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10호<신작시> 호두 까는 여자 외 1편/박홍점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장
댓글 0건 조회 2,878회 작성일 04-01-25 11:46

본문

박홍점

호두 까는 여자



먼 기억 속 늑대 울음 소리 듣는 만월 떠오르는 밤

꽉 다문 호두를 땅땅 두들긴다
사방으로 파편이 튄다
세상에 그 안에 웅크린 채 잘 자란 태아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사정없이 두들겼던 거다
안 돼요, 안 되겠어요
끝없는 상승을 원하던 여자
사지는 여지없이 찢겨지고
찢겨진 아이가 뭉텅뭉텅 쏟아져 나온다
여자의 손에 피가 묻었다
피 묻은 손은 돌아갈 수 없다
누구라도 이쯤 되면 멈출 수가 없다
여자는 속을 파먹기 시작한다
미끈거리는 양수를 손에 입가에 묻히며
머리몸통다리를 다리몸통머리를 뒤죽박죽으로 파먹는다
구석구석 끼인 살점들은 돗바늘을 넣어 말끔하게
양분이 될 거라는 지나는 바람의 말에
여자의 귀가 번쩍 열린다 자꾸만 감기는 두눈에 불꽃이 인다
입맛 다시며 속껍질까지 몽땅 먹는다
울어본 적 없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순백의 태아, 태아를
쭈글거리는 그 주름들,
울퉁불퉁한 내력을 읽는다 켜켜이 힘의 저장고
그리하여 주름이 주름을 펴고
저 깊은 골짜기 안쪽에서는 주름이 주름을 만들기도 하리라
그녀 얼굴에 붉은 기운이 번진다
이빨로는 씹고
손으로는 땅땅 두들기며 바쁘다 바빠
먹어도먹어도 여자는 배가 부르지 않는지

단단하고 견고했던 집
한때 둥글었던 그것들이 날을 세운다





씨눈



옥수수 씨눈으로 기름을 짰다구?
눈에서 나온 액체라?
그럼 눈물인가?

눈물로 계란을 부쳐먹고
눈물에 고구마를 튀긴다
눈물은 뜨겁다
살아있는 것들의 숨통을 단시간에 조인다
단단하고 질긴 것들을
바삭하고 맛있게 금세 익힌다

뜨거운 눈물이 튄다
눈물에 데인다
눈물은 더 이상 눈물이 아니다
찔러대는 아픔이다
한시 바삐 벗어나고 싶은 짐이다
어느새 헤집고 들어와 짓누르는,
눈물이 온통 나를 적실 것만 같다
거대한 눈물의 무게
나는 입술을 깨문다 발버둥을 친다

눈물이 끝내 눈물을 밀어내고 만다



박홍점
․전남 보성 출생
․2001년 ≪문학사상≫ 등단

추천2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