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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초점> 미국은 불량국가다/오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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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장
댓글 0건 조회 2,788회 작성일 04-01-2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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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불량국가다
―모리스 버만의 '미국 문화의 몰락' 읽기―

오 양 진
(문학평론가)



1.
처음부터 예상된 일이었지만,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3월 20일에 미국의 바그다드 폭격으로 시작된 이라크전은 미국의 일방적 우세 속에서 4월 15일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 승리 선언으로 종결되었다. 미국은 9. 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내세워 그들이 지목한 ‘불량 국가’들을 하나하나 제압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번에는 아프카니스탄을 굴복시키더니 이번에는 이라크마저 자신 앞에 무릎을 꿇리고 말았다. 미국이 역사상 지금처럼 그 위력과 기세가 등등하였던 적은 아마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인들의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를 입힌 9. 11테러는 사실 미국의 패권주의(Pax Americana)에 대한 무슬림들의 오래된 반감의 폭발이자 도전적인 일침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오히려 미국의 패권주의를 더욱 공고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무슬림들의 테러는 그림자 같던 미국의 패권주의적 행보를 노골화시켜 그 실체를 명백하게 드러내도록 만들었다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노골화된 미국의 패권주의가 국제 사회에 가져올 파장과 여파는 보다 심각해 보인다. 미국은 이제 국제사회의 여론뿐만 아니라 일정한 정치적 권한을 지니는 유엔의 결정들마저 쉽게 무시해버리는 ‘오만한 제국’(하워드 진)이 될 것이다. 아프카니스탄 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은 벌써 이라크 전에 반대하는 유엔의 결정을 따르지 않았다.
20세기가 미국화된 세기였다고 한다면 21세기는 어쩌면 미국의 세기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아니 미국의 신제국주의적 기조가 세계의 열강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이는 정치 경제적 활력을 토대로 해서 무난하게 진행되는 것을 보면, 미국의 세기(the century of America)라는 과장된 표현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세계는 미국의 또 다른 주처럼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있는데, 극단적으로 말하면 세계는 미국의 시골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 미국 제품을 구입하는 일로 일상의 일부를 삼는 사람들은 많고 또 세계는 아메리칸 드림의 꿈을 이루게 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시골 촌뜨기들로 넘쳐난다.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서 반미 구호를 외치며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에 참가하거나 시위 도중의 시장기를 가까이 있는 맥도널드 햄버거와 코카콜라로 해결하는 일은 비근한 예일 뿐이다. 우리의 경우도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하면서 미국의 대중 스타에 환호하거나 미국 프로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여전히 문제는 미국의 경제적 문화적 활력이 야기하는 미국화에 있지 정치적 군사적 위력을 발휘하여 세계의 영토를 제국화하려는 미국이라는 국가 그 자체에 있지 않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사회비평가 모리스 버만은 거꾸로 20세기가 미국의 세기였다고 한다면 21세기는 미국화된 세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미국이 문제든 미국화가 문제든 어쨌든 미국의 패권주의적 행보에 따른 그들의 위력과 기세는 이제 거역할 수 없는 것이 되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모리스 버만은 21세기가 미국화된 세기가 될 거라는 지적과는 별도로 ‘미국 문화가 몰락하고 있다’는 다소 좀 엉뚱한 진단을 내놓는다. 우리가 미국이 이라크 전의 승리로 자신의 패권주의를 더욱 공고화시켜가는 마당에 ‘미국 문화의 몰락’이라는 버만의 테제를 선정한 것 역시 엉뚱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모리스 버만의 책 ꡔ미국 문화의 몰락ꡕ(심현식 옮김, 황금가지, 2002)을 검토해 보려는 이유가 전혀 엉뚱한 것만은 아니다. 버만의 진단 또한 엉뚱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모리스 버만의 책은 미국의 패권주의의 근본적 원인이 되어 있는 미국 사회의 문화 변동을 문명론적 시각에서 거시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일종의 유행이 되어 있는 문명들의 충돌이라는 문제틀을 벗어나서 문명 자체의 몰락이라는 문제틀이 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것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우리가 그 책의 논의에 공감했다는 점은 사실 부차적인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

2
모리스 버만의 ꡔ미국 문화의 몰락ꡕ이라는 책은 그 제목에서처럼 미국 문화의 변화들에 주목하고 그 변화들이 미국 사회의 쇠퇴와 몰락의 징후들임을 성찰하는 일종의 문명비평서이다. 그리고 앞으로 21세기가 ‘미국화된 세기’가 될 거라는 버만의 지적을 참조하면, 버만의 책은 곧 쇠락해 가는 미국 문명이 세계화된다는 지적을 통해 인류 문명의 종말이 임박해 있음을 경고하는 이른바 인류 문명의 사망 진단서가 된다고도 볼 수 있다. 아무튼 ꡔ미국 문화의 몰락ꡕ에서 순항하는 미국의 패권주의가 끌어내게 될, 아마도 미국 문화가 번영하고 흥성하리라는 우리의 일반적 예측과 가정은 어이없이 뒤집어진다. 실제로 모리스 버만은 미국이 얼핏 보면 사회의 각 부문에서 에너지와 활력이 넘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미국 문명의 실질적인 쇠퇴와 몰락의 징후들을 숨기고 있는 ‘실체 없는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깊은 우려를 나타낸다. 그에 의하면, 역동적인 미국 사회의 활력과 에너지는 단지 쇠퇴와 몰락의 징후로서 나타나는 미국 문화의 혼란스러운 움직임에 대한 화려한 외피이자 위장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패권주의적 행보를 고집하는 미국의 신제국주의의 야만적 기조가 사실 미국 문화의 쇠퇴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암시가 흐릿하게나마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모리스 버만은 미국 문명의 쇠퇴와 몰락의 문화적 징후들에 대한 암울한 진단만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엉망이 되어버린 미국 문화를 수습하고 바로잡을 대안들과 해법을 내놓는 데도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망쳐지고 있는 미국 문화에 관한 버만의 관심이 무엇보다도 ‘실천적 관심’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다. 모리스 버만은 문명의 쇠퇴와 몰락은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법칙이라고는 하여도 역사적 예에서 보듯이 그 필연적인 과정과 진행은 연속선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 문명의 생존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ꡔ미국 문화의 몰락ꡕ이라는 책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크게 두 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미국 문명의 쇠퇴와 몰락의 문화적 징후들을 진단하는 부분이 그 하나라면 그러한 문화의 병적 징후들을 치유하고 돌파할 수 있는 대안과 해법을 제시하는 부분이 다른 하나이다. 이 책 전체의 목적과 취지를 설명하는 서문을 제외하고 보면, 1장과 2장과 3장은 진단 부분이 되고 4장과 마지막 5장은 해법 부분이 된다. 우선 모리스 버만이 미국 문명의 말기 증세로 진단하고 거론하는 것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오늘날의 경제나 첨단 기술등 외형상으로 나타난 모습과는 반대로 미국 문명은 거의 파산지경에 이르렀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좌익의 경제학자들뿐만 아니라 우익의 경제학자들마저 빈번히 얘기하게 되었을 만큼 미국에서 빈부격차가 지금처럼 격심한 때는 일찍이 없었고, 장기적으로 볼 때 미국이 빈부격차 해소에 그나마 기여해 온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조차 재정적으로 지탱해 나갈 능력이 있는지도 불투명하다. 그런가 하면 미국 국민의 42%가 세계지도에서 일본이 어디 있는지 찾을 줄 모를 만큼 미국 국민의 지적 수준이 극도로 낮아져 국제 사회에서 ‘둔재 생산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은 물론이고, 게다가 기업 주도의 소비주의 문화를 대표하는 ‘맥월드’가 미국 국민의 정신 세계를 정복함으로써 이제 미국은 그야말로 문화적 빈국이 되어버렸다. 모리스 버만은 이러한 경제적 사태와 문화적 현상들은 역사적 사례에 비추어볼 때 문명의 쇠락을 예고하는 문명 말기 증세가 분명하다고 경고한다.
가령 미국 사회와 로마 제국의 말기를 비교하면, 버만은 그 유사성이 상당히 충격적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한다. 로마 제국 말기에는 지금의 미국처럼 경제적으로는 빈부격차가 극심하게 나타났고 중산층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관료 개인과 국방에 들어가는 비용만 하더라도 로마 제국을 파산으로 몰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글을 읽고 쓰는 지적 능력이나 그리스에서 전래된 지식과 학문들은 새로운 시대의 천박한 문화적 조류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리스 버만은 미국 문명의 말기 증세는 그와 같은 역사적 사례의 현대적 반복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는데, 다만 미국의 경우 그 말기 증세는 과학주의와 유물론을 토대로 한 계몽주의의 유산이라는 특수성을 갖는다고 덧붙인다. 물론 그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계몽주의에 대한 비판들을 검토하고 그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그 비판들의 유너바머식 반현대주의적 시각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계몽주의의 문제는 과학 그 자체에 기인한다기보다는 과학이 기업 지배의 상업주의 문화 속에 통합되어 그 맥락 속에서만 진화되어간 탓이 더 크다고 본다. 모리스 버만이 이상적 낭만주의자가 아닌 현실적 모더니스트라는 사실을 여기서 잠시 확인할 수 있다. 어쨌든 버만에 의하면, 미국은 자본주의 속에서 돌연변이가 된 과학 기술을 배경으로 경제적으로 이른바 맥월드 단계에 접어들게 됨으로써 가치 있는 지성에 대한 거부를 전면화하였고 또 지성의 유일한 영역인 교육마저 상품화 과정의 일환으로 질적 저하라는 문제에 부딪치고 말았다. 모리스 버만은 미국이 이제 바람직한 삶과 상품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욕망의 문화로 변질되어 쇠퇴 일로에 있다고 개탄하며 단순한 문화적 파산을 넘어 미국 문명은 결국 몰락과 종말을 맞게 될 거라고 그 위태로움을 거듭 환기시켜 보여준다.
그러나 모리스 버만은 미국이 문명의 성쇠라는 역사의 숙명을 거스르지는 못하겠지만 망해 가는 로마 제국 속에서 문화의 보존을 수행하여 그 문화를 우리에게 상속한 수도사들을 예로 들어 미국 문명의 완전한 실종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데 체념 섞인 희망을 건다. 그것이 일명 버만이 제안하는 ‘수도사적 해법’이다. 물론 그는 오늘날의 미국 사회와 과거 로마 제국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어서 로마 제국의 수도사들처럼 스스로를 사회와 격리시켜 로마 문명의 위대한 업적인 책과 필사본들을 모으고 베끼는 작업을 똑같이 수행할 수도 없고 또 수행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버만에 따르면, 상업주의의 시선을 받기 쉬운 정치적 운동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그 로마의 수도사들과 같이 일반적인 생활 방식의 차원에서 현 미국 사회가 지니는 훌륭한 계몽주의의 지적 유산들을 보존하고 후세에 전하는 수도사적 역할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가령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의 폭력을 신랄히 비판하는 반항적 영화 제작자 마이클 무어, 전과자들에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가르치는 얼 쇼리스, 유람선에서 실내악 콘서트를 즐길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꾼 올가 블룸 등 버만이 생활의 질을 조용히 변화시킨 현대판 수도사들의 예를 유쾌하게 거론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모리스 버만은 이러한 작은 수도사적 노력들이 금방 미국 사회의 병적 징후들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래에 적절한 시기가 도래하면 그런 노력들은 큰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고 기대에 차는 듯 보인다. 그가 혼돈 이론을 통해 다가올 암흑 시대를 설명하는 월러스틴을 인용할 때는 더욱 자신의 해법에 어떤 확신을 가지는 듯도 하다. 월러스틴에 의하면 사회적으로 안정된 시기에는 커다란 변동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이 미치는 영향은 비교적 작지만 시스템이 균형 상태에서 벗어나면 작은 변동이라 하더라도 지대한 영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리스 버만은 그런 해법과 대안들이 하나의 부질없는 안간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3
모리스 버만의 ꡔ미국 문화의 몰락ꡕ이라는 책은 일단 미국 문명의 병적인 징후들을 진단하고 미국 문명이 사망하지 않을 수 있는 처방을 성실히 제안한다는 점에서 실천적 관심이 큰 가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버만은 분명 무책임하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문화의 병적 징후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해 보여주기만 하는 책이 무책임하고 가치 없다는 것은 아니다. 버만도 인용하고 있는 ꡔ죽도록 즐기기ꡕ(닐 포스트만)라는 책은 어느 곳에선가 이런 말을 기록한 적이 있다.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것이 덜 위험하다.” 그러나 버만과 그의 책은 이론적 관심에 국한되지 않는 실천적 관심까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분명 훌륭한 지성이고 좋은 책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가 제안하는 수도사적 해법 자체가 얼마나 현실성을 갖는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버만이 그 대안과 해법에 회의적이라는 사실은 별도로 하고 말이다. 그런가 하면 쉽게 실현 가능성을 점칠 수 없는 대안과 해법들에 골몰하느라 문명과 문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모리스 버만의 책은 지금 기세 등등해 있는 미국의 패권주의가 실은 문명과 문화의 쇠락에 근거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암시를 통해 미국 패권주의의 아이러니컬한 이면을 들여다보게 해준다는 측면이 있다. 사실 현 정세에 비추어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흥미를 느끼는 부분이 바로 그 측면이다. ꡔ미국 문화의 몰락ꡕ에 따르면, 미국은 당장의 승리자일지는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패배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판단은 실제로 지성에 대한 사회의 전반적 거부라는 쇠망의 문화적 징후들을 보여주는 것을 볼 때, 미국이 문화적으로 불량한 국가일 수밖에 없다는 버만의 진단에 그 근거를 둔다.
그러나 ꡔ미국 문화의 몰락ꡕ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남의 나라의 쇠락이라고 강 건너 불을 보듯 편안하게 미국 문명의 현 문화적 상황을 바라볼 수 없다는 데에 우리의 우려와 고민이 있다. 상업주의 문화의 광란 속에서 지성에 대한 사회적 거부가 만연하고 있는 미국 사회를 들여다보면서 왜 우리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그것은 전 세계의 문제지 단순히 미국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이웃인 일본에서도 그러한 지성과 교육의 질적 저하의 문제가 심각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ꡔ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ꡕ라는 책에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다만 다카시의 경우 문화적 쇠퇴의 문제는 문명론의 차원에서 취급되지 않고 일본 사회 특유의 문제로 간주됨으로써 버만의 논의와는 차이점을 보여준다. 어쨌든 모리스 버만이 문명의 말기 증세로 걱정스럽게 제시하는 것은 결단코 미국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경우는 그 문화적 병세가 오히려 훨씬 더 심각하다. 사회 경제적 불평등의 가속화, 흔들리는 사회보장제도들, 비판적 사고와 전체적인 지적 수준의 급격한 저하, 그리고 쓰레기와 진정한 가치를 분별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의 마비와 죽음 등은 바로 우리 목전의 사태와 현상들이 아닌가. 지성의 사회적 거부로 요약되는 그러한 문화적 몰락의 징후들은 무엇보다도 철모르고 인터넷 강국을 표방하는 한국에서 더 농후하게 나타난다. 강의 평가제로 위협받고 있는 강사와 교수들은 학생들의 눈치를 보며 강의를 일종의 쇼비즈니스로 하게 되었고, 대학의 구내 서점은 이제 거의 24시간 편의점과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으며, 또 대학 총장과 학장들은 너나없이 기업체 CEO를 방불케 하는 존재로 전락했고, 진정한 엘리티시즘에 대한 평등주의적 배척과 욕망의 민주화는 딜레땅트들과 아마추어들이 지성을 자임하며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는 무엄한 월권을 일상화시켜 버렸다. 최근 한 인터넷 사이트는 ‘지식 거래소’라는 전자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지식의 상품화를 아주 노골화하기까지 했다. 분명 수도사들은 보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모리스 버만의 책은 미국 패권주의의 문화적 근원을 파헤친 문명 비평서로서 가치 있는 책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우리의 문화적 쇠퇴와 몰락을 자각하게 만드는 계몽적인 반면 교사로서 더욱 가치를 갖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오양진
․1969년 인천 출생
․2000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평론 등단
․현재 서울산업대 강사

추천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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