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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신작시/김왕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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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노
청산이 소리쳐 부른다고
왜 모르겠는가 청산이 소리쳐 부르는 것을 직장 일에 쫓길 때 소리쳐 부르는 청산의 목소리를 누구는 화답해 청산으로 청산으로 가고 남겨진 우리야 빈껍데기 같지만 화답 못 한다 해서 듣지 않는다고 청산아 결론 내리지 마라 혼자 토라져 구름 속으로 비속으로 사라지지 마라 청산아 소리쳐 소리쳐 불러라 청산이 부름으로 열려있는 귀 청산이 부름으로 열려 있는 마음 청산엔 찔레꽃으로 네가 피고 청산엔 낙화유수로 네가 흐르고 청산아 청산아 소리쳐 불러라 세월 속에 쪼그려 울던 우리 그림자를 짓밟혀 어혈 풀리지 않는 가슴을 청산아 청산아 네게 가 먼눈을 씻고 눈뜬 심봉사처럼 청산아 청산아 내 청산아 소리치고도 싶어라 청산이 소리쳐 부른다고 왜 내가 듣고 있지 않겠는가 모든 걸 버리고 가서는 육탈된 하얀 뼈를 묻고 싶은 청산아 청산아 내 청산아
붉은 요일의 소녀들
25시 아니면 붉은 요일 5계절이 이 거리에 있다. 25시 악의 시간 붉은 요일 죄의 요일 5계절은 피의 계절, 이 도시를 탈출하기 위한 저 질주 이 도시 밖으로 빼돌리려는 저 꽃의 시간 구름의 그늘 순결한 아침 25시 아니면 붉은 요일 5계절이 이 거리에 있다. 혼돈의 날이 이어지고 있다. 짐승인지 사람인지 자신을 망각하고 헐떡이는 저 붉은 혀 욕망을 채팅하는 긴 손가락 저 인신매매하는 숨은 얼굴 악의 자금을 밤새도록 지급해 주는 현금 자동 인출기 25시 편의점 25시 찜질방 25시 심야극장 종을 울리어 하루를 마감하고 월요일을 불러오지 않는 붉은 요일 붉은 요일은 정액과 마약과 술로 얼룩진다. 붉은 요일은 음란과 불륜으로 장식된다. 25시 아니면 붉은 요일 5계절이 이 거리에 있다. 저 5계절에 낙태되는 것들 적출물로 버려지는 윤곽이 뚜렷한 태아들 저 5계절에 무섭게 우거져가는 음모 5계절로 귀소하는 우리가 날린 피의 새들 널려 있는 피 걸레 피의 고가도로 피의 청계천 이 소돔과 고모라의 시간대 5계절에 재배되는 피의 허브식물 피의 들꽃 이 도시를 누리기 위해 벌이는 저 피의 축제 피의 가수 피의 팬 어디 가나 피의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25시 아니면 붉은 요일 5계절이 이 거리에 있다. 이 도시 시민증을 발급받기 위해 상행해 오는 기차들 대형차들 자가용들 불법체류 하는 어두운 눈동자 25시가 계속되는 각 구들 붉은 요일에 늘어놓은 빨래에 저 선명한 죄의 무늬 저 죄의 패션 죄의 디자이너 붉은 요일을 즐기기 위해 집중되는 발걸음 남녀노소 없이 지하철로 쏟아지는 붉은 요일의 사람들 안전선 밖에서 밀려나는 붉은 요일의 승객들 리모델링 되는 붉은 요일의 아파트 붉은 요일로 관광 오는 이방인들 그들의 수발을 자청하는 붉은 꽃다발을 든 붉은 요일의 소녀 소년들 붉은 요일의 소녀가 내지르는 굿 굿 굿 지금 나의 좌표는 붉은 요일 한가운데 지금도 붉은 요일의 태양이 이글거린다. 붉은 태양계에 붉은 징후가 있다. 붉은 은하수가 흐른다.
김왕노
․1957년 포항 출생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슬픔도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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