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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신작시/강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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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철
플라타너스 3
종합병원 큰길 따라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플라타너스
생과 사의 갈림길, 그 그늘 아래
茶兄의 절대 고독이 휴식 중이다
바람이 따스하다, 가끔 잎들이 뒤집혀지며
속살을 내비친다, 물기가 촉촉한 속살
茶兄이 곧 눈물을 떨굴 것 같다,
순수의 결정체들……
응급차가 오후의 한가로움을 깨면서
웽웽대며, 부산하게 들어온다
죽으러 오는 걸까, 살려고 오는 걸까?
삶과 죽음이 일상처럼 반복되는 나날들,
로버트 프로스트가 두 갈래 길에서
고민을 한다, 가지 않았던 길을 선택한
그의 등뒤로 햇살이 꽂힌다
외로운 결정으로 그와 가족이 겪었을 시련들이
그의 등 위로 활처럼 굳어져 갔다
나는 아들의 손을 꼭 쥐면서 말한다
한때는 너의 미래를 재단하여 줄
디자이너이고 싶었다는 걸,
자세히 보니 아이의 머리칼이 희끗희끗하다
새치를 뽑아주는 손이, 아버지가
병석에서 힘없이 나에게 내미는 손이다
그렇게 세월이 갔다, 가시만 남긴 채
물기가 빠져나간 저 손, 손, 손들
살아있는 모든 것을 찔러주고 싶은
선인장 같은 세월들이
오후의 강렬한 햇살을 받으며
사막 한가운데, 머리 박은 채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간월도
육지에 속했던 것들이 쓸려, 쓸려
마지막으로 명상에 잠기는 곳,
바다의 것들도 예외는 아니다,
중심에서 멀어지며 더 갈 수 없어
바다의 배설물이 쌓이는 곳,
생명체들이 꿈틀거린다
무학대사가 달을 쳐다보다가
도를 깨쳤다는 이곳, 간월도
바닥까지 드러낸 속내,
온몸으로 석양을 떠받은 채
모든 걸 내어주고 있다
아니, 모든 걸 허락하고 있다
썩어서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체들,
한때는 내 마음
어린것들에 너무 가 있었다,
풋사랑, 풋과일, 풋내기……
사소한 것에도 눈물나고
그냥 지나칠 일에도 부르르 떨던
마음들이, 어린 시절들이 퇴적되어 간다
개펄의 아랫도리 사이로
썰물이 지자, 개펄은
묵은 장맛 같은 냄새를 피우며
몸살을 앓고,
철새들도 더 먼 곳으로 가기 위해
서로의 날갯죽지에 고단한 꿈을 비빈다
어리굴젓의 곰삭은 맛이
혀끝을 타고 온몸을 파고든다
나도 이제 푹 삭고 싶다
강성철
1957년 제주 출생
1988년 ≪문학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 <아담아, 네 어디 있느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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