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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연재-시로 쓰는 시론/김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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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쓰는 시론-3
김동호
10.
“시는 흙이어야 한다
뿌리들 신이 나야 한다
시는 물이어야 한다
더럼들 깨끗이 씻겨져야 한다
시는 불이어야 한다
언 마음 사르르 녹아야 한다
시는 大氣이어야 한다
공중의 양떼들 포동포동
살이 올라야 한다
시는 空이어야 한다
이들 다이면서 다 아니어야 한다”
그러나 詩
다 도망가버리고 없구나
우리 이렇게 떠드는 사이에
11.
“큰 질서는
보이는 곳에 있지 않다
사자 표범 늑대에게
늘 쫓기면서도 아프리카 대초원의
주인 노릇을 하는 영양들
그들이 마시는 대기 속에 있다”
“----------------”
“역사의 눈 또한 천재적 소수의
천재적 설계 속에 있지 않다
예기치 않은 사건들의 구름 속
번쩍! 튕기는 빛, 그 속에 있다”
“------------------”
“---------”
“선생님, 이 토끼풀 좀 보세요
잎이 넷이네요. 네 잎 달린 토끼풀
보신 일 있으세요?”
“-----------------?”
12.
안개 속 미인은
무섭기만 했다
素服한 유령처럼
피묻은 달빛처럼
그러나 안개가
詩가 되던 날
안개 속 유령은
나의 선녀가 되었다
13.
심청이 삼킨 바다
피난민 일가족 참혹하게 삼킨 바다
꽃다운 젊은이들 대량으로 삼킨 바다
바다는 늘 무섭기만 했다
그러나 1970년의 바다!
그 많은 오물 쓰레기를 삼키고도
배탈이 나지 않는 목포 뒷계 바다가
나의 항아리가 되던 날 폐선 잠긴 바다는
새 魚樵, 온갖 고기 몰려드는 나의
새 어장이 되었다
14.
매일 목욕하는 사람은
일주일만 안 해도 썩는다
이것은 그녀가 한 말이 아니다
그가 한 말도 아니다
그럼 누가 한 말일까?
세 시간씩이나 기다렸다가
물 한 통 받아가는 약수터 사람들:
“추석 때 부산 가는 기차도 이렇게 기다리지는 않았오”
“이거야 부산까지만 가겠어요? 백살까지 가지”
이 말도 약수터 사람들이 한 말이 아니다
약수가 한 소리도 아니다. 그럼 누가 한 소리일까
우리는 엉뚱한 곳에서 말을 찾는다
결국 말은 물처럼 맑으면 된다는 선에서
우리는 허허 웃으며 끝을 냈다
김동호
1934년 충북 괴산 출생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ꡔ바다ꡕ ꡔ꽃ꡕ ꡔ피뢰침 숲속에서ꡕ ꡔ시산일기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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