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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문화산책> 놀이 원리로 본 드라마 '올인'/김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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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원리로 본 드라마 '올인'
김 남 석
(문학평론가)
1. 영상 미학과 시청자
사이드 필드는 영화와 관련지어, 텔레비전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영화와 텔레비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TV 모니터는 작으며, 그런 매체 형식은 관객의 능동적 참여를 억제한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보지 see’ 않고, ‘지켜본다 watch’. 더 나아가서, TV 프로그램은 대게 광고에 맞춰 편성되어 있고, 극적 필요성과 이야기의 요구에 따라 구성되지 않는다. 텔레비전을 위한 글을 쓸 때에는 10~12분마다 광고 시간 commercial break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써야 하며, 그것에 맞춰 이야기를 구성해야 한다.
우리가 텔레비전을 지켜보기 때문에(즉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기 look at’ 때문에), 텔레비전은 ‘말하는 매체’이다. 주요 방송국의 저작권 담당 부서의 책임자로 근무했던 내 친구 중의 하나는 “텔레비전은 영상이 있는 라디오 쇼”라고 말했다. 그것은 정확한 평가이다. 금주의 영화 또는 ꡔ전쟁의 바람 The Winds of Warꡕ과 같은 대규모 TV 스펙터클 미니시리즈를 보면, 주인공들이 그들의 감정에 대해, 그들의 원하는 것에 대해, 또는 그들이 해야 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은 해설자이다. 사이드 필드, ꡔ시나리오 워크북ꡕ, 박지홍 역, 경당, 2001, 111면.
흥미로운 지적에도 불구하고, 우리 방송 현실에 맞지 않는 몇 가지 사안도 보인다. 이 점을 논외로 하고, 사이드 필드의 지적을 검토해 보자. 첫째, ‘텔레비전 모니터가 작다’는 지적을 했다. 이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크기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작은 모니터’는 시청 방식이 개인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시청자의 반응도 개인적으로 국한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시청률 조사나 독자 의견 청취를 통해 텔레비전 시청의 일방성이 어느 정도 극복되는 추세이지만, 텔레비전에 대한 능동적 참여가 제한되는 사실만큼은 부인되기 어렵다.
둘째, 텔레비전 시청은 관람자(시청자)의 능동적인 선택이 아니라, 수동적인 선택에 의해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일상에서 텔레비전은 ‘켜두는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이것은 상응하는 가격을 지불하고 관람 여부를 결정하는 영화와 차이를 보인다.
셋째, 비록 미국 텔레비전 편성과 차이를 보이지만, 우리 나라 텔레비전 프로그램 편성 방식에도 광고의 영향력이 나타나고 있다. 또 편성 방식에 따라 이야기의 구성을 조절해야 하는 필요성도 인정되고 있다. 예를 들어 수목으로 편성되는 미니시리즈의 경우, 목요일 방송분의 마지막 부분이 더욱 큰 궁금증을 유발하도록 짜여지며 다음주 수요일 방송분의 도입부에서 지난주 목요일 방송분의 마지막 부분을 더욱 길게(오랫동안) 보여준다.
넷째,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영상의 비중과 표현 방식에 나타난다. 사이드 필드는 친구의 예를 들면서 텔레비전 드라마가 ‘영상’보다는 ‘말’에 의존한다고 지적한다. 시각적 특질과 영상 표현 가능성을 억제하고 말과 설명에 의지하여 이야기를 전달(해설)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사이드 필드가 영화의 특징을 시각적 표현(영상)에서 찾고 있다는 점을 참고하면, 이러한 지적은 상대적인 폄하에 해당된다.
사이드 필드의 이러한 지적은, 현재 우리 나라 방송 일각에서 제기되는 작가주의(auteurism)의 문제와 연결된다. 방송 프로그램에 작가주의적 시각이 적용될 수 있느냐는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그러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영상적 특성’을 보다 살릴 수 있고 수준 높은 ‘시각적 표현’을 통해 ‘예술’적 지위를 부여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입장은 늘 존재해 왔다. 그런 입장에 입각하면, 말과 해설에 의지하는 현재의 프로그램은 불만의 대상일 수 있다.
그래서 텔레비전 드라마가 작가주의를 본격적으로 표방할 수 없는 원인을 진단하는 데에 힘을 쏟는다. 그 중에서 설득력 있는 의견을 들어보자. “텔레비전은 시청자들의 일상 속에 노출되어 있는 매체의 특성상 ‘시각적 표현’에 전적으로 의존하기엔 알맞지 않다. 무엇보다 시청자들 일상의 소란함이 화면으로의 몰입을 방해한다. 때문에 이 매체는 자신의 ‘사상’을 ‘스타일’을 통해 드러내려는 노력보다는 시청자들의 일상적 현실을 텔레비전 속으로 확장하려는 노력을 더 많이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텔레비전은 시청자들에게 현실의 일부분으로, 혹은 의사(擬似) 현실로서 존재하는 듯하다. 그렇게 현실 속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말을 건네는’ 매체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지 ‘이미지’를 통해 ‘심오한 내적 의미’를 표현하는 매체로 적절한 것은 아니다”. 김옥영, 「한국의 방송 현실에서 작가주의란 가능한가?」, ꡔ프로그램/텍스트ꡕ제 4호, 한국방송진흥원, 2001, 43~44면.
작가주의 입장을 지나치게 강조했다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대표적 사례로 ꡔ백야 3.98ꡕ을 꼽을 수 있다. ꡔ모래시계ꡕ로 작가주의적 위상을 어느 정도 높인 김종학 주창윤은 김종학이나 김수현을 “산업으로서의 텔레비전이 특정 작가로 하여금 작가적 위치를 부여한 경우”로 꼽는다(주창윤, 「텔레비전, 작가, 작가주의」, ꡔ프로그램/텍스트ꡕ제 4호, 한국방송진흥원, 2001, 23면).
과 송지나는 영상적 특질을 보다 강도 높게 실험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그러한 실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대했던 성과에 훨씬 못미치는 시청률을 유지했으며, 지금까지 ꡔ여명의 눈동자ꡕ나 ꡔ모래시계ꡕ에 미치지 못하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것은 현 방송 현실에서 영상적 표현 가능성과 한계를 보여준 중요한 실례로 생각된다.
드라마 ꡔ올인ꡕ은 전작들의 시도와 실패 그리고 성공과 그 요인을 염두에 둔 상태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기획 단계부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만한 요소들을 철저하게 계산했으며, 미니시리즈로 방영되는 도중에 시청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대본을 수정하는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시각적 표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되, 고전적인 미학을 완성하기보다는, 시청자들의 욕망을 분석하여, 그것을 반영하는 방식을 택했다. 소재 선택도 매력적이고 화려하고 탈일상적인 것들을 위주로 했다.
그 결과 ꡔ여명의 눈동자ꡕ나 ꡔ모래시계ꡕ가 일부 담지하고 있었던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인식적 접근이나 ꡔ백야 3.98ꡕ이 보여주었던 절제된 화면 미학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대신 드라마 ꡔ올인ꡕ은 지친 일상인, 특히 소시민들의 꿈과 환상과 욕망에 철저히 부합되는 비일상의 공간을 창출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리고 이러한 기획과 의도는 시청자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면서 상업적인 면에서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판단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ꡔ올인ꡕ이 높은 시청률을 보이면서 종영되었고, 종전의 ꡔ모래시계ꡕ와 종종 비교되면서 드라마 상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의견이 제출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 인상 비평에 머물고 있으며, 기존의 통념을 뛰어넘는 관점의 전환이 제기되지는 못했다. ꡔ모래시계ꡕ를 통해 상식적으로 유포된 생각의 반복인 경우도 많다. 또 대부분 신문 기사와 저널을 통한 평가여서, 상업적이고 외부적인 동향에 대한 정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ꡔ올인ꡕ의 구조와 완성도에 대한 내재적이고 일관된 견해가 제출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본 연구는 텔레비전 드라마 비평과 연구에 일말의 도움이라도 제기하기 위해서 관점의 전환을 꾀하고자 했다. ꡔ올인ꡕ의 외형적 성공이 놀이적 특성의 강화에 있다고 가정하고, 놀이의 개념과 유형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하는 관점을 도입했다. 이것은 ꡔ올인ꡕ의 매력과 장단점을 놀이적 요소에서 찾고 의미 자질을 놀이적 유형과 비교하여 그 특질을 분석하기 위한 연구 방법이다.
드라마 작가와 연출가 그리고 방송 관계자의 의미 부여에도 불구하고 ,ꡔ올인ꡕ은 철저히 놀이적 특성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기존의 드라마가 문학적 서사와 영상적 표현이라는 중대한 논쟁을 거치며 만들어졌다면, ꡔ올인ꡕ은 놀이적 특성을 어떻게 극대화하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것은 ꡔ올인ꡕ이 시청자들에게 크게 호소한 측면인 반면에, 드라마적 구성 원리에서 급격한 결함을 드러낸 원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놀이적 특성으로 인해 시청자를 매혹시킨 면도 강하지만, 그로 인해 야기된 구조적 결점과 내재적 취약점도 상당하다. 본 연구는 그 허실과 장단점을 살피는 것에 치중할 것이다.
2. 놀이의 네 가지 원리와 타락
놀이는 현실에서 즐거움을 찾는 활동이다. 흔히 노동과 구분되며 생산적인 활동이 아닌 것으로 인식된다. 그런데 호이징가는 이러한 통념에 도전한다. 그는 놀이 정신이 사회 제도를 만들고 질서 유지에 공헌하며 문명 발전의 원동력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사회적 활동과 제도적 산물은 놀이 정신과 관련이 있다. J. 호이징가, ꡔ호모 루덴스ꡕ, 김윤수 역, 까치, 1993.
로제 카이와는 놀이의 개념을 유형적 범주로 나누어 살펴본다. 그는 놀이의 특성을 여섯 가지로 정리해서 그 개념을 한정시킨다. 첫째, 놀이는 자유로운 활동이다.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선택이다. 둘째, 놀이는 분리된 활동이다. 놀이는 일정한 시공간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다. 셋째, 놀이는 확정되지 않은 활동이다. 전개 양상과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다. 넷째, 비생산적 활동이다. 소유권의 이동을 제외하면 놀이는 어떤 것도 생산하지 못한다. 다섯째, 규칙이 있는 활동이다. 놀이는 약속(규칙)에 의해 진행된다. 여섯째, 놀이는 허구적인 활동이다. 놀이는 비현실적 활동이라는 점을 의식하고 행해진다. 로제 카이와, ꡔ놀이와 인간ꡕ, 이상률 역, 문예출판사, 1994, 25~34면 참조.
놀이는 네 가지 범주로 나누어진다. 아곤(Agôn), 알레아(Alea), 미미크리(Mimicry), 일링크스(Ilinx)가 그것이다. 아곤은 경쟁의 원리에 입각한 놀이 유형이다. 놀이의 참여자는 자신의 능력과 재주를 가지고 승부를 겨룬다. 보통 하나의 자질(스피드, 인내력, 체력, 기억력, 재주 등)을 겨루는 것이 일반적이며, 겨루는 자질을 제외한 다른 조건들은 균등하게 조정된다. 스포츠나 체스(바둑) 같은 경기가 여기에 속한다.
알레아는 행운에 승패를 맡기는 놀이 유형이다. 아곤이 참가자의 역량을 겨루는 것이라면, 알레아는 의지를 운명에 맡기고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아곤이 자신만을 믿는 것이라면, 알레아는 자신을 제외한 것을 믿는 것이다. 알레아는 라틴어로 주사위 놀이를 뜻하며, 주사위 놀이․룰렛․바카라․제비뽑기 등이 여기에 속한다. 운명을 이기는 것이 놀이의 관건이다.
세 번째인 미미크리는 흉내와 가장(假裝), 모의(模擬, simulacre)와 구경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 놀이 유형이다. 가면을 쓰거나 흉내를 냄으로써 다른 인간으로 변모하며, 그 변모를 통해 놀이자는 즐거움을 쟁취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모를 지켜봄으로써 관람자도 즐거움을 쟁취한다. 아곤과 알레아가 기회의 균등을 위해 현실과 차별되는 놀이 공간(세계)을 조성한다면(역량을 겨룰 수 있는 가능성을 똑같이 누려야 하고, 행운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을 똑같이 가져야 한다), 미미크리는 자신을 다르게 만들어서 현실로부터 벗어난다. 즉, 아곤과 알레아는 놀이 여건을 개혁한다면, 미미크리는 놀이 주체를 개혁한다. 연극과 페스티발은 미미크리에 속한다.
일링크스는 지각의 안정을 파괴하고 일종의 패닉(panique) 상태를 유발하여 쾌감을 얻는 놀이 유형이다. 이러한 유형의 놀이는 현기증(회전이나 낙하를 통한 혼란)을 추구한다. 일링크스는 그리스어로 소용돌이를 뜻한다. 즉 일링크스의 즐거움은 현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일종의 경련(가슴 졸임), 실신상태(흥분) 또는 크게 놀라는 상태(얼떨떨함)에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유원지의 놀이기구, 공중곡예, 스키 등이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같은 책, 35~70면 참조.
네 가지 놀이 유형은 일상의 영역에서 변모된다. 놀이는 본래 현실과 절연된 ‘밀폐된 공간’을 요구하는데, 그 밀폐 공간이 개방되면서 놀이는 사회와 문화의 한 형태로 변모된다. 아곤의 문화적 형태가 스포츠라면, 제도적 형태는 상업상의 경쟁 시험이나 콩쿠르이다. 알레아의 문화적 형태가 카지노와 복권이라면, 주식은 제도적 형태이다. 연극은 미미크리의 문화적 형태이고, 제복이나 의식은 제도적 형태이다.
문제는 이러한 밀폐성이 극도로 개방되면서 현실과 놀이의 구분이 사라지고 규칙이 무시되며 놀이 원리가 파기되는 현상이다. 로제 카이와는 이것은 ‘놀이의 타락’이라고 했다. 놀이의 사회적 역할은 인간의 본능을 억제하고 제도와 문화적 약속을 기억하고 준수하도록 훈련시키는 것에 있다. 다시 말해서 문화의 여러 양식과 문명의 기준을 정착시키는 데에 유익한 공헌을 하는 것에 있다. 아곤의 타락인 폭력․권력의지․술책, 알레아의 타락인 미신, 미미크리의 타락인 광기(소외)․이중인격, 그리고 일링크스의 타락인 알코올 중독․마약 중독은, 놀이의 역할을 침해하고 사회와 문화의 기반을 훼손하는 역기능으로 작용한다. 같은 책, 77~93면 참조.
본 연구는 네 가지 놀이 유형을 척도로 드라마 ꡔ올인ꡕ을 분석할 것이다. 특히 아곤, 알레아, 일링크스, 그리고 아곤․알레아․미미크리가 결합된 도박이 중심 척도가 될 것이며, 아곤과 알레아의 타락과 관련지어 작품의 결함을 고찰할 것이다(ꡔ올인ꡕ이 텔레비전 드라마라는 점에서, 이미 미미크리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층위와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임으로 본 연구에서는 별도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이러한 분석 척도를 통해 인물의 성격과 구도, 사건의 진행과 계기, 소재적 특질, 편집과 촬영의 미학, 폭력성 처리의 문제, 주제의 제시와 작가적 의도를 놀이적 시각에서 고찰하려 한다.
3. 드라마 ꡔ올인ꡕ과 놀이적 원리
3.1. 경쟁의 원리 : 아곤
ⅰ) 주인공의 경쟁 : ‘아곤’은 ‘경쟁’을 통해 승부를 결정짓는 놀이 유형이다. ꡔ올인ꡕ의 인물 구도는 경쟁 원리에 입각하고 있다. 주인공인 김인하와 최정원을 보자. 그들은 두 가지 목표를 성취하고자 대립하고 있다. 하나는 민수연과의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사업에서의 성공 카이와는 상업상의 경쟁을 아곤이 제도적으로 편입되어 정착된 형태라고 정리했다(같은 책, 93면 참조).
이다. ꡔ올인ꡕ의 중추적 갈등은 두 사람의 경쟁에서 파생된다. 당연히 서사의 상당 부분이 경쟁의 계기를 만드는 데에 할애된다.
최정원과 민수연이 만나게 된 계기는 김인하와 ‘불곰파’의 싸움이었다. 김인하는 민기사(수연의 부친)의 어려움을 모른 척하지 못하고 불곰파의 일에 끼어 들고, 최정원은 김인하의 어려움을 모른 척 하지 못하고 싸움에 가담한다. 훗날 최정원은 그 때는 김인하처럼 사는 것에 매력을 느꼈고 그래서 싸움에 끼어 들었다고 술회한다. 하지만 다시 시간이 흐른 후에, 민수연에게 첫눈에 반했고 그 싸움 역시 민수연으로 인해 일어난 것처럼 말한다. 이것은 최정원과 김인하가 민수연이라는 목표를 두고 오랫동안 다투어온 경쟁자임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정은 서사적 전개 과정에서 모순을 파생시킨다. 7년이 지나고 최정원, 민수연, 김인하는 카지노에서 만나게 된다. 김인하는 민수연을 알아보지만, 최정원은 민수연을 알아보지 못한다. 이것은 최정원이 민수연을 마음속에서부터 사랑했다는 설정에 중대한 결함을 제기한다.
두 사람의 경쟁은 민수연과의 사랑에서 시작하여, 사업에서의 성공으로 확대된다. 두 사람은 경쟁 업체의 경영인이 되어, 고도의 두뇌 싸움을 벌인다. 그러면서 그들의 두 가지 목표, 즉 사랑과 일에 대한 경쟁심은 고조된다. 이것은 경쟁의 원리를 적용해서 서사구조의 긴장감을 유발한 경우이다.
아곤을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 그것은 승부의 자질을 가리는 요소 이외에는, 기회의 평등이 주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김인하는 최정원에 비해 불리하다. 최정원은 막대한 부와 권력을 지닌 사람이고, 김인하는 비천한 출생과 어려운 가정 환경을 지닌 사람이다. 그래서 드라마적 설정에서 김인하에게는 뛰어난 통찰력과 심리적 계산력 그리고 두둑한 배포가 주어진다. 이를 통해 그는 최정원과의 싸움에서 불리한 요건들을 만회해 간다. 반면 최정원은 개인적 자질 면에서 뒤지기 때문에, 간교한 계략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김인하의 불행(죽은 것으로 알려짐)을 틈타 민수연과 가까워진 것이다. 드라마의 기획 단계에서는 최정원과 민수연이 결혼하도록 되어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김인하에게 뒤진 경쟁 요건을 만회시키고자 하는 드라마적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아곤의 원리는 김인하와 최정원의 성격적 구축과 그들의 경쟁 요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ⅱ) 김인하의 라이벌들 : 주인공의 관계를 중심으로 플롯을 유형화하면, ‘라이벌 플롯’이 된다. 라이벌 플롯이란, 경쟁자(반드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가 일정한 목적을 놓고 겨루는 플롯이다. 로널드 B. 토비아스는 라이벌 플롯이 서사양식에서 일찍부터 중요한 위치를 점유했음을 강조한다. 특히 문학은 예로부터 라이벌의 관계로 넘쳐흐른다고 주장하면서, 많은 문학 작품을 그 사례로 들고 있다. 「백경」이 그러하고 「파리대왕」이 그러하고 「노인과 바다」가 그러하다. 영화 ꡔ벤허ꡕ는 숨막히는 라이벌의 승부를 11분 동안의 전차 경주로 압축하여 많은 이의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로널드 B 토비아스, ꡔ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ꡕ, 김석만 역, 풀빛, 1997, 217~225면 참조.
드라마 ꡔ올인ꡕ에는 김인하와 최정원 이외에도 많은 라이벌들이 등장한다. 김인하와 임대수를 보자. 김인하가 우발적으로 임대치(임대수의 형)를 죽임으로써, 임대수의 집요한 추적을 받게 된다. 그런데 두 사람의 관계가 추적의 플롯 같은 책, 145~155면 참조.
을 만들지 않고 라이벌 플롯을 만드는 이유는 유정애 때문이다. 유정애는 김인하의 소꿉 친구로, 김인하를 짝사랑한다. 임대수가 유정애를 사랑하게 되면, 김인하와 임대수는 표면적으로는 유정애를 사이에 둔 경쟁자로 변화된다. 김인하가 유정애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라이벌 플롯이 요구하는 강력한 경쟁 심리는 발생되지 않지만, 김인하와 임대수가 대결해야 하는 요인 하나는 추가된다.
김인하와 양승국은 드러나지 않는 경쟁자이다. 양승국은 최도환 일가를 위해 김인하를 결정적인 위기에 몰아넣는다. 김인하는 양승국의 계책에 의해 7년 간 수감되어야 했고, 살인 누명을 쓰고 밀항해야 했고, 임대수 패거리들에게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고, 나중에는 민수연을 잃을 위협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 싱겁게 판가름난다. 거의 모든 경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던 양승숙이 너무 쉽게 몰락했기 때문이다.
김인하와 최도환의 관계도 ꡔ올인ꡕ의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드라마 2회분에서 최도환은 ‘김현주’라는 여인이 낳은 아들을 찾고 있다. 그 아들은 유아 보호 시설에서 맡겨졌다가 친족으로 보이는 사람이 데려간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김인하의 출생 배경과 흡사하다. 따라서 드라마적 설정을 감안하면, 김인하와 최도환은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끝까지 해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경쟁 역시 전면으로 부각되지 못하고 양승국과 그의 아들에 의해 수행되는 약점을 노출시켰다.
포커 대회에서 김인하가 상대해야 했던 도박사들도 경쟁자의 유형에 속한다. 포커는 부분적으로는 아곤의 원리에 입각한 놀이이다. 따라서 놀이의 정통적 개념에서 플레이어는 경쟁자이다. 김인하가 포커를 배우는 과정이나 포커 대회를 치르는 장면에서, 경쟁의 원리는 드라마의 흥미를 고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심리적 긴장감과 아슬아슬한 승부가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때문이다. 드라마 ꡔ올인ꡕ에서 포커의 경쟁 원리는 시청자의 관심을 끄는 중요한 요인이다.
ⅲ) 2대에 걸친 경쟁자들 : ꡔ올인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경쟁자들이 서승돈과 최도환이다. 최도환은 서승돈 밑에서 성장한 인물이다. 최도환은 서승돈의 도움을 얻기 위해 서승돈에게 무릎을 꿇는 수모도 감수한다. 처음에는 명확했던 그들의 관계가 역전되기 시작한 것은, 최도환이 카지노에 뛰어들면서이다. 그러다가 최정원이 최도환을 돕기 시작하면서 전세는 역전된다. 서승돈의 오아시스 그룹이 최도환의 씨월드 그룹에 참패를 거듭하는 시기가 온다.
최정원이 최도환을 돕고, 서진희가 서승돈을 도우면서, 그들의 경쟁은 자식들의 경쟁으로 확산된다. 그들은 미국 유학 도중에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된 사이이다. 처음에 최정원은 아버지를 거부하고 서승돈의 회사에서 일한다. 서승돈은 주관이 강한 딸에게 자신의 회사를 물려주려 한다. 둘은 일을 통해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그러나 최정원이 서승돈을 배신하고 아버지 최도환에게 돌아감으로써, 둘의 관계는 협력자에서 적대자로 변한다. 사업의 성패를 두고 싸워야 하는 경쟁자로 변모된 것이다. 둘의 관계가 사랑에 기반하고 있다가(적어도 서진희의 입장에서는), 경쟁자로 변모되는 것은 라이벌 의식을 강화하는 계기가 된다.
ⅳ) 경쟁 구도의 성취와 결함 : 이처럼 드라마 ꡔ올인ꡕ은 경쟁 관계에 있는 인물 구도에 입각하고 있다. 김인하와 주요 등장 인물들은 놀이에서 승부를 겨루듯, 상대와 경쟁하고 있다. 이것은 드라마 ꡔ올인ꡕ이 의도한 대로, ‘승부’의 세계를 그리려했음을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경쟁의 원리가 이 작품에 절대적 성취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폐해도 적지 않은데, 그것은 최정원과 임대수를 비롯한 라이벌들의 성격적 결함에서 나타난다. 그들은 개성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이기보다는, 경쟁 관계에 있는 김인하의 갈등을 증폭시키기 위한 인물로 만들어진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최정원이 민수연을 두고 김인하와 벌이는 경쟁 관계는 모호한 면이 있다. 민수연에 대한 감정이 일관되지 않고 급조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또 김인하를 친구이면서 경쟁자로 생각하는 라이벌 의식에도 적지 않은 모순이 있다. 차라리 김인하의 욕망에 따라 자신의 욕망을 복사해내는 인물에 가깝다. 르네 지라르, ꡔ소설의 이론ꡕ, 김윤식 역, 삼영사, 1978 참조
그렇다면 표면적으로는 경쟁의 원리를 따르는 것 같지만, 이면적으로 모방의 심리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임대수가 김인하를 그토록 미워했으면서도 유정애 때문에 용서한다는 설정도 납득하기 어렵다. 그것은 드라마 내내 보여졌던 임대수의 잔인함과 ‘밑바닥 양아치’ 근성에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양승국이 너무 쉽게 패배한 것과 최도환과의 관계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것도 무시 못 할 결함이다.
3.2. 우연의 원리 : 알레아
드라마 ꡔ올인ꡕ은 속도감 있는 전개가 돋보인 작품이다. 김인하와 민수연의 만남과 헤어짐은 이러한 속도감을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 김인하와 민수연은 기차에서 처음 만났고, 민수연의 아버지가 일하는 극장에서 재회했다. 어린 김인하가 감옥에 가면서 그들은 헤어졌는데, 7년 후 제주도에서 상봉했다(제 4회 방영분).
속도감 있는 전개는 우연의 원리에 의존한다. 출감한 김인하는 민수연을 만나려고 예전의 처소로 찾아가지만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 그러나 우연히 얻게 된 직장(카지노 보안 요원)에서 민수연과 재회한다. 이러한 재회는 서사의 개연성보다는 우연의 의외성(놀라움)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이다.
우연은 자신 이외의 모든 것에 의존해서 게임에 응하는 놀이의 원리이다. 이러한 우연은 김인하의 삶을 좌우한다. 드라마 ꡔ올인ꡕ의 초반부에서 김인하와 민수연은 우연 혹은 요행에 의해 만나게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인데, 이러한 만남의 방식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김인하는 수성파 보스의 강압에 의해 내기 도박을 하게 되고, 상대 플레이어가 살해되는 바람에 살인 누명을 쓰게 된다. 살인 누명을 모면하기 위해서 국외로 밀항하게 되면서, 민수연과 헤어지게 된다. 그의 운명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변화된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자리잡은 김인하 앞에 민수연이 나타난다. 물론 서사적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 각종 설정이 마련되기는 한다. 민수연이 미국으로 공부를 떠나게 된 계기가 만들어지고, 아르바이트로 팔코네 딸과 만나게 된 계기가 만들어진다. 김인하 역시 카지노에 가게 되는 계기가 만들어지고, 유종구가 수감되면서 그를 구해내어야 할 이유가 만들어진다. 경매장 일본 통역자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민수연이 통역장에 얼굴을 드러내기 위한 계기도 만들어진다.
이들의 만남이 우연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도 마련된다. 김인하와 민수연은 공항에서 한 번 만날 뻔했는데,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바람에 그냥 지나치고 만다(사실 이러한 설정은 드라마에서 앞뒤로 계속 반복된다). 그러니까 그들은 우연히 만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는 데도, 그 우연에 의해 만나지 않고, 철저한 계기(?)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었다고, 작가와 드라마는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정은 우연을 감추기 위한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 사건은 변화인데, 그 변화는 개연적인 설정으로 인해 관객과 독자가 납득할 수 있는 변화이어야 한다. 로버트 맥기는 플롯을 ‘인물에게 가해지는 구조적 압력’이라고 설명하는데, 그 압력이 신빙성(authenticity) 있게 이해될 수 있을 때 그 인물이 변화가 수긍될 수 있을 것이다. 로버트 맥기, ꡔ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ꡕ, 고영범․이승민 역, 황금가지, 2002, 59~279면 참조.
그 인물의 변화가 수긍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고 사건이 전개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고전적 서사 이론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롯을 ‘사건들의 배열(arrangement of incidents)’이라고 했는데, 그 배열은 의미 있는 질서를 갖춘 것이어야 한다. 오탁번․이남호, ꡔ서사문학의 이해ꡕ, 고려대출판부, 1999, 47면 참조.
의미를 담지하기 위해서는, 읽는 이가 사건의 배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관객과 독자가 충분히 납득할 수 없다면, 의미 있는 질서(서사구조)가 만들어질 수 없다.
다시 드라마 ꡔ올인ꡕ의 속도감을 살펴보자. 김인하와 민수연의 비극적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 그들은 드라마 상에서 줄곧 헤어진다. 그러나 그들의 헤어짐은 시청자와 독자들이 읽고 받아들이는 서사 내의 시간에서 사이를 둔 것이지, 실제 방영분에서는 곧 다시 만남으로써 실제 격차는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이러한 설정은 드라마 상의 주인공들의 행복한 재결합을 원하는 시청자의 욕구에 의거한 것이라고 잠정적으로 판단된다.
문제는, 헤어지는 계기는 자연스러운데 만나는 계기가 어색하다는 점이다. 민수연의 아버지가 노름으로 죽었는데, 민수연이 카지노에서 거부감 없이 일한다는 설정도 어색하다. 전과자 출신의 김인하가 고급 손님을 대상으로 하는 카지노에 쉽게 보완 요원으로 취직한다는 설정도 어색하고, 최정원이 신분 조회 한 번 제대로 거치지 않고 대기업의 요직에 앉는다는 설정도 어색하다. 이러한 어색한 설정은 카지노라는 이 드라마의 배경 내에서 세 인물(서진희까지 하면 네 사람)이 운명적으로 재회하도록 배치하기 위해서이다.
미국으로의 밀항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미국으로의 밀항은 원작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소설 ꡔ올인ꡕ의 차민수는 국내에서 노름을 하다가 어머니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출국을 당한다. 그리고 미국에서 자수성가하면서 포커 대회 월드 챔피언이 된다. 노승일, ꡔ올인ꡕ2, 들녘, 2000, 174~198면 참조.
드라마도 이러한 설정을 중시하고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인하의 미국 행 동기가 필요했다. 그것은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밀항으로 찾아졌고, 그와의 재회를 위해 민수연의 미국 행이 설정되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민수연이 미국에서 했다는 공부의 실체도 분명하지 않고, 얼마 동안 공부했는지도 모호하게 처리되고 만다. 또 민수연이 공부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돌아왔는데도, 한국에서 능수능란하게 자신의 분야를 개척한다는 점도 어색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러한 문제들은 김인하와 민수연의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을 긴장감 있게, 즉 우연의 놀라움과 의외성에 의존해서 꾸미려 했기 때문이다. 다시 원작을 참조하면, 김인하에 해당하는 차민수가 만나는 여인(두 번째 아내)은 카지노에서 만나는 것으로 설정된다. 그들의 사랑은 제 3자의 개입 없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안정감이 있으며 어색한 설정을 유발하지 않는다.
드라마 ꡔ올인ꡕ에 나타나는 알레아적 요소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건과 인물에 어색한 변화(계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또한 대사에서 반복되는 것처럼 인생을 ‘재수 없는 어떤 것’으로 몰아붙인다. 김인하도 민수연도, 그들의 만남을 주저해야 할 때는 ‘운명’에 핑계된다. 이 진술은 보충이 필요하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김인하가 민수연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도, 민수연이 제주도에서 김인하의 사랑을 거부하는 이유도, 자신들로 인해 상대방이 불행해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상대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설정은 내적 깊이를 동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설득력 없는 대사에 불과하다.
이것은 이 드라마의 서사구조가 탄탄하지 못하다는 반증일 수 있다. 그 책임은 알레아적 원리의 남발에서 찾을 수 있다.
3.3. 경쟁과 우연과 구경의 결합 : 도박
ⅰ) 포커 : 도박은 ꡔ올인ꡕ의 중요한 소재이자, 참신한 매력이다. 도박 중에서도 포커가 집중적으로 부각된다. 포커는 아곤과 알레아적 원리가 뒤섞여 있는 놀이이다. 먼저 포커는 배분되는 카드에 따라 어느 정도 승패가 결정된다는 의미에서 알레아이다. 그러나 포커의 승부가 전적으로 요행에 의해 결정되지는 않는다. 포커에서 운수만큼 중요한 것이 게임 운영 능력이다. 포커의 플레이어는 확률에 대한 수학적 계산력, 상대의 심리를 읽는 통찰력, 자신의 심리를 감추는 가장(假裝) 능력, 그리고 두둑한 배포와 강인한 체력 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상대와 경쟁을 통해 이기는 아곤 유형에서 필요한 덕목이다.
이처럼 포커는 그 자체로 아곤적 요소와 알레아적 요소를 포괄하고 있다. 그래서 놀이의 유형으로 파악할 때, 포커는 아곤과 알레아의 흥미를 고루 갖추게 된다. 패가 주어지고 주어진 패를 운영하여 상대를 제압하는 승부는, 경쟁의 원리가 작동되면서도 전적으로는 경쟁의 원리에 의해 의존할 수 없도록 만드는 묘미를 내장하고 있다.
여기에 미미크리적 요소도 관계된다. 아곤과 미미크리는 본래 결합이 용이한 놀이 유형이다. 포커의 플레이어는 가장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능력은 로제 카이와가 정의한 ‘미미크리’에 해당된다. 로제 카이와는 ‘미미크리’를 모의(模擬, simulacre)나 흉내 혹은 연기(演技)의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모든 놀이는 환상(illusion : 이 말은 문자 그대로 놀이에 들어가는 것 in-lusio를 뜻한다)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적어도 약속에 의해 정해지고 몇 가지 점에서는 허구적인 하나의 닫혀진 세계를 일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제로 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놀이는 가공(架空)의 환경 속에서 활동을 전개하거나 운명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가공(架空)의 인물이 되어 그것에 어울리게 행동하는 것으로 성립한다. 따라서 다양한 표현을 하는 일련의 놀이를 우리는 여기서 직면하게 되는데, 그 표현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 그러한 놀이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즉 사람이 자신을 자기가 아닌 존재라고 믿거나, 자기나 타인에게 믿게 하면서 논다는 사실이다. 놀이하는 자가 자신의 인격을 일시적으로 잊고 바꾸며 버리고서는 다른 인격을 가장한다. 나는 이러한 표현을 행하는 놀이를 미미크리라는 말로 지칭하고 싶다. 로제 카이와, 앞의 책, 47면.
포커에는 미미크리적 요소가 다분하다. 포커는 플레이어의 속마음을 감추어야 놀이에 원활하게 임할 수 있다. 좋은 패를 들었을 때는 좋지 않은 것처럼, 나쁜 패를 들었을 때는 나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해야 하며, 상대방의 복잡한 심리를 투시하여 그 역으로 행동할 수도 있어야 한다. 따라서 연기가 필요하다. “자신을 자기가 아닌 존재라고 믿거나 자기나 타인에게 믿게 하면서”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 ꡔ올인ꡕ에서 김인하는 이러한 연기(미미크리)에 능숙한 인물이다. 그가 도박에 능통할 수 있었던 것은 운과 실력 못지않게 연기(가장)에도 능숙했기 때문이다.
드라마 ꡔ올인ꡕ에 삽입된 세계 포커 선수권 대회는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제공했다. 포커 선수권 대회는 아곤과 미미크리가 결합되는 실례이다. 승부를 결하는 플레이어에게는 포커 선수권 대회장이 아곤에 가깝지만, 이를 지켜보는 이들에게 이 대회장은 미미크리에 가깝다. 한편 큰 스포츠 시합에서 관객들이 미미크리적 충동(모의)을 느끼듯이, 포커 플레이어에게 같은 충동을 느낄 수도 있다. 반면 참가 선수들은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가장과 모의를 해야 한다. 종합하면, 플레이어들의 가장과 모의가 나타나기도 하고, 이러한 선수들을 보는 관중(시청자)들의 흉내와 동일시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은 문학과 예술 작품의 주인공에 독자와 관람자들이 동화(동일시)되는 현상과 동일하다. 같은 책, 50면 참조.
ⅱ) 도박 : 드라마 ꡔ올인ꡕ에서 도박 장면은 중요한 볼거리로 등장한다. 마이클 장이 카지노를 찾아오고 그로 인해 민수연, 김인하, 최정원이 만나는 장면에서, ‘바카라’는 중요한 소재로, 카지노는 흥미로운 배경으로 이용되었다. 그리고 김인하와 최정원의 능력이 부각되고, 민수연이 조명받는 계기가 되었다. 드라마 상에서 도박장 안의 긴장감과 세 사람 사이의 긴장감이 얽히면서 흥미를 고조시켰다.
김인하와 유종구가 살인 누명을 쓰게 된 한명진과의 도박도 드라마적 긴장을 고조시킨 대목이다. 김인하는 과거의 원한을 잊고 친구의 어려움을 구하기 위해서 큰 도박에 끼어 든다. 상대들도 전문 도박사(이른 바 탓짜)들이어서 그들의 승부는 만만치 않다. 여기에 생소한 도박 용어인 ‘탄’을 소개하며 생기 있는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통찰을 확대해 보자. 도박은 플레이어에게 일종의 아곤이고 알레아이다. 참가자들은 그들의 재주와 역량 그리고 운을 걸고 승부를 겨룬다. 그들의 승부는 좀처럼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긴장감을 파생시킨다. 드라마 ꡔ올인ꡕ은 이러한 경기자들의 모습을 화면에 담아서 시청자들에게 스포츠 시합을 중계하듯이 전달한다(등장 인물들도 텔레비전 혹은 모니터를 통해 간접적으로 구경한다). 이러한 구경은 참가자(플레이어)와 구경꾼(관람자)의 동일시를 유발하고, 이러한 장면을 다시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감정적 동일시를 유발한다. 시청자들은 그들에 대한 동일시를 통해 모방 혹은 흉내의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이것은 미미크리적 요소의 발현이다. 즉, 드라마 ꡔ올인ꡕ은 도박을 통해, 아곤(경쟁심)․알레아(행운)․미미크리(가장과 구경)적 요소를 효과적으로 통합해내고 있다. 이것이 도박이 중요한 소재이자 참신한 매력이 되는 이유이다.
3.4. 균형 파괴의 원리 : 일링크스
소설 ꡔ올인ꡕ에서 일링크스적 요소는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원작 소설의 주인공인 차민수는 어려서부터 바둑에 빠져 지낸다. 바둑은 경쟁이기 때문에 아곤이지만, 그 아곤을 반복적으로 시행(내기 바둑)하여 정신적 균형 상태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일링크스이기도 하다. 즉 계속해서 바둑을 두면 신체적 탈진과 함께 정신적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되고, 바둑에 전념함으로써 현실적 활동(가령 직업)들을 도외시하게 된다. 이것은 일링크스적 폐해, 중독성을 초래한다. 소설에서 조훈현과 차민수가 군대에서 바둑을 두는 장면은, 그들이 현실적 균형을 잃고 도취 상태에 심취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노승일, ꡔ올인ꡕ1, 들녘, 2000, 189~205면 참조.
차민수는 도박에도 빠져 막대한 시간과 재산을 탕진한다. 결국 미국으로 쫓겨나듯이 이민을 떠나게 되는데, 거기서는 더욱 심각한 일링크스적 놀이 유형에 빠져든다. 그것은 마약이다. 마약은 환각 상태를 유발하여 신체와 정신의 균형을 어지럽히는 타락한 일링크스이다. 놀이의 타락은 ‘현실의 전염’에 의해 발생한다. 놀이는 본래 현실과 분리된 활동인데, 그러한 경계선이 무너지고 규약이 무시되며 놀이 원리가 제멋대로 현실에 적용될 때 놀이는 타락하게 된다. 로제 카이와는 일링크스가 타락한 형태로 알코올 중독과 마약을 꼽는다. 로제 카이와, 앞의 책, 93면 참조.
원작 소설에서 차민수의 전처가 알코올 중독에 빠지고, 차민수는 마약에 빠진다. 그들의 중독 현상은 부부간의 결별을 부른다. 원작은 일링크스적 요소를 강하게 포함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주인공의 인생이 크게 변화한다. 그러나 드라마 ꡔ올인ꡕ은 이러한 요소들을 가급적 배제하는 편이다. 도박은 신체적 정신적 균형이 파괴될 정도로 심각하게 묘사되지 않고 있으며(오히려 재산 증식과 신분 상승의 정당한 수단으로 취급되고 있다),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은 애초에 설정되지도 않는다.
다만 김인하의 심리적 괴로움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잠시 상정되기는 한다. 김인하는 민수연과 결혼식을 앞둔 상태에서 팔코네를 습격한 베트남 마피아의 총을 맞고 쓰러진다. 의식을 잃은 채로 8개월이 지났고, 외부에는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적적으로 살아나지만 김인하는 희망을 상실한 상태였다. 민수연은 떠났고, 자신은 다시 민수연에게 다가갈 수 없다고 판단 내렸기 때문이다. 그는 자포자기의 상태로 돈과 시간을 탕진한다.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면서 마음의 괴로움을 표출하는데, 이것은 일링크스적 놀이의 타락으로 설정된다. 드라마 ꡔ올인ꡕ은 김인하의 심리적 상처를 표현하기 위해서 놀이 부정적 면모를 빌려온 것이다.
한편, 드라마 ꡔ올인ꡕ은 서사구조의 측면에서 일링크스적 놀이 원리를 응용하고 있다. 첫째, 속도감이다. 스피드에의 집착은 현기증을 불러온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빨리 움직이는 것들을 통해 신체와 정신의 자유를 체험하려 한다. 이러한 풍조는 영상 미학적 효과에 적용된다. 특히 장면의 편집 효과에서 구현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드라마 ꡔ올인ꡕ은 서사적 개연성과 신빙성을 희생하면서까지 사건 진행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것은 현대의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일링크스적 놀이 원리이다.
둘째, 배경 공간의 화려함이다. 드라마 ꡔ올인ꡕ은 해외 로케이션과 제주도 야외 촬영으로 큰 관심을 끌었다. 한정된 세트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과 거리를 촬영 공간으로 설정했다. 웅장한 저택(팔코네 집)과 제주 바다의 아름다운 풍광과 은밀한 카지노 내부 그리고 특급 호텔의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화면에 포착되면서, 시청자들은 비현실적 공간이 주는 신비함과 화려함에 매혹된다. 이러한 매혹은 시각적 황홀감으로 이어진다. 서사 내용에서도 서민들의 단조로운 일상이 아니라, 호텔 사업과 카지노 건설 그리고 거액의 투자와 로비 활동 등을 소재로 채택하여 일상에서 만끽하기 힘든 환상과 욕망과 동경을 체현하고 있다. 이것은 현실적 안목에 길들여진 일상인의 정신적 균형 감각을 파괴하려는 연출 의도이다.
셋째, 등장 인물들의 개성과 화려한 의상이다. 본래 ‘스타에 대한 숭배’는 미미크리로 야기되는 문화적 관습이다. 수려한 용모와 고급 의상으로 촉발된 시각적 쾌감은 그 자체로 팬(매니아)들의 정신적 몰입(마비) 상태를 부를 수 있다. 즉 탈일상의 체험과 연예인에 대한 동경을 간접적으로 실현시킨다. 드라마 ꡔ올인ꡕ은 기획 단계부터 스타 시스템을 철저히 도용해서 이러한 마비(동경) 상태를 극대화시키려 했다. 그 결과,ꡔ올인ꡕ의 성공은 출연진의 브랜드 가치를 몇 배로 향상시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사, ꡔ스포츠투데이ꡕ, 2003년 4월 2일자.
3.5. 아곤의 타락 : 폭력과 출세와 술수
아곤이 놀이적 범주를 넘어 현실로 옮겨지고, 지나치게 성공만을 목적으로 삼게 되면 놀이 정신이 타락한다. 공정한 경쟁 규칙이 무시되고 경쟁자들의 비열한 공격도 정당화한다. 특히 도덕적, 사회적, 법률적인 구속을 벗어나 원하는 목적을 이루려는 성향이 증대된다. 대표적인 것이 폭력성과 권력의지와 술책이다. 로제 카이와, 앞의 책, 91~93면 참조.
드라마 ꡔ올인ꡕ은 이러한 세 가지 면모, 즉 아곤의 타락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먼저 폭력성을 보자. 김인하와 그의 친구들, 임대수와 그의 세력, 연계된 조직 폭력배들, 그리고 최도환과 그의 부하들(특히 양승국)은 폭력적인 성향을 짙게 드러내고 있고, 심지어 서승돈 회장도 과거에는 폭력조직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암시되고 있다. 그들은 폭력으로 남을 제압하고 원하는 뜻을 관철시키려 한다. 이것은 규칙의 준수나 정당한 구속을 거부하는 행위이다.
주목되는 것은 김인하의 폭력성이다. 김인하는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긍정적 가치관을 보여주어야 할 암묵적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의 폭력성은 그의 인간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용인되어야 한다.
임대수와 건달들… 쓰러진 정태를 걷어차는데
수연 아빠!
대수…수연을 잡고 한쪽으로 거칠게 밀어놓는다.
수연…옆으로 쓰러지는데 한쪽에서 그 모습을 보는 인하.
눈에 보이는 쓰레기통을 집어들고 건달들 쪽으로 달려가고 쓰레기통으로 임대수의 머리를 후려친다.
대수 …너 이 새끼…
나머지 건달들…인하에게 공격을 하고
인하…건달들한테 주먹과 발길질을 하는데…
한쪽에서 그런 인하를 보는 수연.
(…중략…)
# 84 영사실 앞
인하와 건달들 싸우고 있는데
인하…맞서서 싸워 보지만
역부족이고 건달들한테 얻어맞는 인하…
이때 영사실 앞쪽으로 오는 정원…그런 인하를 본다.
정원…두리번거리다가…한쪽에 있는 몽둥이 하나를 집어들고 달려간다.
정원…다가가서…들고 있는 몽둥이로 건달 한 놈을 후려치고
인하…옆으로 다가선다.
인하 니가 왜 끼어들어! 꺼져!
이때 임대수와 건달들 인하와 정원을 공격하면…
정원…들고 있는 몽둥이로 건달들을 제압하는데…
오랫동안 검도를 배운 능숙한 솜씨다.
인하는 인하대로 주먹과 발길질로 건달들과 맞서고…
한쪽에서 두려운 얼굴로 그런 정원과 인하를 보는 수연의 시선…
그런 세 사람의 모습에서 스톱모션. 최완규 극본, 유철용 연출, ꡔ올인ꡕ1회 대본.
김인하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수연과 수연의 부친)을 돕기 위해서 폭력을 행사한다. 임대수와 건달들이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약속을 어겼다면, 김인하와 최정원은 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도의적인 약속을 실천하는 셈이다. 따라서 그들이 사용하는 폭력에 질적인 격차가 생긴다. 김인하와 최정원은 아곤의 놀이적 규칙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폭력을 사용한 것이다.
아곤을 위해서는 평등한 놀이 조건을 구비해야 한다는 전제가, 위의 상황에서도 구현되고 있다. 먼저 위의 상황을 하나의 놀이라고 생각하자. 임대수와 그의 부하들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 그들은 수적으로 우세이다. 김인하는 그들과의 놀이에서 이상적인 조건, 즉 동등한 기회를 얻기 위해 선제 공격을 가한다. 쓰레기통이라는 무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도 두 세력간의 놀이 조건은 동등해지지 않는다. 최정원의 개입은 놀이 조건을 동등하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변수이다. 최정원은 유리한 무기(몽둥이)와 암습을 통해, 상대편이 가지고 있던 유리한 조건을 상쇄한다.
아곤이라는 놀이 원리를 대입했을 때, 현실에서의 폭력은 일단 놀이적 요소의 타락이다. 규칙 위배는 사회적 도덕적 합의를 무너뜨린다. 따라서 약자를 돕는다는 또다른 합의를 지키려는 김인하의 개입(폭력 사용)은 놀이 규칙의 복원으로 간주될 수 있다. 또 싸움을 하나의 놀이라고 가정하면, 김인하와 최정원은 불리한 여건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기와 암습을 허용 받는다. 정리하면 공정한 규칙과 동등한 조건을 부여받기 위한 상황이 설정되고 있고, 이를 통해 폭력은 어느 정도 정당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김인하와 관련된 싸움 장면은 상당히 많다. 그러나 거의 모든 싸움이 김인하의 열세에서 시작되며 싸움의 시초(선제 공격)가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다. 놀이의 조건이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 그 동기에 관계없이 김인하의 폭력은 놀이적 조건의 불평등을 만회하려는 노력으로 일단 인식된다. 그리고 정당한 폭력으로 인정되는 효과를 거둔다.
최정원이 서승돈 회장을 배신하는 것은 권력의지에 대한 야심이 가져온 결과이다. 최정원은 비록 김인하의 밀항을 돕는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자신을 돌봐주고 믿어준 사람들에게 실망과 피해를 안겨준다. 이것은 자신의 이익과 성공을 위해, 신뢰와 약속이라는 보편적 합의를 파기한 행위이다. 따라서 아곤적 요소의 타락이다.
아곤적 요소의 타락은 최정원과 최도환 일파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돌아온 김인하와 서승돈 세력은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최정원과의 사업적 경쟁을 추진한다. 그리고 최정원이 방심한 틈을 타서 손쉽게 목표를 성취한다. 이것은 정당한 경쟁이 아니라, 다소 불공정한 경쟁이다. 사업간의 경쟁은 아곤이 제도적으로 정착된 형태지만, 술책(배신)은 놀이적 요소가 타락한 형태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 상에서는 최정원의 배신과 최도환 일파의 부도덕성으로 인해 쉽게 용서되는 사안이다. 김인하의 반격(사업상의 술책)은, 최정원과 그의 세력으로 인해 훼손되었던 놀이 규칙의 복원으로 인식된다(또 실제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제니를 통해 권력의 힘을 빌린다는 애초 설정도 놀이적 요소의 타락에 해당한다).
드라마 ꡔ올인ꡕ은 아곤(경쟁심)의 타락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아곤적 요소의 회복, 즉 동등한 기회와 정당한 규칙을 적용하여 그 타락상을 감추고 있다. 선하지 못한 폭력에 대항하는 선한 폭력의 의미를 만들어내고, 폭력성의 확산과 심취를 양해 받고 있다. 또 선하지 못한 인물의 권력의지와 이에 대항하는 복수 차원의 술수를 병행시킴으로써, 아곤적 요소의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아곤의 부패와 놀이 조건의 회복이라는 생각을 이용하여, 폭력․출세․배신․술수와 같은 긍정적일 수 없는 인간의 덕성을 용인 받고 있는 것이다.
3.6. 알레아의 포기 : 위선적 통찰과 주제 노출
드라마 ꡔ올인ꡕ의 결말은 사행심에 대한 포기이다. 포커와 카지노의 도박은 운에 상당한 돈을 걸고, 일확천금의 기회를 사는 놀이이다. 시청자들은 신들린 도박사의 솜씨와 그들이 누리게 되는 부와 영예에 몰입하여, 도박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성을 간과할 수 있다. 이것은 흔히 사행심의 조장으로 비판받는 측면이다. 드라마 ꡔ올인ꡕ에도 그러한 위험성이 엄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카지노 내부와 호텔 전경을 이용하여 화려한 삶에 대한 유혹을 조장하고 있어 더욱 문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대한 가치 판단은 엄격하게 말해서 놀이적 요소의 고찰 대상은 아니다. 놀이적 요소에서 알레아의 타락은 “우연을 존중하기를 그만둘 때 시작된다”. “우연을 비인격적이며 중립적이고 감정도 기억도 없는 힘, 달리 말해서 운의 분배를 지배하는 법칙의 순수 기계적인 결과로 생각하기를 그만둘 때” 알레아는 타락하며, 알레아의 타락은 미신이나 점성술에 대한 믿음처럼 미래의 결과를 미리 알고자 하는 행위로 나타난다. 로제 카이와, 앞의 책, 81~82면 참조.
드라마 ꡔ올인ꡕ에서 김인하는 일생일대의 도박(입찰)을 포기한다. 그는 자신에게 올 행운을 더 이상 믿지 않고 도박 자체를 자신의 인생에서 버린다. 물론 도박을 통해 얻었던 화려한 삶에 대한 미련과 희망도 버린다. 이것은 교훈적인 측면에서는 상당히 후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긍정적 가치를 체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이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행동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포기가 아니다. 김인하는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걸고, 더 중요한 것(민수연)을 가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알레아에 대한 포기가 아니라, 더 큰 행운을 위한 노림수일 것이다. ꡔ올인ꡕ이 표명한 주제적인 통찰과 사회적인 함의는 여기서 일단 어긋난다. ꡔ올인ꡕ에 담긴 것처럼 보이는 주인공의 통찰력(깨달음)은 조작된 것에 불과하다.
또 입찰(도박)을 포기하는 과정에서, 미래에 대한 예견을 일찍 내비추었다는 점도 문제적이다. 로제 카이와는 알레아의 타락이 운에 미래를 맡기지 못하고, 다른 수단으로 그 운을 알아보려고 하는 점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드라마 ꡔ올인ꡕ의 결말은 김인하의 태도 변화와 서사적 전개를 통해 그 결말을 미리 예측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알레아의 타락을 상정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놀이적 원리를 견고하게 반영했다면, 사전에 차단될 수 있었던 결점으로 판단된다.
4. 놀이의 원리와 드라마적 구성 원리
드라마 ꡔ올인ꡕ은 인물들의 경쟁 구도를 통해 아곤적 원리를 구현하고 있다. 김인하와 최정원의 경쟁을 비롯하여, 김인하/임대수, 김인하/양승국, 최도환/서승돈, 최정원/서진희의 경쟁 관계가 상정되고 있다. 이러한 경쟁 구도는 아곤적 놀이 유형이 보여주는 긴장감과 대립 관계를 드라마 내부에 일으킨다. 드라마 ꡔ올인ꡕ의 재미는 이러한 아곤적 놀이 유형에 힙입은 바 크다. 그러나 최정원과 임대수가 김인하의 라이벌로 억지스럽게 상정되면서, 그리고 양승국과 최도환이 김인하의 라이벌로 제대로 구축되지 못하면서 아곤적 재미가 일부 반감되고 드라마 내부 구조에 중대한 결함을 초래하기도 한다.
인물들의 우연한 만남은 알레아적 원리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이다. 특히 김인하와 민수연의 재회는 우연히 일어난다. 여러 번 만날 수 있는 기회에도 불구하고, 둘은 스쳐 지나간다. 그러다가 카지노나 팔코네 집 혹은 사업장 같은 운명적 장소에서 충격적으로 서로를 인지하게 된다. 만남의 충격은 알레아적 원리에 의해 증폭된다. 우연한 만남과 그 계기는 알레아적 놀이가 보여주는 의외성과 놀라움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 전개는 서사구조의 개연성과 신빙성을 훼손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떨어져 있거나 비극적인 심리 상태에 있을 때, 핑계로 작용한다. 이것은 알레아적 원리를 깊게 체현하여, 서사구조의 정합성을 침해한 폐해로 판단된다.
도박, 특히 포커는 드라마 ꡔ올인ꡕ의 재미와 긴장감을 고조시킨 소재이다. 그것은 포커가 가지고 있는 놀이적 특성이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포커는 행운을 노리는 게임(알레아)이면서 동시에 그 행운을 운영하는 능력(아곤)을 겨루는 게임이다. 그래서 두 가지 놀이적 요소를 골고루 체험할 수 있다. 여기에 드라마 ꡔ올인ꡕ은 한 가지를 더 첨부한다. 그것은 포커 선수권 대회를 통해 미미크리적 요소를 강화한 것이다. 로제 카이와는 미처 설명하지 못했지만, 포커에서는 가장(假裝) 능력이 요구된다. 이러한 가장 능력을 화면을 통해 특징있게 처리했고, 또 마치 스포츠처럼 포커 선수권 대회를 중계함으로써 이를 보는 관람자 그리고 구경하는 시청자들의 동일시를 유발했다. 이로 인해 드라마 ꡔ올인ꡕ의 도박적 소재는 아곤․알레아․미미크리의 즐거움을 결합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일링크스적 요소는 서사내용 보다는 서사형식에서 찾아진다. 속도감 있는 편집을 통해, 스피드를 중시하는 풍조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호텔, 카지노, 고급 저택, 아름다운 관광지, 호화로운 내부 장식 등을 보여줌으로써 일상의 한계를 넘어서는 배경을 화면 내에 삽입시켰다. 그리고 스타들을 대거 기용해서 그들의 상품 가치를 최대한 이용했고, 그 결과 그 가치를 상승시켰다. 이것은 현실인이 느끼는 일상과 삶의 안정적 상태를 뒤흔드는 요인이다. 즉 정서와 생활의 균형을 흔들어 일종의 탈일상의 환상감과 동경심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아곤과 알레아는 드라마 ꡔ올인ꡕ의 허실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제공한다. 폭력성에 대한 우려는 많은 드라마에서 제기될 정도로 텔레비전 드라마의 위상과 척도를 재는 중요한 기준이다. 그러나 막상 폭력의 전염성과 혹은 폭력에 대한 경계심이라는 두 가지 입장 바깥으로 논의를 확대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지적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아곤적 요소를 적용하면 확대된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아곤에서 경쟁을 겨루는 조건을 제외한 다른 조건들은 평등해야 한다. 그런데 폭력의 현장에서 두 세력은 균형을 이루지 않는 경우가 많다. ꡔ올인ꡕ에서 김인하는 수적으로 혹은 상황에서 열세이다. 그래서 두 세력의 폭력은 폭력의 선악으로 나뉘면서 상반된 개념을 적용받게 된다. 이것은 김인하 세력이 아곤적 열세를 만회하려는 임의적 수단(암습, 무기 소지)마저 정당하게 만든다. 또 권력에 대한 의지, 술수의 측면에서도 김인하의 세력은 용인된다. 그것은 아곤적 경쟁 조건에서 상대가 유리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전제 때문이다.
알레아적 타락은 드라마 ꡔ올인ꡕ의 중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든다. 드라마 ꡔ올인ꡕ의 결말은 전체적으로 바뀌었다. 작가가 애초에 발표한 시놉시스와 달라지면서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이러한 결말처리에 대해 단편적인 입장은 무수히 제출된 상태이다. 그러나 그 호오(好惡)를 드러내는 반응에 불과하지 일관된 기준을 가지고 가치 판단을 내린 경우는 없다.
ꡔ올인ꡕ은 알레아를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즉 김인하가 인생을 걸고 했다는 자신의 도박을 버리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알레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김인하는 더 큰 도박을 수행하고 있다. 사업상의 성공을 포기하고 민수연과의 사랑을 얻고자 한 것이다.
또 알레아에 대한 욕망을 버림으로써, 즉 돈과 성공에 대한 야심(헛된 꿈)을 버림으로써, 인생의 중요한 통찰력을 얻은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결말을 미리 예측할 수 있게 만들 따름이다(그 과정에서 발생한 플롯의 허점을 예외로 친다해도). 대중이 해피엔딩에 안도감을 느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해피엔드를 선택할지라도, 그 과정은 철저하게 숨겨져야 하고 예측불허의 진행과정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ꡔ올인ꡕ은 대중의 욕구만 반영했지, 그 욕구를 채우는 진정한 의도를 실현시키지는 못했다. 다시 말해서 상투적인 결말을 반복한 셈이다.
놀이적 개념과 유형은 드라마 ꡔ올인ꡕ의 성패와 허실을 탐색하는 데에 중요한 척도를 제공한다. ꡔ올인ꡕ은 아곤적 요소와 알레아적 요소를 드라마 내부에 중요한 설정(인물의 성격과 서사구조)으로 삼고자 했다. 그리고 도박이라는 소재를 통해 아곤․알레아․미미크리를 결합하는 소재를 보여주고자 했다. 편집과 촬영의 미학적 측면에서, 일링크스적 요소를 설명될 수 있는 ‘생기 있는 변화’를 추구하려 했다. 이러한 시도는 완전히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재미와 긴장감을 제법 발생시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폭력(권력의지․술수)같은 놀이의 타락된 형태를 일부 옹호하는 불균형적인 시선을 산출했으며, 결정적으로 주제를 노출시키고 경험과 의미를 담는 주제 구현에는 실패했다. 이것은 아곤의 좋지 못한 면과 알레아의 깊이 있는 연구와 반영이 아쉬운 대목이다.
김남석
․199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등단
․논문 <오태석 희곡의 개방성 연구> 등
․현재 고려대, 한경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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