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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신작시/이장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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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571회 작성일 05-01-2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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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웃으면 복이 와요



내가 모를 무엇이 그대에게는 있어서
내가 모를 무엇이 밤 열 시의 종로 3가에는,
내가 모를 무엇이 지하상가 제5호 점포의 나른한 텔레비전에는,
또 은퇴한 코미디언에게는 내가 모를 무엇이 있어서

그대와 내가 헤어진 지 삼 분 후에는,
다시 삼십 년 후에는,
내가 모를 무엇이 아직
그 거리와 음악에는 있어서

지금 대나무 지팡이에 턱을 고이고
젖니 난 어린애처럼 웃는 저기 저 늙은 사람은
아주 오래 전의 사랑과 이별을
방금 떠올린 것인지도 모르지만,

아니면 후두엽의 세포가 그저
쓸모 없게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르지만,

내가 모를 그대는 까마득한 地下를 무서운 속도로 달려
삼 분 전의 나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으니

나는 삼십 년 후에 그대를 아주 잊은 채
웃으면 복이 오는 밤하늘을 쳐다보겠지만,

또 그 밤하늘에는 생각난 듯 내가 모를 무엇이,
무섭게 반짝이겠지만






갓 식사를 마친 듯한 모습의 자화상



먼저 눈썹을, 그리고 눈을 그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허공을 그려.

그러면 이상한 시선이 나타나지.
나를 가볍게 횡단하여 어딘가를 향하는.
이제 그 시선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돌리면
비 내리는 창 밖으로 천천히 떠오르는 얼굴.

하지만 나는 완고하게 입술을.
말을 하기 위해서는 오랜 훈련이 필요하지.
아주 작은 이빨들이 무섭게 반짝였으면 좋겠어,
총알처럼 발사할 수 있도록.

목을 그리자 부드러운 가슴과 팔이,
팔과 다리가 돋아나.
금방 식사를 마친 듯해.

하지만 지우개를 들어 다리를 지우면 그곳은 허공.
허공을 대신한 이 다리는 먼 곳을 걷는 데 쓰이겠지만,
물이 물을 밀어 결을 만들듯
먼 곳이 먼 곳을 밀어내며 이 다리는 자라겠지만,

때로는 미친 듯이 달리기도 하겠지 종로이거나,
미아삼거리, 혹은 다시 허공인 그곳.
지우개를 버려도 다리는 조금씩 지워져.

미안해.
밤은 모든 것을 비유로 만든다.
나는 밤을 그리지 못 하지.
나는 밤과 밤의 깊은 곳에 너를 가두고 싶지만.

명암을 위해서는 빛이 필요해.
네 시선이 조금씩 움직인다.
네 섬세한 프로필을 위해 나는
더러운 스카이라인 위로 달을 띄우지.
달은 네 눈처럼 빛나.

너를 완성시키고 나는 잠시 눈을 감는다.
나는 허공으로.
나는 흰 빛으로 네게 내리지.
어느덧 너는 완성된다. 부디 나를 봐줘. 이제,
갓 식사를 마친 듯한 시선으로 창 밖을 바라보면,
그 하늘 끝에서 천천히 내리는 흰 빛.


이장욱
1968년 서울 출생
1994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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