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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를 내면서/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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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호를 내면서
문학의 세계로의 귀환을 꿈꾸며
오늘날 세계는 복잡해지고 다양해졌다. 삶의 조건 또한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변화하고 있다. 다양한 사건과 사고, 물밀듯이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 급속도로 발전하는 과학 기술은 우리의 삶의 질을 급속도로 변화시켰다. 이 문명의 급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 세계의 속도에 자기 자신을 맞출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욱 힘차고 가열차게 삶의 페달은 밟아야하는 속도지상주의 앞에 우리는 어쩌면 자신에게 맞는 삶의 속도가 무엇인지조차 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테크놀러지화된 세계는 현대인에게 편리함이란 이기와 더불어 그것으로부터 잠시도 벗어날 수 없는 강박을 동시에 안겨줬다.‘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는 말은 이제 ‘하루라도 인터넷 창을 열지 않으면 낙오자가 된다’는 말로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시대적 당위가 아니라 실은 시대적 위기이다.‘문학의 위기’혹은 ‘문학의 죽음’을 공공연하게 거론하는 것은 이제 보편화된 진실이 되어 버렸다. 흔히 농담 삼아 문학은 ‘자급자족의 경제’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스스로 한탄한다. 아마도 이 땅에서 글을 쓰고, 글을 평하고, 글을 읽는다는 것은 위험 수위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문학작품은 왜 읽히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에게 문학은 왜 외면당하는가? 다만 사회적 여건과 변화된 문화의 풍토에만 기인하는 것일까? ≪리토피아≫ 편집진들은 문학작품이 독자로부터 소외되는 현실의 문제를 보다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차원에서 검토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호 특집을 ‘문학이 읽히지 않는 이유’로 정했다. 이에 실제로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시인과 소설가, 문학작품을 비평가는 평론가, 작품을 읽는 독자의 관점에서 문학이 읽히지 않는 구체적 이유를 듣고자 한다. 이는 살아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문학의 위기를 진단하고, 또한 건설적 대안을 찾고자 하는 기대이다.
김상미 시인은 「시집이 안 읽히는 이유」라는 글에서 정작 시가 읽히지 않는 것은 “좋은 시집을 선별해서 읽지 않았기 때문이며, ‘시’와 ‘시적’인 것을 혼동하여 ‘시적’인 것만을 취하려 했기 때문이며, 시를 너무 특별 대우하여 생활과는 먼 거리에 둔 탓이며, 진짜 시인보다 가짜가 더 많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좋은 시작품과 그것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훈련, 또한 삶과 격리되지 않는 문학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는 글이다.
한창훈은 소설가는 「작가로 살기의 괴로움」이란 글을 통해 창작자와 출판 세계의 문제점, 지식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 작가들의 도덕주의, 예술과 철학에 대한 국가의 마인드 부재 등을 진단하면서 ‘인간의 궁리와 정신이 집약된 책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풍부하게 하는 문학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우게 한다.
김종광 소설가는 「소설 씨와의 인터뷰」라는 글을 통해 ‘무엇보다 현대인의 삶의 여건이 문학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치열한 생존 경쟁, 인터넷 매체의 발달, 다양한 놀이문화의 영향력, 소수 정예화된 문학집단의 고립성 등이 독자와의 거리를 발생시켰다는 그의 비판은 창작자로서의 고뇌를 실감케 한다.
다음으로 문학평론가인 고영직은 「문학의 존재 이유」라는 글을 통해 주로 문화산업의 관점에서 바라본 문학의 문제점을 진단한다. 다원화된 시장 질서 속에서 철저한‘자기 검열’을 거쳐야 하는 문학, 일방적인 ‘상업주의’와 ‘저널리즘’의 논리, 이벤트화된 문학풍토, 독자들과의 올바른 소통을 위한 창작자의 ‘자기 부정의 정신, 문학에 대한 정부 당국의 정책 지원과 시각 전환 등 문학의 제도적 측면’을 고찰하고 있다. 그의 지적은 우리를 둘러싼 문화 환경의 총체적 문제점을 적확하게 짚고 있으며, 또한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끝으로 독자인 김상철은 주로 문학의 수용자로서 문학이 독자를 흡입하지 못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는 작가와 독자와의 정신적이며 심리적 간극, 함량 미달의 문학작품으로 인한 독자의 외면, 진지한 재미와 진정성을 놓치고 있는 다수의 작품, 대중을 선도할 수 있는 신뢰 있는 문학작품의 필요성 등을 역설한다. 작가와 독자를 긴밀하게 연결하지 못 하는 문학작품이란 결국 소통되지 않는 독백일 뿐인 것이다.
이 번호 초점은 박찬일 시인과 전미정 평론가가 엮어주었다. 먼저 박찬일 시인은 「모더니즘의 한 계보-김수영, 김춘수, 이승훈을 중심으로」라는 글에서 “모더니즘은 분열의 모더니즘이고 또한 분열을 봉합하려는 모더니즘이다. 분열의 모더니즘은 내면성의 모더니즘이다.”라고 명명하면서 이승훈의 ‘비대상의 시’, 김춘수의 ‘무의미 시’, 김수영의 「罪와 罰」이라는 작품이 각각 모더니즘의 첨예한 정신을 드러내주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전미정 평론가는 유승우의 시를 중심으로 그에 시에 나타난 ‘몸’의 문제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그는 유승우 시의 핵심을 ‘목숨과 생명이 생성되는 몸’, ‘살림의 시학으로서의 몸’, ‘에코에로티시즘으로서의 몸’으로 파악하면서, 인간의 몸이란 상상력의 모태이며 우주적인 차원으로 상상력을 확장해 주는 것이며 또한 영원한 조에의 생명을 구가하는 구원의 세계라 역설한다.
‘젊은시인조명’은 김규린의 신작시를 다루었다. 김규린은 제주 출신이며 시집 ꡔ나는 식물성이다ꡕ를 출간한 시인으로 독자적이며 단단한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의 이번 작품 세계는 강동우 평론가가 맡아주었다.
‘문화산책’은 김남석과 김서영의 글로 꾸며진다. 김서영은 대중적 인기와 한국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영화 「살인의 추억」을 집중적으로 검토한다. 특히 동일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연극 「날 보러와요」와의 비교를 통해 영화의 문제점과 특성을 살펴보고 있으며, 감독의 연출과 영상, 등장인물의 시점을 위주로 영화의 구성을 섬세하게 고찰하고 있다.
이밖에도 이번 호는 ≪리토피아≫를 통해서 시인으로 등단한 박정규, 고현진의 작품을 소개하며, 올해로 3회를 맞은 ≪리토피아≫ 인터넷청소년문학상 대상 작품을 싣는다. 문학 꿈나무들의 야무진 창작 열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강경희(문학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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