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10호<신작시> 나이트 클럽, 폐기되는 밤 외 1편/김종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장
댓글 0건 조회 3,140회 작성일 04-01-25 11:41

본문

김종미

나이트 클럽, 폐기되는 밤



사람인 것을 잊어버리려 춤을 춘다 사람이 추는 춤은 사람을 닮지 않아 물고기와 새와 벌레들이 함께 어울려 춤을 추는 나이트 클럽, 물고기가 새에게 매혹된다 새가 벌레에게 매혹된다 벌레가 물고기에게 매혹된다 푸른 땀을 흘리며 춤을 추는 사람들 위로 사이키 조명이 쏟아진다 사이키 조명에 발굴되는 천년 전 화석들, 뭉쳐지지 않는 슬픔의 덩어리들, 하나가 될 수 없는 매혹적인 것들, 이 밤은 일회용, 날이 새면 자동 폐기되므로 즐거워라 팔 하나는 날개, 팔 하나는 지느러미, 마디가 늘어나는 몸, 흔들리는 촉수, 푸른 땀이 솟아 나와 흥건하게 바닥을 적신다 바닥에 떨어져 짓밟히는 푸른 땀은 밟힐수록 무성하게 자라나는 풀씨, 무릎을 덥고 허리를 덮고 마침내 키를 넘어 풀이 자란다 꽝꽝 울리는 음악은 바람의 리듬, 풀잎이 들썩인다 흥겹게 들썩이는 풀잎, 그 속에서 춤을 추는 서로에게 매혹된 물고기, 새, 벌레들…… 또 다시 천년이 흐른다




아직도 지하철 안이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 그는 잰걸음으로 들어왔다 지하철을 무사히 타고서도 그는 잰걸음으로 제자리를 돌다가 바짓가랑이를 걷고 양말의 목을 종아리로 바짝 끌어올렸다 처음엔 양말이 불편한 줄 알았다 처음엔 뭔가 잊어버린 줄 알았다 처음엔 슬픔에 기가 찬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계속 잰걸음으로 제자리를 돌았으며 허리를 구부려 멀쩡한 양말 목을 잡아당겼다 내 발목이 아프도록 잡아당겼다 내 머리가 어지럽도록 잰걸음을 돌았다 자리가 많았지만 앉을 줄도 모르는 듯 그는 앉지도 않았다

그러던 그가 드디어 앉았다 고요한 눈빛을 유리창의 어둠에 고정시킨 채 이세상 사람이 아닌 듯 앉아있었다 발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듯 앉아있었다 그 발이 양말을 신고 있는 것을 잊어버린 듯 앉아있었다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열린 지하철 문으로 그가 잰걸음으로 사라졌다 더 고요해진 고요를 싣고 더 불안해진 불안을 싣고 달리는 지하철, 그는 아직도 지하철 안이다




김종미․1997년 ≪현대시학≫ 등단

추천1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