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11호 문화산책/김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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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석 연극의 밑그림
―2003년 상반기 오태석 연극을 보고
김 남 석
(문학평론가)
최근 오태석 연극을 보면, 큰 밑그림을 따라 그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밑그림은 작품 밑에 가라앉아 있다가 공연이 거듭될 수록 작품의 표면으로 떠오르곤 한다. 특히 시간적 격차를 두고 다시 공연되는 작품에서는 어김없이 이 밑그림이 표면으로 부상하여, 원래의 주제를 밀어낼 것처럼 위협하기도 한다. 그 그림은 역사이고, 역사 중에서도 전쟁이다.
6.25전쟁의 아픔은 11살의 오태석에게 평생의 트라우마를 남겼다. 어린 나이에 사람이 죽는 장면을 목도해야 했고, 집안의 어른인 아버지가 납치되고 결락의 유년 생활을 보내야 했다. ‘집 어른’(오태석의 표현)이 없는 집 안에서 어머니는 결락의 인생을 살아야 했고, 그 어머니를 따르는 가족들 역시 그 결락과 불안을 떠안지 않을 수 없었다.
작품 「운상각」은 남편의 귀환을 기다리던 어머니가 실종 신고를 내고 남편의 죽음을 인정하는 데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결락감을 풍기면서도 고집스럽게 생존을 인정하던 어머니가 지아비의 죽음을 하루아침에 인정하자, 아들은 어머니의 뜻과 변화에 크게 놀란다. 그는 실종신고서를 아버지의 신위처럼 여기라는 말에 반발하고, 제사와 금혼식을 우기는 어머니의 말에 어깃장을 놓는다.
작품은 초지일관 유머러스하게 진행되지만, 그 유머 밑에는 감지하기 어려운 결락의 40여 년 세월이 잠자고 있다. 그 세월은 전쟁으로부터 시작된 우리 역사의 고통이다. 그러니까 「운상각」의 저류는 전쟁과 그 전쟁에 대한 통찰에서 발원하고 있다고 범박하게 말해 둘 수 있다. 운상각은 「산수유」, 「자전거」의 후속작이며(그래서 서연호는 이 세 작품은 동란 3부작이라고 했다), 그 이후에 발표되는 「코소보 그리고 유랑」의 연계작이다. 여기에 작품 「사람」을 포함시키면, 전쟁의 문제를 파고든 동란 5부작이 완성된다.
2.
전쟁이라는 화두는 90년 「운상각」을 끝으로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70~80년대에 이르는 문제작들이 대부분 전쟁의 체험과 고통에 관련되었다면, 「운상각」은 가장 우회적인 형태로 이 작품군을 벗어난 작품으로 기억되는 것처럼 보였다.
「산수유」나 「자전거」에서 보이는 고백의 형식이 완화되어 구서방은 처음부터 자기가 밀고한 사실을 산지사방에 떠들고 다닌다. 「산수유」의 근배가 삼촌을 때려죽이고 구씨가 아들임을 알고도 죽음을 묵인했다는 충격적인 고백과는 거리가 멀다. 또 「자전거」에서 친척형을 죽이고 자기 혼자 살아남았다며 제삿날만 되면 사금파리로 얼굴을 긋는 끔찍한 예산 당숙도 없다. 「운상각」의 구서방은 약간 실성한 태도로 “자신이 청양군에 가서 면서기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밀고는 한 적이 없다.”며 묻지도 않는 말에 대답을 하고 다니는 모자란 인물이다. 그 인물의 모자람이 결국 전쟁의 충격과 자책감에서 왔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 느낌은 비극보다는 희극에 가깝다.
그렇다면 우리는 「운상각」을 전쟁의 고통에서 멀어지며 내면적 정리를 시도한 작품으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 열한 살에 당한 전쟁의 충격을 평생의 노력을 통해 완화하고 치유해 가는 오태석의 여유라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은 그의 그 뒤 작품 연보를 보면 어느 정도 확인된다. 그는 역사에 대한 애착을 거두지는 않지만, 그 역사는 6.25전쟁 무렵에서 빗겨있는 역사이다. 그는 6.25전쟁이 아닌 다른 시기의 역사에 근접하고 있었다.
1999년은 상징적인 해이다. 90년 「운상각」이 80년대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정리의 의미를 갖춘 작품이라면 99년 「코소보 그리고 유랑」은 2000년대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마음을 가다듬는 의미의 작품이다. 오태석은 코소보 사태를 지켜보면서 잠시 보류했던 전쟁에 대한 책무를 떠올린다. 그는 필자와의 사적인 대화 중에 자신이 코소보 사태를 바라본 것은, 코소보 사태의 비극성에도 그 연유가 있지만 실제로는 6.25전쟁을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사례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폐가 있을 수도 있는 말이므로 다시 한 번 정리하면, 그는 코소보 사태를 보면서 6.25전쟁을 상기했고, 6.25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 그 기억과 문제점을 들려주기 위한 예술적 비유로 인용했던 것이다.
실제 이 작품을 보면 코소보 사태를 들려주는 것인지 6.25전쟁을 보여주는 것인지 모호한 대목이 있다. 오태석은 알바니아 내전으로 죽어간 사람들의 사진을 전시하는 장소에 6.25전쟁의 참상을 담은 사진을 걸어놓는다. 등장 인물들은 마치 6.25전쟁을 보여주듯이 알바니아 내전을 보여주고, 알바니아 내전을 이야기하다가 6.25전쟁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혼성은 「자전거」의 이중 화법과는 달리, 상당한 구조적 혹은 의미적 상동성을 가지고 있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오태석은 전쟁이 하나같이 끔찍하고 처참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코소보 그리고 유랑」이 전쟁에 대한 2000년대 적 시작을 열었다는 전제는 다른 두 작품을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 하나는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이고, 다른 하나는 「내 사랑 DMZ」이다. 두 작품은 2002년에 발표되어 공연되었고, 2003년에 다시 공연될 예정이다.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는 이미 2002년 겨울을 지나 2003년 4월까지 공연된 바 있으며, 2003년 가을에 재공연 계획을 수립한 상태이다._________________________
*내가 이 글을 쓰는 시점은 2003년 7월 11일이다. 「내 사랑 DMZ」는 2002년 7월에 공연되었고, 2003년 7월 12일 폴리미디어 시어터에서 재공연될 예정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재공연 하루 전에 쓰여졌다. 이 글의 대상이 되는 공연은 7월 10일 목요일 드레스 리허설 공연이다. 나는 방학을 이용해서 오태석의 연습 광경을 보기로 결심하고 2003년 1학기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과 함께 연습장을 찾았다. 그때는 이미 드레스 리허설을 할 정도로 연극이 숙성된 상태였고, 우리의 방문을 계기로 대외적인 조언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 공연을 통해 오태석 연극의 저류에서 꿈틀거리는 전쟁에 대한 기억을 다시 한 번 확인했고, 그러한 느낌을 논문의 틀 속에서 희석시킬 수 없다는 판단 하에 평론으로 재구성하기로 했다. 당시 나는 전쟁에 관한 오태석의 다섯 작품을 묶어 ‘전쟁 5부작’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는 시점이었는데, 이 논문의 틀 속에 미처 귀속시키지 못 한 「내 사랑 DMZ」와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를 자유로운 형식으로 사유하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3.
먼저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를 보자. 이 작품에 대한 간략한 평을 쓴 바 있는데, 중복되는 논의를 피하기 위해서 일단 인용하겠다. 본인의 글인 만큼 별다른 인용 형식 없이 그대로 서술하기로 한다.
오태석은 언어에 대한 섬세한 자각을 품고 있는 연극인이다. 특히 말에 대한 관심과 감각이 남다르다. 그의 희곡은 살아있는 ‘말들의 잔치상’이다. 그래서 말들의 싱싱한 숨결을 만끽하려는 이들에게, 황홀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의 연극적 목표도 말과 관련이 깊다. 그는 상처받은 말들을 회복시키고, 그 안에 담긴 정감의 깊이와 온기를 보호하는 데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최근 들어, 이러한 성향은 더욱 강조된다.
오태석은 그 이유를 세태 변화에서 찾는다. 영상 매체의 보급은, 욕설과 비속어의 무분별한 보급을 부추겼다.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는 명분 하에, 상스러운 말들이 버젓이 화면 위에서 유통되고 있다. 이것은 대중 매체의 힘을 빌어, 급속하게 현실 세계로 팔려나간다. 인터넷의 상용화도 말의 훼손에 한몫 한다. 어느 새 우리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를 <방가방가>로 쓰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아니, <반갑습니다>라고 쓰면 불편한 주목을 받는, 당혹스럽고 낯선 혼란에 직면해 있다. 이것은 편의 위주의 사고와 속도에 대한 숭배가 가져온 일종의 변화이며, 오태석 식으로 말하면 오염이다.
오태석은 자신의 연극이 오염된 말들의 묘지에서 항체로 살아남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피곤하고 지친 말들을 불러들여, 무대 공간에서 그 가치와 의미를 살려내는 작업에 착수한다. 방언에 대한 애정은, 그 작업의 일환이다. 그는 팔도의 말과, 연변과 오사카에 보존된 우리말을 찾아와, 한바탕 축제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 축제의 장에서, 말들을 경쟁시키고, 소외된 것을 복원하고, 차이를 공감하고, 차이의 아름다움을 만개시켜야 한다고. 말들의 차이를 활용하고, 그 차이 뒤에 숨은 감정의 폭과 깊이를 측량하여 어울림을 만들어낼 때, 연극의 언어가 한층 웅숭 깊어지고 풍부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는 이러한 믿음을 위한 두 번째 도전이다. 첫 번째는, 지난 여름 발표된 제주도 방언판 「자전거」이다. 이 작품을 통해 방언 연극의 필요성과 문제점을 새삼 확인한 오태석은, 신작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를 통해 한 단계 성숙한 방언 연극을 내놓는다. 그는 소외된 제주도 말을 복원시키는 이유도 함께 제시한다. 제주도 말의 위상은, 제주도의 역사적 위상과 동궤를 이룬다. 4.3 사건이라는 역사적 상처는, 제주도 말이 받고 있는 인식적 차별과 흡사하다. 제주도 방언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은, 슬그머니 묻혀있던 4.3의 실상과 어떤 의미에서는 같다. 오태석은 4.3의 억울함과 제주도민에 대한 차별을, 제주도 방언이 안고 있는 소멸 위기와 안타까움으로 대변한 셈이다. 이것은 의미 있는 결합이다.
이 작품에는 방언의 사용 이외에도, 언어에 대한 자각과 도전의식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 더 있다. 발음이 불분명한 말의 배치, 만화적 커트로 도안된 말의 변환, 작품 전체를 조율하는 내레이션(導說)의 도입이 그것이다. 말의 다양성과 변화가능성을 점검하려는 일종의 실험인데, 방언의 활용과 비교해서 생각하면 흥미로울 것이다.
나는 오태석의 연극을 자주 본다. 신작은 빼놓지 않고 보는 편이며, 보통 한 작품을 서너 번씩 본다. 오태석의 연극이 끊임없이 변화 발전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연극의 장인’답게 자신의 작품을 늘 고치고 어루만진다.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에서 주로 손질할 대목은, 말일 것이다. 낯설고 부담스럽게 느껴지던 제주도 말을 어루만져 자신의 언어로 빚어내는 순간, 아마 그 말은 더 이상 이방의 언어가 아닐 것이다. 공감하는 자의 언어로 마음속에 자리잡을 것이며, 그때 제주도는 역사적으로 소외되고 지역적으로 차별 받는 땅에서 벗어나, 우리의 진정한 이웃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이것이 오태석의 우리말 수호가 가져올 참된 성과이자 기쁜 미래이다.
이 글은 공연이 시작된 직후(2002년 12월)에 쓰여졌다. 그래서 공연이 끝나갈 때쯤(2003년 3월)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특히 마지막 문단에서 나온 지적은 거의 그대로 연극 일정 속에서 실현되었다. 오태석은 넉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 작품을 부단히 어루만졌다. 물론 어루만짐의 일차적 대상은 ‘말’이었다. 내가 그의 작품을 처음 볼 때만 해도 제주도식 공연 언어는 조금 위태로웠다. 그것은 관객이 그 내용을 파악하는 데에 장애가 있었다는 뜻이다. 물론 연극에서는 음성 언어만이 언어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시각적, 부차적 소통 수단을 통해 그 장애는 보완 극복되어 가는 형세였지만, 이방의 말이 주는 이질감이 적지 않게 남아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2개월이 지나면서 그 이질감은 줄어든다. 아니 느끼기에 적당한 이질감으로만 남는다. 제주도 말이 소외되어 있음을 알려줄 수 있을 정도로만 남고, 관객과의 소통은 별다른 문제 없이 이루어질 정도로 개선된다. 관객들이 처음 20분을 견디면 무대와의 연극적 대화에 동참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의미적 갈피를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을, 나는 직접 확인한 바 있다. 이것은 ‘말’에 관한 측면에서 오태석이 보여준 변화이자 성과이다.
더불어 또 하나의 변화가 발생한다. 그것은 4.3사건에 대한 주제적 측면의 부각이다. 언어의 소멸과 우리의 무관심을 보여주려는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는 곧 제주도민의 억울함과 차별 대우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4.3사건과 맞물리면서 전개된다. 어느 것이 주(主)이고 어느 것이 종(從)이라는 식의 가름은 부박한 것이지만, 굳이 써본다면 처음에는 언어가 주(主)고 4.3사건이 종(從)이었다. 제주도 언어의 사라짐이 먼저 제기된 문제 의식이고, 그 언어와 비슷한 운명을 겪은 제주도민의 삶이 보강된 재료인 셈이다.
그런데 공연이 길어지면서 이러한 주종의 관계는 살짝 변화한다. 일단 4.3사건의 주제적 기능이 강화되고 언어의 이질감이 줄어들면서 언어에 대한 관심은 사실 후퇴한다. 내가 언어에 대한 문제 의식에 관한 글을 쓴 이후에 비슷한 논의들이 뒤를 이었고, 그러한 문제 의식은 현실적으로 용인된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언어는 이 작품에서는 주제이자 형식으로 상정되어 있지만, 많은 작품에서 일반적인 관례를 살피면 형식적인 측면이 강한 요소이다. 형식적인 것으로 주제적인 것을 대체할 경우, 어떤 의미에서는 공허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언어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러한 문제 의식만으로 작품의 내용을 채우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언어가 편안하게 소통되면서 관객들이 요구하는 실질적인 관심사가 다소 달라질 수도 있다. 오태석은 관객의 반응에 철저하게 귀기울이는 연출가이다. 그의 소극장 <아롱구지>는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난 후의 감상문을 거두어들이는 제도를 상용화하고 있다. 관객들의 의견은 연출가인 오태석에게 중요한 참조사항이 된다. 그는 설문지를 읽고 공연을 수정하고 심지어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까지 한다. 4.3의 본질에 대해 묻는 질문이 많았고 오태석은 어떻게 해서든 그 질문에 대한 연극적 답변을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던 듯하다.
오태석이 「코소보 그리고 유랑」을 쓴 목적은 6.25전쟁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마찬가지로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를 쓴 목적은 4.3사건을 알리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4.3사건은 6.25전쟁과 마찬가지로 한 민족이 둘로 나뉘어 대립 반목한 일종의 전쟁이다. 내전에 비유될 만큼 충돌 양상이 심각했고 많은 양민들이 그 사이에서 죽었다. 서북청년단으로 대표되는 토벌군측과, 제주도 양민들이 대부분을 이루었다는 저항군측의 전투에서 많은 애매한 도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었다.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는 춘배와 구자의 만남과 헤어짐, 화합과 충돌을 통해 그 양상을 추적하여 보여준 작품이다. 젊은 부부 춘배와 구자는 토벌군의 살벌한 행동을 피해 입산하기로 결심한다. 임신한 구자는 춘배가 주저하는 것을 알고 계교를 써서 산에 오르도록 한다. 산에서 난리를 피하기는 했지만, 하산하자 밀고를 강요당한다. 심문자들은 오라리방화사건의 용의자를 목격했다는 증언을 요구하지만, 춘배는 이를 거부한다. 그로 인해 춘배는 마포 형무소에 수감되고 오라리방화사건의 유격대원들은 춘배의 영웅적인 행동을 높이 평가하여 그를 존경받는 제주도의 영웅 강우재로 변신시키기로 한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춘배는 탈옥에 성공한다. 그러나 전쟁 후 다시 수감되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구자는 춘배를 대신해서 옥살이를 한다. 춘배는 제주도로 돌아와 해녀로 위장하고 해녀들의 지도자로 성장한다. 한편 구자는 춘배를 대신하여 강우재가 되고 4.3사건 문제의 본질이 사장되어 있음을 밝힌다. 그녀 역시 지도자 격인 인물로 성장하여, 제주도에 방목형 수형 생활을 제의하고 그 제의를 관철시킨다.
이로서 춘배와 구자는 제주도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해녀들의 지도자인 춘배는 외국인의 투자를 유치하여 발전을 꾀하려고 하는데, 방목형 수감 제도로 인해 그 계획은 차질을 빚는다. 당연히 춘배는 이러한 제도를 반대하고, 이 제도를 제안하고 기획한 구자와 대립하게 된다. 두 사람을 서로를 위해 희생했고 부부였다는 입장을 잊고 반목하고 싸운다. 심지어는 서로를 죽일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이러한 대립은 ‘디딤불미’라는 화로에 의해 상징적으로 해소된다. 오태석은 거대한 풀무를 돌리는 디딤불미를 여러 사람이 움직임으로써 화합과 협력의 필요성을 인식시킨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팔도의 불과 제주도의 쇠가 어우러진 물리적 도구가 만들어진다. 그 도구는 문명을 일구고 삶을 개간하는 정신의 도구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야기의 과정에서 4.3사건은 중요한 구실을 한다. 춘배의 억울한 옥살이 그러니까 재판도 받지 않고 수감된 판례가 4.3 문제의 핵심임을 알려준다. 당시 정부는 제주도민들에게 정당한 인격적 대우를 하지 않았고 민주 사회의 철칙인 개관적 재판을 보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한 잘못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지 않고 있다.
오태석은 억울한 죽음을 피해 달아나야 했던 구차한 삶, 협조를 거부한 대가로 부당하게 강요당한 옥살이, 정당한 문제 제기에 대한 정부의 궁색한 대처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억울한 이향을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방목식 수감 생활을 제안한다. 그리고 제주도에 만연한 지역 이기주의와 아직도 계속되는 계층간의 갈등도 부차적으로 비판한다.
이러한 지적과 비판 그리고 문제 제기와 대안 제시는 공연이 계속되면서 더욱 강조된다. 먼저 황당하게 여겨질 수 있는 이야기의 흐름을 신빙성 있고 설득력 있게 다듬는 작업부터 진행된다. 그 다음에는 4.3사건이 왜 일어났고 어떠한 측면에서 부당한지를 구체적으로 알리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또 대안 제시가 과연 대안으로서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그리고 두 계층 그러니까 춘배로 대표되는 해녀들(기존 세력)과 구자로 대표되는 수감자(새로운 세력)의 화합이 과연 가능한지를 타진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 간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말의 의의와 위상을 점검한다는 당초의 목적은 다소 후퇴되고, 제주도의 역사적 고통과 나아가서는 한국 전쟁의 폐해와 이데올로기 대립의 문제를 다루는 주제가 강화된다. 이러한 변화는 오태석 연극의 밑그림인 전쟁과 역사의 화두가 표면으로 떠오르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의 연극 세계에서 전쟁은 그 밑바닥에서부터 떠오르는 일종의 긴장이다.
4.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가 말의 소외에서 제주도의 소외로 그리고 한국 전쟁의 문제로 주제 의식이 이전된 작품이라면, 「내 사랑 DMZ」는 생태 문제적 측면에서 전쟁 문제의 측면으로 주제 의식이 옮겨가고 있는 작품이다. 「내 사랑 DMZ」에 대한 나의 평론도 이미 발표된 바 있는데, 논의의 편의를 위해 일단 옮겨보겠다.
(생태 희곡의 변화를 보여주는:인용자) 다음 작품이 2002년에 발표된 「내 사랑 DMZ」이다. 이 작품은 비무장 지대에 관한 오태석의 조바심을 담고 있다. 최근 남북간의 화해로 인해, 비무장 지대의 철거에 대한 의견이 교환되고 있다. 끊어진 시베리아 철도를 이어 경제적 이익을 도모한다거나, 동해선을 연결해 육로로 금강산을 갈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 그것이다. 철도 연결은 단순한 편의나 경제적 이익을 넘어, 50년 간 단절된 남북간을 잇는다는 뜻에서 고무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오태석은 화합의 무드에 찬물을 끼얹는다. 그는 웬만한 명분으로는 거부하기 힘들어 보이는, 철도 개통을 반대한다. 그것은 비무장 지대가 지닌 천혜의 요건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비무장지대는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장소로 50년을 버텨왔다. 각종 동식물이 풍성해졌고, 자연 자체의 아름다움이 어느 곳보다 만개한 지역이다. 이러한 자연의 보고가 철도와 인간들의 틈입으로, 그만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오태석다운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동물과 자연을 오랫동안 보존하려 애써온 사람들만 얻을 수 있는 혜안(慧眼)이다. 우리가 인간의 편에서, 특히 자본주의의 논리와 평화통일의 명분에 침윤하여, 그만 다른 측면을 보지 못 하고 있을 때, 그는 다른 맹점을 투시한 셈이다. 이러한 투시는 인간이 아닌 동물과 자연의 편에서 생각했을 때에나 가능할 것 같다.
연극의 세부를 보면, 무척 재미있다. 등장 인물들은 동물들이다. 동물들은 인간의 침입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무당을 불러, 한국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을 불러내고, 그들로 하여금 철도 부설을 방해하게 한다. 이 과정은 현실적으로 전혀 불가능하다. 대책이라고 할만한 것도 아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도 그렇지만, 철도 부설을 힘과 계략만으로 멈출 수는 없다.
그러나 황당한 그 제안에는 사안의 심각성이 들어있다. 전 국민의 공감과 문제 의식의 확산을 위한 그의 고심이 들어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연극으로 하려 한 것이다. 그는 무당과, 굿과, 동물들과, 영혼들을 뒤섞어 비현실적인 설정을 만들어내고, 현실적으로 납득시키기 어려운 문제 의식을 관객들에게 심어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진지한 제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태석은 철도를 놓되, 지하터널을 이용할 것을 건의한다.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여겨지지는 않지만, 이 역시 깊게 고민한 자의 그것임에는 틀림없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시도는 인상적이다. 우리들은 인간이 아닌, 동물의 입장에서, 아니, 개발론자가 아닌,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자연과 동물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그들과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그의 연극이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문자적 복원이 아닌가 라는. 그는 자신의 고향의 이름을 따서 극장이름을 지었다. 점점 소비와 향락의 이미지를 닮아가는 대학로 한가운데에, 그의 극장은 ‘아롱구지’라는 촌스러운 이름을 달고 위태하게 버티고 있다. 어쩌면 그의 극장은, 그의 연극처럼, 날로 황폐화되는 도시 속에, 그래서 파괴되는 우리 마음 속에, 자연의 이름을 불러보기 위한 발버둥이 아닌가 싶다. 그의 연극이 문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끊임없이 그려지는 삶이, ‘지금 이곳’이 아닌 ‘어떤 곳에서의 삶’을 상기시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어떤 곳에서의 삶’에 가장 가까운 이름은 자연이고, 자연은 외경심을 갖는 자에게만 그 아름다움을 가르쳐준다는 사실이다.
2003년의 「내 사랑 DMZ」의 변화는 일단 외형적인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오태석은 오랫동안 자신의 연극을 담아내던 <아롱구지>를 떠나 <폴리미디어 시어터>에서 새로운 무대를 열었다. <폴리미디어 시어터>는 음악 콘서트용 무대이다. 그곳은 좌우의 폭이 그다지 넓지 않은 전형적인 박스형 무대이다. 조명의 배치 역시 콘서트 무대에 가깝다.
이 극장의 가장 큰 단점은 좌석이 평탄한 면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즉, 좌석이 뒤로 갈수록 높아져야 관람에 적합한 시야선(sight line)을 확보할 수 있는데, 이 극장의 좌석 배치는 이러한 기본 설계를 무시하고 있다. 이것은 관람에 상당한 방해를 초래하여 이층 좌석을 더욱 선호하게 만드는 기현상을 산출하기도 한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일종의 과제이다.
오태석은 이 문제를 무대에 상승감을 주면서 해결하려 했다. 무대를 뒤로 가면서 높이는 방식으로 관객의 시야선을 확보하고, 무대의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서 요철(그러니까 25센티미터 정도의 무대 가림막)을 배치했다. 요철은 초연 때보다 약 10센티미터 낮아졌는데, 이것은 상승하는 형태의 무대에서 배우들의 이동에 방해를 주는 것을 최소로 억제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좁은 좌우 폭을 넓히기 위해서 벽에 가깝게 간단한 이층 단을 마련하여 인물들의 움직임에 높낮이를 부여했다.
이러한 무대 변화는 <폴리미디어 시어터>라는 무대 조건에서 잉태된 것이지만, 이를 창안하고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까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태석의 오랜 경험과 작품에 대한 독창적 표현력이 이끌어낸 창의적인 착안인 셈이다.
또 하나의 외형적 변화는 장르의 기본적 인식에서 비롯된다. 「내 사랑 DMZ」는 처음부터 동화적이고 아동극적인 요소가 많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내용은 그리 만만하지 않아, 단체관람을 같이 했던 학생들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DMZ와 전쟁의 기억이 배치되어 있었고, 환경 문제와 인간성 위기에 관한 오태석의 의도가 섞여 있었으며, 우화적인 캐릭터 설정과 은유적인 시각이 기존의 연극과 상당히 다른 느낌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재공연에서는 가족뮤지컬이라는 다소 장르 지향적 명칭을 부여받고 있다. 이 말을 풀면,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는 뮤지컬이라는 뜻일 게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아이들’이 보다 이 연극을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배려한다. 가령 극의 도입부에서 등장 인물(여기서는 동물들)을 무대에 불러 그 이름과 특징을 소개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또 관객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하는 장면도 준비된다. 관객의 참여 의식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며 무엇보다 함께 즐기는 연극을 만들기 위한 형식적 모색이다.
노래의 비중이 커진 것도 무시 못 할 변화이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모델에 맞추어 많은 노래들이 삽입되고 있다. 가사가 쉽고 아이들이 따라 부를 수 있도록 경쾌한 리듬을 가진 곡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물론 음악 연주를 현장에서 시행함으로써 경직된 음악이 되지 않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것은 외부조건에 대한 적응이며 동시에 외형적인 변화이다.
내용적인 측면으로 들어가 보자. 이번 재공연에서는 과거의 이러한 혼재 양상이 뚜렷하게 정리되고 있다. 일단 경의선 철도가 지하로 개통되는 시점까지는 생태 문제를 보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고, 그 이후에는 역사적 상황에 대한 오태석 특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편의상 전․후반부로 나눌 수 있겠다.
전반부를 보면 위의 평론에서 거론했던 사항이 거의 그래도 재현된다. 경의선 개통에 대한 남북의 입장이 조율되면서 DMZ 안의 동물들은 불안에 휩싸인다. 그들은 인간이 저지를 행패를 고발한다. 러브 호텔, 유원지, 철도, 주택 등이 들어서면 인간의 자취가 숲을 파괴하고 동물들을 학살하며 심지어는 물을 더렵혀 결국은 인간 본인들까지 위협할 것을 경고한다.
인간에 대한 성토는 시화호에서 온 손님들로 인해 증폭된다. 그들은 바다물에서 사는 생물임에도 불구하고(꼬막과 게) 시화호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임진강의 동물들도 나름대로 고민에 휩싸인다. 시화호에서 오는 손님들을 수용했다가는 자신들의 거처마저 위협받기 때문이다.
생존이 위협받는 것에 당황한 DMZ 동물들은 무당을 불러 DMZ 밑에 묻혀있는 병사들을 살려내는 의식을 치루고 살아난 병사들과 함께 철도 부설을 방해하는 공작을 시행한다. 그 과정은 비현실적이다. 연극은 우화적이고 은유적인 방식을 통해 인간이 철도를 DMZ 위에 설치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보여주도록 일련의 사건들을 꾸민 것이지, 동물들의 노력이 현실적인 납득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 것은 아니다.
다만 경의선 철도의 지하 터널 개통에 대해서는 오태석도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며 환경 파괴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만 받아들였지만, 그는 진실로 그 방법을 주장하고 있는 듯하다. 초연과 달라진 점은 철도 개통 장면을 보다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전반부에서 살아난 병사들로 인해 DMZ 내부의 환경 파괴를 막을 수 있었다면, 후반부에서는 살아난 병사들이 죽어가면서 그들의 내면적 고통을 털어놓고 있다. 인민군 병사는 어머니가 보고싶어서 지하 복귀를 늦추고 싶어한다. 그 병사의 이야기는 듣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자신이 떠날 무렵 키우던 개 누렁이의 손자의 손자가 아직까지 자신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을 거라며, 그 이유는 누렁이가 죽으면서 병사의 채취를 아들에게 또 그 아들에게 기억시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누렁이의 기억은 오태석이 가진 기억에 해당한다. 오태석은 전쟁의 공포와 가족의 비극을 그린 작품을 통해, 자신이 겪은 6.25전쟁과 고통을 남기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누렁이가 주인의 채취를 넘겨주듯, 그도 민족의 내상(內傷)을 후세에게 넘겨주려 한다.
뭉클한 고백을 지켜보던 장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욕망을 자제 못 한 병사를 나무라며 그 책임이 면제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그 책임을 스스로 지는 용단을 내린다. 그는 자살을 선택하는데, 부하를 옳게 다스리지 못 한 상관으로서의 죄책감을 이유로 든다. 장교의 자살은 6.25전쟁의 책임을 되새기게 한다. 6.25전쟁은 누구로부터 왔고 우리 민족의 피해는 누가 보상해야 하는가.
오태석은 「천년의 수인」에서 발포한 자는 있고 명령한 자는 없는 두 개의 테러 사건(백범 김구 암살과 5.18광주 항쟁)을 지적하고 있다. 누군가가 명령을 내렸기에 그들이 발포를 했고 그 발포로 인해 막대한 피해가 초래되었는데, 정작 그 명령은 누구로부터 비롯된 것도 아니라는 현재의 상황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혹은 책임에 둔감한 우리에 대한 질책이다.
장교의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6.25전쟁 발발의 책임도, 원대 복귀 책임도 지켜져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막상 그 책임은 누구에게 지워야 할지 모르는 상태이다. 병사의 고백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어 함부로 나무라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을 과감하게 책임지고 있다. 이것은 넓게 생각하면 6.25전쟁에 대한 진정한 청산 방식을 암시했다고도 할 수 있다.
또 다른 DMZ 병사는 수리로 변신한다. 오태석은 이러한 변신을 비상으로 상정하고 있다. 50년 동안 묻혀있어 지긋지긋하고 냄새가 난다는 병사의 푸념과 원망을 풀어주는 일종의 해원이다. 부생군(復生軍)은 멀고 높은 창공을 나는 수리가 되어 50년의 한을 씻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전쟁의 기억에 영속되어 있는 오태석의 발원이기도 하다.
관객들은 「내 사랑 DMZ」를 웃으면서 보았고, 배우들도 넉넉하게 웃었고, 스텝들도 따뜻하게 웃었고, 옆에서 앉은 오태석도 웃으면서 보았다. 그 웃음은 잠시라도 전쟁의 기억에서 풀려난 자들의 것이었고, 그러면서도 그 웃음을 통해 기억해야 할 것을 넘겨받은 자들의 것이기도 했다.
오태석은 어린 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연극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연극은 개인적으로는 내상에 대한 은밀한 치료이며, 다른 이들 특히 전쟁의 공포와 비참함을 모르는 이들에게 그 연극은 각성의 촉매제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떤 형식으로든 오태석이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은 「내 사랑 DMZ」의 숨겨진 욕망인 셈이다.
5.
「내 사랑 DMZ」에 대한 몇 가지 불만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다. 이 작품을 만든 오태석의 의도와 공연의 의의에 대해서는 크게 탄복하는 바이며, 동물들의 형상화를 통한 놀라운 상상력의 발휘는 크게 기억해야 할 바이다. 이 연극을 기획한 장원재는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뮤지컬 「라이언 킹」을 예로 들면서, 만분의 일에 해당하는 제작비로 비슷한 수준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피력한 바 있다.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그것은 완성도의 측면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을 참고하고 난 이후의 일일 것이다. 지금의 장면 배열은 지나치게 이분법적이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초점이 다르다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이 작품은 두 초점을 아울를 만한 더 큰 밑그림을 그려내지 못 한 상태로 10일 드레스 리허설까지 왔다. 언제나 그렇지만 오태석의 연극은 변화할 것이다. 그 변화를 믿기에 더 큰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오태석 연극의 저류가 용솟음치는 전쟁의 기억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전제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 일각에서 말과 환경에 대한 문제가 부상되고 있다. 전쟁의 기억, 말의 오염, 환경 파괴는 인간의 모듬살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문제들이다. 그러니 인간의 진정한 삶을 혹은 인간성 회복의 염원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대적 개념과 넓은 범주의 설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태석은 어느 한 쪽의 문제 의식에 더 깊게 침윤하던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모든 문제를 한 번 끌어안을 수 있는 더 큰 문제 의식을 설득력 있게 제출해야 한다.
「내 사랑 DMZ」에서 그 단초는 보였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남의 귀한 생명(곰의 쓸개)를 함부로 사용하려는 동물들에 대한 무당의 꾸짖음은, 생명을 고려하지 않는 맹목적 믿음에 대한 질타에 해당한다. 이런 식으로 환경 문제와 전쟁 문제를 관조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이것은 형식적 유기성이 극대화되고 두 문제의 초점을 아우르는 더 큰 초점에 기댈 때에만 실현될 수 있을 듯하다.
지금의 「내 사랑 DMZ」는 두 가지 이야기의 느슨한 결합에서 한계를 노출한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합을 공고히 혹은 근원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작품은 한 가지 사안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다. 그 사안이 지엽적일 수도 있고, 지엽적인 것을 여러 개 포함할 정도로 포괄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크기와 범주에 상관없이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접근이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잘못하면 「사람」처럼 공고하지 못 한 결합이 될 가능성도 있다.
불필요한 장면의 삭제도 요청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어린이 관객을 고려해서 친절한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이탈하고 있는 장면이 다수 있다.
첫째 극중극으로 삽입된 ꡔ심청전ꡕ을 들 수 있다. 오태석은 「심청이는 왜 인당수에 두 번 몸을 던졌는가」에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이유로 동시대인의 개안을 들었다. 고전소설의 심청이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바다에 투신했지만, 현대극의 심청이는 잘못된 사회를 외면하는 한국인들의 사회적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무대에 투신한다. 그때의 ꡔ심청전ꡕ은 유효 적절하고 의미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내 사랑 DMZ」의 극중극 「심청전」은 별다른 의미적 유효성을 가지지 못 한다. 그것은 극중극이 형식적 혹은 미학적으로 액자 바깥의 이야기와 동형성을 확보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면 삽입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반복적 장면의 나열이다. 재공연된 「내 사랑 DMZ」에는 의미를 가늠하기 어려운 반복이 보인다. 솔개미 가족이 지나가는 장면이라든가, 곰에게 꿀을 두 번 주는 장면이라든가, 시화호 손님의 거듭되는 등장 장면이라든가, 장황하게 이어지는 굿 장면은 굳이 두 번 반복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가령 곰의 탐욕성, 환경 문제의 삼투, 어쩔 수 없는 제련 절차 등의 이유로 장면이 반복된다고 해도, 그 장면을 다듬고 손질해서 겉치레 동작들을 제거해야 할 것이다. 한 연극에서 같은 장면을 두 번씩 볼 경우, 깊은 의미망이 생성되지 못 하면 오히려 긴장감을 훼손시킬 가능성이 더욱 높다.
지금의 「내 사랑 DMZ」는 조금 길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공연이 거듭되면서 비만했던 간격들이 빠지면서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내면의 연기가 보다 강화되면 자연스럽게 그 공백들이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며 또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어본다.
비판적 논점을 앞세우다 보니, 「내 사랑 DMZ」에 대한 불만만 늘어놓은 것 같아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태석의 관심과 그 가치가 대단히 크며, 그의 상상력과 문제 의식은 우리 연극이 되새길 부분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오태석 작품의 저 밑바닥에서 스믈스믈 올라와 우리의 의식을 흔드는 전쟁과 역사에 대한 그의 집착이 소중하다는 점이다.
역사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처럼, 오태석에게 역사(전쟁)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 아니 과거의 기억을 뒤져 현재를 보고 미래를 암시받는 하나의 등불이다. 그 등불을 그는 무대에 걸고 배우들과 함께 앞을 헤쳐나가고 있다. 남들이 간 적이 거의 없는 길을 집요하게 간다는 점에서 그와 목화는 연극에서나 현실에서나 선구자처럼 느껴진다.
김남석
․199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등단
․저서 ꡔ오태석 연극의 미학적 지평ꡕ
․현재 고려대, 한경대 강사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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