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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신작시> 놀이에 항거하다 외 1편/김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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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미
놀이에 항거하다
동네 어귀
아이들이 모여 놀이하고 있다
땅따먹기놀이
이렇게 그려놓고
_____________
_____________
모든 귀가 날카롭다
어디에도 角 아닌 것 없어
땅 속으로 들어간 아이들
피 뚝뚝 흘리며 쓰러진다
아, 이 놀이는 언제 끝낼 것인지……
칠판에 詩 한 편 옮겨 적는다
학생들, 졸고 있거나 떠들고 있는데
S A U
A U S
U S A*
이렇게 적어 놓으니
속이 조금 후련하다,
가로 선으로도
세로 선으로도
돼지 같은 놈 물렀거라 외치니
갑자기 돼지떼 사막의 모래폭풍 속으로
도망간다
선량한 사람들에게는
詩도 무기가 되는구나
이 詩, 10년을 주기로 하여 항거하는
비폭력의 이름이었구나
*반미 감정을 표현한 독일의 구체시. sau는 나쁜 뜻으로 “암퇘지”이고 aus는 “out”의 뜻
(한스외르크 마이어Hansjörg Mayer의 시)
내가 없으면 너는 슈퍼맨이다.
화려함과 광란의 쇼 무대 위에 펼쳐진 세상,
그 깊은 골 언저리에 감추어진 나를 쫓으며
어두운 거리를 방황하는 진실들
꿈도 사랑도 욕망도 모두
흩어지는 사월의 바람 사이로 사라지는 땅
이곳에선
인간들은 더 이상 인간의 옷을 입지 못한다.
현란한 광채의 집 속으로 자신들을 몰아넣고
가쁘게 숨, 몰아쉬며
나를 쫓는 한 무리의 박쥐떼
너는 아느냐, 이 비릿한 도시의 뒷골목을
내가 나를 버리면 다가오는 너의 정의를
낯익은 음악 소리도
그리움에 지친 가슴도
이 도시, 이 암울한 땅에서는 모두
야망과 음모에 둘러싸인 쇼 비즈니스라는 걸
매일매일 내 얼굴 위로 겹쳐지는 또 다른 내 얼굴
원본은 사라지고 복사본만 우글거리는 세상
무대는 키치와 욕망이 뒤범벅된 채
새로운 스타를 기다린다.
내가 없으면,
내가 가진 진실이 없으면,
비릿한 욕망이 아닌 맑은 유월의 청초한 소낙비 같은
내 꿈이 없으면,
세상은 온통 너의 것.
밤새 어둠의 정의를 망토 끝에 휘감고
온 땅을, 온 하늘을, 온 역사를 갈취할 것인데
화려한 제왕의 지휘봉이 뚫지 못하는 곳,
결코 너의 힘닿지 못하는 곳에 사는
내 양심에는
슈퍼맨, 너의 그림자는 침입하지 못한다.
너의 치명적 약점,
그것은 인간이다, 인간의 꿈, 복제되지 않은,
복제될 수 없는
나, 인간의 정의, 헛되지 않은
인간의 꿈으로 포식한 너의 무대 위로
결코 쓰러지지 않는 나의 가는 허리를
너는 꺾지 못한다
너의 꽃병에 나를 꽂지 못한다
나는 너와 다른 방향에서 향기를 피우며
너의 악취를 지울 것이다
그러니, 너는 내가 없어야 슈퍼맨이다,
세상의 모든 원본을 다 지워야만 너의 세상, 암흑의 세상
그 세계의 제왕,
슈퍼맨이다
그러나 보라, 저 세상 한 모퉁이에서
태양의 힘에 겨워 다시 트는 새싹을
그 작은 잎사귀,
그 뒤에 감추어진 인류의 역사를!
김점미
․1963년 부산 출생
․2002년 ≪문학과의식≫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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