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10호<신작시> 붉은 맨드라미에 얽힌 외 1편/장성혜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장
댓글 0건 조회 2,831회 작성일 04-01-25 11:47

본문

장성혜

붉은 맨드라미에 얽힌



기울어지는 집이 있었대
햇볕이 끓는 마당가에 붉은 맨드라미만 줄지어 있었대
어두운 방에서 열꽃이 피어 문구멍을 뚫고 내다보는 핏줄
나오면 안 된다 뭉크러진 얼굴로 먼 강물소리 끌어다 눕혀주며
내다보지 마라 막막한 이승의 강을
불같은 이마 짚어주던 푸른 손이 있었대

할아버지 장에 가셨대 소 팔러 가셨대 소 판돈을 허리에 차고 꽃신을 사셨대 외나무다리 건너는데 목숨 같은 돈다발이라고 움켜쥐고 온 것이 신발 한 켤레였대 할아버지 그 강을 건너지 못하셨대

장에 가신 할아버지 기다리며 강가에 모래로 두꺼비집을 만들었대 모래로 된 집에서 홍역 앓은 아이가 걸어나오고 뒤로 몰래 다가온 물결이 집을 허물고 벗어놓은 신발 한 짝도 가져가 버렸대 그 강물 좇아 내려온 붉은 얼굴이 있었대

세일을 하는 영등포 신세계백화점 이제야 찾았다고 새 신발을 들고 계산을 하려는데 메고 있던 것이 빈 가방이었대 열어보니 빈 집이었대 갑자기 유리문 밖에서 물소리 들렸대 내다보니 어둠이 내리는 화단에 쏟아놓은 붉은 맨드라미 이게 네 것 맞지 잃어버린 신발 잃어버린 지갑 떠다니는 막막한 강물 흘러드는
자꾸만 기울어지는 몸이 있었대





그렇게 미로에 빠져들었다



우체국과 도서관 사이 공룡이 나타났다더니
벌어진 입속으로 날마다 사람들이 사라졌습니다
마음을 통째로 주겠다고 속삭이는 괴물
우편함 속에 꽂혀있는 행운권을 들고
번쩍이는 가슴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사랑의 선물 증정이 시작되는
냉동된 포장육이 담긴 플라스틱 바구니 앞에 줄을 섰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수레를 끌고
붉은 옷자락만 보여주고 사라지는 것을 따라갔습니다
게임이 시작되는 코너에
꽃향기 나는 샴푸마다 꽃씨가 음모처럼 끼어있었습니다
커트 다섯 번을 하시면 한 번은 무료로 잘라드립니다
네모상자 속 그 집에 머리를 맡겼습니다
쿠폰 열 개를 모으시면 치킨 한 마리를 그냥 드립니다
제물로 바쳐진 머리 한 개가 봉투 위에 훈장처럼 붙어있었습니다
이쯤에서 네 품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문 앞에 당첨되지 않은 전단들이 떨어져 쌓여있었습니다
그제야 그 뱃속이 궁금하여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벽을 동전으로 긁자 꽝
거울로 된 벽이 무너져 복도가 되었습니다
구불구불한 복도를
사라진 사람들이 몰려다니고 있었습니다


장성혜
․2002년 ≪리토피아≫ 등단

추천2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