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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신작시/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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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영
마흔넷에 나는
집이 떠나갔다.
아버지 가신 지 딱 삼 년 만이다. 아버지 사십구재 지내고 나자, 문득 서까래가 흔들리더니 멀쩡하던 집이 스르르 주저앉았다. 자리보전하고 누워 끙끙 앓기 삼 년, 기어이 훌훌 몸을 털고 말았다. 나는 눈물 흘리지 않았다. 하필이면 이렇듯 날씨 매운 날 가시는가, 손끝 발끝이 시려왔을 뿐이다. 실은 그날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 숨소리 끊기자 모두 다 빛을 잃었다. 아버지 손때 묻은 재떨이와 붓, 벼루가 삭기 시작했고 문고리까지 맥을 놓았다. 하여 사람들은 집이 떠나감을 한 세계가 지는 것이라 하는가.
두 손 모두어 경배하고 나이 마흔넷에 나는 집을 떠난다.
발뒤꿈치 치켜들고
나는 시를 어떻게 써보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냥 썼다. 시건 달콤하건 쓰건 써지는 대로 여기저기 갖다 널었다. 그러면 어쩔 때는 햇볕이 다가와 쓰다듬고 가고 또 어쩔 때는 빗줄기가 한 줄금 내리그었다. 간혹 맞바람 쳐와 뒤집어지는 날도 있었다.
며칠 전이었다. 이성복 시인이 <아, 입이 없는 것들>로 내 눈두덩일 냅다 후려갈기며 속삭였다. 알겠어?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더니 신경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단어 하나가 퍼뜩 떠올랐다. 긴장!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시는 발뒤꿈치 바짝 치켜들고 써야 하는구나, 풀 잔뜩 먹여 햇볕 짱짱한 날 빨랫줄에 널어야 하는구나 하고. 친구와 점심 먹으며 나는 진지하게 긴장을 늘어놓았다. 친구는 간장 대신 긴장을 쳐대는 나에게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날 밤, 나는 밤새도록 토사곽란에 시달렸다. 긴장이 그만 내 속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것이다.
정우영
․1960년 전북 임실 출생
․1989년 ≪민중시≫로 등단
․시집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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