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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도서관의 문화 인프라> 도서관을 활용하면서 가졌던 생각들/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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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장
댓글 0건 조회 2,486회 작성일 04-01-0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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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깨우기

최 진 호(대학생)


문득, 보고싶은 책이 생각나서 책을 찾으러 도서관에 갔다. 입구를 지나서 서가에 들어가 책을 찾으려 하니 입구에서 가까운 곳의 가장 접근이 쉬운 책장에 무협지와 최근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환타지소설 등이 꽂혀있는 책꽂이가 보였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보는 듯 새로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을 책들이 많이 낡아 보였고 손도 많이 탄 모습이었다. 보고 싶은 책을 찾으러 서가 깊숙이 들어가니 많은 문학 고전들과 문화서, 학술서 등의 양서라 불리는 책들이 보였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그 책들의 모습은 마치 청결한 병원의 시체안치소를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또는, 잠을 깨어나게 해줄 기사가 오지 않아서 마치 죽은 듯 자고 있는 숲속의 공주였을지도 모른다.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으면서 사람들에게 외면당해 아주 얇은 하얀 먼지가 끼어있는 책들의 모습은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던 것이다. 젊은 나이에 짝을 잃어 애수에 젖어있는 미망인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우면서도 서글픈 모습이었다. 이러한 현실은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대출순위를 보아도 잘 느낄 수 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영웅문이나 삼국지는 항상 대출 1순위이다. 아니, 삼국지 정도가 1위에 올라있으면 그것은 매우 양호한 편이다. 집 근처에 있어 자주 찾게 되는 시립 도서관의 대출 순위는 1위부터 10위까지 전부 새로 나온 무협소설과 환타지소설이다. 재미를 위한 대중소설들을 악의 축으로 매도할 생각은 없다. 그 소설들도 나름대로의 가치는 가지고 있으며, 또한 좋은 작품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재미를 위한 대중소설을 많이 즐겨 읽는다. 하지만 편향된 독서는 역시 편향되고 왜곡된 인식만을 낳을 뿐이다. 또한, 요즘 많이 나오는 무협지와 환타지소설로 대표되는 많은 대중소설들의 상당수가 유익하지 않으며, 심지어 유해한 작품들이 적지 않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도서관은 아파트 단지 상가마다 있는 책대여점에서 찾아볼 수 있는 천편일률적인 소설과 만화들의 창고와는 달리 마음의 양식과 생각의 보석이 그득하게 놓여있는 보물창고이자 내면적인 금맥이 끝없이 이어진 금광인 것이다. 나 자신 또한 이 보물창고에서 광부가 광산에서 새로운 금맥을 찾아 헤매면서 땅을 파듯, 어릴 적 잘 알지도 못 하는 책들을 선물을 받은 아이가 상자 안에 과연 무엇이 들어있을까 설레면서 열어보듯이 들여다보며 수많은 보물들을 찾아내어 그 티켓을 사용하여 새로운 세계를 여행할 수 있었다. 그곳은 마이클 클라이튼의 공룡세계였으며, 또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애잔한 상실의 세계였으며, 동시에 어린왕자의 별세계와 갈매기들이 날아다니는 창공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도서관이 중원무림과 환타지의 이 세계만으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도서관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도서를 모아둔 건물이 되는데, 도서란 원래 ‘하도락서(河圖洛書)’를 줄인 말로서 ꡔ역경(易經)ꡕ <계사전(繫辭傳)>에 있는 “하출도 낙출서 성인측지(河出圖 洛出書 聖人則之)”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도서관을 자료의 집적(集積), 도서의 보관 장소로 생각한다면 그 기원은 아마 문화의 발상과 거의 맞먹을 만큼 오래되었으나, 현대의 도서관은 단순한 보관과는 달리 도서(圖書) ·회화(繪畵) 및 기타 자료를 수집 ·정리 ·보관하여, 이용자의 요구에 따라 신속하고 효과적이며 창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봉사하는 기관으로 보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도서관이용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더 활용성이 높아지고 많은 기능을 가져야 할 도서관은 단순히 입시와 시험을 위한 공부의 장소제공 정도의 그 의미가 축소되고 있으며, 그 근본이 되는 책은 수많은 새로운 매체에 밀려 더더욱 힘을 잃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의 학생들에게 책이란 영화, TV, 게임 등에 밀려 나날이 그 입지가 줄어가고 있으며, 도서관이란 평소엔 그 존재자체도 잃어버리고 있다가, 시험기간이나 잠시 가서 시험공부를 하는 장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매체들에서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경향이나 미지의 세계를 경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 선인들이 끊임없이 쌓아온 예지들과 그것들을 기록하며 그 양과 질을 늘려온 책을 능가할 수 있는 매체는 아직 없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책들을 보관하며 이용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도서관은 문화의 시작과 끝을 같이하는 추춧돌 같은 존재이다. 한때 세계의 절반을 지배했던 영국에는 대영도서관이 있었으며, 현재 전 세계를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국에는 1700년대 세계최초로 전 시민들에게 개방이 되는 현대적인 도서관이 설립이 되었으며,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도 미국의회도서관이다. 이 점에서도 문화의 기반이 되는 책과 그 책의 이용을 돕는 도서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수 있다.

세계는 지금 정보화사회․지식사회로 옮겨가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 중에 새로운 자료의 보고인 인터넷 등에 밀려 도서관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터넷을 비롯한 새로운 기술은 도서관의 입지를 좁히는 것이 아니고 더욱 확장시킬 수도 있다. 점점 종이매체는 사라지고 컴퓨터 안의 전자신호로 변화되어 E-북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옮겨가서 종이매체는 없어진다고 하는 예측도 있지만, 아직 그러한 단계까지 다다르려면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 현실이며, 아직도 종이로 남아 있는 책들은 절대적으로 소중하다. 또한, 인터넷 등의 새로운 기술의 이용은 단순한 목록의 제시 및 이용 수준의 검색 및 관리에 그치고 있지만, 이 새로운 기술을 도서관과 접목시킨다면 더 높은 가치를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존자료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이용자들에게 제시할 뿐만 아니라, 미국의 DVD 우편배달 서비스 회사 ‘넷플릭스(NETFLIX)’가 인터넷으로 보고 싶은 영화를 검색, 주문하여 집에서 DVD비디오를 편하게 받아볼 수 있는 대여서비스를 제공하듯, 도서관에 최소한의 우송료를 지불하는 선에서 집에서 구하기 힘든 양서를 편리하게 받아 읽는 대출 서비스 같은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가치가 높고 주의 깊은 관리를 요하는 서적들은 불가능할 것이며, 경제적인 요구를 필요로 하지만, 쉽게 찾을 수 없는 많은 양서들을 최대한 유용하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도서관뿐이며, 죽어있는 책들에게 생명의 활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계기도 될 것이다. 또한 인터넷을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도서관의 문턱을 한 단계 낮출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이며, 정보화․지식사회에 걸맞는 도서관의 위치를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면서 자주 보는 것이 주인을 잃은 채 가방이나 책만이 놓여 있는 빈자리이다. 또한 주위를 돌아보면 거의 대부분은 입시 등의 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것을 뭐라 하는 것이 아니다. 도서관의 열람실은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며, 공부 역시 도서관을 이용하는 한 방법임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현실적으로 학생들의 장소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과, 일부일지라도 입시공부를 위한 장으로만 도서관이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현실에서 도서관은 학생들에게 단순히 시험공부를 하는 장소가 아닌 그 이상의 기능과 가치를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일종의 사교의 장 같은 모임터로서의 역할로서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학생회관 같은,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시민회관 같은 존재를 말한다. 여기에는 이에 따르는 장소의 제공과 그에 어울리는 프로그램을 필요로 함은 물론이지만, 최소한의 제공만으로도 자신들의 장소가 없어서 학교와 학원․집만을 오가며 피폐해져가는 학생들과 이에 어울리지 못 하고 겉도는 학생들에게 단순한 휴식터 이상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도서관의 기존의 역할인 도서의 제공과 맞물린다면 이것은 1+1= 2가 아닌 3이라는 시너지 효과를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현재의 도서관으로서는 힘든 일이지만, 도서관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이용한다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며, 이러한 다양한 활용성을 가능하게 한다면 이러한 다양한 기반을 바탕으로 시험공부를 위한 장소의 제공이란 현재의 경직성에서 도서관은 해방될 수 있을 것이며, 지식의 시체안치소이자 묘지인 현 상태를 극복하고 잠자는 숲속의 공주이자 미망인인 많은 양서들을 잠에서 깨어나게 하여 새로운 짝을 찾아주어서 부활시키는 것 역시 가능할 것이다.
도서관은 아직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그 가능성을 충분히 이용하지 못 하고 있다. 도서관은 책을 읽음으로서 새로운 생각을 낳게 하는 시작이며 동시에 그 생각을 다시 결과물로 하여 책으로 보관하는 끝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이 시작과 끝은 끊임없이 이어져서 끝은 새로운 시작으로, 시작은 새로운 끝으로 반복되며 그 양과 질을 늘려왔으며, 지금도 늘어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학생들은 이러한 점에서 그 지식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앞으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갈 존재로서 그 누구보다도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학생들이 도서관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또한 이용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그에 적합한 기능을 갖추는 것은 그에 따르는 당연한 일이다. 한때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영국과 현재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강대국으로 성장한 미국도 그 뒤에는 세계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도서관이 뒷받침하는 문화의 힘이 있었음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그 누구보다도 빨리 초고속인터넷망을 가정에서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는 등의 외형적 양에서는 남들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결과를 가져왔으나, 이에 걸맞는 이용을 하고 있는지 질적인 면에서 보자면 참으로 한탄스러운 현실이다. 자료의 보고인 인터넷을 단지 유희의 도구 이상으로는 거의 이용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며, 이것은 도서관에서 나타난 현실이 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이런 과오를 계속 이어가서는 안 되며, 세계 최고의 도서관이 없는 것을 한탄할 때가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작은 도서관들부터 어떻게 효과적으로 유용하게 쓸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먼지 쌓인 보물창고가 더 이상 피폐해지기 전에 권위적인 먼지를 털어내고 학생들이 그 보물들이 제 빛깔을 낼 수 있도록 아무도 깨우지 않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슬픈 잠을 깨우는 기사들이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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