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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초점> 미국, 그 신화와 현실 사이/표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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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그 신화와 현실 사이
―한스 디터 겔페르트의 '전형적인 미국인: 미국과 미국인 제대로 알기' 읽기―
표 정 훈
(번역가)
1. 미국을 말하는 책이 계륵인 까닭
전쟁은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던 결과대로 끝났다. 근육질의 팔뚝을 흔들며 으시대는 미국의 꼴이 볼썽 사나운가? 역시 미국이야말로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힘을 갖춘 나라라는 일종의 경외감이 드는가? 각자의 소회야 어떻든 미국은 적어도 군사력에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임을, 사실상 거대한 제국임을 다시 한 번 과시했다.
우리 입장에서 그 제국은 좋든 싫든,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여러 가지 변수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절대적인 상수에 가까운 게 현실이다. 반미론과 친미론이 대립하는 가운데 용미론(用美論), 즉 반미나 친미 모두 냉전 시대의 유산이라는 인식 아래 우리의 국가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미국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실용주의적 중도론도 있다. 그런가 하면 탐미주의(耽美主義), 즉 미국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관심은 접어두고 미국적인 것을 막연히 동경하면서 따르고자 하는 태도를 지닌 사람도 아주 없지는 않을 듯하다.
각자의 미국관이 어떻든 미국을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성, 요컨대 노암 촘스키나 하워드 진 같은 일종의 내부 고발자의 시선은 물론, 그런 고발자들로부터 고발당하는 미국 현 정부 내 주류 강경파의 시선, 더 나아가 미국이라는 하나의 현상을 이루는 다양한 문화적, 정치적 요소들을 두루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우(一隅)에 치우친 정보를 바탕으로 미국을 바라볼 때, 좁은 대롱으로 미국을 바라볼 때(管見), 실상이 아닌 허상으로서의 미국을 세워놓고 각자의 미국관을 내세우는 꼴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일우와 관견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걸 도와주는 미국 관련 도서는 얼마나 있을까? 우리나라 도서 시장에서 미국이라는 주제는 속된 말로 재미보기 힘든 주제였던 게 사실이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우선 미국적 삶의 공간이 주는 생경함도 하나의 장애물이다. 특히 미국 저자가 미국을 주제로 미국 독자들을 대상으로 집필한 도서의 경우, 우리나라 독자들로서는 일종의 이문화(other culture) 체험을 사뭇 강도 높게 치러야 하는데 그게 유쾌한 일만은 아니다.
두 번째로, 우리의 일상적 삶의 공간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미국적 삶의 양식 혹은 미국 문화의 편린(본령이 아닌 편린, 맥도널드, 할리우드 영화, 코카콜라, 스타벅스 등등)들 탓에, 우리는 미국을 객관화․상대화시켜 바라볼 수 있는 시좌(視座)를 설정하는데 어려움을 겪곤 한다. 호불호의 감정과는 별개로 미국은 이미 어느 정도 우리 안의 미국, 즉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 미국화된 우리인 것이다.
세 번째로, 분단이라는 우리의 특수한 역사적 체험 속에서 미국은, 때로는 혈맹으로 때로는 음험한 제국주의의 모습으로 양분, 각인되어 있다. 새롭게 밝혀진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미사일 방어계획 추진, 부시 행정부의 힘을 위주로 하는 외교 정책 기조, 주한 미군 독극물 방류 사건, SOFA(주둔군 지위협정) 협상을 둘러싼 갈등, 미군 궤도 차량의 만행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최근의 이러한 일련의 사건 및 추세들도 추세들이지만, ‘8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이 더 이상 우리이게 자애롭기만한 존재가 아님을 새삼 깨달은 사람들이 많다.
그 때문일까? 미국적인 것의 우월성을 조금이라도 부각시키는 책, 예컨대 자유, 기회, 풍요, 모험 혹은 개척 정신, 가족의 가치 강조 등, 미국이 내세우는 긍정적인 트레이드마크 혹은 이미지들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한다. 그런 소재들의 반대편에는 마약, 범죄, 인종 문제, 총기 사고, 도덕적 해이(섹스), 서부 개척 시대의 인디언 말살, CIA가 세계 각지에서 벌인 각종 음모, 불공정하기 짝이 없는 대 중동 정책, 이런 등속의 소재들이 자리잡고 있다.
요컨대 어떤 관점 어떤 각도에 보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천변 만화할 수 있는 게 바로 미국이다. 결국 미국이라는 주제는 우리 도서 시장에서 버리자니 아깝고 챙기자니 득이 별로 없는 주제, 즉 계륵이 되어 있다. 그럼에도 미국이라는 주제의 중요성에는 변함이 없다. 알아야 한다 혹은 알려야 한다는 당위와, 좀처럼 알려 하지 않는다 혹은 알리기 힘들다는 현실 사이의 괴리. 그런 괴리를 메우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책으로 얼마 전 번역, 출간된 ꡔ전형적인 미국인: 미국과 미국인 제대로 알기ꡕ(한스 디터 겔페르트 지음, 이미옥 옮김, 에코리브르)를 살펴보자.
2. 미국, 역사 대신 신화를 택한 자화상
우선 2002년에 나온 원서(ꡔTypisch Amerikanischꡕ, Verlag C. H. Beck oHG)가 일종의 외부 관찰자, 그러니까 미국인이 아닌 독일인 저자가 독일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독일어로 집필하여 독일 출판사에 출간한 책이라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저자 한스 디터 겔페르트(Hans-Dieter Gelfert)는 지난 2000년까지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영국학과 교수를 지냈고, 퇴임 후 프리랜서 저술가로 활동해 왔다. 그는 이 책 외에도 자신의 연구 분야를 살린 ꡔ전형적인 영국인ꡕ, ꡔ영국에 관한 짤막한 문화사ꡕ, ꡔ영국 문학에 관한 짤막한 이야기ꡕ 등,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교양 도서를 다수 집필한 바 있다.
저자가 독일인, 즉 유럽인이라는 사실이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을 결정짓는다. 저자는 미국적 특성을 유럽과의 대비에서, 즉 일종의 비교 문화론적 관점에서 파악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유럽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거나 혹은 그것을 거부하고 싶을 때는 과거를 돌이켜 보곤 한다. 바꾸어 말하면 유럽인들은 자기 조회의 근거가 되는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그 역사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유의미하게 사용된다.
이에 비해 신생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신세계의 하얀 종이 같은 자화상(자기정체성)밖에 볼 게 없었다. 예컨대 유럽은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고 갈등하며 때로는 타협하기도 했던 오랜 역사를 지닌다. 보수적 자화상과 진보적 자화상, 이렇게 두 가지 자화상을 자신들의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은 비록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사실상의 양당 정치 체제를 갖추고는 있지만, 그것을 유럽의 보수 및 진보와 동일시하기는 곤란하다. 요컨대 미국인들은 사실상 하나의 자화상 위에서 경쟁과 갈등과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우리 현실에 대입시켜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 현대사 속에서 한민당, 자유당, 신민당, 공화당, 민정당, 평민당, 민주당, 한나라당, 자민련 등 무수한 정당이 등장하면서 보수, 진보, 개혁 등 나름의 노선을 표방했지만 사실상 하나의 자화상 즉 보수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이에 비해 진보당, 사민당, 민노당, 사회당 등 정강정책의 측면에서 진보에 속하는 정치 세력은 늘 주변부에 머물러 왔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현실 속에서 우리 역시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하나의 자화상만 지녀왔던 것이다. 진보라는 다른 자화상은 반공 이데올로기 속에서 철저하게 배제되고 탄압 당해왔다.
바로 이 점에서 미국은 우리와 다르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은 한편으로는 보수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적이다. 상반된다고 볼 수 있는 두 가지 가치관이 동거하는 게 평균적인 미국인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상반되는 것들, 모순적인 것들의 동거라면 불안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미국인들은 어느 나라보다도 일치단결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어떤 의미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뿌리를 역사적으로 조회하기 힘들다는 점이 그런 일치단결의 요인인 셈이다.
저자는 미국인들의 전반적인 보수성을 생활 속의 예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흥미로운 것은 기술적으로 장애가 발생할 경우에 미국인들이 특히 보수적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미국인들은 여전히 피트, 야드, 마일 등의 단위로 길이나 거리를 측정한다. 킬로그램보다는 온스나 파운드로 무게를, 파인트와 갤런으로 부피를, 온도는 화씨(F)를 기준삼아 측정한다. 국제적으로 보다 널리 통용되는 단위와 기준을 무시하고 고집스럽게 별도의 것을 지키는 보수성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어쩌면 비교적 짧은 역사를 지닌 국가이기에 특별히 과거 시대의 유물을 보존하고자 하는 욕구가 더 강한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연방제인 이 국가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국가보다 안정을 위해 전통이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미국의 짧은 역사는 ‘미국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실마리이기도 하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다종다양한 인종들이 살고 있는 짧은 역사의 나라. 이런 나라에서 미국인이란 스스로를 미국인이라고 의식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미국인이라고 스스로 의식한다’는 것은 멜팅 포트(인종의 용광로 혹은 도가니)라는 미국 신화, 즉 다양한 문화와 종교와 언어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뒤섞인 끝에 결국 하나(미국)로 융합된다는 믿음을 수용한다는 걸 뜻한다. 미국인들은 역사 대신에 신화, 즉 자기정체성을 조회해 볼 수 있는 역사가 없는 백지 위에 멜팅 포트의 신화를 그려 놓았다. 그 신화의 실상은 온갖 모순적인 것들, 상반되는 것들의 기묘한(관찰자의 입장에서 볼 때) 동거라는 게 저자의 통찰이다.
3. 청교도주의, 계몽주의, 그리고 미국적 애국주의
그렇다면 미국이라는 신화의 근간을 이루는 가치관은 무엇일까? 저자는 청교도주의라고 말한다. 미국인들은 종교적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탔던 청교도들의 후예로서, 자신들이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선민(選民) 의식을 굳게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9.11 테러 사건 이후 미국의 많은 광고판을 장식한 문구는 다름 아니라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였다.
세속주의의 첨단을 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미국인들이지만, 독일인 가운데 18%가 악마의 존재를 믿는 데 비해 미국인들은 69%가 믿는다고 한다. 심지어 미국 기독교인의 40%는 학교 교과 과정에서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창조주의자들이다.
그들이 세계 도처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의무를 갖고 있다고 굳게 믿는 것은 메이플라워호를 탔던 청교도들의 후예로서 자신들이 신으로부터 선택받았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기독교의 하느님 혹은 신적인 존재를 믿는 미국인이 전체 인구의 96% 정도라니 세속주의와 신앙심, 진화론이라는 과학과 창조론이라는 종교적 신앙이 기묘하게 동거하는 셈이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이러한 청교도주의와 선민 의식은 암흑과 죄악으로 가득한 세계에 자유와 민주주의의 빛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맞닿아 있다. 미국인들 자신은 하느님의 뜻을 지상에 실현하기 위해 악의 무리와 싸우는 전사(戰士)다. 이에 비해 미국에 대항하는 세력은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악마의 하수인이자 물리쳐야 할 적이 된다.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 세계의 경찰이라는 미국인들의 자의식의 뿌리에는 바로 이런 종교적 이분법이 자리잡고 있다. 예배와 기도를 거르는 법이 없다고 알려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이란, 북한, 리비아 등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인들의 이러한 성향은, 아메리카 인디언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부당하게 대우한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로도 드러난다. 자신들의 그런 부끄러운 과거를 비교적 솔직하게 인정하는 편이지만, 집단적인 무의식 속에는 과거에나 현재에나 자신들의 행동은 늘 옳다는 인식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오랜 밀착 관계가 단지 미국 내 유대인 세력의 영향력이나 음모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여기에서 알 수 있다. 미국인과 유대인은 선민 의식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독립의 사상적 기반으로 일컬어지는 계몽주의도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성격이 변했다. 저자는 미국식 계몽주의의 전형으로 제2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을 든다. 개인주의, 민주주의, 분권주의의 기초를 놓은 건국의 아버지이기도 한 제퍼슨은 신을 경외하는 계몽주의자이자 자유라는 기본권을 옹호하는 노예주의자였다는 것이다. 신 중심의 중세적 질서와 사고 방식에 대한 반기가 계몽주의였다고 본다면, 노예 제도가 기본권으로서의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고 본다면, 제퍼슨은 가히 미국적 모순의 전형인 셈이다. 요컨대 유럽 계몽주의의 특성이 의심과 회의에 있는 데 비해, 미국적 계몽주의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상호 모순적인 것의 기묘한 동거는 미국인들 특유의 애국주의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기본적으로 권력을 차지한 사람 혹은 세력을 불신한다. 정치가들이라고 하면 현재 부패한 사람이거나 언제든지 부패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워싱턴 사람들’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국민을 등쳐먹고 사리사욕에 눈먼 부패한 집단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인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바로 그런 불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지난 이라크 전쟁에서도 볼 수 있었듯, 전쟁을 비롯한 국가적 위기 상황이 닥치면 대통령을 필두로 성조기 아래 모여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종의 전 국가적 최면 상태에 빠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9.11 테러사건 이후 미국의 거의 모든 가정이 성조기를 달아놓았다는 사실은 나치 독일의 섬뜩한 국가지상주의의 모습마저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저자는 미국과 독일 두 나라 국민의 애국심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나치 독일 시대 독일인들의 애국심은 히틀러라는 한 사람의 국가 지도자에게 전적으로 복종하는 데 있었다. 이에 비해 미국인들의 애국심은 정부와 정치에 대한 기본적인 불신감을 일단 접어두고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데 전념하고자 하는 태도, 즉 전체를 위해 기꺼이 노력하고자 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미국인들의 애국심에는 권위주의, 전체주의, 국가지상주의의 흔적을 찾기는 힘들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4. 미덕과 아쉬움
이 책 ꡔ전형적인 미국인ꡕ이 지닌 미덕이 있다면, 유럽의 많은 지식인들이 미국에 대해 지닌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견해와는 달리, 비교적 균형 잡힌 시각에서 미국을 바라보고자 노력했다는 점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미국의 집권 세력이나 오피니언 리더 계층, 혹은 ‘잘 나가는’ 집단으로 시야를 좁히지 않고, 가능한 한 평균적인 미국인의 사고 방식과 그것의 배경을 들여다보고자 노력했다는 점이다. 서술 측면에서도 평균적인(물론 이 기준은 모호하기는 하지만) 일반 독자가 이해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평이하다는 장점을 지닌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많은 미국 관련 번역서들과 이 책의 차이점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 미국 관련 번역서의 상당수는 시의성을 고려하여 수입한 것들이 많다. 9.11테러, 북한핵문제, 이라크전쟁 등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태가 발생하거나 진전되는 것에 따른 독서 수요에 부응하는 번역서들이다. 이에 비한다면 ꡔ전형적인 미국인ꡕ은 적어도 내용 측면에서 시의성과는 별 상관이 없다.
물론 아쉬움도 없지 않다. 비교적 많지 않은 분량의 책에서 미국인들의 워낙 다양한 측면을 다루려다 보니 주마간산에 그친 느낌이 든다. 240여 쪽 분량의 책이 50여 꼭지로 나누어져 있다보니, 분석과 이해의 깊이보다는 여러 가지 사항을 문자 그대로 일별(一瞥)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요컨대 이 책은 미국에 관한 세밀화이기보다는 크로키에 가깝다. 물론 크로키라고는 해도 상호 모순적인 것들의 동거라는 틀을 일관되게 적용한다는 점에서 보면, 미국에 관한 이런저런 사항을 단순 나열해 놓은 부박(浮薄)한 인상기 수준의 책들보다는 훨씬 낫다.
표정훈
-서강대학교 철학과 졸업
-번역서 <중국의 자유전통>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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