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10호<신작시> 봄, 공화국 외 1편/조하혜
페이지 정보

본문
조하혜
봄, 공화국
나는 자꾸 춥다고 하고 아이는 자꾸 덥다고 한다
나보다 추운 얼굴들이 하나 둘, 지나고
열두 시와 열두 시가 만나 수작 중인 봄날에
구제품 옷가지처럼 어제 후줄근하던 것들도
햇살 속에 잠시 앉아 눅눅한 기억을 말리고
산동네에서 지하도 아래 계단 끝까지
빨강 파랑 신호등이 걸린 횡단보도를 건너
보도블럭 위에 누군가 씹다버린 껌딱지를 지나
지난 겨울, 새끼를 사산하고 털이 센 누렁이에게도
봄날은 온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나무들의 이름표를 들여다보다가
어제 시든 것들의 이름을 죄 불러본다
대답을 기다리듯이 죄 불러내고 싶은 가난한 얼굴들,
나는 자꾸 춥다고 하고 아이는 자꾸 덥다고 하는
봄날에……
사랑
밤새도록 발가벗고 영화를 보다가
책만 쌓인 골방에 틀어박혀 춤만 추다가
짐승처럼 울다 잠들다가
버스를 놓치고, 당신을 놓치고
어제를 놓치고, 오늘을 놓치고
시간이 시간을 놓치고
내가 나를 놓치네, 놓아주네
봄이 봄을 놓아주네,
늘어지네,
돼지고기 한 근만요
정육점의 붉은 살점들 늘어지네
당신처럼 웃고 있는 코들, 저 코들
도처에 도저한 당신, 얼굴들
조하혜
․1972년 서울 출생
․1994년 ≪현대시사상≫ 등단
․시집 ꡔ도넛, 비어 있음으로 존재한다ꡕ
추천18
- 이전글10호<신작시> 솔개에 대하여 외 1편/윤의섭 04.01.25
- 다음글10호<신작시> 들꽃여관에 가고 싶다 외 1편/박완호 04.01.2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