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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시인의 산문> 섬에서 보낸 한철/박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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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장
댓글 0건 조회 4,117회 작성일 04-01-25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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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보낸 한철

박 해 람



혼미함의 배를 타고
하루키의 단편 소설 중에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이라는 소설이 있다. 내가 아는 한 후배의 집도 또 내가 지금부터 섬에서 보낸 그 나날들을 이야기하려는 곳도 공교롭게 그 소설에 나오는 집과 아주 흡사하다. 다만 틀린 점이라면 소설 속의 그 집은 삼각을 이루어 전철이 지나가는 곳이지만 후배의 집은 삼각을 이루어 도로가 지나가는, 그러니까 전철과 도로라는 주변 풍경만 다를 뿐이다.
후배는 꽤 괜찮은 직장을 그만두고 몇 년째 돈 한푼 안 나오는 그 섬을 관리하는 일종의 관리인으로 재직 중인, 틈틈이 ‘소설',이라는 친구를 가끔 불러내는 것 외엔 하는 일이 그저 단순한 관리인일 뿐이다. 내가 그 섬엘 처음 간 날은 이후로도 늘 그랬지만 술에 취해 굉장히 혼미한 상태였었다.
섬이라는 곳이 그렇다. 배후가 텅 비워진 사람이라면 느꼈을 것이지만 주변에 아무런 풍경이 남아있지 않을 때나 내가 기대고 있던 등뒤의 벽이 사라진 것을 깨달을 때 누구나 한 번쯤 생각나는 곳. 그곳에서 한철 보내면 꼭, 사라진 배후나 불편하더라도 무언가 기댈 곳이 생살처럼 돋아나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다 쓰러져가는, 하천부지에 市의 눈치를 보며 그 어떤 인간들보다도 당당하게 버티고 있는 그 섬을 향해 가다 보면 그런 기대감으로 어느새 잰걸음을 하고 있는 것을 느끼곤 했다.
시내에서 술이 취하면 늘 그곳으로 가곤 했던 섬.

섬에서 앓는 병
술이 깨면 사라지는 지난밤의 행적들처럼, 또는 어느 곳에 맡겨놓은 잠깐의 기억 혹은 전채의 기억들처럼, 그 섬에서 나가는 길이 잠시 지워져 버린다. 지금은 밀물의 시간이야,라고 중얼거리며 하나 둘 출근을 미루거나 그냥 그 섬에서 하루종일 잠을 자거나, 또 몇은 술이 덜 깬 상태로 별것도 아닌 것에 낄낄거리며 바람든 무처럼 푸석거리며 앉아있다. 그러나 썰물의 시간이 된다한들 누구 하나 배를 타려 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무형의 시간 속에서 누군가 연락을 하거나 배를 보내 데려갈 때까지, 누구는 짬뽕을 시켜 목밑에까지 차올라 있는 술 위에 다시 해장술을 붓기도 한다. 그 중 부지런한 사람이라야 기껏 지각하는 학생들에게 “얼른 학교 가, 이놈들아.” 하고 썩은 훈계를 내뱉으며 집으로 또는 학교로 직장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그렇게 이 섬의 한때의 행락객들이었다.
한 며칠 간 실종이 되어 이 섬에서 비비적거린다 해도 누구 하나 궁금해하지 않는, 잠시 세상에서 잊혀지는. 속에 들어차 있는 모든 것들을 잠시 비워두거나 모른 체하며 그저 둥둥 떠있기만 하던, 아무도 심각해하지 않던 서로의 존재들. 그러나 각자의 혼자 서성거릴 뒷골목을 생각하면 못내 아프고 쓸쓸하기도 하던.

섬은 길에서 떠도는 길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처럼 누구나 이곳에서 오래 머무는 자들은 그가 곧 하나의 섬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아니더라도 느낄 수 있었다. 명문대의 학생회장까지 하던 한 후배는 자기 몸에서 돋아나는 섬들이 무거워 작은 공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낄낄거리며 한 시절을 보내고, 또 어느 시집 안 간 후배는 매일 술이 취해 굳게 잠겨있는 섬의 담을 넘는, 여성성의 비릿한 옷가지들을 담에 척, 척, 걸어놓곤 했다. 그러다가 술이 깨면 말라비틀어진 해초를 거둬들이듯 햇빛 속으로 작게 사라지곤 하던……. 깊이를 알 수 없는 세상을 앞에 두고 그저 풍덩 빠질 수밖에 없었던, 그 행동들에 잠시 주춤거리던, 그 여린 마음들이 마치 고향이라도 된 듯 섬에 안주하려 했던 섬, 섬들.

무인도(無人島)
여기 여러 개의 제각기 다른 무인도를 나름대로 끼워 맞추어보자.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凹凸의 부위들이 있어 여기저기 흩어져 떠다니던 섬들이, 서로의 몸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라붙어 그래도 한때는 하나의 모양을 갖추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다른 몸을 찾아 하나 둘 떨어져 나가고, 그러다 보면 이제는 하나로 뭉치기조차 힘들게 되어버린 그 시절의 섬들. 누군가 그때의 섬을 이야기하면 너는 그때 어떤 부위였지?라고 되묻게 되는, 지금의 재미없는 육지의 날들. 거시기, 당신들도 한 번 주위를 돌아보시오. 어떤 섬들이 떠다니고 있는지, 아니면 아예 없든가, 그렇지요?
여기 그 시절 작은 무인도(無人島)들을 소개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들 중 누군가는 한번쯤 만났었거나 만날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섬의
관리인이자 주인인 주상이,
성식이, 정희, 홍양, 홍시룡
병욱이, 미란이, 효선, 상애,
경원이 형, 경식, 용제 형,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 작은 섬을 위탁받아
잠시 기웃거리며 관리하는 임시 관리인
박해람, 그리고 그 외 잠시 표류하던
몇몇들……





박해람
․1968년 강릉 출생
․1998년 ≪문학사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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