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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신작시> 난로가의 여교사들로 인한 외 1편/한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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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옥
난로가의 여교사들로 인한,
하시는 일이 순조롭지 않았던
아버지의 조촐한 설빔을 입고
교무실 문 조심스레 열었을 때
여교사들 난로가에 둘러서 있다가
바라보며 키들키들 웃었던 것 같다
설빔을 조롱하고 있었던 것 같다
불길로 발개진 그 얼굴들보다 더,
발개진 채로 돌아서서 간신히
뒤꽁무니 감추기까지 몇 번 찢어져
마음이 너덜거렸던 그 이후부터는
곧잘 찢어지게 되었던 것 같다
너덜대는 마음을 깁다가 눈감으면
큰 느티나무 같은 사람 하나
난로가의 여교사들 나무라며
역성 들어주는 풍경이 그려지곤 한다
나무 같은 그 사람은 그림자뿐이지만
마음을 기워주는 데는 그만이었다
이제 간혹은 생각을 밀어보기도 한다
난로가의 여교사들도, 엇비슷한 이들도
그림자, 물컹한 덩어리였을 거라고,
물컹한 것에게 오래 두들겨 맞았다고.
홍초 잎사귀
눈 비비며 일어나 몇 걸음 하면
큰엄마 계시고 작은엄마 계셨다
사촌언니랑 메뿌리 캐어가면
큰엄마 메떡 쪄주시고
사촌동생이랑 소루쟁이 뜯어가면
작은엄마 소루쟁잇국 끓여주셨다
큰집 사시는 할머니는 쇠죽가마에서
뜨뜻한 감자알 수북히 골라주셨다
할머니는 칸나를 많이 심으셨다
칸나를 홍초라 부르셨던 할머니,
손이 홍초 잎사귀 같으셨다
먼훗날, 마땅히 걸음할 곳 없게 된다
털 깎인 짐승처럼 몸 아릿하게 된다
홍초 잎사귀 보면 흐느끼게 된다.
한영옥
․1950년 서울 출생
․1973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ꡔ안개편지ꡕ ꡔ비천한 빠름이여ꡕ 등
추천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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