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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특집> 문학이 읽히지 않는 이유/김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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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681회 작성일 05-01-19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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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이 안 읽히는 이유

김 상 미
(시인)



1. 감동이 없다
2. 재미가 없다
3. 어렵다
4.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5. 너무 길고 지루하다

시가 가공스러운 고독이며 저주받은 태어남이며 영혼의 병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시인을, 적어도 자기 자신을시집이 안 읽히는 이유|김상미․
시인이라고 자처하거나 시인이라고 일컬어지는 많은 작가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본다.
시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도 없으면서 시 비슷한 형식의 글을 늘어놓기만 하면 시인이 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 팽배해 있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다. 시의 규칙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시는 일반 사람들이 ‘시적’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시는 비밀 무기이다. 위력 있고 정확한 속사포와도 같다. 때로는 아득하게 멀리 있는 목표물을 겨냥하여 쏘는 무기이다.

장 꼭토의 옥스퍼드대 강의록에서 발췌한 글이다. 오래된 글이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읽어도 큰 자극(?)이 되는, 타당성 있는 글이다. 오늘날의 시와 시인, 그리고 일반 사람들이 착각하는 ‘시’와 ‘시적(詩的)’인 것에 대한 정의를 잘 내린 글이다. 다시 말하면 ‘시집이 잘 읽히지 않는 이유‘를 명쾌하게 표현한 글이다.
시집이 안 읽히는 건 시집 읽기가 고통스럽다는 말일 수도 있고, 시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옅어졌다는 말일 수도 있다. 나는 그 이유를 스무 명의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 중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이 (1)감동이 없다, (2)재미가 없다, (3)어렵다, (4)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5)너무 길고 지루하다,였다. 이 다섯 가지를 한마디로 집약해 말하면 ‘감동이 없다’는 말이다. 감동이 있으면 재미, 난해, 애매 모호, 지루함 등은 일시에 걷혀진다. 그러나 나는 ‘시집이 안 읽히는 이유’ 중 가장 큰 문제는 스무 명의 사람들의 대답이 아니라, 시가 일반 사람들과 너무 먼 거리에 있는 것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유명 시인들과, 특별 대우를 받는 베스트셀러 시인들의 시집 외엔 자료나 정보 제공 체제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인터넷을 통해 아무리 검색해도 어떤 시집을 읽는 게 좋은지 길잡이가 되어주는 사이트는 없다. 시 비슷한 시들은 많아도 진짜시(?)와 접할 기회가 일반인들에게는 적다(시낭송회조차도!). 이러한 요인들이 다른 장르의 책들보다 시집을 비현실적이게 만들어 안 읽히게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이번 기회엔 그러한 생각보다는 스무 명의 사람들이 말한 ‘시집이 안 읽히는 이유’ 중 다섯 가지를 갖고 시인으로서의 코멘트를 덧붙이는 것으로 이 글을 쓰고자 한다.

1. 시에 감동이 없다?
그렇다면 그건 죽은 시이다. 그러나 ‘시에 감동이 왜 없는지’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시인은 시를 쓴다. 날마다 시를 생각하고, 시적 소재를 찾아 방황한다. 한 편의 시를 위해 몇날 밤을 지새기도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기도 한다.
대체 시가 뭐길래, 시가 밥 먹여 주냐고, 시인이 아닌 사람은 도대체 시인을 이해하지 못 한다. 더군다나 그렇게 쓰여진 시를 읽고, 또 읽어봐도 무슨 뜻인지, 무엇을 말한 것인지 쉽게 알아보기도 힘이 든다.
그런데도 시인은 자신이 쓴 시를 읽으라고, 읽어보라고 강요한다. 사람들은 난감해 하면서도 서점엘 간다. 시집 몇 권을 사온다. 집으로 돌아와 뜨거운 한잔의 커피를 책상머리에 놓고 시집을 뒤적거린다.
어린 시절, 교실에서 외우던 그런 시와는 너무나 다르다. 읽어내기도 어려운데 소리 내어 외우기는 더더구나 어렵다. 몇 편의 시를 읽어보다 커피만 한잔 다 마시고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소설을 든다. 소설은 재미가 있다. 읽기도 쉽다. 아무 생각 없이 줄거리만 따라가면 된다. 웃기는 장면에선 웃으면 되고 슬픈 장면에선 슬퍼하면 된다. 그런데 시는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가슴에 와 닿지가 않는다. 감동을 주지도 느낌도 없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어떤 시집은 정말 좋아 손에서 놓기가 싫어 가방에 넣고 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집은 읽고 또 읽어도 저절로 박수가 쳐지지 않는다. 읽다만 시집을 책꽂이에 꽂는다. 다른 책들과 함께 책꽂이에 꽂힌 시집을 보니 마음만은 흐뭇하다.
시집이 책꽂이에 꽂혀있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사람들. 그럼에도 시를 잘 읽지 않는다는 사람들. 그렇듯 사람들에게 특별 대우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인기(?)는 없는 시집들. 감동을 주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시집에게 특별 대우를 하는 사람들. 사람들과는 너무 먼 거리에 놓여있는 시집들. 잘 읽히지 않는 시집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시집 자체는 좋아하면서도 시 읽기는 겁내는 것일까?

2. 재미가 없다?
재미있는 시가 없다? 감동이 없어도 읽는 재미가 있다면 왜 시를 읽지 않겠는가? 물론 시가 꼭 재미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재미없어야 할 이유도 없다. 시는 읽는 사람의 생각 여하에 따라 재미있을 수도 있고,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문장 노트가 될 수도 있다. 다른 문학 장르의 글은 사고를 따라가면서 쓰기에 따라 읽기가 용이하다. 하지만 시는 사고를 거쳐 형상화한 후 쓰는 글이어서 따라 읽으려면 상상력이 동원되어야 한다. 상상력 역시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 머리와 가슴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가 재미없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그걸 형상화하여 다시 쓰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산문은 그걸 작가가 대신 다 해주지만 시는 독자가 그 절반을 맡아 해야 한다. 그러니 시 읽기가 골치 아플 수밖에 없다.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 읽기에 한번 맛들이면 어떤 것보다도 재미있다.
그러니 독자들이여, 시를 재미있게 읽으려면 그만큼 읽는 사람도 시인처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장 꼭토의 말처럼 ‘시’와 ‘시적’인 것은 다르다. 시에서 ‘시적’인 것만을 취하려면 오히려 흘러간 노래를 듣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진짜 시는 수백 만의 영혼을 가진 얼굴이자 정신이며, 환영이며 유령이다. 그래서 시의 입구로 들어가는 문은 좁아도 그 안엔 무궁무진한 보물(예지)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3. 시가 어렵다?
물론이다. 시는 어렵다. 시가 게임하듯 쉬워서야 되겠는가! 왜 시인을 ‘저주받은 태어남’이라 하고, 시를 ‘비밀 무기’라 하겠는가? 시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시가 어렵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시집을 한번 펼쳐 보라. 그리곤 우선 거기 쓰여진 그대로 읽어보라. 조금씩 사고와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며, 머리 뚜껑이 열릴 것이다. 그래도 시가 어렵다면 그건 당신이 엉터리 시인이 쓴 시집을 읽고 있거나, 시인 자신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시의 역량이 부족한 시인의 시를 읽고 있기 때문이다. 왜 시와 시인 앞에 ‘좋은’이란 말이 붙겠는가. 시인들 중에도 ‘시’와 ‘시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 하는 이들이 많다. 모든 시들을 다 이해하고 알려 애쓰지 마라.
그대를 변화시키는 건 언제나 한 권의 좋은 시집으로부터 시작된다!

4.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무슨 말인지 몰라서 시집이 안 읽힌다? 설문 조사 중 사람들이 한 대답 중에서 나를 가장 슬프게 한 대답이 바로 이 네 번째 대답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시인으로선 얼마나 듣기 민망한 말인가? 애써 쓴 시를 읽고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니? 얼마나 황당한 말인가? 그만큼 시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과 고정 관념이 확대화되어 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면서 예를 든다는 게 베스트셀러 시인들처럼 쉽게 쓰면 안 되나요?이다. 한마디로 쉽고 단순하게 쓰라는 것이다. 그냥 ‘시적’으로만 쓰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 시인들도 많다. 시인인 내가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참으로 낯두꺼운 시들. 시집 한 권을 다 읽어봐도 ‘시’는 한 편도 없고, ‘시적’인 글들로만 채워진 시집들. 없는 건 아니다. 많이 있다. 그들은 ‘시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도 없으면서, 시 비슷한 형식의 글을 늘어놓기만 하면 시인이 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팽배해 있는 시대적 산물의 시인들이다. 무수한 등단 매체들을 보라! 그것을 보고 어떻게 시의 시시비비를 가리겠는가? 그러니 우리가 사랑하는 시인들, 백석․김수영․이상․정지용․서정주․김춘수…… 등등의 시들을 읽으면 그게 무슨 말인지 다 알지 못 해도 왠지 손에서 놓기가 싫어진다. 자신이 스스로 고상해지는 것 같다. 그게 시의 역할이다. ‘인간을 상승시키는 것’, 무슨 말인지 애매해도 뭔가 좋다는 느낌, 그것이 시 읽기의 재미며 감동이다.
그러니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 없으면서도 시시한, 쓰레기 같은 시집들은 저 멀리 던져버려라. 그리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나 재미도 있고 감동이 있는 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으나 메시지가 있고 생각할 거리를 주는 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으나 뭔가 마음을 끌어당기고 기억에 남는 시, 그런 시들을 읽으면 된다. 시는 아무리 읽어도 잘 모르겠다는 말은 ‘시적’인 편견과 고정 관념에 빠진 그대들의 엄살이고 억지일 수도 있다. 잘 쓴 시, 좋은 시는 아무리 미궁 안에 놓여있어도 길을 찾아내고, 찾아내 준다.

5. 너무 길고 지루하다?
시들이 전반적으로 길어진 건 사실이다. 80년대 말 이후, 대대적으로 시 장르가 해체되면서부터 더더욱 긴 시들이 많아졌다. 시인지 산문인지 구별이 잘 안 가는 시들도 많이 있다. 시언어의 함축미라든가 촌철살인적 시어니 하는 비유가 현저히 줄어든 만큼 길고 지루한(?) 시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시를 길게 쓴다고 시가 아닌 것도 아니고, 짧게 써야만 시인 것도 아닌데……. 길게 쓰는 사람은 길게 쓰고, 짧게 쓰는 사람은 짧게 써야하지 않겠는가?
시가 너무 길고 지루해서 시가 잘 안 읽힌다는 건 억지이다. 물론 긴 시들 중엔 정말 읽기 힘든 신파조의 시들도 있다, 말만 화려하고 내용은 하나도 없는. 그러나 이 글에선 그런 시들은 제외시켰다. 그런 시들을 읽으며 ‘너무 길고 지루하다.’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이상한 것이다. 제발 그런 시들에 세뇌당하지 말라. 위에서 말한 다섯 가지에 해당하는 그런 시, 시인, 시집들에게 현혹되지 말라.

‘시집이 안 읽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좋은 시집을 선별해서 읽지 않았기 때문이며, ‘시’와 ‘시적’인 것을 혼동하여, ‘시’는 저 멀리 두고, ‘시적’인 것만을 취하려 했기 때문이며, 시를 너무 특별 대우하여 생활과는 먼 거리에 둔 탓이며, 이 나라에 시인들이 너무 많아 너도나도 시를 써대기(?) 때문이다. 진짜보다 가짜가 더 많기 때문이다. 가짜가 진짜처럼 더 많이 나다니기 때문이다.
좋은 시를, 시집을 읽으려면 독자들도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김상미
1957년 부산 출생
1990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외

추천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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