈 땅이라 마음을 비우고 있었지만 정을 끊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지 하루아침에 거지신세로 전락할 줄은 몰랐다. 순태네는 허탈한 심정으로 소주병을 집어들었다. 부질없는 짓이란 걸 알면서도 애면글면 속을 태우느라 화투판도 마음 편히 끼지 못 했다 생각하니 부화가 치밀어 올랐다. 무릎 쑤시는 건 늘 그러니 화투장 타박은 못 할 터였다. 고통을 의사에게 호소해봤자 퇴행성관절염은 방법이 없다며 무조건 일을 하지 말라니 몸뚱어리가 밑천인 사람한테는 할 소리가 있고 못 할 소리가 있는 법이다. 그래 씨도 안 먹힐 소리를 처방이라고 내놓는 의사보다 화투장이 주는 위안이 낫다고 여긴 지 오래 되었지만 땅이 경매로 넘어간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 빌어먹을 순간 의사에게 욕이 나온단 말인가. 순태네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공허하게 웃었다. 그녀는 미자네로 건너갈 채비를 하며 집안을 둘러보았다. 온기라고는 없는 썰렁한 방안에 자식들과 손자들이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순태네는 사진틀을 쓰다듬으며 자식들 이름을 불러보았다. 금세 시퍼런 멍이 번져 왔다.
“잘 살어라 내 새끼들.”
공장 식당에서 밤참과 아침밥을 하는 게 순태네의 일이었기에 전처럼 동네 사람들과 낮에 어울릴 수 있었다. 그녀는 퇴근하면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중간에 있는 혀짤배기 집을 거쳐 혀짤배기와 투닥거리며 미자네로 건너왔다. 그 뒤에 소리도 없이 묻어오는 건 항상 영분네였다. 순태네는 가끔 뒤돌아보며 영분네 존재를 확인할 뿐 서늘한 눈빛을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그 역시 소리 없이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영분네는 일정한 보폭으로 늘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했다. 한번도 아득하게 멀어지거나 숨소리를 느낄 수 있는 거리로 다가간 적이 없었다. 영분네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순태네와 자신의 사이에 한 가닥의 줄이 드리워져 있음을 오래 전에 눈치 채고 있었다. 그 줄은 한 번도 끊어지거나 느슨해지지 않았다. 누군가 휘두를 마음이 있었다면 벌써 끊어졌을 줄이지만 묵묵히 잡고 있을 뿐 행여 섣부르게 행동하려는 조짐은 처음부터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낡을 대로 낡아 가닥가닥 핀 줄을 바라보는 심정이 편치 않은데 오늘따라 영분네는 이유 없이 초조했다. 순태네 얼굴을 뒤덮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가 영분네를 슬며시 넘겨다보았을 때 전에 없이 겁이 났다고 해야 할까. 영분네는 자기도 모르게 손바닥에 고인 땀을 문질렀다. 아닌 게 아니라 온몸에서 진땀이 베어 나왔고 기다렸다는 듯 방광이 요동 쳤다. 불안요소를 감지하면 영락없이 소변이 마려운 습성은 오래 전에 일상이 되어 영분네를 숨막히게 했다.
위뜸에는 남편 살아있는 여인네가 한 명도 없었다. 혼자 남은 여인네들은 전화통이나 울려야 사람 사는 집인가 싶을 정도로 적적하게 지냈다. 겨울철에는 사람 구경하기도 힘들어서 하루 종일 괴괴한 집안에 쭈그리고 있는 게 일이라면 일이었다. 그녀들은 혼자 살아 버릇한 탓에 중얼거리는 게 몸에 베었다가도 어느 날 흠칫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 처지가 딱한 사람들끼리 모이기 시작했는데 찬바람이 불고부터는 아예 미자네로 들어앉게 되었다. 보일러 기름도 아끼고 끼니도 거르지 않아 더없이 좋았다. 굴타리 먹은 자리에 진이 나와 더 단단하게 아문 늙은 호박같이 볼 것 없는 여자들이 눈뜨면 둘러앉았다. 위뜸에 남은 사람들이래야 고작 그녀들이 전부였다.
“이것도 오늘로 끝이여.”
“내일은 고추 모 부을 흙 푸러 갈뀨?”
혀짤배기가 그예 한마디 했다. 미자네가 얼른 눈짓을 하며 혀짤배기에게 인상을 썼다.
“좋겄네. 고추 모 낼 땅도 있고. 나는 오늘로 다 날러갔는디.”
“노래나 해유. 띰란할 때는 노래가 즉방이유.”
“꼬댁 각시 노랠랑은 하지 마. 삼춘이 댁이라고 주는 밥이 겨울이는 찬밥 덩어리 접시 끝이 붙여주고 우쩌고 저쩌고 하는 대목이서는 나 크던 생각나서 싫어.”
“멀미나게 진 노래 할 건디.”
“화투풀이 노랜감?”
“우째 청뜽맞은 노래를 못 불러 한이래유. 태진아도 있고 현철도 있고 떨운도도 좀 좋아유. 태진아 미안 미안해 그거 하쥬 그류.”
“벌써 주딩아리가 귀에 걸렸네. 태진아가 뭐가 좋아? 내일랑은 죙일 태진아 노래 불러줄 테니께 오늘은 참어. 시방부터 할 거니께 잘 들어. 아! 지화자 좋네. 아니 놀지는 못 하리라. 얼씨구 좋네. 절씨구 좋네. 오늘같이 심정 사나운 날 화투공방을 놀아보자. 그 전 미친년이 우리집에 들어온 날도 심란해서 그년 따라 미치는디 알었는디. 정월이라 속속한 마음 이월 매조에 맺어놓고 삼월 사구라 맘 산란한데 사월 흑싸리 다 못 드니 기러기 잡어다 술안주 할까 국화주 불러라 한잔 먹자 사구라 때려라 단 불르던 소리 건개평 뜯으러만 나려들구 임은 점점 간 곳이 없고 모진 광풍이 나 죽이네. 얼씨구 좋네. 지화자 좋네. 아이, 씨브랄 거 좋다. 지랄 같은 서방 놈 죽었다고 좋아했더니만 아랫목 쳐다보니 또 생각나네. 얼씨구 좋네. 절씨구 좋네.”
“짤라먹고 붙여먹는 거 보니께 집이서 한잔 했구먼. 소리를 할라면 지대로 하든가 하지. 뭔 말라빠진 안방타령이여.”
“늙었는디도 밤이면 생각나유? 난 젊어서두 그게 그릏고 그릏드니 늙어서는 더 그릏든디유.”
“늙었다고 그것도 늙데?”
“아무름 늙는디 들할 테쥬. 흐흐.”
“누가 믿어. 시집 온 새닥이 밤마다 신랑 부지를 못 하게 잡는다는 둥 밭이 나가도 일은 안 하고 신랑 허리 잡고 둥굴어 밭이 매낀매낀하다는 소문이 그저끼까지 돌어다녔는디. 너 서방 맛 못 본 지 한 삼 년 됐냐? 밤마다 당체 죽겄지 않어? 젊은 서방 하나 구해봐. 죽은 서방하고는 식이 달버 좋을겨.”
“해에간 그집말도 퍽 해유. 하는 띡이 달브긴 할뀨. 흐흐.”
혀짤배기가 입을 손으로 가리며 능글맞게 웃었다. 순태네는 소주를 공기 가득 따랐다. 말려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다들 바라보기만 했다.
“자 이거나 받어. 초약이여.”
“흐흐! 난 청단 했네. 참 뚠태 각띠는 왜르키 즉대유. 그래서 그른가 애도 읎고.”
“걱정도 팔자여. 참새가 즉다구 알 못 낳구 뭐 즉다구 방아 못 찧는 방아깨비 봤나. 자식 낳는디는 찌그러지나마나 알다시피 뭐가 상관 있대? 두껍이가 왜 두툴두툴한지 알어?”
“한량 품이 자다가 옴 올라서 그릏다드믄.”
“옴 같은 또리는 하띠지두 말유. 한량 품이 자다가 본떠방한티 디지게 맞어떠 그러는 거래유.”
“엣다 팔광이나 뒤집어라. 내가 그릏지뭐. 맨 흑싸리 껍데기만 걷어온다니께. 평생 남이 서방은 구경도 못 한 것이 밝히기는 자고로 국수하고 씩구녕하고는 멀국이 질컥질컥해야 먹는다드라. 그냥 되지직해서 되는 줄 알어. 남이 서방 품어본 년 있니? 있어?”
농담을 하는 순태네의 얼굴 근육이 한 동안 파르르 떨렸다.
“별루무 소리를 다하네. 쓰잘 데 읎는 소리 그만 씨불거려. 괜히 밥 잘 먹고 앉어 쌈이나 쳐부수지 말고. 내가 뜩 보니께 네 운수에 오늘 살이 쪘드라. 몸 조심 입 조심 차 조심 공장이서 뜨건 거 조심해야겄어.”
미자네가 정색을 하며 핀잔을 주었다. 젊어서 한때 점도 봐주고 푸닥거리도 마다하지 않던 그녀였다.
“웃자고 해본 소리를 갖고 사람 무안을 줄 건 뭐여. 쌈이 나면 뜯어말리면 되지 뭘 걱정이랴.”
순태네는 미자네 말에 찔끔하는 눈치였으나 어딘지 모르게 독기가 서려 있었다
“지다랗게 주딩이 댓 발 나온 거 보니께 저거 골 났구먼. 일껏 조심하라고 충고하니께 저 지랄이여.”
“누가 남이 운수 봐달라고 했어? 우디 가서 물어보니께 삼재 든 사람이 식구 중에 싯이나 된다고 하드라. 살 찌고 삼재 들어 일났잖어. 땅 넘어 간 거 가지고도 성이 안 찬다면 내가 죽으면 되는 겨. 70평생이 넘게 살었으면 많이 산 거 아녀. 안 그려?”
“저놈의 여핀네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어, 시방?”
“참어유 참어. 따우지 마유. 저 떵님이 왜 저런댜? 왜 그류?”
혀짤배기가 허벅지로 방바닥을 유난스럽게 치며 험악해지려는 분위기를 걷어내려고 수선을 떨었다. 쌓아두었던 설거지를 끝내고 수제비 데운 걸 쟁반에 받쳐든 영분네는 고작 해봐야 아이들 손가락 마디만한 문지방 턱을 넘어오지 못 하고 있었다.
“나이 들어 어지럼병 생기면 고쳤다가도 열이면 아홉은 도진댜. 쌍화탕이래도 있으면 가져와 봐. 우째 너는 핀하게 읃어 쳐먹으려고만 하니? 나잇살 즉은 것이 발딱발딱 일어스는 맛이 있어야지.”
순태네가 혀짤배기를 향해 커다란 눈을 올려 떴다. 검은 동자보다 유난히 흰자가 많아 눈을 흘겨 뜰 땐 무서움이 이는 눈이었다. 혀짤배기는 아무 소리 않고 일어났다. 오늘 같은 날은 참는 게 인정이고 도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남핀 죽어 어지럼병 얻은 사람도 있는디 누군 그저 밤이고 낮이고 좋아서 날러다니니……, 영분네 좀 닮어봐.”
“미쳤어! 서방이라고 지가 나한티 뭘 해줬이야 안타깝든가 말든가 하지. 영분이 아부지도 내 보기엔 뭐 벨로 잘 한 거 같지 않은디 애걸복걸할 거 뭐 있어?”
“잘 한 거야 읎지. 그래도 개갈 안 나게 죽었으니 걸리지.”
“품위 있게 죽는 사람이 울마나 되는지 알어? 죽을 때는 다들 인상 찌그러뜨리고 죽어. 여기 있는 사람 별수 있을 것 같지? 웃기지 말어.”
무슨 말을 해도 예사로 들리지 않는지 순태네는 사사건건 시비조였다.
“아침참이 저수지 너머 여자들 왔다 갔어. 회관 보일러가 얼어 터져 응딩이 시렵다고 왔드믄. 작년에도 그러더니 올해 또 그러네. 영분이는 자리를 잡었댜?”
“자리를 잡었나 우쩐가……, 새끼라고 내 등골을 빼먹으려고 작정을 한 것 같어 이젠 무서워.”
“우리 집구석 같은 집이 또 있을라고? 에이! 눙깔만한 소주잔 집어쳐. 큰놈 그게 땅을 팔어 조질 때부터 내가 알어봤지. 운젠가는 싸그리 조져먹을 날이 올 거다 했는디 아니나 달러. 큰놈 그게 여자를 좀 밝혔어야지! 여자들이 돈만 발라먹고 도망가도 정신 못 차리더니 부모성제까지 못 살게 구네. 즈 에비가 그랬으니 뭘 보고 배웠겄어? 죽은 서방이지만 시방도 넌덜머리가 나. 아이 말 말어 징그러우니께. 새끼를 여기저기 까고 다녔을 걸 뭘.”
“누가 그릏다고 그래유? 뚠태 엄니는 알어유?”
“알긴 개떡 뭘 알어. 얘기가 그릏다는 거지. 저 여핀네는…….”
순태네가 얘기를 하다말고 울화통이 나는지 찬물 대접을 집어 들었다. 갈라진 살가죽은 그물코처럼 퍼져 나가다 옹이 진 엄지손가락에서 뚝 그친 뒤 물 속으로 곤두박질 쳤다.
“아 그래도 우띻게 서들어봐. 그냥 손 놓고 있으면 돼남. 다먼 집터래도 건져야지.”
“우띻게 하고 말고 할 도리 읎뜌. 돈 가지고 막는 뚜밖이는유. 돈 있뜌?”
“하여튼 잘났어! 우째 그릏게 모르는 게 읎을까. 남이 손이 넘어간 걸 백날 얘기하면 뭐하겄어. 저이 속 아퍼 뒈질려고 하니 주딩이 닥치고 수제비나 먹자.”
“뚜제비가 왜 그듀?”
“돼서 물 부니께 묽구 또 묽어서 가루 풀다보니께 이 화상이 됐구먼. 그냥 저냥 먹어둬. 아까 저수지 너머 여핀네들 왔을 때 먹고 남은 거라 퉁퉁 불긴 했어도 집이 가봐야 뭐 벨시럴 거여. 아침은 그럭저럭 입맛 읎어 안 먹었을 테고 저녁은 잘 때니께 구찮어서 건너띌 거 아녀? 밀가루라 금방 삭어. 접때도 그 얘기했지만 늙긴 늙었나 가끔 그게 생각나. 허구헌날 남의 콩대 꺾어 구워 쳐먹지 않었어?”
“누구? 미친 것! 그 얘기는 뭐러 자꾸 할려고그려.”
“저녁이 누우면 잠은 안 오고 그게 죽었나 살었나 궁금하대.”
“나 뜨거운 거 즐기는 줄 번연히 알면서 이릏게 차게 했뜌?”
“꼴에 또…… 여러 질이다! 여러 질!”
“그래두 띡은 건 띯유. 안 먹어유 .”
혀짤배기는 삐쭉거리면서도 수제비 그릇은 제 앞으로 당겨놓았다.
“드럽게도 살 안 가게 쳐먹고 있네! 먹기 싫으면 관둬.”
순태네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수제비 그릇을 영분네 앞으로 디밀었다. 영분네는 마지못해 숟가락을 들었다.
여우꼬리처럼 탐스럽던 해가 오후 들어서며 눈에 띄게 짧아지는 것 같더니 간신히 두어 발 남짓 서산에 걸린 채 기운을 못 차리고 있었다. 진눈깨비라도 한 차례 더 내리려는 지 몰려온 구름사이에 낀 해는 옴짝달싹 못 한 채 짓물러 가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해는 해였다. 시르죽어 영영 꺼질 것같이 힘을 못 쓰던 해가 넘어가기 직전에는 삭지 않은 불덩이를 한 무더기 토해놓고 그 옆에 또 한 무더기 토해놓고 좀처럼 토악질을 멈추지 않았다. 주위 구름들은 물정도 모르고 벌겋게 물들어 가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해는 산 너머로 스리슬쩍 넘어가고 있었다. 네 명의 여인네들은 창호지 부칠 때 덧댄 손바닥만한 유리에다 한쪽 눈을 대고 번갈아 가며 밖을 내다보았다.
“낼랑은 날이나 번쩍 들어야 할 텐데. 해 넘어가는 모습은 운제 봐도 겁나게 이뻐.”
“젊은 년 도십 부리는 거 같지 뭐가 이뻐? 저 새빨간 해가 내 눈에는 백년 묵은 여시로 보이네. 멀쩡한 구름 후리는 것 봐. 안 그려?”
“아까부터 쓰잘데기 읎는 소리 그만 지껄여.”
“심란하니께 그러지. 마음이 이리 뽂이고 저리 뽂이고 아주 콩 뽂이듯 뽂여서 그러네.”
“순태 아브지야 네 말대로 평생 그랬잖어. 여태 그것 가지고 뽂이며 살었남? 안 그랬잖어.”
“몰르는 소리 말어. 나도 사람이고 여자여. 자식은 도망 다니고 땅은 남이 손이 들어가고 서방은 맨 지질집이나 하다 죽고.”
“말을 안 해서 그릏지 남들도 그만한 일은 젺으며 살어. 당최 맘 약한 소리 하지 말어.”
“표를 안 낼려고 했으니께 그랬겄쥬. 뚠태 아브지 그 양반 어지간했어야쥬. 아이고 아퍼 죽겄네. 아에 죽어뻔져야 한갓질라나. 물렁뼈가 아퍼 전디지를 못 하겄으니 이놈으 일을 우쩐대유.”
“시퍼렇게 젊은것이 저 지랄이여. 환갑 지난 지 울마나 됐다고 상늙은이처럼 틀니를 해 박고 야단인지. 그 틀니 좀 뺐다 꼈다 하지 마. 밥맛 떨어져!”
“호적상으로는 동갑 아녀. 구박 좀 그만해. 아이고! 다리야. 내일랑은 뭔 일이 있어도 빙원에 나가봐야 되겄네.”
다리는 벌어지고 관절이 있는 곳마다 뚱뚱 붓고 틀어지고 게다 손톱 발톱 무좀까지 극성이었다. 이젠 슬슬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 할 일이 태산인데 걱정부터 앞서는 게 사실이었다.
“뼈 주사 맞어야 그때뿐이여. 표 나눈 거 몇 장 남었어? 목간통이 가서 뜨건 물이다 푹 담그는 게 빨러. 일하다가 손가락 깨딱하기 어려울 때는 소주를 남모르게 마시는디 갈급나 죽겄어. 그런 때는 목간통 생각이 간절한 걸 애꼈지.”
“그걸 뭐할려고 애껴?”
“썪는 거 아니니께 애꼈지. 다 쓸데가 있어.”
목욕탕 표를 한꺼번에 사면 할인을 해 주었다. 그걸 안 뒤부터는 표를 공동으로 구입해 나누어 썼다. 뜨거운 물에 담그고 나오면 물리치료를 받은 것처럼 시원해 비록 못 먹고 못 입을망정 목욕탕은 거르지 않고 다녔다.
“술 작작 밝혀. 너 심 좋고 일 잘 하는 것은 우디 갔던지 그놈의 데가 여간 커. 뭐가 아쉬워서 술꾼에 늙은 여자를 쓰겄어. 영분아, 어제 돈 얘기 했잖어. 내 수중에는 읎고 둘러다 줄 수는 있는디.”
“아서. 읎으믄 말어”
영분네는 미자네에게 괜히 돈 얘기를 흘린 것 같아 마음이 언짢았다. 영분이 혼자 잠깐 왔다 간 게 몇 달 전 일이었다. 전화 한 통 없는 걸로 보아 벌써 다 털어먹고 손가락만 빨고 있을 것 같아 변통을 해 놓으려던 것이었는데 영분네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깟 몇 푼 쥐어줘 봤자 더 안 주나 쩝쩝대며 손을 벌릴 게 뻔했다
“둘이 짝 지어 주지 그랬뜌? 떼놓으니께 잘 되는 게 읎잖아유.”
“저이가 우리 순태 싫다고 난리를 쳐부렸잖어.”
“암! 잘 되는 게 읎고 말고.”
영분네는 곤혹스런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되씹었다. 좋지 않은 얘기를 꺼낸 게 미안했던지 혀짤배기는 영분네 손에 술잔을 들려주었다. 순태네는 못마땅하다는 듯 볼멘소리를 했다.
“그만 멕여. 사람 잡을 일 있어?”
순태와 영분이는 어려서부터 서로 죽고 못살 정도로 붙어 다녔다. 둘 사이를 아무리 갈라놓아도 소용없었다. 그때마다 영분네는 딸에게 한마디하는 걸 잊지 않았다.
“급살맞을 년! 미친 것 낳으면 우띻게 할라고.”
“내가 미쳐! 누가 순태랑 결혼한대? 제발 이러지 마.”
영분이의 하소연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지 영분네는 핏발 선 눈으로 자식을 찾아 동네를 발칵 뒤집어놓곤 했다. 영분네의 집착은 끔찍해서 순태를 볼 때마다 정이 뚝 떨어질 만한 소리를 서슴지 않았고 입에 담지 못 할 말로 생채기를 덧냈다.
“니 엄니가 성한 사람인 줄 알어? 실성해서 돌어다니던 것이 니 엄니였어. 알기나 알어? 그런 주제에 우디서 영분이를 넘봐. 난 니 몸에 흐르는 피가 싫어.”
처참하게 풀이 죽는 순태를 보면서도 영분네는 모질게 굴었다. 돌아서서는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숨죽여 울었지만 영분네는 끝까지 순태를 홀대했다. 그녀는 꼬챙이처럼 배배 틀어졌고 자연히 말수도 줄어들었다. 딸 가진 부모들은 더러 이해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손가락질을 했다.
“나도 비위 안 맞어 영분이 메누리 삼기 싫어. 우리 순태가 우디가 우때서 가슴에 못을 박어. 한번만 내 아들 앞이서 미쳤느니 성했는니 우짜느니 함부로 주딩이 놀려봐. 내가 본때를 보여주구 말겨.”
순태네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머리끄덩이를 흔들 것처럼 씩씩거렸지만 의외로 잠잠했다.
“뚠태 엄니 또띡 있쥬?”
“심심해서 죽어, 저거. 순태 엄니믄 난디 나 말고 누가 있다고 개지랄이니?”
순태네가 빈 잔을 내밀었지만 미자네가 술잔을 빼앗아 옆에 치웠다.
“난 그때 기억이 땡땡해유. 미친년이 우쩐 일인지 몰골이 바딱 틀리지 않었남유?”
“노박 알려줘두 뚠태 엄니가 뭐니? 뚠태 엄니가! 기억이 땡땡한 건 또 뭐여? 학교종이나 땡땡 울리지.”
“흐흐! 그게 무뜬 말이냐 하면유? 그러니께 오늘 일같이 기억이 땡땡하단 뜻이유.”
혀짤배기는 신이 나는 듯 사람들을 둘러다 봤다. 오늘따라 화투장이 손에 착착 붙는지 좀처럼 실수하는 적이 없었다. 순태네의 거친 말투에도 얼굴색 한 번 붉히지 않는 걸로 보아 노상 얻어먹는 욕인 게 분명했다. 마침 미자네마저 한몫 거들려고 당겨 앉았다.
“나이, 우쩐지 치마폭이 벌어진다 했어. 먹을 것 주면 싹 먹어 조지더니 그게 애를 가졌던겨. 입은 또 우라지게 컸어야지!”
“쉿, 시끄럼 피지 말어. 순태 그거 마음 고생 많이했어. 잠이 안 올 때는 농사짓는다고 눌러앉은 게 실성한 즈 어미 기다리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별별 생각이 다 들어.”
“즈 어미가 따로 있다고 순태가 그러든감?”
“그건 아니지만 내 맘이 그렇다는 거지.”
“걱정도 하는 사람이나 하게 냅뿌러둬. 안 하던 짓 하면 영락 읎이 일 나.”
“몰르는 소리 작작해.”
순태네가 끙끙 앓는 소리를 내자 영분네가 술잔을 내밀었다.
“영분 엄니가 벨일이유? 술을 입에 대구 무띤 일 있뜌?”
“이이가 술 먹으면 우디 큰일이래도 나나, 저것은 나잇값 못 하고 방정을 떨어.”
“우째 그릏게 영분이 엄니 핀을 들어유. 뭐 벨로 친하지두 않은 것 같은디 이상하다니께. 그러지 말고 그때 얘기나 해 봐유. 난 젊어떠가 좋았뜌.”
“좋긴 개떡 뭐가 좋아. 눈뜨면 일이고 먹으면 일이었지.”
“그래도 그땐 사는 재미가 참 좋았어. 아무 거나 먹어도 맛만 좋았는디. 시방은 우디 그릏다나? 맛있는 것도 젊어서 한때고 좋은 것도 젊어서 한때지.”
한동안 다들 말이 없었다. 결코 먼 길을 온 것 같지는 않은데 와서 보니 물릴 수도 없고 되돌아 갈 수는 더더욱 없는 먼 길이 되고 말았다. 젊어서는 먹고사는 게 바빠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자식과 남편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묻어버린 세월이었기에 그들과 함께할 줄 알았지만 그들은 샛길로 다 빠져나가고 어느새 자신들은 늙고 지쳐 있었다.
영분네가 술병을 끌어가 제 손으로 따라 마시자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이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영분네는 자신을 섬뜩하게 응시하던 순태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순태네는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감았다.
산 속에 쓰러져가는 집이 한 채 있었다. 워낙 후미져서 집 주인이 무섭다고 내버린 집이었는데 그곳에 미친 여자가 산다는 소문이었다. 어디서 흘러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가끔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고 사라지는 그녀의 존재를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실성한 젊은 여자는 어디서나 위험한 냄새를 풍기기 마련인지라 동네 아낙들은 집안 남자들 단속하느라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먼지버섯이나 먹물 버섯을 잘 못 건드리면 퀴퀴한 흔적이 남듯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가기 전까지 동네에서 떠돌아다닐 사람들 말이 두려워 눈초리들이 전 같지 같았다.
어느 날인가 미친 여자가 보퉁이를 끌어안은 채 순태네 집을 기웃거렸다. 동네에는 해괴한 소문이 퍼져 있던 터였다. 순태네 남편과 미친 것이 눈이 맞아 끈적거리는 사이라는 소리들이 심심하지 않게 흘러나오곤 했다. 물론 자기 남편들이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자 한시름 놓은 동네 아낙들이 마음대로 쑥떡거리는 얘기라 진실성에 한계가 있긴 있었다. 하지만 전적으로 믿지 않는다 치더라도 대충 걸러들어 보면 미친 여자가 남자를 안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인 듯했다. 그것도 동네 사내들 다 놔두고 순태네 남편을. 망측스럽고 열불이 났지만 순태네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무관심한 척했을 뿐 자고 일어나면 호박 덩굴손이 울타리를 감고 올라가듯 남들이 보지 못 하고 느끼지 못 하는 사이 그녀의 촉수는 멀리 뻗어나가고 있었다.
미친 것은 돌아갈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무심히 지나치던 순태네 귀에 아이 울음 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그렇게 힘이 빠지는지 순태네는 철푸덕 주저앉고 말았다. 모가지를 비틀린 풍뎅이가 뱅글뱅글 돌며 날갯짓으로 땅바닥을 쓸듯 앉은뱅이가 된 그녀가 꼭 그 모습이었다. 순태네가 하염없이 넋을 놓고 있자 미친 것이 마당끄트머리에 서서 순태네 눈치를 보고 있었다.
“우리 저 땅이 다 뽕밭이었잖어. 뉘에가 한밥 먹을 때니께 한 오월쯤 됐을라나. 밥 주고 똥 개리고 뭐하고 지랄할래니께 아무 정황 읎는디, 그것이 자꾸 왔다 갔다 뻔적거리데. 그날사 말고 호랑거미 얼룽얼룽한 것까지 올라갔다 내려왔다 골 아프게 하더라니께.
얼추 다 저녁 때 쏘내기가 냅다 투디려 됀다는디 겁나게 투디리는 겨. 들깨모를 꽂다 주살나게 들어와 비설거지를 했지. 냄핀이라는 인간은 한 댓새 만이 집구석이 겨들어와 마루끄트머리에 앉드믄. 난 그 년이 우째 그러나 했지. 부진부진 들어와 육갑을 떨대. 누런 이빨을 벌리고 몸을 비비 꼰다는디 눙꼴 셔 갱신히 봤네. 꿀종재기 같은 눈으로 냄핀한테 찌긋찌긋하고 난리났드믄. 어이! 씨발년, 드러워서 혼났네. 내 서방이지 지 서방이여. 그날은 울마나 당당하던지. 그것이 안쥔 같었어. 다음이는 다 알잖아. 관둬. 아이! 싫어. 세월이 아무리 지났어두 말하기 싫은 건 싫은 겨. 왜 이려? 암만 술 따러도 소용 읎으니께 헛지랄 마.”
순태네는 여기에서 입을 꽉 다물어 버렸지만 그 뒤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없었다.
미친 여자가 남편의 허벅지 위에 아이를 척 내려놓았다. 품에서 떨어진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순태네는 아무렇지 않은 듯 상추를 된장에 푹 찍었다. 삼 년 묵은 날된장이었지만 짠지 쓴지 맛을 몰랐다. 그녀의 손은 가만히 있지 못 하고 부뚜막에 놓여있던 쉰 콩밥 한 덩이를 아귀아귀 입에 집어넣었다. 탕이 날 대로 나고 콩이 뜰 대로 떠 찐득거리는 밥이었지만 그녀의 손아귀에 걸린 이상 남아나지 않았다.
아이는 나일론 보자기에 둘둘 감겨 있었다. 탯줄도 떨어지지 않은 것의 몸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아이가 악을 쓰며 울었다. 순태네는 가슴을 감싸쥐었다. 양쪽 겨드랑이가 찌르르하며 당겨왔다. 막내 아이 젖을 뗀 지 반년이 지나 젖이 돌 리 없는데 앞섶에 누런 얼룩이 번지고 있었다. 순태네는 아궁이 앞에 앉아 아이고 땜을 놓았다. 울긋불긋 곰팡이 핀 밥알과 콩이 차례대로 넘어오고 된장 덩어리가 목에 걸려 거위처럼 꽥꽥거렸지만 한번 터진 울음보는 틀어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질한 일로 궁상떠는 일은 절대 없으리라 작정한 여자처럼 지독한 곡소리는 동네 사람들이 놀래 뛰어 와서야 겨우 멎었다.
“원체 지집이라구 뭐 부탄강아지처럼 오죽 했뜌? 그러니께 애를 가졌는지 뭐했는지 알게 뭐래유. 흐흐.”
“참말로 애를 던져놓으리라고는 생각 못 했지. 난 시방도 해필 그때 왜 젖이 돌었는지 그 조화 속을 몰르겄어. 딴 건 몰러도 참 젖이라 젖은 흔전만전 나왔으니 순태 그것이 살라고 그랬는가 싶어.”
“눈밑 까막 사마구 아니었으면 순태 그게 살지도 못 했어. 천상 즈 애비 빼다 박었으니께 거두었지. 안 그러면 누구 새끼인 줄 알게 뭐여?”
“그건 그류. 순태 떵님은 젖이 흔하기도 했뜌. 나는 물젖이라 애가 먹기만 하면 물찌똥을 찍찍 깔겼는디유. 영분 엄니두 그랬쥬?”
“으응, 나? 나도 물젖이었지.”
“왜르키 놀랜 대유? 띵크대 떠랍에 청띰환 있던디 내 꺼 아니니께 인띰 뜨까. 갖다둬유?.”
“아녀 됐어. 청심환은…….”
영분네는 집에 돌아가 눕고 싶었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어지럼증이 사라질 것 같은데 차마 일어선다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이, 그러면 그렇지. 애 밴 걸 모르고 그것이 짐승처럼 쳐먹어댄다고 난리였잖어. 우리네도 애 가져 누가 뭣 좀 주면 울마나 맛있고 고마워. 그런 걸 보리감자 하나 안 주고 숭이나 봤으니 시방도 그게 걸려.”
미자네가 화투장을 나누어주며 혀를 찼다. 순태네는 무릎이 아픈지 돌아앉았다. 그 바람에 영분네 쪽으로 몸이 기울었다. 고개를 바싹 들이미는 순태네의 입이 비틀어지며 정전기 인 목소리에 심술이 달라붙었다.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기인디 그러고 나서 영분네도 애 가졌잖어. 우째 그릏게 안 먹었어? 애 뗄라고 그러는가 했지. 안 가질 생각이었으면 챙기지. 왜 그때 생각 안 나?”
“그건 그려. 사내들이야 자기네들 욕심만 채릴 줄 알지 뭘 알어. 여자가 알어서 챙겨야 애가 안 생기지. 그러고 입덧할 때나 못 먹지 음석이 울마나 달어.”
“안 그류. 나 봐유. 물이떠는 해금 내가 나떠 못 먹고 장이떠는 날 내가 나떠 못 먹고 딸밥이떠는 묵은 져 냄때 때문에 못 먹고 꼬빡 열 달을 죽다 딸아나고 죽다 딸아나고 했잖아유.
“열 달 내내 잘만 쳐먹드라. 똥집 먹구 싶다고 크지도 않은 달구 새끼 잡어 고아 쳐먹은 게 누군디? 어이구! 씨발 허구헌날 닭 모가지 비틀던 게 누군디?”
“아니라니께 그런대유. 울마나 흠하게 입덧을 했는지 몰러유. 흐흐! 똥집 얘기하니께 똥약 했네. 자자, 이띱 띡이유. 영분이랑 뚠태랑 땡일이 하루 차이 나쥬? 미친 것이 운제 낳은지 몰른다고 뚠태 엄니가 영분이 낳은 날보다 하루 더 쳐서 멱국 끓였으니께 맞쥬?”
“저거, 혀는 짧어도 정신머리는 디게 좋아. 하하하.”
한껏 목소리를 누그러뜨린 순태네가 웃는 바람에 영분네도 덩달아 웃었다. 순태네는 제 배 아파 난 자식이 위로 다섯이나 있는데도 미친 것의 새끼를 떠안게 되었다. 사람들이 모이면 순태네는 그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저녁마다 대주는 대도 우째 그릏게 껄떡거리는지 몰러. 그래도 그릏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걸 근디릴 마음이 우띻게 생긴댜? 발목쟁이 손목쟁이 때가 손톱발톱을 덮었드믄. 아이구! 씨발 그러니 다른 디는 말 다 했지. 변태여! 변태!”
순태네는 아이의 엉덩이를 철썩철썩 때리며 침을 튀겼다.
“너 이놈의 새끼 말 씹히면 내가 집어 내팽길겨. 그년이 글쎄 니 활개 쩍 벌리고 둔눠 자는디 보니께 파리가 새까맣게 더덕깽이 졌드랴. 파리를 쫓다쫓다 안 돼니께 그것이 치마를 홱 걷어 얼굴을 덮었나 보드믄. 말 말어. 밑구녕이 드러나니께 우리집 인간이 그냥…… 죽일 놈의 인간 같으니라고. 헌디 히안한 게 말여 지 얼굴을 치마로 폭 뒤집어 썼다는디 올러 탄 게 누군지 알게 뭐랴. 미친 것하고 뭔 얘기를 하겄냐며 그 짓거리 하는 동안이는 뭐 내외를 숭악하게 했다고 하든디. 근디도 새끼 애비를 찾어낸 거 보면 용하지. 안 그려? 우띻게 알었을까? 에이! 씨발년 지 새끼 지 년이 키우지 왜 나한티 떠냉겨. 어라, 이니 봐 여태 뭣 들었어? 얘는 내가 키운다니께. 이것이 뭔 죄 있어. 이놈아! 잘 때 자더라도 한 통 더 먹고 자. 그래야 싸게싸게 크지.”
순태네는 잠이 드느라 고개가 꺾이는 아이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이는 순태네 목을 끌어안고 얼굴을 비벼댔다. 순태네는 그저 막둥이 하나 키우듯 거뜬하게 키웠다.
가끔 미친년이 찾아왔다. 그때마다 동네 사람들은 좇아버리라고 성화였으나 순태네는 듣지 않았다.
“미친 것 찾어가 봤쥬? 그냥 말지는 않었을뀨.”
“여부가 있나. 살살 가봤지. 산 집에 올라가니께 왜 아녀? 힝편 읎지. 근디 내가 왜 갔는가 몰러. 아예 묵사발을 내줄라고 갔는가? 아니면 냄핀 새끼가 맞는가 내 귓구녕으로 들어볼려고 갔는가? 지은 죄는 있으니께 기겁을 해 내빼는 걸 잡고 얘기를 했지.
자꾸 새끼 들어스면 우띻게 할려구 몸띵이를 함부로 굴려? 지 정신 들고 마음 있는 사람이 생겨 정 달라고 사정사정하면 그때나 주든가 하지. 원, 달라고 한다고 이놈저놈 다 주면 우띻게 해. 자, 이거 한 볼탱이 먹어봐. 애 백일떡이여. 때꾸정물 줄줄 흐르는 손으로 만지니께 고래 구녕 쑤신 거 같잖어. 쯧쯧, 보따리는 뭐러 끌어엎고 댕겨. 잔등허리 물르라고. 애 생각나서 그러는감? 이젠 아무리 용 써도 소용 읎어. 나 줬잖어. 허전해서 그러는 거면 꾸적지근한 거 집어 내빌구 이거나 끄려 느. 시방처럼 못 먹어 뇌랗게 고사리꽃 피지 말고. 이봐, 나 안 뵈는 곳으로 가 주면 안 되겄어? 헌디, 말여……, 우리 집 애들 아버지가 자꾸 찾어와 구찮게 뎀비남? 한 번만 더 옷 벳기고 지랄하면 거시기를 콱 깨밀어버려. 한 가운데 톡 뼈지는 벌건 거 있잖어. 알어들었남?
대가리가 벗어지게 뜨건 날이었어. 백설기를 한 시루 쪄서 여다 줬지. 읃어먹지두 못 하고 애 낳느라고 울마나 욕봤겄어.”
“그 떡 가지고 사라진 거여? 순태는 보러왔던가?”
“오긴 왔지. 그때사 말고 싸락눈이 내리는디 못 보던 털신을 신고 있대. 빤득빤득 윤이 나는 새것이드라고. 그걸 나한티 벗어줄려는 풍신인지 자꾸 한짝을 내미는 겨. 줄라면 다 주든가 한짝이 뭐랴, 한짝이! 지 새끼 보러온 걸 알면서도 안 떠나고 여직 있었느냐고 부지깽이 들고 을러댔지. 그 속을 누가 알어. 하늘이나 알고 땅이나 알고 미친 것한티 큰소리 치는 내 속을 누가 알겄냐고? 에이! 씨발것 못 본 척했지.”
“그 털띤은 누가 따뒀대유.?”
“어라 여태 뭣 들었어? 하여튼 귓구녕은 드럽게 어둬, 저거. 누구긴 누구여? 내 참 아니꼽고 치사시러워서. 원 나한티는 다먼 나이론 버선 한 켜레라도 사다 디밀면서 좀 신어봐 한번이래도 그랬으면 저 죽을라구 숨 메일 때도 밉살시럽지 않았을겨. 젊어서도 추접스럽게 놀더니 늙어서도 갖은 추접을 다 떨었잖어. 똥구녕을 발꿈치로 괴고 앉어있다 죽을 게 뭐여. 그렇게 속을 썩이더니, 사는 게 뭔지…….”
순태네가 한숨을 쉬려는 찰라 방안에 있는 것들이 모두 빨려들 것 같이 깊고 깊은 한숨이 영분네한테서 먼저 터져 나왔다. 다른 사람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한숨을 연달아 쉬는데 도저히 허물 수 없을 것 같은 아픔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잘못하면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같이 아슬아슬했다. 밉고 야속한 감정이 부글부글 괴어올랐다. 밉고 야속한 감정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진원지도 알 수 없고 끝도 명확하지 않은 감정의 파고와 싸우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비참한 지 영분네는 모를 것이다. 뒷감당을 하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런 경련을 동반하는지 제 정신으로 버티기 어려워 확 까무러쳐 버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죽었다 깨어난다 해도 순태네 심정을 영분네가 알 리 없었다. 행여 순태네가 한숨이라도 쉬려고 하면 선수를 치니 영분네가 곱게 뵐 리 없었다.
“어라! 뚠태 떵님이 한뚬 띠려고 폼잡었던 거 아뉴? 영분이 말인디 용해유. 우띻게 회관으로 올 땡각을 했대유?”
영분네는 망각의 힘을 믿지 않았다. 살아오며 곤혹스럽고 도망치고 싶은 일은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법이었다. 다행히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다 하더라도 일진 사나운 날 하다 못 해 남의 입을 통해서라도 생생하게 떠오르기 마련이었으니. 거미가 제 몸에서 거미줄을 뽑아 거미집을 짓는 게 운명인 것처럼 고통의 무늬를 짜며 사는 게 영분네의 팔자인 걸 부인할 마음은 없었다. 하다 못 해 살아온 흔적들이 고스란히 퇴적층 지대를 형성해 그만큼의 하중으로 짓누른다 해도 피할 생각은 없었다. 하물며 업인 것을. 일 년 전에도 그랬다.
새벽 두 시쯤 영분네는 딸의 전화를 받았다. 영분이는 다짜고짜로 시골로 오는 중이라고 했다. 슈퍼마켓을 차리는데 돈이 없다며 하도 우는 소리를 해서 남편 몰래 돈을 해준 지가 일 년도 안 되었는데 다 들어먹고 밤도망인 게 분명했다.
“우띻게 하려고 여기로 와. 아버지 승질 잘 알면서.”
어렸을 때부터 수가 틀리면 어미를 물고늘어지는데 당할 재주가 없었다. 어미에게 분풀이라도 하듯 하지 말라는 일은 득달같이 했고 잘 살라고 당부하면 영락없이 길거리로 나앉으며 속을 긁어 놓았다. 남들은 제 힘으로 잘 살아가는데 뭐가 그렇게 꼬이는 게 많고 맺히는 게 많은지 아무리 자식이지만 자식 때문에 못살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걱정 마. 집으로 안 갈 테니. 엄마, 순태 이장이지?”
“순태는 또 왜 순태여? 이것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어지간히 좀 하셔. 그건 그렇고 우리 지금 마을회관으로 가는 중이야.”
“뭐? 히관?”
전화가 툭 끊겼다. 한동안 망연자실해 하던 영분네는 황급히 집을 나섰다. 회관에 도착한 그녀는 담벼락에 몸을 숨기면서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위안을 삼았다. 아무리 갈 데가 없어도 그렇지 친정 마을회관으로 밤도망을 올 것 같지는 않았다. 하여 전조등을 낮게 켜고 다가오는 트럭을 차마 쳐다보지 못 했던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새벽 세 시쯤 트럭은 회관마당으로 들어섰고 그녀의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화분까지 쳐 싣고 와서 회관이서 살림하려고?”
영분이는 어미가 이기죽거리건 말건 아예 날 잡어잡수 하는 얼굴로 플라스틱 화분을 내렸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고 보면 그까짓 체면이나 남의 눈은 신경 쓸 게 못 되었다. 영분네는 딸과 사위를 회관 방으로 몰아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새도록 매달고 있던 달이 무거웠던지 안마당 감나무는 가지를 쭉 찢어 버리고 나서야 홀가분하게 새벽 이슬을 머금었다. 감나무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달은 지난 봄 진했던 땡감 냄새를 풍기며 열두 폭 주름치마 같은 산등성이로 넘어갔다. 시커먼 홑청 속에 밤새 뒹굴던 하늘과 땅이 깍지 풀고 기함하며 제자리로 돌아가자 뽀얀 안개로 분칠을 한 아침은 설익은 밥내를 묻힌 채 서둘러 왔다. 영분네의 속은 딸의 전화를 받은 뒤부터 한 김 오른 시루 밑의 사기그릇처럼 달그락달그락거렸고 결국 심연의 늪에는 한차례 소용돌이가 일었다. 영분네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달이 넘어가고 해가 뜬 산등성이에 따비 밭이 하나 있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그 밭을 오르내렸지만 유난히 뜨거웠던 날은 잊을 수가 없었다.
참깨송이를 잡고 낫질을 하는데 뒤쪽에서 낯선 소리가 났다. 햇빛에 달구어진 흙덩이 부서지는 소리 비슷하기도 했고 굵은 모래가 제 몸이 무거워 쪼개지는 소리 비슷했다. 영분네는 낫을 움켜쥐고 숨을 죽였다. 발자국 소리였다. 사람이 아니라면 굶주린 산짐승이 사람 냄새를 맡고 내려온지도 모를 일이었다. 언젠가 어둠 속에서 만난 삵을 떠올리며 돌아섰지만 균형을 잡지 못 하고 쓰러졌다. 손목에 심한 통증이 느껴짐과 동시에 낫이 땅으로 떨어졌다. 영분네가 채 정신을 수습하기 전 언제 다가온 지 모를 짧고 뭉툭한 그림자가 그녀의 윗도리를 풀어헤쳤다. 참깨송이가 신 내린 대나무처럼 흔들렸다. 참깨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산 까마귀 떼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영분네는 설거지하는 시늉만 낸 뒤 손수레를 끌고 집 너머 있는 밭으로 향하는 체했다. 그래도 다행인 게 남편은 일년에 몇 번 회관에 나가지 않았다. 천성이 남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딸네가 마을회관에 있는 한 남편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는 일이고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얼굴 맞대고 살 게 할 수는 없었다. 어려서부터 밖으로 돌며 속을 무던히 썩이던 아이가 바로 영분이였다. 구박받을 짓을 골라하는 아이에게 정이 안 가는 건 당연했다. 어미가 자식을 감싸고 돌지 않는데 아비인들 어여삐 여길 리 없었다. 부녀지간이면서도 화합하지 못 하고 서로 잡아먹지 못 해 안달을 했다. 누구보다 영분이 본인이 아비와 맞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영분이가 집 놔두고 회관으로 들어갔을까.
회관문을 열자 영분이가 부석부석한 얼굴로 어미를 맞았다. 영분네는 밥을 싸오지 못 한 게 걸려 마음이 아팠다. 입으로는 원수원수 노래를 하면서도 자식인지라 물고구마만 쪄도 걸리고 비곗덩어리 붙은 고기만 보아도 딸자식이 목에 걸려 물도 넘어가지 않았다. 영분네의 쓰린 가슴을 알 리 없는 딸은 빈손으로 들어서는 어미가 야속한지 본척만척했다.
“빚쟁이들 들이닥치기 전에 어여 짐 싸라. 여비는 둘러다 주께.”
차라리 처음부터 영분이를 집으로 들였더라면 그런 분란은 일어나지 않았을는지도 몰랐다. 그랬더라면 나았을 것이다. 그날따라 손자들과 사위가 회관마당에서 알짱거려 신경이 쓰였다. 영분네가 손자들을 혼을 내 회관 안으로 들여놓고 발걸음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니나다를까 큰놈이 작은놈을 건드렸는지 작은놈이 말매미처럼 미루나무에 붙어 울고 있었다. 그냥 놔둘 리 없는 어미가 뛰어나왔고 두 아이들은 어미에게 목덜미를 잡힌 채 끌려 들어갔다. 잠시 뒤 사위가 어슬렁거리며 담배를 물고 나왔다. 딸의 얼굴이 삐쭉 나오는가 싶더니 사위에게 얼른 들어오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동네 사람들에게 국수꾸러미나 간장병을 찔러주는 걸로 보아 슈퍼에서 팔던 물건들을 펼쳐놓고 동네장사를 벌인 게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꼭두새벽부터 아낙들이나 아이들이 막대 사탕을 쭉쭉 빨며 회관마당을 오가긴 했다. 영분네는 기가 막혀 혀를 내둘렀다. 끝내 사위가 딸의 머리채를 흔드는 게 보였다. 영분네는 고개를 돌려 자기 집 마당을 확인했다. 남편이 뒷짐을 진 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딸은 성하지 않은 곳이 없으리라. 영분네가 엉거주춤 서 있는 사이 남편의 행동이 심상치 않은 게 느껴졌다. 급하게 작대기를 찾아드는 것 같더니 회관으로 향하는 지름길로 내려서는 게 아닌가. 다른 날은 회관 뒷길로 돌아왔는데 경황이 없어 회관 마당을 가로질러 온 게 탈을 불러일으킨 것 같았다.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는 남편에게서 살기가 느껴졌다. 급살맞을 피가 흐르는 집안이었다. 사는 게 힘들다고 청산가리를 타 마시고 죽은 시동생에, 싸우다 맞아 죽은 시아주버니에 하다 못 해 묵은 대추나무 밴 동토로 쓰러진 시아버지에 제명대로 살다간 사람이 없었다. 성질머리도 남 같지 않아 사위자식한테 작대기를 휘두르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더군다나 영분이는 아비 눈밖에 난 자식이었다. 회관으로 돌진하던 남편이 돌부리에 걸렸는지 논둑 아래로 굴렀다. 넘어졌으니 툭툭 털며 일어나면 그만인 걸 남편은 꿈쩍 하지 않았다.
영분네는 남편이 죽고 나자 아예 바깥걸음을 하지 않았다. 집 안에서 뱅뱅 도는 그녀를 화투판에 끌어들인 것은 순태네였고, 영분네에게 또 다른 고행의 길을 준 이도 다름아닌 순태네였다. 영분네는 그녀로 인해 일상으로부터 탈출이 가능했지만 또 다른 일상은 전라의 몸으로 매번 만신창이가 되는 기분이었다.
“아 뭐해. 몸은 여기다 두고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거 같어. 죽은 서방님 생각하는겨? 정신 차려!”
“니미, 영감은.”
뭔가 알고 있는 듯한 순태네 눈을 영분네는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띱, 이띱, 땀띱, 따띱…… 백띱이니께 백띱원띡 줘유.”
“끔 두통도 못 사는 돈으로 뻐기기는 옛다 다 가져라.”
순태네는 쩔렁거리던 잔돈을 혀짤배기 앞으로 던지며 호주머니 속에 든 것들을 방바닥에 털어놓았다. 만 원짜리 두 장과 천 원짜리 다섯 장 그리고 쓰고 남은 목욕탕 표가 다섯 장 나왔다. 순태네는 돈을 혀짤배기 손에 쥐어주고 목욕탕 표는 도로 집어넣었다. 혀짤배기 눈이 휘둥그래졌다.
“겨울 내내 잘 읃어먹고 잘 놀았네. 자 이거 가지고 곰탕 한 그릇씩 사먹고 들어와.”
“별루무 소리를 다하고 있네. 어여 집어 느.”
“내가 접때부터 사고 싶었어. 더 주고 싶어도 이게 전부일세.”
“다 주고 나면 뭐 가지고 살려고?”
“줄만 하니까 주는 거지. 받어.”
“이거면 탕뚜육 큰 거하고 짜장 곱빼기 띠킬 돈 돼는디 그것 먹어유. 흐흐. 벨일이유?”
“그러고 저러고 간이 일어나. 날이 아까 저물었어. 출근해야 할 거 아녀.”
미자네의 채근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화투판을 접고 주섬주섬 일어났다.
“올 겨울 자알들 놀았네. 화투판은 내년 겨울이나 벌릴 거니께 그때까지 다들 살어있어.건강하자는 뜻에서 낼랑은 단체로다가 뼈 주사 한 방 찔르고 오는 거 우뗘? 저이가 준 돈으로 오랜만에 뱃속 호강도 하고.”
“좋겄다. 나는 땅도 절도 읎으니 나만 놀게 생겼네. 오늘 저녁 잘들 자.”
“입 벌리지 말어. 술 냄새 풍풍 나. 저거 저러다 쬦겨나지. 내일부터는 술 멕이지 말어.”
“오늘은 내 땅이 남이 손이 넘어간 날 아니니? 넌들 술 안 먹고 배길 재주 있을 것 같어?”
“그듀. 그듀. 언녕 가유. 그 띰정 내가 알어유.”
“알긴 개떡 뭘 알어. 내 맘을 니가 우띻게 아니? 나도 몰르는디…….”
혀짤배기가 종종걸음을 쳐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녹이 슬어 쇳가루 떨어지는 소리를 끈질기게 내던 쇠대문이 겨우 빗장이 걸리는 것 같았다. 다른 날도 혀짤배기와 헤어져 대여섯 발자국을 떼어놓을 때쯤이면 들려오는 소리인데 유독 귀에 거슬리는 건 무슨 이유인지 몰라 영분네는 일부러 잔기침을 쏟아놓았다. 행여 숨통이라도 트일까 싶지만 천만에 순태네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해가 떨어진 도로 위를 걸어가는 순태네의 바지가 부풀어오르다 푹 꺼졌다. 순태네가 휘청거린다고 여기자 아랫배가 당겨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극의 강도는 더해 가는데 아무래도 참긴 틀렸다. 급한 김에 영분네는 거름더미 아래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순태네도 털바지를 내리고 앉아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마주 보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외면했다. 어디선가 찬바람이 쌩 일었다. 순태네 몸에서 이는 바람이라 생각하자 영분네는 기운이 빠졌다.
순태네 눈에 연보랏빛 꽃이 들어왔다. 흠씬 썩은 무를 쏟아버린 게 아침참이었다. 새파란 무순이 올라와 있더니 꽃대까지 품었던 모양이었다.  
“아래 토막이 썩어도 위 토막은 꽃을 맺으니 우리네보다 낫네.”
순태네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장다리꽃을 꺾어 들었다. 영분네가 머뭇거리며 어렵게 말을 떼었다.
“……미친 것만 건드린 줄 아나?”
투둑. 투둑. 낡은 실 끊어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영분네는 자신의 손바닥 끝에서 빠져나가는 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아차 싶어 다시 움켜쥐었지만 손아귀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영분네는 허망하고 난감해 다리가 후들거렸다.
순태네는 펄펄 끓는 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속이 뒤집어 질 때마다 그날 농염하게 빛나던 까만 깃털과 푸드득거리던 날갯짓 소리는 지칠 줄 모르고 귓가에서 맴돌았다. 남편이 사라진 곳을 향해 허둥지둥 올라섰을 때 똬리 튼 남녀의 몸부림 위로 난무하던 까마귀 울음소리와 깃털의 이미지는 퇴색한 기억 속에서도 걸러지지 않고 순태네를 괴롭혔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얇은 살얼음이 낀 듯 맑고 투명해서 더욱 찬기가 느껴지는 밤하늘이었다. 진저리를 친다는 게 그만 영분네를 노려보고 말았다. 그리고 그예 툭 튀어나온 말 한마디를 어쩌지 못 해 쩔쩔 매야 했다. 수습할 방법을 찾지 못 하던 순태네는 순전히 찬 기운 탓을 했다. 그것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순태 그만하면 잘 키운 건감? 맘에 드남?”
순태네는 달관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목소리는 가느다랗게 떨렸다.
“……미친 것한티 물어야지…… 왜 나한티 묻는댜?”
“뭘 미친 것한티 물어? 미친 것이 새끼 낳았나? 애를 누가 낳았는디?”
애를 누가 낳았는디……, 애를 누가 낳았는디……, 자신한테는 수천 번도 넘게 따진 말이었지만 언제나 메아리가 되어 꽂힐 뿐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이 되지 않던 물음이었다. 가슴속에 쌓아두었던 말을 풀어놓아서인지 순태네는 숨이 가빠왔다.
영분네가 얼굴을 감싸쥐었다. 핏기가 사라진 그녀의 얼굴은 흡사 미라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기어이 그녀의 입에서는 탄식인지 울음소리인지 가늠할 수 없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터무니없이 무너져 내리기는 순태네도 마찬가지였다. 걷잡을 수 없는 격랑 속에 둘은 내동댕이쳐지고 있었다.

진통이 왔다. 읍내 씨름대회가 있는 날이라 남편과 동네 사람들은 구경을 갔다. 아이들마저 학교에 가고 나자 동네는 텅텅 소리가 날 정도로 비었다. 마음속으로 남편 닮은 아이가 태어나길 얼마나 빌었던지 눈뜨면 오로지 그 생각이었다. 진통 끝에 사내아이가 태어났지만 눈 밑 검은 사마귀를 보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마침 미친 것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전에 없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방문 밖에 누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영분네의 배가 불러올 때부터 색다른 눈으로 바라보며 열 달 내내 영분네 주위를 떠나지 못 하고 서성댔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밖을 지키고 있을 것 같아 영분네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미친 것의 눈에도 아비를 쏙 빼 닮은 아이가 신기한지 아이 아비가 사는 집 쪽을 가리키며 키득거렸다. 영분네는 이를 악물었다. 통증이 또다시 왔다. 훗배앓이를 시작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허리가 두 동강 나고 배가 끊어지는 것 같더니 아래에서 시커먼 아이 머리통이 보였다. 영분네는 필사적으로 핏덩이를 잡아 뽑아 얼굴을 확인했다. 아이 아비도 닮지 않고 더더구나 남편은 닮지 않은 계집아이였다. 영분네는 몸서리를 치며 미친 것에게 사내아이를 들려주었다.

장다리꽃이 순태네 손길에 끊어져 나갔다. 그 동안 도를 닦듯 마음을 비웠건만 격한 감정에 휩싸일 때는 달려들어 얼굴이라도 집어 뜯고 머리칼이라도 한 움큼 뽑아놔야지 직성이 풀릴 것 같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라앉히고 가라앉히다 보면 잡념도 가라앉고 세상 소문도 가라앉으며 저도 모르는 사이 곰삭아 말갛게 되지 않던가. 영분네가 아니었더라면 동네에서 쫓겨나는 건 물론 칼부림을 당했을 것이다. 엎드려 절을 해도 모자랄 판에 가당치도 않은 감정이 교차하며 애써 다독여온 마음을 어지럽힐 줄이야. 다 늙어 이게 무슨 추태냐고 눈을 부릅뜨며 심호흡을 하자 그동안 마음을 닦아온 게 헛수고만은 아니었는지 그제서 보랏빛 꽃이 눈앞으로 다가오며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노여움을 삭이고 맡아보니 아까는 맡지 못 한 꽃향기가 그윽했다. 어디서 나는 걸까? 순태네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렴 장다리꽃에서 나는 향기만은 아닐 테고, 으등거린 날씨를 봐선 꽃 그림자는커녕 찬바람에 쪽쪽 소름이 돋아 어린 쑥도 웅크리고 있는데 꽃향기라니! 바람이 영분네 부스스한 머리에 휙 내려앉으며 머리카락을 흩뜨려 놓았다.
죄책감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서보지도 못 하고 살아온 영분네나, 하하 호호 웃을 때마다 면도칼로 맨 살을 긋는 기분으로 살아온 자신이나 다들 안쓰러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자 코끝이 시큰했다. 순태네는 고개를 들었다. 숱하게 많은 별이 하늘에 총총 박혀 있었다. 누가 보고 있거나 말거나 밤새도록 별을 달고도 거추장스럽다는 투정 한마디 없는 하늘을 위로하며 때로는 위로받으며 살아왔다. 이 생을 다하는 순간 가장 아름다운 빛을 발하며 사라지는 별똥별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품은 채. 되돌아보니 빼곡이 박힌 별을 상수리 털듯 도끼로 퉁 쳐 한 자루 털어올 것같이 힘이 나던 젊은 날이 엊그제 같이 서럽게 지나갔다. 흰머리가 여수처럼 난다고 우물가에 앉아 걱정하던 날도 연기처럼 날아가 버리고 남은 건 오로지 회한뿐인걸. 그녀는 세상살이 연민과 아쉬움을 끊어버리려는 듯 얼굴을 세차게 문질렀다.
“차암 곱네. 그까짓 술 한잔에 청승은 오라지게도 피네. 사는 게 별건가? 별거 아녀!”
순태네는 영분네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장다리꽃을 꽂아주었다. 누가 볼 새라 자신의 귀밑머리에도 꽃을 꽂고는 수줍게 웃었다. 그녀는 만지작거리던 목욕탕 표를 영분네 손에 꼭 쥐어주고 공장 불빛을 따라 걸었다. 순태네가 걸어가는 2차선 도로 쪽을 바라보던 영분네는 무엇에 홀린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도무지 꽃이 피어있을 리 없는데 아까부터 향기가 솔솔 퍼지더니 꽃잎이 희뜩희뜩 흩날리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고갯마루 쪽에 꽃이 덤불져 있었다. 순간 꽃덤불에 몸이라도 던졌는지 순태네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노랫소리만 바람결에 실려왔다.
아 지화자 좋네. 아니 놀지는 못 하리라. 얼씨구 좋네. 절씨구 좋네. 오늘 같이 맘 심란한 날 화투공방을 놀아볼까 정월이라 속속한 마음…… 지화자 좋네…….


박병례
1968년 충남 아산 출생
199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창작집 ꡔ쑥 캐는 불장이 딸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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