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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신작시/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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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밀폐된 너를 본다
두 팔 벌려 안락한 침실에서 잠을 잤다
그래도 자꾸자꾸 잠이란 놈이 끈질기게
눈 속으로 따라 들어온다
너는 가슴으로 들어오거나 말거나
근심도 너도 삶도 다 잠속에 구겨넣고
동공에 동동 떠있는 밥알도 잠속에 말아 먹는다
그러다가 삶의 시퍼런 칼날을 본다
독기도, 광기도 칼금 채우고 싶다
터벅터벅 내일을 걷는다
병원문을 들어선다
밀폐된 너가 다시 들어온다
하늘이 노랗다
세상은 온통 회색빛 먹구름
너를 열고 싶지는 않아
오늘은 뒷걸음질치고 싶다
그래도 숙명처럼 너를 열어야만 해
사람들은 젊은이가 가엾다고 한다
무엇이 가여운지 모르지만 혀끝을 끌끌 찬다
아직 갈 길이 멀리 있다고 하면서
너의 향기
눈을 감고 있어도 쏴하게 달려오는
너의 향기의 주소지를 나는 모른다
고독의 전쟁터에서
피터지게 싸울 때는 모르겠더니
빗방울처럼 수많은 자유를 얻어
슬픈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는 밤
너는 자스민 향기가 되어
객혈하는 뜨거운 가슴을 치며
목을 조른다
여직 비밀스럽게 간직해 온 너와 나의 언어
부끄러운 몸짓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삶의 고행
생애를 걸고 잘해 주겠다는 맹세가
희미해진 건 오늘 순전히 내 탓이라 믿으며
너의 젖은 눈빛을 떠올린다
꽃잎들도 쓰러진 밤
너의 향기가
젊음 한쪽 모퉁이를 무너뜨린다
아직 널 잊어버리기엔
너무나 아득한 고통의 나날
스스로 감내하는 법을 터득하며
고집스런 집착의 싹
자르려고 발버둥 쳐봐도
또 울렁거리며 다가오는
사랑의 빛줄기 어쩌란 말인가
나는 어쩌란 말인가
하루하루 파도치는 고통의 분량을
무엇에게 하소연한단 말인가
김정숙
․1960년 전북 정읍 출생
․≪시와사회≫로 등단
․시집 '속살 예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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