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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신작시/이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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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80회 작성일 05-03-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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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봉

불안한 동거



이미 저질러진 동거였다 쫓기듯
살림을 합치기로 결심하면서
맨 먼저 손가락 꼽은 것은
끼니끼니 먹고사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그와 나 사이엔, 순간접착제로는 붙일 수 없는, 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직은 내일이 남아 있음으로, 눈 딱 감고 참기로 한 것이었다 내일이 다 지나고도 또 내일이 남아 있으면, 눈 딱 감고 또또 참아낼 수밖에…… 더 이상 내일이 남아 있지 않으면, 깨지겠지 찢어지겠지 갈라서겠지 내일을 생각지 못한 불륜이었다 자식들 먹여 살리기 위해, 살림을 합치기는 했지만, 마음속 갈대들 다 베어내지는 못한 시간이었다 하여, 문득문득 되뇌곤 했다

불안한 동거의 짝이여 네 우격다짐으로
길 잃은 시간, 비틀거리고 있다
다리 부러진 염소처럼 절룩이고 있다
오직 밥으로 뒤얽혀 흔들리는 살림
푸줏간의 돼지고기처럼 쭈욱 찢겨나가고 있다.






항복



사과나무에 대인지뢰가 열리고, 감나무에 수류탄이 열리는 해가 있다 세상이 온통 전쟁터인 해, 그런 해가 오면 어쩌나

대추나무에 절망이 열리고, 밤나무에 허무가 열리는 해가 있다 세상이 온통 싸움판인 해, 그런 해엔 애간장 다 녹아 버린다

올해도 전차 포탄, 십자포화로 쏟아져 내려 세상 그만 캄캄하다

함부로 찢겨진 가슴에선 피보다 진한 붉은 연기가 솟아오른다 이럴 땐 우선 꽁무니부터 빼고 봐야 한다

어떻게 저 무서운 제국과 마주 싸워 이길 수 있단 말인가

항복, 항복! 두 손을 번쩍 들어 보인다 그래도 제국은, 절망과 허무를 장진한 기관단총, 따르르따르르 쏘아댄다

무진무진, 올해도 세상 가득 안개더미로 덮여 있다.

이은봉
․1953년 충남 공주 출생
․1984년 ≪창작과비평≫ 신작시집 ꡔ마침내 시인이여ꡕ로 등단
․시집 ꡔ좋은 세상ꡕ ꡔ봄 여름 가을 겨울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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