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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신작시/이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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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알 수 없어요
―까치집 1
이른 봄날이었다. 초록이 봄볕에 실눈을 뜨고 있었다. 초록에 이끌려 창밖을 내다보다가 변압기 사이에 집을 짓는 까치 두 마리를 보았다. 부부인 듯한 그놈들이 부지런히 집을 짓고 있었다. 번갈아가며 작은 나뭇가지 하나씩 물고는 먼저 다른 전봇대 위에 앉아서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핀 뒤에 누가 볼세라 얼른 현장으로 달려가서 한켜 한켜 울타리를 쌓아 올렸다. 집이 다 될 때까지 그랬다. 며칠째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느 날 문득 내 머리끝이 쭈뼛 치솟았다. 멀리서 제 행동을 지켜보는 나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던 까치들처럼 어줍잖은 거푸집 하나 짓는 시늉이나 하는 내 모습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뒤통수를 때렸다. 세월의 난간을 잡고 아슬아슬 걸어가는 이 길을 누군가 처음부터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두려움이 고압 전류처럼 흘렀던 것이다.
알 수 없어요
―까치집 2
도심의 까치 한 쌍이 전봇대 위에 간신히 집을 한 채 지었다. 과학을 모르면서도 과학적으로 집을 지었는지 여름 태풍에도 끄덕없이 튼튼한 보금자리가 되어주는 듯하였다. 까치부부가 다정히 사랑을 나누고 알도 낳아 얼마 후 새끼들도 태어났다. 새끼들이 자라서 날갯짓을 할 때쯤 된 어느 날이었다. 일군의 전공들이 전기공사를 하면서 까치집을 말끔히 뜯어내 버렸다. 누전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까치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공허만이 그 주위를 맴돌았다. 날이 저물고 어둠에 묻힌 내 몸 속까지 공허가 흘러 들어와 고이기 시작하였다. 이내 내 몸을 가득 채운 공허가 회오리로 변하더니 나를 흔들어댔다. 뚱뚱한 내 몸이 뿌리째 흔들렸다. 무서웠다. 나도 저 까치집처럼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한 채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테지.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누전을 일으켜 그들을 깜깜하게 만들지도 모를 테니까. 천만 리 날아갔던 까치떼들이 내 몸 속으로 날아들어 집을 짓고 있었다. 더욱 무서웠다.
이상호
․1982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금환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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