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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신작단편소설/박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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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
박 금 산
임자년 섣달 초사흘 자시. 수도 서울에서 반 삼천리 떨어진 전라남도 여수반도 언저리의 남해바다 돌산도에서 숫처녀가 아이를 낳았으니 그 아이는 세상 바람 쐬자마자 울기부터 하여 염세주의자의 시조가 된 어느 철학자도 아니었고, 태어난 후 수삼 년을 울지 않고 방실거리기만 했다 하는 어느 환락주의자들의 중시조도 아니었다. 기미년 삼일운동으로부터는 육십 갑자가 한 순회 돌지 않은 쉰세 해째 어느 날이었고 일천구백육십 년 사일구로부터는 십이지가 한 바퀴 다 돌아갈 무렵이었으니 당해년도 제정된 유신헌법이 제법 넉넉하게 자리를 잡아가던 그런 어떤 날이었다. 아이의 외조부는 바다가 잔잔한 것이 미심쩍어 역(易)을 펼치고 작명을 하다가 이 세상이 이진법으로 돌아가니 이 아이는 음 양 모두를 몸에 지니고 살게 해야겠다는 사명 아래 역에서 음효와 양효를 가리키는 문자를 짝지어 육구(六九)라 이름지었다. 이 나이 덜 찬 중늙은이는 건은 원코 형코 이코 정코, 글자에는 익었으나 문리에는 서툴러서 이름을 원해 삼만리로 지어주면 뭍을 찾는 그 인생의 행로역경이 크고 작은 파도처럼 번민 가득하다는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육구 씨는 이름에 들어 있는 최대 음과 최대 양 두 효의 대조대립처럼 무슨 일을 하든 쓴맛 단맛을 다 보아야 했다. 태어나면서 어미젖을 못 빨았으니 할미 젖은 소금 맛이었고 섣달 초사흘의 칼바람이 남해바다 정기를 담아 왔으니 육구 씨에게 세상은 그 첫 대면의 소감부터가 달콤쌉쌀한 것이어서 외로움을 느낄 시간적 여유가 없는 곳이었다.
갓 태어난 육구 씨는 눈이 두 개 콧구멍이 두 개 팔다리가 두 개 고환이 두 개였다. 입은 오로지 하나였다. 일본으로 도둑시집을 갔던 열여덟 살 친모가 스물다섯 되어 실업가의 아내로 방도했을 적에 육구 씨는 내내 형이라 부르던 사람을 삼촌이라 개칭했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도 가족 내적 질서에 맞게 제대로 호조 호조모 했다. 우리 태연지사 육구 씨에게 친모 찾은 맛은 조청 맛이었으나 외조부를 아버지라 부르며 보내온 그간의 과거를 잃은 맛은 염분 맛이었다. 친모가 다시 도일했을 때에 육구 씨는 따라가겠소, 나를 죽이고 가시오, 모자지간 정한 인연 언제든 다시 만납시다,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작별이란 것에도 단맛 쓴맛이 공히 있었다. 여름이면 바람 잘 들어가라고 고무줄이 늘어지고 겨울이면 사타구니 살이 오그라들어 빤스가 헐렁해지는, 그렇지만 치마 입기를 고집하여 거깃살 보여주길 부끄러워 않던 정자가 옆집에 살고 있었다. 도덕은 변했어도 엄연한 것은 법이었다. 호적정리 하기 전에 친모가 떠났으니 율림초등학교 입학 당시 육구 씨의 아버지는 외조부였고 외할머니는 어머니였다. 선과 악, 존재와 허무, 나와 너, 흑과 백, 섬과 뭍, 이진법으로 돌아가는 세상인심 다 그렇듯 육구 씨도 한 때는 처녀 선생님을 사랑한 적도 있었다. 열세 살 때 털이 났고 다음 해에는 젖꼭지가 티 나게 굵어졌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등껍질이 네 번 벗겨지도록 바다에서 노닐다가 고막이 바닷물을 소화시키지 못 하여 중이염에 걸릴 뻔한 일만 빼면 육구 씨의 삶은 태연자약 무사안일이었다. 그러나 어찌하나. 열일곱 살, 정자가 애를 배어 둘 다 퇴학을 맞았을 때 육구 씨는 세상이 온통 쓴맛 덩어리였다. 내 애기를 어찌하며 내 정자를 어찌할까. 쓴맛을 못 참아서 한 잔 쭉 들이킨 것이 그만 단맛을 제대로 배우는 길이었다. 풀어놓은 이강막 그물이 태풍에 쓸려가도, 머구리가 문어단지를 걷어가도, 육구 씨는 염세하지 않았다. 소주가 떨어지면 청주를 병째 들이켰다.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 요즘 시대처럼 슬프로 안타깝고 부질없는 일은 아니었다. 희망을 품으면 또 다른 희망이 찾아오던 시대였으니 애기 떼러 여수 갔던 정자가 백 오십 일 닷 달 지나 딸을 안고 돌아왔고, 그리 합시다, 그게 좋지요, 두 집안의 의견이 상사하여 육구 씨와 정자 씨는 백년 가약 혼인을 맺었다. 육구 씨의 삶은 이진법이 척척 들어맞아 갔다. 왼팔이 가려우면 오른손으로 긁었고 등짝이 가려우면 각시한테 등을 댔다. 이마에 돋는 여드름은 왼손 오른손 합작하여 말끔 짜내면 그뿐이었다. 어머니도 둘이었고 아버지도 둘이었다. 농번기엔 농사짓고 어번기엔 그물끌고, 육구 씨에게 또다시 천하는 태평했다. 그런데, 못 할 짓이, 육구 씨는 도무지 하나를 참지 못 하겠던 것이다. 딸년 하나가 마당에서 그물바늘 입에 물고 노닥거리는 양을 보니 자기가 저 유아한테 천하의 몹쓸 고독을 선사한 장본인이란 생각이 들어서, 그리하여 그날 밤,
“야, 우리 아들 하나 낳자.”
했다. 정자 씨는 이제방금 젖퉁이에 담배냄새 묻혀 놓고 왜 또 지분거리냐고 허벅지를 오무렸다. 육구 씨는 다정하게 정자 씨의 손을 잡고,
“아들 하나 낳자니까.”
했다. 육구 씨는 정자 씨 귀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정자 씨가 여수 모 산부인과에서 아들을 순산한 것은 이듬해 여름, 땡볕이 찬란하던 날이다.
아들 성복이가 젖을 뗄 무렵까지 육구 씨는 근심의 종자를 환영할 만한 여가가 없었다. 딸년이 이마를 깨면 오만 원을 더 벌어야 했고 각시가 아프다고 아우성치면 두 손 곱게 모아 넘쳐 나는 젖을 짜주어야 했다.
육구 씨가 제3차 산업에 발을 딛은 것은 숭어 살이 천도복숭아 과육처럼 탱글하던 초겨울이다. 사나이가 세상에 태어나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할 수 있겠나. 고기를 잡았으면 회를 칠 줄 알아야지. 육구 씨는 된장에다 회를 날라주고 풋고추 박아주고 깻잎 썰어 고명 얹고 푹푹 끓여 매운탕 내서 한 접시에 이만 원을 받아먹는 근희네가 부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웃이라고 싸게 쳐서 숭어를 이천 원에 외상으로 건네주면 근희가 저녁 먹기 전에 물 안 묻은 돈을 들고 왔다 해서 세상이 질투거리로 변한 것은 아니었다. 숭어 열 마리가 회 한 접시 값에 못미처도 숭어 값 올릴 염을 한 차례도 내지 않던 육구 씨였다. 사내란 하나에 집착해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육구 씨는 두 돌멩이로 두 마리 새를 맞히고 싶었다.
그렇듯이 생각 많은 육구 씨에게 숙고를 완료케 한 것은 근희의 파자마바람이었다. 비닐옷을 걸쳐 입고 장화 속에 바짓단을 집어넣고 대문을 나섰는데 어제 저녁 술 취했던 근희가 파자마바람으로 나와 인사를 하던 것이다. 육구 씨는 근희한테 좋은 말로 “어이, 상팔자네이?” 하면서 친근한 인사를 하였다. 속마음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가 잡은 고기를 내가 수족관에 진열하고 내 손으로 회를 썰면 너보다 못 하겠냐. 가격경쟁 품질경쟁 어느 싸움에서 내가 지겠나. 육구 씨는 그물낫을 굳게 잡고 세상을 반쪽 낼 기세로 빈 낫질을 거푸 했다.
매일 맞는 일출이었지만 제3차 산업에 종사키로 마음을 먹은 육구 씨에겐 그 날의 태양이 유별났다. 뜨는 해의 솟는 기운이 허리 밑에서 감지되었다. 육구 씨는 배를 세우고 키를 놓았다. 키를 놓고 불쑥 배를 내밀면서 정자 씨를 돌게 했다. 육구 씨는 각시 몸빼바지를 내려놓고 멜빵바지 끈을 풀고 입술에는 침 바르고 단전에다 힘을 주고 단 한번에 입문 했다. 어구메 아아 어구메 아아 정자 씨의 앙다문 입에서 터지는 선상탄이 짤막하고 간결했다. 시동 꺼진 작은 배는 큰 우물 속 두레박처럼 좌삼삼 우삼삼 속절없이 뒤웅거렸다. 엔간히 춥다, 그쟈? 육구 씨는 정자 씨를 어르면서 콧물을 닦아주었다.
날이 추워 그랬던지 배가 고파 그랬던지 하여간에 육구 씨는 손목 힘이 풀려서 이강막 벼릿줄을 그만 놓쳐버리고 말았다. 육구 씨가 벼릿줄을 놓치는 바람에 초겨울 바닷물로 원치 않은 세수를 했던 정자 씨는 줄을 놓고 나동그라졌다. 뱃전까지 올라왔던 그물에는 숭어가 항아리 속 소금처럼 희고 곱고 푸짐했다. 육구 씨는 잠간 보았던 그 숭어떼를 생각하며 기운을 차려 보았다. 밥은 밥이고 뜨물은 뜨물이었다. 힘을 주면 옴팡지게 직선으로 곧아야 할 무릎이 바깥쪽으로 휙 꺾여버리니 그물이 다시 해저 심연으로 골아 떨어졌던 건 불시가견이다.
“야, 우리도 사시미 장사 허까?”
“돈이 어딨나.”
정자 씨가 말을 하자 육구 씨는 오른손에 벼릿줄을 감아쥐고 오른발을 배 난간에 걸쳤다.
“우리 고기 잡아서 남 존 일만 시키잖아. 향일암에 길 뚫으면 관광객이 나래비로 올 것 아닌가. 우리도 횟집 하나 차리자. 응?”
“숭어가 고래새끼만 허든디, 빨리 줄이나 잡어.”
정자 씨가 재촉했다. 육구 씨는 벼릿줄을 맞잡았다. 니미. 해는 왜 그 지랄로 곱게 떴드랴? 괜한 대자연한테 시비를 걸어보는 것이었다.
“우리 횟집, 응?”
“간판 걸고, 보일러 깔고, 테이블 들이고, 그럴 돈이 어디 있냐니깐?”
“여름에 차리믄 되잖여. 와상틀 펴놓고 상 몇 개 사들이고 그릇 몇 짝 사면 끝나잖여.”
정자 씨는 유구무언 함구했다.
“여름 되믄 생각해 보자구…….”
정자 씨는 져주는 척 육구 씨를 달래어서 그물을 끌어올렸다. 그물 비우는 데에만 삼십 분이 걸렸다. 육구 씨는 잔챙이 여남은 마리를 미끼로 남겨두고 다시 그물을 던졌다. 육구 씨는 이 김에 약조문서라도 받아놓고 싶었지만 제깟게 안 하면 어쩔 것이여? 생각하며 돌아오는 길에 한 번 더 각시를 뒤에서 안았다. 인생이 이진법이니 작업도 짝수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육구 씨였다.
“여름철에 회장사가 어디 될 말이냐?‘
육구 씨가 아침을 뜨면서 말했다.
“거 봐. 그냥 생긴대로 살자구. 잘 생각했어. 횟집은 뭔 놈의 횟집.”
정자 씨는 육구 씨가 횟집을 포기한 것으로 듣고 엷게 웃었다. 육구 씨는 뜸을 들이면서 말을 아꼈다.
“겨울에 회 판 돈으로 여름에 놀고 먹는 팔자가 횟집 사장들 팔잔겨.”
말을 해 놓고, 육구 씨는 말아놓은 밥에 숟갈을 박았다. 육구 씨는 정자 씨가 입안엣 것 씹어 넘기기를 기다렸다. 정자 씨가 입안엣 것을 꿀꺽하고 다시 수저 가득 삽질해서 입안으로 떠 넣자 육구 씨는 참다 못 해 속엣말을 꺼냈다.
“지금이 피크여 잉? 요새 저 횟집들 주차장에 차 없는 날 봤냐? 여름까지 기다릴 것 없이…….”
정자 씨는 입안엣 것을 오물거리다가 휙 나가버렸다. 육구 씨는 밭뙈기를 처분하고 각시 통장 털 궁리를 하느라 바빴다.
각시가 고집 부리면 남편의 기가 죽고 남편이 고집 부리면 자식이 하나 는다던가. 육구 씨는 그 아침의 통보를 끝으로 횟집 장비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수족관, 산소통은 기본이었다. 바닷물을 당기려니 양수기가 필요했다. 간판 거는 데 백만 원, 남새밭을 주차장으로 꾸미는 데 오십만 원. 커텐으로 객실 창을 꾸미고 보일러를 새로 깔았다. 객실에서 주방으로 연결되는 인터폰도 매달았다. 세무서에 가서 사업자 등록하랴 중고차 매장에 가서 손님 실어 나를 봉고차 알아보랴 남들이 보기에는 도저히 봄 되기 전에 문을 열지 못 할 것 같았던 육구 횟집은 한 달 열흘만에 신장개업 플래그카드를 걸었다. 1997년 육구 씨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효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성복이가 마당에서 공을 찼다.
서방각시 사이가 좋아 육구 횟집은 만원이었다. 남편이 회를 써니 육질이 탐스러웠고 각시가 쌈장을 내니 장맛이 일품이었다. 여름철 비브리오만 아니면 일 년 열두 달 돈 마를 날이 없었다. 육구 씨는 아량이 좋아 비브리오도 달게 맞았다. 쓴맛 있으면 단맛 있고 단맛 있으면 쓴맛 있다. 이 때 아니면 언제 쉬랴. 육구 씨는 가족들과 대동하여 나로도로 피서를, 지리산으로 등산을, 지겨우면 언제든 다시 던지겠다 생각하고 있는 통발을 손질했다. 여름 가면 가을 온다. 그럼 그렇지. 가을이 오자 비브리오는 태평양 건너로 사라졌다. 육구 씨는 회 접시에 무도 썰어 깔고 파슬리도 악세사리로 넣고 모양새를 제법 갖추었다. 군청에서 일출제를 열었던 새해 벽두에 하늘에선 비가 내렸고 땅에서는 돈다발이 걸리적거렸다. 육구 씨는 허리 아프도록 돈을 주웠다.
그렇다고 육구 횟집이 독과점을 했다거나 카르텔을 형성한 것은 아니었다. 향일암 올라가는 길에 아스팔트가 깔리면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삼팔선만 없으면 함경도 황해도 사람들까지 몰릴 판이었다. 서울 갔던 장남들이 사업 접고 내려와서 요식업에 데뷔했으니 해안도로 곳곳마다 건물들이 우뚝 솟았다. 육구 씨는 건물들이 솟고 있는 것이 꺼림칙했으나 그 전에 선수를 친 것이 대단 자랑이었다.
어장 본 고기만으로는 부족하여 양식 고기를 쓰다보니 육구 씨는 꾀가 나서 아침마다 출장하던 어장밭에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생각날 때 가끔, 답답할 때 바람 쐬러 가는 식으로 찾아가면서 바다와 점점 인연을 멀리 했다. 어떻게든 현대사회의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자동화 시스템에 가담하지 않고서야 배겨낼 수 없었던 육구 씨였다. 그러나, 양식물을 아무리 많이 써도 회의 참맛을 아는 육구 씨로서는 단골들에게 서비스 정신 발휘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우럭 광어 도다리 놀래미 뽈락 그것들을 죄다 섞어놓은 수족관에서 육구 씨는 어느 놈이 제 그물에 걸려온 것인지를 잘 알았다. 소나타면 소나타 그랜저면 그랜저 그것들이 공장에서 빠져나오니 다 똑같이 생기기는 하였지만 자기 차를 넘버 보지 않고 알아차리는 차 주인들처럼 육구 씨는 배추밭에서 무 싹 가리는 것처럼 자연산을 잘 알았다. 육구 씨는 여수 경찰서에서 왔다는 누구한테, 돌산 읍청에서 왔다는 누구한테, 산돌교회 장로들에게 선심을 썼다. 간혹 농어를 잡으라는 손님이 오면 육구 씨는 쾌재를 불렀다. 회를 모양 있게 썰어 내고, 모양 내느라 버렸던 뱃살을 당신께서 얌얌 하셨던 것이다. 생선 뱃살은 돼지 한 마리에 반 움큼 나오는 갈매기살이었고 물개한테 하나 있는 해구신이었다. 새벽마다 나가던 어장일에 게을러져서 가뜩이나 근력이 남아도는데 그 생선 뱃살까지 챙겨 먹었으니 육구 씨는 영점 일 톤짜리 절구통이라도 들었다 놨다 해야 배가 고플 지경에 임박했다. 손님은 피곤하게 늘어나고 돈 낙엽을 밟기에도 무료하고 따분했다.
뜻하지 않은 것이 외로움이었다. 돈 주고 팔 수도 없는 것이 외로움이었다. 주방에 사람을 한 사람 더 들이고 나니 외로움은 하릴없이 장성했다. 배가 부르고 일이 해거워져서 그러는 것이라고, 육구 씨는 배에 로울러를 달고 어장일을 다시 했다. 각시가 손님 맞을 채비를 하느라 부엌에서 아침을 보낼 때 육구 씨는 혼자 어장을 보러 다녔다. 그런데, 로울러에 착착 감겨져 오는 그물 줄 외가닥을 보고 있자면 육구 씨는 몸이 허전해서 자신은 세상에 둘도 없는 호로자식이라는 생각에 문득문득 눈물이 나곤 했다. 돈을 제법 벌고 나니, 내일의 걱정보다는 어제의 그리움이 잔 발질로 푹푹 가슴팍을 쳐오던 것이다. 횟집이 번창하던 와중 조부모가 한날한시에 사이좋게 돌아갔다. 육구 씨는 이제 완연한 호로자식이었다. 남들 다 가는 군대에도 못 가고, 고등학교 졸업장도 못 타고, 나이 어려 애비가 되어 애비 자식 짝을 갖췄는데, 내 아버진 누구인지, 새끼들의 할아버지 이름은 무엇인지, 육구 씨는 바다로 나가기가 싫었다. 바다에만 나가면 그 외로움이 퍼렇게 뺨을 때리면서 돋아나는 것이었다. 육구 씨는 자기만 홀로 외떨어졌다는 느낌에 젖어 세상만사 갖가지가 곁가지 없는 장대처럼만 보였다. 바다에 다녀온 날은 회도리에서 껍질 벗겨져 나오는 생선도 외로워 보였다. 아가미에 칼을 넣어 피를 빼고 등을 긁어 비늘을 벗겨내고 회도리에 넣기까지는 심상했으나, 회도리에서 껍질 벗겨져 나오는 그 생선을 보고 있자면 육구 씨는 딱 그 껍질 잃은 생선 짝으로 신세가 처량해지는 것을 느꼈다. 열한 시에 간판 불 끄고 수족관을 청소하고 마당을 쓸고 나면 열두 시가 다 되었다. 침실에선 각시가 두 자식을 끼고 잤다. 육구 씨가 허전한 두 팔로 두 새끼를 껴안으면 어찌 되었다고 자식들은 빽빽거리며 싫어했다.
음이 있고 양이 있고 내용 있고 형식 있고 남자 있고 여자 있고 돈이 있고 외로움이 있고 각시 있고 첩이 있고. 불알도 두 쪽이고 젖도 두 덩인디 각시가 둘이면 어뗘? 영과 일이 기초하여 온 세상을 온놈으로 묶어 가는 디지털의 전성시대. 육구 씨는 각시 하나 바라보고 밤을 기다릴 수 없었다. 치마 입은 여편네들이 꼰 다리를 바꾸느라 허벅지를 드러낼 때 육구 씨는 그 방에다 매취순을 서비스했다. 육구 씨가 쟁반에다 회를 담아 들고 가면 은근슬쩍 소주잔을 보는 사람 없을 때만 침 묻혀서 건네주던 여수 사는 여자와는 대리 운전도 왕왕 하는 기본기 충실한 사이였다. 이 여자가 그랜저를 타고 회를 드시러 오셨을 적에, 육구 씨는 객실 문을 포개 걸고 방바닥에 잡아 눕혀 다리를 벌리게 하고 싶었지만 과욕은 금물이고 남녀 사이 속도전은 허망하게 끝나므로 가슴속의 인두를 은근하게 달구어서 옳게 좋게 지져주마 속으로 다짐했다.
“어쩌, 생각 있어요?”
“뭔 생각?”
“세상에서 제일 맛난 회가 어떤 횐 줄 아셔요? 해저 백 미터에서 작살로 잡은 고기가 최고라네요. 고기는 피를 빼야 맛이니께. 그 백 미터 밑에서 작살로 뚫으면 그 수압이 어디로 가겄어요. 그 수압에 피가 쫘악 빠져버리는 거라. 수압이 어찌나 센지 전동릴로 끌어올리면 물 바깥에 나오자 마자 고기 배창시가 터져버린다 안 그러요.”
“그래서?”
“우리 외롭은 사람끼리, 잉? 배창시 터질 때까지는 안 헐 텐께, 묵직허니 수압 한 번 느껴 볼 생각, 어쩌, 있어요?”
그 여자와는 배창시 터지게끔 그짓만 주고받았다. 열 번을 넘어가니 여관에 들어가면 생수부터 들이켜졌다. 사랑이란 애시당초 남녀간의 누군가가 짝이 없어야 제격이다. 각시 있는 육구 씨와 서방 있는 그 여자는 모실 제사 챙길 기념일 수다하고 빈번했다. 여자는 횟집에 발을 끊고 휴대폰 번호를 갈아치웠다. 육구 씨는 기분 좋게 굿바이 선언했다.
시절이 수상했다. 화무십일홍이고 신혼재미도 일 년 넘게는 깨를 낳지 못 한다. 새끼를 낳아야 하고 벌 나비를 불러야 한다. 현찰 마르는 월말, 연말도 아니었는데 뜨내기손님 서너 테이블 받으면 하루 장사가 끝이었다. 향일암에 올라가는 관광버스 기사들한테 담뱃값을 쥐어 줘도 사람들은 바닷가로 내려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향일암 구경을 끝내고 차를 타고 돌아갔다. 그네들이 널찍하게 지어놓은 주차장에서 도시락을 까먹을 때, 육구 씨를 비롯한 청년회원들의 상한 비위는 멍게처럼 향기로워, 에이 시파르, 욕이 되어 길게 울려갔다. 바닷가를 가로막은 회 백화점만 흥청거렸다. 뭣이든 대형으로 쌈을 싸야 운수까지 대통하는 세상이었다. 횟집 차린 지 삼 년만에 세상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육구 씨도 대형으로 사고를 쳐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던 것이다.
“나 사업 하나 헐란다.”
“무슨?”
“뭐긴 뭐여. 회 장사지.”
“허고 있잖아.”
정자 씨는 설거지 감에서 물수건을 골라 빼며 육구 씨를 거들떠도 안 보았다.
“큰 도시서는 진작에 회 포장 장사가 끝발 붙었다드만. 횟집 오던 손님들이 포장해 가서 집에서 즐기는 세상이라니깐. 이 장사도 인자는 글렀어. 시내로 가야 혀.”
“무슨 횟집을 또 연다고 그래. 하나만 해. 하나만. 요즘 손님 끊어지는 거 안 보여?”
“그러니까 멍청헌 것아, 사람들이 지들 집 가까운 데서 포장해 간다니깐? 우리집 단골들이 포장주문 하는 거 보도 못 했어?”
“하나만 허라니까.”
정자 씨는 육구 씨의 기로난(岐路難)에 종을 쳤다. 하지만, 대기만성 대형무형 대음희성, 꿈이 많은 육구 씨는 난공불락이었다. 돈을 벌어 고향에다 호텔 지을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스카이라운지에 횟집을 시설하고, 자기 집에서 밥 먹은 손님은 자기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가게 하는, 이른바 원스탑 시스템이 육구 씨의 생각에서 터를 잡은 지 오래였다.
육구 씨는 코스코아 마트 지하매장의 회 코너에 입찰해 놓고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호텔 자리로 점찍어 둔 동백골로 산책을 나갔다. 여관비 아끼는 남녀들이 차 안에서 육십구자 맴을 돌며 캉캉거리기 일쑤였다. 육구 씨는 명당이라고 박수를 쳤다. 담뱃불을 조심하며 그네들을 구경했다. 영락없는 호텔 자리였다. 육구 씨는 쇼바가 나가도록 차를 혹대하는 장래의 호텔 손님들을 바라보다 전에 없는 자가발전을 감행하다, 그래도 풀리지 않으면 트럭에 시동을 걸고 돌산대교를 건너질러 봉산동 포장마차로 내달렸다.
“내가 시방 서른다섯인께 자네보담은 많겄지야?”
“나는 용띤디…….”
“나는 쥐띠네.”
“어머, 서른다섯이 왜 쥐새끼래?”
육구 씨는 십이지를 따지다가 나이 세기 막막하여, 자네 아버지는 뭣 허던 사람이랴? 호구조사를 실시했다. 남녀간의 나이 차는 거웃 숫자 나름이다. 이천 년 춘삼월 현재 육구 씨의 만 나이는 이십칠 점 삼 세였다. 딸이 있고 아들이 있어 배가 둥실 나왔으니 육구 씨의 액면 나이는 서른다섯에 바짝 미쳤다. 용띠 여자는 육구 씨보다 나이가 열 살이나 위였다. 그러나, 애가 없고 남편 없어서 여자는 화장 지우고도 서른 서넛으로 고왔다. 자네 아버지는 뭣허던 사람이랴? 육구 씨가 묻는 말에 여자는,
“내가 용띤 줄 알았지? 나도 몰러.”
했다. 육구 씨는 새삼스레 죽은 외조부가 생각났다.
“나는 아버지가 둘이여.”
“나는 아버지가 일백구십여덟 명이네.”
“지랄허네. 세상 남자가 다 니 서방이고 나만이는 다 니 애비냐?”
“병신. 아버지 둘인 것이 뭐 자랑이여?”
육구 씨는 어젯밤에 썰어 놓은 생선회를 초장 없이 씹는 맛이었다. 하긴, 자랑은 아니었다. 육구 씨는 자기가 왜 그렇게 외로운지, 외로운데 마음은 왜 그렇게 편안한지 알 수가 없었다. 육구 씨가 마음이 너무 편안하여 말을 하지 않으니까 여자가 육구 씨의 내력을 물었다.
“엄마가 재혼했어?”
“그리여.”
그리하여 밤마다 술자리는 깊어졌다. 코스코아 마트 매장관리부장하고 술을 마신 날도 끝차는 포장마차였다.
“어쩌, 생각 있어?”
“데리고 살라믄 그리 허소.”
“참말? 참말?”
“오빠 동생 형제지간 맺을라면 꿈을 꾸지 말 것이고, 긍께, 그거 설 때만 찾을라면 돈 백만 원 미리 주고.”
“앗따. 선수금이 너무 세다. 반만 깎어.”
“그랴, 오십만 원. 미리 내.”
육구 씨는 오십만 원 선세(先貰) 치를 돈이 없어서 술값만 이만 원 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순 씨의 입에서,
“외로워.”
얼치도 당치도 않을 말이 나왔다. 육구 씨는 이 여인이 이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참아왔는지, 지금 이 순간 얼마나 수줍은지 알지를 못 하여서, 이 지집이 춘향이랴?, 웃으면서 밥공기만한 젖에다가 입을 함뽁 맞추었다. 허리 밑에 손을 넣고 발광이었다. 불알도 두 쪽이고 젖도 두 덩인디 각시가 둘이면 어뗘? 육구 씨는 미순 씨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밤마다 포장마차로 마실을 나댕겼다. 밤이 짧았으니 외로움이 싹틀 시간이 어디 있었겠는가. 육구 씨의 사생활은 날로날로 화려해졌다. 코스코아마트 회 코너를 따고 나니 미순 씨의 외로움도 싹수없이 말라갔다.
“우리 가게에 와서 주방 일 할텨?”
“느그 각시랑 둘이서?”
“지랄 말고. 할 텨 어쩔 텨?”
“야 이 미친놈아, 정신 챙기고 양심 닦어.”
“횟집을 하나 더 연다니깐 그래. 대형으로다가.”
“나는 포장마차가 좋아.”
“넘의 사람 쓰면 뭐허냐. 주방장 시다발이나 해주면 돼. 어쩌?”
육구 씨는 사람 하나 쓰는 것부터가 신경에 걸려 술도 넘어가지 않았다. 횟집을 열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시리 일이 많았다. 간판, 수족관, 진열대, 물건 파는 장비들은 마트측에서 해결해 주었다. 도장 찍을 자리가 넘쳐났고 집체교육이다 개인교육이다 배우라는 매너가 무수했다. 계약한 지 사 개월 만에 코스코아 마트는 떠들썩하게 개장했다. 유명 백화점 하나 없는 여수여천지역에서 초대형 마트가 들어선 것은 처음이었다. 설 대목을 목전에 둔, 설 한 달 전이었다. 육구 씨에게 서운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자기 가게에 육구 횟집 간판을 걸지 못 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냥 즉석 회 코너였다. 코스코아 마트 식품매장 즉석 회 코너 대표 김육구. 명함도 그랬다.
정자 씨는 이번에도 뒤통수를 맞고 남편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돈을 번다는 사람이 매일매일 백만 원씩을 통장에서 빼내가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임대료가 천에 백이십이라는데, 그 천만 원도 보증금처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시불로 내면 일 년 어치로 끝이라는데, 달마다 백이십만 원을 넣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건 장사해서 남는 이문으로 해결한다고 치자, 헌데 이게 왜 매일 백만 원씩을 통장에서 빼가냔 말이다. 이 인간이 사업한다고 명함 파기 시작하면서 밤에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진 것도 속을 부스럼 나게 긁어댔다. 통장 잔고가 일백만 원 대로 떨어지자 더 이상은 참아줄 수 없었다.
“여보, 통장이 왜 이래?”
“왜?”
“장사한다면서 돈은 왜 안 들고 오고, 빼가기만 해? 통장 다른 것 있으면 좀 보여줘 봐.”
“멍청헌 것. 마트는 그런 것이 아니여. 한 달 지나면 통장으로 자동 입금 돼.”
“그럼 한 달 동안은 계속 투자만 해? 고기값은 어떡하구 포장 도시락 값은 어떡하구?”
“투자 없이 돈이 오냐? 하루에 백만 원어치 들인 고기가 없어서 못 판다.”
“그런가?”
정자 씨는 그런 놈의 시장이 어디 있고 망할 놈의 사장이 어디 있냐고 남편을 타박하고 싶었으나 애초에 횟집 열던 시절이 생각나서 남편을 믿기로 했다. 육구 씨가 멋모르고 입문한 대형마트의 유통체제가 그랬다. 소매상이 스티커로 전표를 찍어주면 계산대에서 일괄적으로 계산을 하고, 마트측에서 한 달치를 결산하여 수수료를 이십 프로 떼어내고, 나머지 이윤을 점포 입주자들 계좌에 송금하는 꼴이었다. 그러니까 육구 씨는 정자 씨의 통장 잔고가 영 원 되는 날을 타겟 삼고 회를 성심성의껏 포장했던 것이다. 설 연휴가 끝나면…… 하루 이백씩을 기준 잡고…… 적어도 오륙천이다. 그 돈에서 주방장 월급 이백만 원과 재료값, 수수료를 제하면 못 해도 삼천. 촌에서 뼈꼬시 팔아 일 년 동안 모을 돈을 한 달만에 낚아 올리다니. 허허. 육구 씨는 세세한 사업의 일정까지 각시한테 고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았다. 육구 씨는 쓴맛이 묵어야 단맛이 우렁차다는 말을 끝으로 정자 씨 통장을 말끔하게 비웠다. 통장을 비우고도 설 대목 물건 대기가 빠듯했다.
결제일이 다가왔다. 설 연휴의 끝날이었다. 육구 횟집에 드는 손님은 드물어도 마트 지하에서 회를 포장해 가는 사람들은 줄을 섰다. 아침에 백오십만 원어치 사들인 횟감이 여덟 시에 동났다. 육구 씨는 주방장에게 특별 보너스로 이십만 원을 주고 주방장을 퇴근 시켰다.
설 연휴라지만 육구 씨는 연휴 맞아 찾아온 깨댕이 친구들과 포카 한 판 치지 못 했다. 하기사, 느그들은 대학생이고 회사원이고 포크레인 기사고, 자식 없는 빈 몸이다. 나는 부양 해야할 가족 아양 받아야 할 미순이가 겹겹으로 쌓여 있다. 육구 씨는 어차피 한 물에서 놀지 못 할 상대라고 자기를 추켜세워 보았다. 코스코아 마트는 연중무휴 기대 이상이었다.
웬일인지 주방장이 포장해 놓고 간 모듬회 한 접시가 팔리지 않았다. 이거 싱싱해요? 사람들은 묻기만 하고 냉큼 집지를 않았다. 니미. 뭔 의심이 저리 많대. 육구 씨는 사람들 간사한 것에 혀를 찼다. 육구 씨는 정육점에서 마이크를 빌렸다.
“어이, 마이크 좀 빌려주소.”
정육점 마이크맨은 생 닭 삼백 마리에 곰팡이가 슬 지경이라고 육구 씨한테 하소연했다. 육구 씨는 사정 봐주지 않고 호탕하게 광고를 내보냈다.
“오늘도 저희 회코너를 찾아주신 고객 여러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자아, 다이어트에 좋은, 여기 이 모듬 사시미가 오천 원. 이만오천 원에 판매하던 모듬 사시미가 오천 원. 마지막 하나 남은 모듬 사시미가 오천 원입니다. 얼라, 벌써 저 아줌니 오시네. 자아, 오늘 회는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즐거운 쇼핑 되십시오.”
반짝 세일은 그야말로 반짝 순간에 끝이 났다. 육구 씨의 파격적인 세일은 고객뿐 아니라 야채 코너 스티커 아줌마들까지 동동거리게 할 단 꿀이었다. 육구 씨는 남한테 꿀을 주고 단 맛은 자기가 느꼈다. 이만오천 원짜리 모듬회를 오천 원에 팔고 나니 적나라한 파장이었다. 육구 씨는 빈 수족관을 들여다보다가 자제력을 잃고 퇴근을 감행해 버렸다. 직원 출입구로 마악 나서려는데 매니저가,
“사장님, 지금 가시면 어떡헙니까?”
“팔 횟감이 없는디…….”
“그러시면 물건을 새로 대다가 파셔야지요.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는데.”
“오늘은 그리 됐습니다.”
“매장 닫는 시간까지는 자리를 지켜야 된다고 했잖아요.”
이 자식한테 만원 한 장 쥐어주고 조용히 나가? 육구 씨는 배알이 틀려서 큼기침을 하고 말았다. 자기는 사장이고 이 자식은 직원이었다. 직원놈이 사장을 다스려? 육구 씨는 이놈 괘씸한 놈, 바라만 보았다. 육구 씨 눈빛이 사나워지자 매니저는 육구 씨 옆에 서 있는 여자를 보면서 말했다.
“직원을 남겨두고 가시든지요. 다 퇴근해 버리면 좀 곤란한데.”
“아 이 사람아. 팔 물건이 없는디 직원은 둬서 뭣에 써?”
육구 씨는 철저하게 사원 중심의 경영 마인드를 소지한 양심 있는 사장이었다.
파리가 대든다고 똥덤버지 하나가 통째로 없어질 리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매장 관리요원들이 모여들었다. 대부분은 주먹께나 쓴다 하는 덩치 좋은 사내들이었다. 육구 씨는 매장으로 돌아와 버렸다.
“형님. 어찌 오요?”
“사장이 사장 맘대로 못 허니 이 짓거리도 못 해 묵겄다.”
“마트가 다 그러지요. 천상 열 시까지는 잡혀 있어야 것구만.”
대형 할인마트 오픈 세레모니를 전담하는 동생이었다. 나이는 육구 씨보다 두 살 위였고 마트 경력도 오 년이나 묵은 베테랑이었다. 나온 배와 얼굴 근육으로 육구 씨는 첫인사에서 대번에 형님이 되셨던 것이다.
육구 씨는 정육점에서 삼겹살을 반 근 얻었다. 손님들이 오면 횟감이 떨어졌다고 속절없는 사죄를 고하느라 부끄럽고 자랑스러웠다. 육구 씨는 가스렌지에서 삼겹살을 구워 회 도시락에 담았다.
“자기. 그냥 모르게 나가면 안 돼? 손님들 나가는 문으로?”
미순 씨는 스커트를 두 손으로 여미면서 말했다.
“나중에 법 안 지켰다고 결제 안 해주면 어쩌냐.”
“설마 결제를 안 해주겠어? 들인 돈이 얼만데.”
“꼬투리 잡혀 좋을 일 있겠냐?”
“이게 뭐야 진짜. 설에 옴팡 일만 하고. 오랜만에 정장 입고 나왔더니 주방에 앉아서 소주나 마시고……. 오동도 가기로 했잖아.”
“설에 니가 일을 안 하면? 갈 집이나 있어?”
“빨리 나가자. 어떻게 좀 해 봐.”
“호텔 지으면 니한테 지배인 자리 줄게.”
“호텔 지배인이고 뭐고 포장마차나 다시 했으면 좋겠다. 돈도 손에 안 잡히고, 자유시간도 없고.”
“마트가 원래 그런 것이라니까. 오늘만 참아. 내일이잖아. 결제 나오면 니한테 빚진 돈 배로 갚는다.”
미순 씨는 정장 백을 열고 콤팩트를 꺼내 눈화장을 고치면서 말했다.
“오늘 나랑 같이 있는 거지?”
육구 씨는 대답을 미루고 미순 씨 잔에 소주를 채웠다.
“야, 그래도 설인데…….”
말꼬리가 길었다.
“설이니까 그렇지. 설인데 나 혼자 있으라고? 설 당일은 지났잖아. 어제 집에 갔으니까 오늘은.”
미순 씨는 시계 유리를 닦으며 육구 씨를 졸랐다. 결국은 어제처럼 열 시였다. 코스코아 마트의 엔딩 뮤직이 설대목의 호황을 장식할 무렵 육구 씨는 미순 씨 손을 잡고 직원 출입구로 당당하게 나섰다. 물건을 많이 팔았으니 연시(年始)의 사랑놀음도 무궁화 달린 호텔에서 치르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다. 각시도 두 명, 횟집도 두 개. 내일은 결제일. 연휴 끝나 은행이 문을 열면 만 원 내고 새로 만든 통장에 만 원이 삼천 개는 들어와 있을 것이었다. 육구 씨는 정자 씨를 달래 성복이를 보던 날처럼 경건한 마음으로 미순 씨 엉덩짝을 쓰다듬었다.
“우리 새끼 하나 볼까?”
“누굴 낳아서 고아 만들려고? 집어치워.”
미순 씨는 기분 좋게 욕을 했다.
다음날, 육구 씨는 은행에 먼저 들렀다. 통장정리기에 통장을 넣었다. 고요했다. 통장을 빼 들고 코스코아 마트로 달려갔다. 부도가 불도저처럼 부지불식간에 집채를 밀어버릴 리 없었다.
하루 연기 됐습니다. 컴퓨터가 말썽이어서요. 경리과 직원들은 결제 장부를 정리하느라 담배 피울 손도 없게 바빴다. 육구 씨는 미안해져서 지하 매장으로 갔다.
“사장님. 우리 고기 다섯 짝만 외상으로 좀 주시지라?”
흥해수산 사장은 역시 사나이였다. 흔쾌했다.
“내일 결제 나오니까 내일 바로 드리께라.”
육구 씨는 처음 하는 외상이라 누가 들을까 부끄러웠다. 다음날도 외상이었다. 마트의 결제가 열흘 밀린다고 했다. 육구 씨는 태연했다. 쓴맛이 곰삭아야 단맛이 곱게 온다. 육구 씨는 외상 고기만 잡수시기 안쓰러워 미순 씨의 포장마차를 팔았다. 회는 그런대로 잘 팔렸다.
“아, 이 사람아. 그러고 회만 포장하고 있으믄 어쩔 텨?”
정육점 사장이 경리과로 불알 떨어지게 왕복했다. 저런 방정. 육구 씨는 정육점 사장의 혈색 좋은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을 감상하며 경리과장이 약속한 이틀을 기다렸다.
쓴맛이 삭아 문드러져도 단맛은 오지 않았다. 인생이 이진법이라는데 음도 없고 양도 없었다. 결제일을 하루, 이틀, 열흘, 또 이틀, 그렇게 미루던 코스코아 마트가 드디어는 부도를 냈을 때 육구 씨는 온전했다. 정육점 사장처럼 각목에 맞아 두상을 손상시키지도 않았고 김밥집 여자처럼 외상 진 김 값 때문에 결혼 패물을 팔아야 하지도 않았다. 육구 씨가 날린 거라곤 횟집 열어 번 돈, 유료 주차장에 장기 주차 시켜놨던 미순 씨의 포장마차, 그것뿐이었다. 겨우 챙긴 오백으로는 흥해수산에서 외상으로 끌어다 쓴 고기 값을 먼저 치렀다. 육구 씨는 깔끔하게 마트와 굿바이 했다.
육구 씨는 지하매장 회 코너의 수족관에서 물을 뺐다. 지하 매장에서 불 켜진 점포는 회코너 한 군데였다. 육구 씨는 회칼을 숫돌에 갈았다.
“뭐할라구?”
미순 씨는 칼날이 섬뜩해서 오금을 조아렸다. 육구 씨는 말 없이 2001년 2월 3일 토요일 당일자 신문으로 칼 네 자루를 감았다.
“집으로 가자.”
“어느 집?”
“우리 횟집.”
“같이? 왜?”
“포장마차도 없어졌는데 어디서 뭐할 거여. 방 한 칸 줄 테니까, 정자허고 둘이서 잘해봐.”
육구 씨의 손에는 칼이 있었다. 미순 씨는 신문지 안에서 칼이 스스로 놀고 있는 것 같아서 육구 씨가 하라는 대로 앞서 걸을 수밖에 없었다.
육구 씨는 주차장에서도 미순 씨를 앞세웠다. 미순 씨는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손님으로 들어가던 육구 횟집에 회 먹을 생각 일절 없이 육구 횟집의 바깥주인을 뒤로 한 채 어깨를 움츠리고 들어갔다.
육구 씨는 자식 두 놈과 각시 둘을 앉혀놓고 칼을 내 놓았다.
“효진아. 니 꿈이 뭐나.”
“횟집 주방장.”
“어이구 염병허네.”
육구 씨는 통닭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들한테 똑같이 물었다.
“성복아. 니 꿈이 뭐나.”
“나? 횟집 사장.”
“쌍으로 지랄허네.”
육구 씨는 방문을 닫고 나와 버렸다.
후유. 육구 씨는 달게 웃었다. 사람 하나 들이기가 어디 쉽나. 쓴맛 있으면 단맛 있다. 천하의 김육구가 쓴맛만 보고 물러설 놈이냐. 가두리 양식장 옴싹 적조 맞아부렀다 생각허고 다시 시작허는 거여 잉? 육구 씨는 미순 씨를 들인 것에 흥이 겨워 부를 줄 모르는 노래까지 불러댔다. 신사년 정월 열하루, 입춘을 하루 앞두고 대보름을 나흘 앞 둔, 칼바람이 무성하던 그런 어떤 날이었다. 육구 씨는 정자 씨가 회칼을 들고 호로새끼 남발하며 목전에 당도할 때까지 선창머리에 서 있었다. 입춘은 대길이었고 가화하니 만사성할 것이었다.
박금산
1972년 여수 돌산 출생
2001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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