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11호(2003년 가을호) 제3회 리토피아인터넷청소년문학상 입상자, 대상 작품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003회 작성일 05-02-20 19:13

본문

<입상자>
대  상|김연희(소설)
우수상|운문부 : 이은희(시)
            산문부 : 류나현(소설)
가  작|산문부 : 정은경(소설) 박성준(소설) 박세희(소설)
                       최성욱(수필) 이현주(수필) 주선미(수필)
           운문부 : 이진우(시) 김민수(시) 유수경(시) 최철진(시)
장  려|산문부 ; 이중윤(소설) 홍연정(소설) 문아름(소설) 황진희(수필)
                       황진희(수필) 권봄이(수필)
           운문부 : 정해주(시) 이소영(시) 신지윤(시) 김금희(시) 권혜린(시)

   <심사위원>
∙심사위원장 : 고명철(문학평론가)
∙예심
  운문부문 : 황희순(시인) 윤관영(시인) 김영산(시인) 장성혜(시인)
  산문부문 : 박익흥(시인) 남태식(시인) 정승렬(시인) 김영식(수필가)
            서동인(시인) 유경희(시인) 안명옥(시인)
∙본심
  운문부문 : 엄경희(문학평론가) 백인덕(시인)
  산문부문 : 김남석(문학평론가) 강경희(문학평론가) 강성률(영화평론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대상 (소설)

짱가의 고행기

김 연 희
(진명여자고등학교 2학년)



정체불명의 여인 짱가를 찾다
“저놈의 개새끼가 어디서 똥을 누고 지랄이랴!”
이씨는 오늘도 작은 손바닥만한 창에 얼굴을 바짝 대고서 소리를 질렀다. 마무리를 하지 못 한 개운치 않은 표정으로 가게 앞을 배회하는 개를 두고 그는 발을 구르며 워이! 워이! 했다. 개가 한두 걸음 뒷걸음질치다가 다시 자리에 주저앉자 이씨는 옆에 있던 파리채를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언제 저 놈을 잡아다가 된장을 발라버리던지 해야지, 가게가 똥으로 넘쳐나겠네, 야 이놈 달구야, 달구야!”
근처 문방구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신주머니를 옆에 던져두고 오락에 열중하던 아이들을 히죽거리며 구경하던 달구가 급히 달려왔다. 안 그래도 손님 하나 없이 파리만 날리는 가게를 바라보며 고장 난 선풍기를 두드리며 화풀이를 하던 터였다. 이씨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다시 일을 볼 자세를 잡는 짱가를 보자 더욱 약이 올랐다.
“달구야! 저 놈의 개 좀 쫓아내라! 에잇, 재수가 없으려니까”
달구를 보자 짱가가 달려와 꼬리를 흔들었다. 그러자 달구는 한껏 인상을 구기더니 아버지를 의식한 듯 소리를 질렀다.
“이놈! 여기는 왜 와!”
달구는 눈치를 보며 짱가에게 헛발길질을 하며 이씨의 시야를 피했다. 달구는 이씨가 가게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짱가를 끌어안고는 털을 쓰다듬어 주었다. 짱가는 혀를 길게 내빼고 헥헥거리며 자신에게 달라붙은 손길이 귀찮은 듯 바닥에 누웠다.
“배고프지? 여기 가만히 있어봐.”
몸만은 다 큰 달구는 늘어진 티셔츠를 팔랑이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정신없이 뛰어가 그릇에 남은 밥을 물에 말아 짱가 앞에 내밀었다. 짱가는 물을 보자 허겁지겁 날름거리며 목을 축였다. 달구는 히죽 웃으며 바닥에 엎드려 열심히 물을 말아 올리는 짱가의 혀를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때 구멍가게 앞으로 까만 세단 한 대가 멈춰 섰다. 차창을 까맣게 물들인 탓에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달구는 이씨의 슬리퍼 소리가 나자 짱가를 데리고 골목 어귀로 달려가 몸을 숨겼다. 가게 밖으로 나온 이씨가 차 창 쪽으로 고개를 기웃거리자 차 문이 열리고는 선글라스를 쓴 여자가 나왔다. 한껏 틀어 올린 머리와 이리저리 주렁주렁 매달은 귀걸이며 목걸이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것들을 하고 있는 여자였다.
“어떤 게 필요하세요?”
이씨는 여자를 훑어보며 겸손하게 물었다. 여자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계산대 앞으로 다가왔다.
“저기, 이 동네에 털이 노랗고 귀가 작은 잡견 있지요? 그 개를 어디가면 볼 수 있을까요?”
“뭐 똥개가 한두 마린가요? 그런 거야 이 동네를 몇 번 돌다보면 볼 수 있는 거지 뭐…….”
이씨는 물건을 살 손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자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 개는 보통 개가 아니구요……. 여하튼 귀가 작고 노란 개를 보시면 여기로 연락 주세요. 사례비는 후하게 드릴게요. 꼭 좀 부탁드려요.”
여자는 개에 대한 설명을 하려다 말고 명함을 꺼내 이씨 앞에 내밀었다. 사례비라는 말에 이씨의 눈이 반짝였다.
“사례비까지야. 그런 똥개가 아니라도 비싼 개로 수십 마리 살 수 있는 분 같은데 왜 그러신지…….”
여자는 그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값은 지불할 테니 꼭 연락해 달라는 당부만 다시 한 번 남기고 휭하니 가게를 빠져나가 차에 몸을 실었다. 골목 끝으로 사라져가는 차를 보면서 이씨는 중얼거렸다.
“나원참, 세상에 참 별일이 다 있네. 돈 있는 사람들 벌레까지 키운다는 이야기야 들었지만 똥개를 찾아다니는 취미는 또 처음 보네.”
이씨는 침을 퉤 뱉으며 방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달구야, 달구야! 이 녀석이 또 어딜 싸돌아다니고 있는 거야!”
신경질적으로 달구를 부르는 이씨의 목소리가 울렸다. 달구는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며 짱가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후다닥 가게로 뛰어갔다. 잠시 후 방송국 차가 골목에 멈추더니 남자 하나가 이씨의 가게로 들어갔다.
“네? 그 똥개 주인마다 사시를 패스했다고요? 뭐 그런 일이 다 있데요?”
“그러니까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취재를 하러 온 거죠. 그 개를 보면 연락 좀 주세요.”
이씨는 여자가 주고 간 명함을 꼬옥 쥐었다.

현규와 재석 신림동에서 만나다
재석은 오늘도 추리닝 바람으로 사발면을 사러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차 한 대가 서더니 빵빵거렸다. 재석이 잠시 멈칫하는 사이 차안에서 현규가 얼굴을 내밀었다.
“이야! 이거 몇 년 만이냐? 반갑다. 역시 고시 준비하는구나?”
현규가 차에서 내려 재석에게 악수를 청했다. 양복차림이 깔끔하고 샤프해 보였다.
“진짜 오랜만이다.”
현규를 알아본 재석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엄마, 재석이 아시죠? 고등학교 때 전교 1등 하던 녀석이요.”
현규가 차 안쪽을 향해 말하자 선글라스를 쓴 여자가 상체를 숙여 재석을 바라보았다. 재석은 얼른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여자는 재석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그래도 안면이 있었던지 엷은 미소를 지었다. 고등학교 시절, 현규 엄마는 철딱서니 없이 놀기만 하는 현규를 바로 잡기 위해, 재석을 집으로 불러들인 적이 있었다. 현규와 친하게 지내라며 평소 재석의 집에서는 꿈꿀 수 없는 밥상을 차려다 주었던 것을 기억하시는지 안 하시는지 아무 대답이 없다. 아직도 가난하게 산다는 것을 들키는 것 같아, 재석은 버리려고 가져왔던 가득 찬 쓰레기 봉지를 등뒤로 감춘다.
“여긴 웬일이야?”
무안해진 재석이 현규에게 물었다.
“어 그냥 일이 좀 있어서……. 오늘 저녁에 모임에 나올 꺼지? 거기서 보자.”
현규는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차 문을 열고 나온 것과는 반대로 시계를 보며 서둘러 차안으로 사라졌다. 재석은 현규가 탄 차가 골목을 돌아설 때까지 바라보다가 후줄근한 추리닝을 탁탁 털며 슈퍼로 발을 돌렸다.
현규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집안이 꽤 부유했다. 늘 자신감에 차있고 또 주위에 친구가 많았지만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고액과외 덕으로 지방의 한 대학교 법학과에 간신히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가끔 현규의 소식이 들려오긴 했지만 고시 준비보다는 해외여행을 떠났다던가, 막 뜨기 시작하는 여자 탤런트와 외제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을 봤다는 등 자신과는 동떨어진 세계의 이야기들뿐이었다. 얼마 전부터 같은 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가끔 얼굴을 내민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재석 역시 그 모임에 열심히 참석하는 부류는 아니었지만 오늘은 총회 성격상 한사람도 빠짐없이 참석해야 할 자리였다. 재석은 길에 버려진 빈 깡통을 발로 찼다. 매일 입던 추리닝을 입은 것임에도, 재석은 왜 하필 오늘 이것을 입었는지에 대해 신경이 짜증이 앞섰다. 재석은 깔끔하고 세련된 현규 앞에 초라하고 지저분한 차림을 한 자신이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명문대 법대에 떡 하니 합격했을 때 사람들은 나에게 부러움의 시선을 보냈고, 이제는 가난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재석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부러움의 시선을 보냈던 사람들에게만큼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 중 한명이 현규 엄마이었기에 재석은 자신의 초라함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을 한탄했다.

저녁이 무르익어 네온 불빛이 하나 둘씩 켜지는 시간이었다. 시간 약속을 칼같이 지키는 재석은 제 시간에 카페를 들어섰다. 벌써 몇 명의 친구들이 이미 도착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현규는 여전히 지각을 했다. 고시 준비의 지겨움을 성토하며 자리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현규가 왔다.
“이 자식, 시간 안 지키는 거는 여전하네.”
한 친구가 현규의 어깨를 한대 툭 치면서 얘기했다.
“잘들 지냈냐?”
현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친구가 건네는 술잔을 받아들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데 가담했다.
“너희 그 이야기 들었어?”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일행 하나가 뜸들이듯 말했다.
“짱가 얘기 들어봤지? 그 개 주인이 도대체 누가 될까?”
몇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무슨 얘기인지 어리둥절해 하는 얼굴들이 많자 그가 다시 나섰다.
“아직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네. 신림동 녹두거리에 돌아다니는 똥개 한 마리가 있는데 고놈 주인이 되는 사람마다 다 고시에 합격한다는 거야, 며칠 전엔 방송국에서도 취재를 했다더군.”
그 얘기를 듣고 몇 명이 ‘우와~’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자 한 친구가 입을 열었다.
“촌놈들……. 인제 알았냐? 안 그래도 우리 형 친구가 그 개 주인이었잖냐, 그 형 사시 준비할 때 다들 놀렸잖아. 법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똑똑한 것도 아니었다고. 무작정 고시 공부하겠다고 신림동으로 들어온 건데 떡 하니 붙더라구. 나중에 비결을 물으니까 그 개 전 주인이 고시 합격하고 가면서 개를 주고 갔는데 왠지 그 기운이 자기한테 올 것 같더라는 거야. 여하튼 합격하고 나서 나한테 넘긴다고 했는데 개가 집을 나간 거야. 우리 엄마가 그 개를 찾으려고 벌써 일주일째 뒤지고 있잖아. 큭큭.”
“이 자식, 그런데는 빨라요. 아무튼…….”
재석은 현규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이 굳어있었다. 재석은 낮에 현규를 만나게 된 것을 생각하며 소주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녀석이라면 그 개를 사기 위해 충분히 무슨 짓이라도 할 것이었다. 재석은 소주잔을 힘껏 쥐고는 소리쳤다.
“난 그런 거 안 믿어. 노력 안 하고 그런 개 한 마리가 인생을 바꾼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다른 건 돈으로든 뭐로든 요행이 통하겠지만 사법고시는 그런 게 없다구. 우리들이 치질에 고생하면서도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법을 외우는 이유가 그게 아니었어?”
짱가의 이야기로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재석의 말에 일순간 얼어붙었다. 자신을 향한 발언임을 알아챈 현규가 시비조로 비아냥거렸다.
“그래 너 같은 머리 좋은 놈은 노력하면 되지만, 내 머린 돌대가리라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라도 개새끼한테 의지하고 싶다. 어쩔래?”
씩씩거리며 현규는 재석의 멱살을 잡으려 손을 뻗쳤으나 일행들이 재빨리 말렸다. 재석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자리를 박차고 카페를 나왔다. 다른 일행은 둘 사이의 실랑이를 이해하지 못 하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재석이 나선 문을 바라보았다.
“내가 너에게만은 그딴 거 안 믿고 노력만 해서 패스하는 걸 꼭 보여주고 말 거다. 두고 봐.”
고시원에 도착한 재석은 아스라이 취기가 올라옴에도 불구하고 책상 앞에 앉아 법전을 펼쳤다.

짱가의 호강
구멍가게 이씨는 고장나서 덜덜덜 소리를 내는 선풍기를 꺼버리고 부채질을 시작했다. 덥고 습기찬 바람을 부쳐봤자 더운 건 마찬가지였다. 이씨는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들으며 창 밖을 바라보다가 짱가를 발견했다. 방송을 탄 후 짱가는 며칠씩 사라졌다가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모습으로 돌아와 여지없이 가게 앞에서 일을 봤다. 요 며칠 간 안 보이더니 다시 이씨의 눈치를 보며 가게 앞을 배회했다. 이씨는 창 앞에 바짝 다가앉아 밖을 내다보았다. 어느새 짱가의 주위에는 고시생 서넛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 손에는 먹을 것들이 들려 있었는데 소시지를 주는 사람도 있었고, 꼼꼼히 싼 알루미늄 호일 속에서 갈비 몇 개를 던져주는 사람도 있었다. 짱가 덕분에 이웃 슈퍼를 이용했던 고시생들도 이씨의 가게로 발걸음을 하고 개가 먹을 만한 간식거리가 심심찮게 팔린 터여서 선뜻 여자에게 전화하기가 망설여졌다. ‘진짜 복댕이긴 복댕이인 모양이네그려…….’
“달구야, 그 개 우리 집 밖에 못 나가게 꼭 붙잡고 있어라.”
달구는 이상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다가 짱가를 마당에 앉혀다가 물을 먹여 주었다. 이씨는 서랍을 열어 여자의 명함을 꺼냈다. ‘한빛 부동산 컨설팅 대표이사 김숙자’라고 쓰여 진 명함을 보며 이씨는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김숙자 여사님이십니까? 여기 일전에 찾아주셨던 달구네 슈퍼입니다. 그 똥개를 지금 저희가 보호하고 있거든요.”
수화기 건너편은 바로 출발하겠고 했다.
“저, 그게 말입니다. 흠, 흠!”
이씨는 괜히 헛기침을 하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설마 잊으신 건 아니시죠?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이씨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개를 쑥 내밀고는 짱가를 찾아 밖을 내다보았다.
달구는 물을 맛있게 먹고 있는 귀염둥이를 엎드린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짱가가 물을 먹다 말고 혀로 달구의 얼굴을 핥는다.
“간지러워, 하지 마……. 짱가야, 너랑 같이 살면 좋을 텐데……. 그치?”
얼마 지나지 않아 구멍가게 앞에 지난번 왔던 세단 한 대가 멈춰 섰다.
“개는 어디에 있지요?”
여자는 인사도 하기 전에 대뜸 그것부터 물어보았다. 이씨는 여자의 불손한 태도에 기분이 상했다.
“개는 저기에서 우리 아들놈이 보고 있어요.”
이씨가 가게 밖을 향해 턱을 올렸다. 여자는 달려가서 짱가를 살펴보며 정말 그 개가 맞는지 확인하더니 기사에게 차에 실으라고 말했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달구에게서 짱가를 낚아채듯 가져갔다. 울상이 된 달구, 짱가와 이씨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짱가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다가 제 힘에 부치는 것을 안 듯 얌전히 트렁크 속에 있는 개장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지갑에서 수표 서너 장을 꺼내 이씨에게 건네고는 차에 몸을 실었다. 이씨는 그 행동이 마땅치 않았으나 수표에 쓰인 0의 개수를 확인하고는 표정을 환하게 바꾸었다.

현규는 엄마 손에 들린 짱가를 보고는 좋아서 마구 끌어안았다.
“복댕아, 나한테도 꼭 복덩어리가 돼야 한다. 알았지?”
현규는 짱가를 번쩍 들어올린 채 이야기했다.
“아이구 아들, 목욕부터 시키자. 원 개가 이렇게 더러워서. 누가 똥개 아니랄까봐…….”
짱가는 잔뜩 주눅이 들어 눈만 이러 저리 굴리고 있었다.
현규는 카페에서 모였던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재석과 특히 친한 친구에게는 꼭 함께 와달라는 부탁을 따로 했다. 시간이 되기도 전에 하나둘씩 도착했다. 현관에서 짱가를 안은 현규엄마가 이들을 반겼다. 예상대로 재석 역시 왔다. 현규는 재석에게 저번에는 미안했다며 사과를 건네었다.
“얘들아, 이놈이 그 유명한 짱가다. 인사해라.”
현규는 엄마에게서 건네받은 짱가를 두 손에 들고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 친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 짱가를 안아보려고 난리들이었다. 일부러 털을 쓰다듬으며 인사를 하기도 했고, 짱가의 눈길을 받기 위해 온갖 재롱을 떨었다. 재석은 저 한편에서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밥을 먹다가 고개를 돌렸을 때, 재석은 짱가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재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짱가에게 미소짓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 속에 내재되어 있던 이중성에 대해 충격이 가시지 않는지 수저를 들고 있던 그의 손이 떨리고 있다. 떨림을 이기지 못 하여 젓가락을 놓쳐서 반찬이 테이블에 떨어지는 광경을 현규는 지켜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짱가의 선택
며칠 동안 공부에 집중하지 못 했던 재석은 기분도 전환할 겸 담배를 사러 슈퍼로 향했다. 담배와 라면이 든 까만 비닐봉지를 쥐고 고시원으로 돌아가려는 찰나였다. 골목에서 어슬렁거리는 개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재석은 짱가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개줄을 물어뜯고 나왔는지 끊어진 개줄이 바닥을 쓸고 있었다. 재석은 짱가에게 가까이 오라며 혀로 입술을 찼다. 그러나 짱가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재석은 얼른 슈퍼로 달려가 소시지 한 상자를 사서 짱가에게 갔다. 소시지 껍질을 까서 짱가에게 주었지만 역시 제 할 일만 할 뿐이었다. 재석은 은근히 화가 났다.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자신은 간식다운 간식 한 번 먹지 못 했는데 녀석은 그 간식을 보고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것이었다. 재석은 추리닝 상의를 벗고서는 짱가를 향해 서서히 다가갔다. 녀석은 안면이 있어서인지 경계를 하지는 않았다. 재석은 상의를 펼쳐 짱가를 덮쳐 끌어안고서는 고시원으로 달려갔다. 재석이 있는 고시원 뒤에는 새로운 고시원을 짓기 위해 공사 중인 공터가 있었다. 재석은 그곳에 짱가를 숨겼다. 낑낑거리며 나오려 했지만 판자와 벽돌로 굳게 만든 우리에서 짱가는 헛발질만 해야 했다.
재석은 방으로 돌아와서 짱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일단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서 키워야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짱가가 없어진 것을 알고 쩔쩔매고 있을 현규를 생각하니 고소하기도 했다. 그때 휴대전화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현규였다.
“웬일이야?”
재석은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약간은 당황한 목소리로 친절하게 물었다.
“짱가가 집을 나갔어. 그 근처로 갔을 것 같은데 혹시 못 봤니?”
재석은 얼떨결에 ‘며칠 동안 밖에 나간 적이 없다.’고 대답해 버렸다.
“너 혹시 나 밉다고 짱가를 데리고 간 거 아니야? 그럼 그만 미워하고 빨리 돌려 보내줘라.”
현규는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내심 빈 말은 아니었다. 재석 역시 웃으며 그러마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도저히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재석은 짱가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주어 그 사람이 합격해 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키울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내가 갖지 못 할 바에야…….’ 재석은 무언가 결심을 한 듯 그 똘망똘망한 눈동자에서는 빛을 내뿜었다. 고시원에 도착한 재석은 자기 책상 위에 붙여진 ‘한 만큼 얻는다’란 글귀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재석은 늘 이 말을 지켜왔고 믿어왔다. 그 덕분에 가난을 극복하여 명문대 법대를 졸업할 수 있었고, 가족의 기둥이 될 수 있었다. 재석이 지난번 카페에서 짱가를 믿지 않고, 노력으로써 대가를 보여주겠다는 말을 한 것은 바로 이러한 믿음에서였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은 재석은 그리고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책상 앞에 앉아 열심히 법전을 들여다보았다.

며칠 간 고시원에서 꼼짝없이 있던 재석은 펜을 잠시 놓아두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옷매무새를 가꾸었다. 이제 더위도 한풀 꺾여 제 구실을 하지 못 했다. 선선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기분이 좋아졌다. 재석은 고시원 맞은편에 있는 약국을 가기 위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빨리 이 일을 해결해야 맘 편히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초록불로 바뀌자마자 잽싸게 재석이 뛰어가자, 천천히 멈추던 차는 급정거를 했다.
“이봐, 당신 미쳤어? 눈을 어떻게 달고 다니는 거야!”
재석은 놀라서 차를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는 다시 약국을 향해 뛰어갔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헐레벌떡 뛰어온 재석이 급한 환자라도 있는 줄 알고 재빠르게 물어보았었다.
“저기 쥐약 좀 주세요.”
약사는 자신의 예상이 빗나가서인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약을 가져다 주었다.
“직방일 겁니다. 혹시 집에 애완동물을 기르시면 먹지 않도록 주의하시구요.”
문을 나서는 재석의 등뒤에다 대고 약사가 말했다. 재석은 약을 주머니에다가 깊이 쑤셔 넣었다. 고시원까지 오는 길에 약을 너무나 꽉 쥔 탓에 포장이 다 구겨져 있었다. 얼마 전 짱가를 위해 샀던 소시지를 꺼내어 쥐약을 발랐다. 그리고는 공사장 터로 들어갔다. 며칠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짱가는 인기척을 느끼고는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재석은 짱가에게 다가가 소시지를 던져주었다. 짱가는 허겁지겁 재석이 던져준 소시지들을 삼켰다. 재석은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이렇게 말했다.
“짱가야, 미안하다. 날 너무 원망하지는 마라.”
재석은 그대로 일어서 고시원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그간 흐트러진 자세로 공부했던 것을 만회하기 위해 일분일초가 아까웠다. 그는 두건을 꺼내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책 속으로 파고들었다.

벌써 네 번째다. 선글라스를 쓴 여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짱가가 돌아왔는지 알아보기 위해 들렀다. 여자는 매번 의심이 가득한 눈길로 이씨와 달구를 노려보다 차안으로 사라졌다. 달구는 어디론가 사라진 짱가를 기다리며 아이들이 오락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골목 어귀에서 개 한 마리가 비틀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짱가였다.
“짱가야! 왜 이래? 어디 아픈 거야?”
달구는 늘어진 짱구를 안고 울면서 집으로 뛰어갔다. 이씨는 축 늘어져 달구의 손에 이끌려 온 짱가를 보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씨는 짱가를 안은 채 동물병원을 향했다. 의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쥐약이 묻은 음식을 먹은 것 같습니다. 다행히 모두 구토를 해서 목숨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습니다만…….”
의사는 짱가의 입에다 호수를 넣고 장을 세척하였다. 짱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니가 얘를 잘 돌봐야 된다. 물도 자주 주고, 개밥도 제때 챙겨주고, 알았지?”
짱가를 달구의 팔에다 안겨주고서 이씨가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구박 안 할 테니까 잘 키워야 된다.”
“이제 정말 제가 키워도 돼요?”
달구는 짱가가 아프다는 것을 잠시 잊은 채 병원 복도를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이씨는 주위 사람들이 흘깃하자 잠시 얼굴을 찡그리다가 아까보다 훨씬 좋아진 짱가를 보자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제까지 짱가의 주인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고. 어쩌면 이 개가 자꾸 자신의 집으로 찾아오는 것은 하늘의 계시일 것이라고. 달구가 조금 모자라도 한 가지는 잘하는 것이 있을 것이고 그게 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다음날 이씨는 여자의 차가 오기 전에 고시원을 등록해 달구와 짱구를 내보냈다.


■당선소감

소설 쓴 경험이 많이 부족해서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제가 글을 쓰는 데 도약의 발판을 만들어주신 ≪리토피아≫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만약 항상 뒤에서 저를 후원해 주시는 부모님과 글을 쓸 수 있게끔 동기를 부여해 주신 김형일 선생님이 없으셨다면 지금의 제가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짱가의 고행기」는 ‘세상에 이런 일이’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소재를 얻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심리인 욕심과 질투를 표현하기 위해, 실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간상들을 통해서 내용을 전개하였습니다. 짱가가 소시지와 갈비 등 개로서는 가장 호화로운 음식들을 마다하지만, 달구가 주는 물은 마다하지 않고 먹는 것을 통해, 저는 돈이나 명예 등 물질적인 것만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본질은 따로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다시 한 번 힘이 되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오며, 앞으로 작문을 하는 데 더욱 힘써서 훌륭한 문학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심사평

산문부

세 번째를 맞이한 <리토피아 인터넷청소년문학상>의 산문부문(소설, 수필)에 응모한 작품들은 그동안 갈고 닦은 문학적 역량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종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문학상의 응모작들과 비교했을 때 그 문학적 역량이 결코 만만찮은 작품이라는 점이었다.
작품을 읽으면서, 심사위원들은 심사숙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상작은 물론 아깝게 수상을 하지 못 한 작품 역시 좀처럼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들은 두 작품에 관심을 가졌다. 류나현의 「달동네 신동」과 김연희의 「짱가의 고행기」가 그것이다. 모두 소설이다. 두 작품 모두 나름대로의 특장(特長)을 갖고 있었으나, 소설이란 장르의 속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허구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의 응집성을 잘 형상화하고 있는 김연희의 작품을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김연희의 작품은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있는 데다, 우리들 삶의 부조리한 단면을 아이러니의 미학을 통해 간명하게 짚어내고 있다. 작가로서의 장래성과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다는 심사위원의 중지를 모으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류나현의 경우도 우리 사회의 현안 중 하나인 달동네 빈민촌과 관련된 이야기를 예리한 시각으로 진단하고 있으나, 김연희의 작품에 비해 주제를 형상화하는 구성이 다소 산만한 게 결정적 흠결로 지적되었다. 심사위원들과 함께 숙고한 끝에 류나현의 작품은 우수상으로 선정한다.
짧은 심사평이라 가작과 장려작을 수상한 작품들에 대해 개별적 평가를 하지 못 한 점을 양해해 주셨으면 한다. 다시 한 번 응모자와 수상자들에게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을 깊이 간직해 달라는 부탁을 드린다. 여러분들의 문학에 대한 열정이 존재하는 한 이 땅의 문학은 풍요로워질 것이다.
―심사위원 일동


운문부

시를 사랑하는 청소년들이 아직도 이 세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모두 그 안에 깊은 열정과 꿈을 가지고 있음을 이번 심사를 통해 발견할 수 있었다. 얼마나 크고 빛나는 수확인가!
우수상에 뽑힌 이은희의 시는 매우 따뜻하다. 특히 ‘은행’이라는 사물에 세월과 눈물을 응집시키는 상상력이 돋보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따뜻함 속에 강인함이 함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작으로 선정된 유수경, 이진우, 최철진, 김민수의 시도 매우 훌륭한 상상력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수경의 시에서는 강한 힘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 힘이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났으면 한다. 그러나 분명 “거울을 향한 총부리가/태양에 반사해/무르게 휘어지면”과 같은 구절은 비범하게 느껴진다.
이진우의 시는 비애의 깊이가 느껴진다. 좀더 과감하게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어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철진의 시는 젊은이다운 비판 의식이 돋보였다. 문장을 다듬어 유연하게 한다면 보다 좋은 작품이 탄생하리라 생각한다.
김민수의 시는 사유의 단단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돋보였다. 그러나 좀 장황하다는 생각이 든다. 함축적인 문장의 맛을 살려낸다면 앞으로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외 <인터넷청소년문학상>에 응모했던 다른 작품들의 시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비록 수상은 못 했어도 시를 쓴다는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말하고 싶다. 더욱 시와 깊이 사랑하길 소망한다.
―심사위원 일동

추천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