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12호 특집/백인덕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592회 작성일 05-02-20 19:19

본문

‘다양화’를 통한 ‘상징적 풍요로움’은 가능한가?
―청계천 복원에 거는 시의 기대

백 인 덕
(시인)



산업 혁명과 도시로의 인구 집중, 전쟁으로 인한 도시의 황폐화와 계획적인 도시의 재건, 도시 내에서의 유동성의 증가와 그에 따른 재개발의 증가 등, 대도시의 발생과 그 발전 과정에 대한 역사적 배경 설명은 전적으로 서구의 대도시들을 대상으로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경우에도 어느 정도는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다. 어느 정도라고 한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서울이 가지고 있는 그 역사성과 고유성을 고려할 때는 전적으로 맞는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서울은 그 태동부터가 당시(14세기)로서는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잘 계획된 거의 완벽한 수준의 계획 신도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이후의 서울은 앞에서 언급한 대도시의 발전 과정과 일치한다. 이 두 사실 사이의 간격은 ‘서울’을 문화적 층위에서 바라보게 될 때 하나의 난점으로 작용한다.
어쨌든 지금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문화적 역량이 총집결되어 있는 공간으로서의 ‘서울’에서 획기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청계천 복원 공사’와 그 부대 사업이다. 사업의 계획에서부터, 시행, 완료 이후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논란과 갈등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 글은 전적으로 ‘청계천 복원 공사’가 ‘시’라는 장르에(비록 시인들이 현재 서울에 거주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를 차지하고)끼칠, 혹은 미치기를 바라는 ‘상상력의 원천’으로서의 기능이라는 문제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다.
1. 우리 시에 있어서 대도시 공간의 등장
공간은 일반적으로 명확하게 포착되지는 않지만, 우리 일상의 삶에 깊숙하게 파고들어 잠재적, 심리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갖게 되는 삶의 조건으로서의 공간을 무의식적으로 당연시하게 된다. 사실 오늘의 대도시의 온갖 구조물과 인위적 사물들이 채 백년도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예전부터 겪었던 것으로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에서 ‘대도시’라는 공간이 언제,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는가를 따져보는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대도시에서 인간은 변화된 지각 조건을 갖게 된다. 짐멜의 사회학적 분석에 따르면 “인간은 상이한 현상에 대해 상이하게 반응하는 존재이다. 인간의 의식은 순간적인 인상의 상이함에 의하여-앞서서 지나간 인상은 밀쳐버린 채-자극받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굳어져 있는 인상들, 굳은 인상들이 보이는 차이점과 사소함, 이것들의 자연스런 흐름과 대립들에서 나타나는 통상적인 규칙성은, 이것들은 지각하는 의식의 소모라는 면에서 보면 많은 의식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수시로 변화하는 형상들이 급작스레 밀려들어 오는 것, 우리가 한눈에 포착하는 것 내에 존재하는 급격한 간격, 선명하게 각인되어 인간의 내면에 파고 들어오는 인상을 지각하는 것은 훨씬 많은 의식의 소모를 필요로 한다. 대도시는 바로 이러한 심리학적 조건들을 창출하면서-도로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발걸음, 속도, 그리고 경제적이며 직업에 따른 사회적 생활의 다양함과 더불어-소도시라든가 농촌 생활과는 전혀 다른 대립적 현상을 야기 시킨다. 대도시는 이런 대립적 현상을 이미 내적 생활의 감각적 기초에서, 상이한 현상에 대해 상이하게 반응하는 인간의 본성이 유도하는 의식의 조직화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의식의 질량에서 유발시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소도시나 농촌 생활에서는 심리학적  조건들의 감각적, 정신적인 생활상이 훨씬 느리고, 익숙하며, 항상 비슷하게 흐르는 리듬에 맞춰져 있다.”(문병호, ꡔ서정시와 문명비판ꡕ, 문학과 지성사)고 한다.
다시 말해, 대도시는 그것이 형성되기 이전의 농촌이나 소도시에서와는 다른 인식의 조건을 형성하고, 따라서 대도시의 형성은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상상력, 또는 미학을 산출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 시의 경우 이러한 미학의 출발은 이승훈에 따르면 1930년대 모더니즘 미학으로부터 출발한다. “모더니즘은 도시의 미학이고, 도시는 자본주의가 생산한다. 그동안 1930년대 우리 모더니즘 문학이 비판된 것은 주로 물적 기반과 괴리된 상태에서 나타난 문화 현상이라는 점 때문이었고, 그것은 서구 자본주의 사회와 달리 우리의 상황은 일제 식민지였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서구를 모델로 하는 모더니즘 미학이 설 자리가 빈약한 실정이다. 서구의 경우 모더니즘은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발달 단계에 상응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더니즘은 왜곡된 모더니즘, 독점 자본주의에 대한 미적 반응이 아니라 일제로 표상 되는 독점 자본주의의 식민지 모더니즘이라는 특수성을 보여준다. 이런 특수성은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하나는 당시의 수도 경성(서울)이 자생적 도시가 아니라 일제의 식민 정책과 관련된 타생적 도시의 혐의가 크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모더니즘이 당대의 일본 모더니즘을 모방한다는 것이다,”(이승훈, ꡔ한국현대시의 이해ꡕ, 집문당)
이러한 지적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일제 강점기에도 여전히 서울은 계획적인 도시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생적이 아니라 타생적이라는 지적은 앞서 언급한 서울의 태동기부터 적용될 수 있고, 오늘날에도 역시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서울은 봉건적 계획에서 식민 정책을 거쳐, 산업화를 위한 계획이라는 과정을 밟아왔고, 그 와중에 탄생한 한 상징물이 바로 ‘청계천 복개와 고가도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타생적’이라는 인식, 다시 말해 자율적으로 형성한 공동체가 아니라는 인식이 ‘서울’이라는 공간 그 자체보다, 그 공간으로부터 소외당하는 사람들 쪽으로 시인들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따라서 ‘서울’을 다룬 대부분의 시들이 문명 비판적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도시가 담론이고, 그 담론이 하나의 실제 언어’라면 ‘무엇이 얘기되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관점에서 쓰여졌다.
2. 전신이 무감각화된 공간-서울
우리가 영위해야 할 공간으로서의 ‘서울’은 너무나 매력이 없다. 삶의 터전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경제적 기반을 조성하는 곳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문화적 중심이라는 말은 가장 많은 개봉관과 대학이 집중된 곳이라는 의미로 들린다. 필자는 서울을 고향이라고 말하며 눈물 글썽이는 추억에 잠기는 사람들, 특히 시인을 만나본 적이 없다. 어쩌면 시인들에게 서울이라는 공간은 무언가 비판하고, 들쑤셔야만 하는 그런 곳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진행되는 모든 사업들은 중지되어야 한다. 미래가 아니라 지금 현재 누가 서울에서 살고 있는가를 돌이켜 보아야 한다. 앞으로가 아니라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에 대한 분석을,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개발과 통제가 아니라 보완과 수정을 통한 보전과 보존을 생각해야 할 시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정수진, 「미완의 도시, 서울」)는 한 건축학자의 말처럼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의 필수조건으로서의 공간, ‘서울’을 다시 생각해 볼 가장 적절한 때를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시인들에게 이 공간, ‘서울’은 어떤 얼굴로 각인되어 있을까? 본격적인 산업화, 우리 식으로 말한다면 ‘근대화(청계고가도로는 아현고가도로에 이은 두 번째 작품으로서 3․1빌딩과 함께 근대화의 상징적 조형물이었다.)’가 무르익은 1970년대부터 그 대체적인 윤곽을 그려보기로 한다.

산자락에 매달린 바라크 몇 채는 트럭에 실려 가고, 어디서 불볕에 닳은 매미들 울음소리가 간간이 흘러왔다
다시 몸 한 채로 집이 된 사람들은 거기, 꿈을 이어 담 치던 집 폐허에서 못을 줍고 있었다
―감태준 「몸 바뀐 사람들」 중에서

이 작품은 산자락에 매달린 집들이 산업화 과정에서 철거되는 풍경을 묘사한다. ‘몸 하나로 집’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들은 서울이라는,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서울이 상징하는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위세 앞에서, 그 폐허에서 겨우 ‘못’을 줍는다. 그러나 이 못을 박을 곳은 자신의 마음 외에는 그 어디에도 없다. 단언컨대 이 ‘상실감’이야 말로 지난 6, 70년대 ‘서울’이 아무렇게나 파헤쳐지거나 잘려나가도 거의 모든 시인들이 뒷짐 진 채로 침이나 뱉은 진정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서울’이라는 공간은 그것이 유토피아냐, 디스토피아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는 실제적인 삶의 조건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은 1980년대를 통과하면서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

서울로 나와 살면서 시간의 덫에 치어 발목부터
썩어오고
애초에 삶이 그리 된 것을 알고 보더라도
뱃속에 차오르는 복수는 결단코 이해할 수 없다.
(중략)
북한산 기슭이 파헤쳐지고 있는 현장을
조간에서 보고 답사하여 오는 시각
서울은 들끓는 쓰레기더미들.
―윤성근 「너희들은 모두 좀비족이다」 중에서

언제부터인가 시인들은 말 그대로 ‘서울로 나와 살’기 시작한다. 그들에게 서울은 가장 좋은 교육의 기회와 그를 통한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물적 기반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서울은 그저 ‘들끓는 쓰레기더미들’의 공간으로 인식되어질 뿐이다. ‘좀비’란 1960년대 소비에만 만족하는 뉴요커들을 지칭하는 속어에서 출발한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다른 사람들을 ‘좀비’로 만드는 것뿐이다. 이처럼 의미도 목표도 없는 소비에 골몰하는, 골몰하게 하는 공간으로서 ‘서울’은 부정적으로만 인식될 뿐이었다. 시의 기능이 사회 문화적 비판에 있다고 믿는 이러한 믿음은 손쉽게 나/너희를 가름한다. 그 내용과 소재가 이러저러한 말로 치장되어도 속내는 한결같을 뿐이다.

서울의 클리토리스 남산
거대한 주사기처럼 스포이트처럼
발광하며 문명을 주사하는 타워
어둠이 내리면 연꽃처럼 피어나는 광고
여관 개업식 날 만국기를 다는 곳
서서히 사람들을 처형하는 독가스
합법적으로 내뿜으며 질주하는 자동차
현재의 인구와 작금의 교통사고 현황과
환경오염도와, 일기예보와, 활자뉴스와……
순간적 인식과 찰나적 망각을 종용하는
슬픔과 아픔이 숙성될 수 없는
정서의 겉절이 시대
적당량의 희망과 고통과 죽음을 투여 받아
전신이 무감각화된 서울,
―함민복 「백신의 도시, 백신의 서울」 중에서
서울 올림픽, 단군 이래 최대의 민족적 행사라는 요란스러움과 몇 몇 대중가수들의 ‘예찬송’, 그리고 민선시장의 등장 등등, 서울이 아무리 변화를 갈망해도 시인들에게 그 공간은 ‘여관 개업식 날 만국기’를 다는 우스꽝스러움으로 읽힐 뿐이다. 여기서 필자는 과연 우리 시인들에게 ‘공간’(함성호 시인처럼 ‘건축학’이 전공인 시인을 제외하고)에 대한 현대적 인식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현대적 삶의 조건이란 ‘시간’이 ‘공간’ 속으로 함몰한다는 것인데, 이 쉬우면서도 무거운 명제를 과연 오늘의 시인들은 존재 조건으로, 또는 한계 상황으로 체험하고 있기는 있는 것일까? 어쨌든 서울이라는 공간은 식모살이, 날품팔이로 시작해서 왠지 주눅들게 하는 공간, 그러면서도 저 자신도 ‘전신이 무감각화된’ 공간이라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 ‘파리’를 예찬하면서 ‘서울’을 비판하는 이러한 아이러니가 각종 고상한 이름으로 횡행했다는 것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는가.
3. 씁쓸한 등장과 화려한 퇴장-청계천
우리는 모두 무능하거나 무감각했다. 온몸이 콘크리트로 감싸이는데도 말이다. 1978년 복개가 마장동까지 확장되면서 박태원의 「천변풍경」에 등장하는 아낙들의 빨래터로서의 청계천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청계고가도로는 야심이었다. 아현고가도로에 이은 두 번째 고가도로였다. 첫 번째 도시고속도로이기도 했다. 우리도 미국처럼 자동차를 타고 바람처럼 도시를 질주한다는 도시 고속도로는 가슴 벅찬 계획이었다. 허공을 질주하는 도시의 초현실이었다. 그러나 도심으로 자동차를 불러들이는 일이 마약임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도시의 주위를 순환하는 고속도로는 필요해도 관통하는 고속도로는 위험하기만 한 발상이다.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은 3․1빌딩에는 주차장도 없는데 자동차를 불러들이기만 했다.”(서현, ꡔ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ꡕ, 효형출판사) 는 한 건축가의 말처럼, 우리는 삶의 여유 대신 야심을 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쓰레기밭에서 장미가 피어오르듯 복개된 청계천과 고가도로를 둘러싸고 새로운 도시적 감수성의 싹이 돋아날 수 있었다.

회색 하늘의 단단한 베니어판 속에는
지나간 날의 자유의 숨결이 무늬져 있다.
그리고 그 아래 청계천엔
내 허망의 밑바닥이 지하 도로처럼 펼쳐져 있다.
내가 밥 먹고 사는 사무실과
헌책방들과 뒷골목의 밥집과 술집,
낡은 기억들이 고장난 엔진처럼 털털거리는 이 거리
내 온 하루를 꿰고 있는 의식의 카타콤.
―최승자 「청계천 엘레지」 중에서

좀 비약이기는 해도 드디어 우리는 ‘의식의 카타콤’을 갖게 되었다. 한강의 수면 위로 흘려보내야만 했던(실제로 우리 시에서 마포나 뚝섬, 잠실은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가?) 어두운 기억들을 이제 비로소 복개된 청계천, 그 비좁고 칙칙한 공간 아래 꽁꽁 숨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서울이라는 공간이 제 무덤(카타콤)을 만들고 나서야 비로소 ‘헌책방’, ‘술집’, ‘밥집’ 등의 정겨운 장소로 되살아날 수 있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니라 할 수 없다.

나는 세운상가 키드, 종로 3가와 청계천의
아황산가스가 팔 할의 나를 키웠다
청계천 구루마의 거리, 마도의 향불 아래
마성기와 견질녀, 꿀단지, 여신봉, 면도사 미스 리
아메리칸 타부, 애니멀, 뱀장어쑈, 포주, 레지, 차력사……

고담市 뒷골목에 뒹구는 쓰레기들의 환희, 유혹
나의 뇌수는 온통 세상이 버린 쓰레기의 즙.
몽상의 청계천으로 출렁대고
쓸모없는 영혼이여, 썩은 저수지의 입술로
너에게 무지개의 사랑을 들려주리
난 구정물의 수력발전소
난지도를 몽땅 불사른 후의 에너지
―유하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중에서

이 시에서는 청계천, 또는 청계천 주변에서 공급한 저급문화(나는 개인적으로 이 문화를 ‘키치’, 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크’라고 부르고 싶다.)에 대한 시인의 탐닉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이처럼 복개된 이후의 청계천은 나름대로의 문화를 형성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필자는 기억한다, 참고서비를 삥치기 위해서 청계 7가 헌책방을 헤매던 시절을, 그 시절은 나름대로 성장의 과정에 있는 내게 얼마나 유쾌한 모험이고 탐험이었는가를. 결국 그것의 내용물의 가치는 논외로 하고, 복개된 청계천과 고가도로는 삶의 일상적 조건으로서 시의 영역으로 투사되기에 족한 것이었다.
4. ‘상징적 풍요로움’으로 가득찬 미래
서울시는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그 사업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청계천 복원은 서울시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가적인 문제이며 청계천복원사업은 21세기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과업이다. 청계천 복원이 이루어지면 서울은 친환경적, 인간중심적 도시 공간으로 바뀔 것이다. 이것은 서울이 21세기 도시 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도하고, 서울의 이미지를 일신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 문화 유적이 복원되면서 서울은 600년 역사성이 회복되고,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문화도시로 자리 매김을 하며, 청계천은 국내외 관광객이 즐겨 찾는 휴식처이자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청계천 복원으로 주변 환경이 개선되고, 서울은 동북아의 중심도시, 국제적인 상업도시, 금융거점도시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이 같은 환경 복원사업은 서울의 얼굴을 바꾸고 서울시민들에게 미래의 꿈과 희망을 줄 있다.”(청계천복원추진본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창한 의의의 그 이면에 최소한 21세기의 도시 공간은 그 어떠한 전반적 사회 목표와도 필연적 연관이 없는 심미적 목적이나 원리들에 따라 형성된다는 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 공간을 사회 목표에 따라 계획적으로 분할할 수 있다는 생각이 결국에는 청계천 복개와 고가도로라는 흉측한 괴물을 탄생시켰음에 대한 반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복원되는 공간에 대한 구상을 살펴보면 약 2km씩 나눠 ‘열린 박물관’, 전시 문화의 공간, 식물 군락지 등을 만들겠다는 야심 찬 의욕이 엿보인다. 이른바 ‘반생태적’ 도시 패턴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드러난다. 그러나 무릇 문화란 형식이면서 동시에 내용이고, 내용이 형식을 만들어가며, 그 형식이 내용의 테두리를 다시 만들어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전통문화의 거리 인사동에 양담배를 팔지 않는 상인들과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혼재해 있고, 이름도 무색한 ‘대학로’에 왜 밤이면 밤마다 취객들로 넘쳐 나는지 우리는 심각하게 반성할 시점에 도달하고도 한참을 더 나왔다.
그러므로 청계천복원사업은 서울의 경제적 거점의 재조정이나 멈춰버린 성장 엔진에 다시 연료를 주입하는 식의 사고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나는 묻고 싶다. 당신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고향’을 서울에 옮겨놓을 수는 없는가, 서울에서 그 이미지를 느끼고, 눈물 글썽이며 내 유년은 청계천 맑은 물과 함께 흘러갔다고 되뇌일 수는 정녕 없는가고.

백인덕
1964년 서울 출생
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한밤의 못질'
한양대, 한양여대 강사
본지 편집위원

추천1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