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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교육의 문화 인프라> 교육과 지식의 새로운 배치를 위하여/고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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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지식의 새로운 배치를 위하여
고 미 숙(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소속 구원)
‘대학의 위기, 인문학의 붕괴’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1990년대부터 시작한 이 담론은 해를 거듭하면서 사회 전체로 유포되는가 싶더니, 이제는 아예 자명한 사실처럼 터를 내린 느낌이다. 그간 제출된 ‘위기론’의 내용을 훝어보면, 대개 변화를 강요하는 현실을 탓하는 한편, 변화의 당위를 소리높여 외치는 이율배반을 취하면서, ‘세계화’니 ‘이성의 합리적 보편성’ 혹은 ‘인성교육’이니 하니 닳을 대로 닳은 구호를 고수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논의의 구태의연함은 그렇다치고, 이런 패턴에서는 어떠한 실천적 구상도 도출되기 어렵다.
문제는 현장이다. 교육이든 지식이든 ‘지금, 여기’의 현실과 치열하게 대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다만 공허할 따름이다. 제도가 완벽하게 갖추어진다고 해서 현장의 생동감이 보장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언제 어디서든 상황과 배치를 변환하기 위한 싸움은 늘 수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
한두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있다.
먼저, 언제부턴가 대학에서는 연구지원비의 확보가 주요 이슈로 ‘뜨고’ 있다. 연구지원비를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것이 일년의 주활동인 교수도 적지 않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린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에 각 대학에는 적지 않은 자금이 흘러들어가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를 가동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연구의 생산성은 대폭 증가되어야 하는데, 정말 그런가?
나의 견문으로는 연구지원비와 프로젝트는 한마디로 인문학 분야의 지적 에너지를 완전히 ‘초토화’시키고 있다. 거의 모든 대학에서 대학원생들은 입학하자마자 지도교수 밑에서 이런 저런 프로젝트에 동원되는 것이 이즈음 대학원의 풍경이다. 수업이나 세미나는 뒷전이다. 세미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연구지원비가 제공되는 것인데, 상황은 정반대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인문과학에는 논쟁이 사라졌다. 논쟁의 실종! 이보다 더 지적 황폐함을 증언하는 것이 있을까?
게다가 연구지원비 확보를 위해 수많은 학회들이 난립하고 있다. 온갖 장르, 전공별 지역별 학술대회가 족출하고, 저마다 전국적인 학회지를 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즉 방법론적 모색이나 지적 탐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행사를 위한 행사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열리고, 그래서 다시 학회는 더욱 황폐화되는 악순환이 심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행사 및 학회지 출판에 필요한 갖가지 노동력은 주로 대학원생들 내지 전문연구자들이 무상으로(!) 헌납해야만 한다. 이건 정말이지, 80년대와 비교해도 퇴행적이다. 80년대의 경우, 각종 세미나와 소그룹 스터디가 많아서 아르바이트를 비롯한 기타 번사를 줄이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지금은 거꾸로 번다한 일들 때문에 지적인 능력과 욕망을 억압당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내가 현재 활동하고 있는 <수유연구실 + 연구공간 ‘너머’>는 주로 대학원에 몸담고 있거나 박사학위를 소지했지만 아직 대학에 진입하지 않은 전문연구자들 약 100명이 함께 하는 곳이다. 전공은 인문과학 전반에 두루 걸쳐있다. 물론 출신대학도 각양각색이다. 그런데 이 다양한 종류의 지식인군상들이 하나로 묶이게 된 근본동기를 따져보면 현재 대학의 얼굴이 그대로 거울에 비쳐진다. 즉, 이들은 무엇보다 지적 욕구를 대학 안에서 전혀 해소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대학원에 진학하여 전문지식인이 되고자 할 때 가장 근저에 있는 것은 앎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다. 그런데 그 초발심은 대학원에 들어서는 순간, 단번에 사라지고 만다. 선택의 여지없이 주어지는 정체불명의 커리들, 권태롭기 그지없는 강의현장, 그리고 무엇보다 앞에서 언급한 끝도 없이 부과되는 학문외적 노동들.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 연구실에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이 교차할 수 있는 힘은 대학의 황폐함 혹은 지적 무능력에 있는 셈이다. 결국 연구지원비의 확보가 주요관건이 되고, 다시 그것을 위해 메마르기 그지없는 논문을 양산하고,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해 지도학생들을 무상으로 착취하는, 이 지독한 악순환의 ‘먹이사슬’을 끊어내지 않는 한, 대학교육은 정말, 희망이 없다.
다음, 현재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설정한 전공분야, 그리고 커리는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예컨대 국문학은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으로 분화된다. 이것은 지식인을 배치하는 것에서부터 전공과목을 설정하는 가장 일차적인 기준으로 기능한다. 언뜻 보아도 이런 분화는 시기적으로도 균형이 어그러졌을 뿐 아니라, 고전문학으로부터는 현대적 호흡을 박탈하고, 현대문학에는 고전적 깊이를 부재하게 만드는 역기능을 재생산하게 된다. 그런데도 이런 식의 구분법이 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한국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고려시대나 신라시대로 가면 전공자가 거의 드물다. 지금 한국사 연구의 주류적 분야가 대개 조선시대나 식민지시대이고, 지도교수의 전공분야에 맞춰 연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 구획선을 넘을 수 있는 가능성은 아예 봉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전공 내에서도 정황이 이러한데, 하물며 국문학과 역사학․철학 등 커다란 분야간에는 말이 인문학이지 지적 소통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인기학과에 편중되어 전공간 균형이 깨어질 것이라는 한탄도 무색하기 그지없다. 지금도 인문학의 지적 불균형은 심각한 실정이고, 학부제 시행과 무관하게 이 문제는 앞으로도 해결의 전망이 요원하다. 그리고 어차피 전문연구는 대학원에서 주로 이루어진다고 할 때, 학부교육에서 기초학문의 파괴 운운 하면서 분과체계를 고수하고자 하는 것은 현장적 설득력이 거의 없는 셈이다.
‘우정의 교육’과 공명의 메카니즘
공간은 일종의 정치적 ‘기계’다. 그 배치에 따라 연기(緣起)작용이 달라지는. 그런 점에서 무릇 모든 교육은 먼저 교실의 배치를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조금씩 변화되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교실은 높은 교탁과 단상, 일렬로 배열된 책걸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생과 학생의 구별이 확연하게 나뉘어져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근대적 계몽주의의 공간적 투사이다. 즉 교육이란 전문적이고 인격적 품성을 갖춘 스승이 아직 미성숙한 사람들을 이끌어주는 것이라는. 위에서 아래로, 빛이 있는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이런 식의 전제가 바탕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교육의 내용은 기성품을 복제하는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독창성이나 개성, 창발성 등을 강조한다 해도 그것은 궁극적으로 스승이 구획해 놓은 일정한 바운더리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우선은 이 구획과 경계를 가로지르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체 앎의 영역에서 스승과 제자가 어떻게 고정된 선으로 구획될 수 있을 것인가? 나이가 많다거나 학벌이 좋다거나 지력이 뛰어나다거나 하는 것은 그저 하나의 특이성일 뿐이다. 왜냐하면 앎의 세계에는 그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가르치고 하는 앎의 흐름만이 있을 뿐. 스승이면서 친구인 것, 이것을 ‘우정의 교육학’이라 이름하면 어떨까. 이런 관계하에서는 교육의 주체가 아니라, 오직 지식이 구성되고, 흘러 다니는 역학적 배치만이 작동하기 때문에 학문외적 권위나 위계 따위는 설 자리가 없게 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우리 연구실에는 수많은 세미나들이 있다. 노마디즘(nomadism), 중세사상사, 동아시아 근대성, 푸코강독 등등. 이 세미나는 누가 일률적으로 제시한 것이 아니라, 그저 구성원들의 지적 욕구에 따라 제안되었고, 그 다음에 거기에 ‘맞장구치는’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다. 말하자면, 수요자의 학습구성권이 전폭적으로 보장되는 시스템인 셈이다.(반면, 지금 대학교육은 수요자는커녕, 교수들의 학습구성권조차 인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각각의 세미나는 또 다른 변이형들을 끝없이 증식한다.
세미나 구성원은 연령별로는 약 20년의 갭이 있고, 소위 선후배․사제지간 등 각색의 인연으로 얽히고 섥혀 있지만, 그러한 위계들은 여기서는 아무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단지 각각의 능력이 교차하면서 ‘분자적 공명’을 일으키는 것이 문제일 뿐, 그 흐름에서 ‘고정된 자리’는 있을 수 없는 까닭이다.
세미나의 성과가 업그래이드되어 강좌로 개설되는데, 여기서도 교사와 수요자 모두 자발성에 의해 결합되기 때문에 ‘지적 공명’만이 유일한 관건이 된다. 그래서 어떤 강좌에서는 선생이었던 이가 다른 강좌에서는 수강생이 되는 변환이 수시로 일어난다. 연구실을 열고 처음 공개강좌를 시작할 때 가장 신경을 쓴 일이라면 강의실의 공간적 배치를 수평화한 것이다. 원탁과 세미나 테이블, 개인 책상 따위를 그대로 죽 나열하고서 강의가 진행된다. 강사의 위치는 수시로 바뀔 수 있고,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이것은 수강생들 사이의 관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온다. 교실의 배치가 획일적일 경우, 학습자들 간의 소외 또한 심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강의 중에는 오직 선생에게만 시선을 두어야 하고, 서로간의 접촉이(시선이나 대화 등)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인적 유대는 항상 강의 바깥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매우 사소한 일처럼 보이지만, 그런 식으로 이원화되면 지적 소통이나 토론의 역동성은 현저하게 낮아지게 마련이다. 지식 그 자체가 사람 사이의 친밀감을 높이는 중심요소가 될 때, 비로서 스승과 친구가 하나인 교육이 가능한 법이다. 따라서 공간의 수평적 배치는 교사와 학생의 경계뿐 아니라, 학습자들 상호간의 친화력을 상승시키는데 결정적인 기능을 한다. 강의 때나 세미나 때나 항상 차와 간식을 준비하는 것도 그 점을 고려한 것이다. 함께 먹고 마시는 것보다 친화력을 키우는 일도 드물지 않은가. 그리고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아도 강의를 하는 사람도 힘이 들지만, 열심히 듣기 위해서도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지식은 힘든 것을 참는 게 아니고, 기쁨을 증식하는 일이다.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실 수 있는, 가능한한 신체적 자유를 누릴 수 있을 때, 지적 공명의 주파수는 더욱 상승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지식을 배운다는 것은 여러 경위의 통과점을 지닌다. 직접적 전수 혹은 책을 통한 교류, 그리고 함께 힘을 북돋워주는 벗들, 공간적 배치 등등. 그렇기 때문에 지식은 누구의 독점하에 있을 수 없고, 끊임없이 흘러가야 하는 것이다. 강의를 해본 사람은 누구나 실감할 터이지만, 동일한 내용도 관계의 구성에 따라 현저하게 다른 공명과 촉발을 가져온다. 아울러 반드시 환기되어야 하는 것은 교육이란 무엇보다 가르치는 사람 자체를 지적으로 훈련시키는 장이라는 점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어찌 주체와 대상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인가? 지적 즐거움을 증식하면서, 때로는 제자의 위치에 있다가, 때로는 스승의 자리에, 그리고 때로는 ‘붕우’가 되는 다양한 지점을 경쾌한 행보로 넘나들 수 있는 것, 새로운 세기는 바로 이런 ‘공명의 메카니즘’을 요구하고 있다.
‘지식의 노마디즘(유목주의)’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분과화된 학문체계는 현실정합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이다. 분과학문은 단지 여러 전공 사이의 소통장애에 그치지 않고, 분과내의 위계를 작동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국어국문학과의 예를 다시 들어보면, 국문학과 국어학 사이에는 만리장성이 가로놓여 있다. 또 국문학 안에서도 고전문학, 한문학, 현대문학은 ‘말의 길’이 끊긴 지 오래다. 기타 다른 학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자신의 분야에서 한발짝만 벗어나도 앞이 캄캄한 것이 이른바 전문성의 실체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것이 한분야를 심화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방책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심화가 아니라, 고립을 자초하면서 현실에 아무 쓸모도 없는 지식을 양산하는데 불과할 뿐이다.
생명은 에너지의 흐름이고, 앎 또한 그러하다. 흐름을 차단하여 경계를 긋는데 골몰하면서 대체 무슨 심화가 있으며, 확충이 가능할 것인가? 실제로 이런 분과체계와 학연, 지연 등 고질적인 병폐들의 재생산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지적 흐름이 막히면 땅따먹기식의 전공분할이 더욱 가속화되고, 그것은 자연히 지식외적 관계들에 의존하는 습속을 강화시킨다. 학벌주의, 임용비리 등을 거세게 비판하는 이들조차 통상적으로 그것이 이러한 지적 생산의 방식과 전혀 별개라고 생각하는데, 그거야말로 지식과 삶을 이원화하는 그물망에 나포된 것에 다름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벽을 넘어 흐르게 하는 것이다. 홈패인 공간에서 매끄러운 지대로! 그런데 여기서 지식생산의 배치에 대한 새로운 문제설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학제간 연구라는 것을 기이한 종합이나 잡종교배 정도로 착각하는 해프닝이 반복될 것이다. 솔직히 요즘 분과적 체계를 넘는답시고 시도되는 대부분의 작업들이 담론의 생산과는 무관한 과시용 프로젝트인 경우가 적지 않다. 촘촘하게 구획된 선들을 가로지르면서 예기치 않은 지적 흐름들이 생성되는 것은 그러한 인위적 혼합절충과는 무관하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우리 연구실의 세미나는 처음 한국 근대계몽기를 대상으로 하는 자료읽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개화기 신문자료를 읽다보면, 누구나 문학 텍스트에 한정해서는 도저히 이 시기의 지도를 그릴 수 없다는데 공감하게 된다. 그래서 자연히 종교․철학․사상사 전반, 이를테면 근대성 담론의 영역으로 시선이 확장되고, 다른 한편 한국의 근대성은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적 지평에서 사유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또 동아시아 근대성론은 전근대와 탈근대에 대한 비전을 동반해야만 비로서 심층적 탐사가 가능한바, 중세사상사나 들뢰즈/가타리, 푸코 등 프랑스 현대철학과의 접속은 이렇게 해서 구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과학을 하던 이들은 점차 동양적 사유로 눈을 돌리게 되고, 고전과 한문학에만 틀어박혀 있던 이들은 서구 탈근대론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듯, 전공간의 벽을 허무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주어진 코드와 습속에 맹목적으로 사로잡혀 있지만 않다면, 시선의 광할함은 자연스럽게 심연에 대한 열정을 함께 불러온다. 심층적 탐사와 유연한 흐름을 동시에 가능케 하는 이런 식의 배치는 들뢰즈/가타리의 용어를 빌리면, 일종의 ‘노마디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고정된 틀 안에 지식을 묶어놓는 기존 분과학의 ‘정착민적’ 패턴과 달리 경계 사이를 자유롭게 흘러다니되, 어떤 것과도 강렬하게 접속할 수 있는 유목적 배치!
그리고 이것은 글쓰기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와도 맞물려 있다. 대학원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체험했을 터이지만, 학위를 받으려면 일정한 내용과 형식의 코드를 갖추고 있는 정형화된 글쓰기를 끝없이 수련해야 한다. 견고하게 위계화된 분과체계가 유지되는 것도 사실은 이런 식의 코드화시스템에 의해 받쳐지고 있다. 그러므로 학문체계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글쓰기 문법을 내파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그저 대중적이고 교양적 글쓰기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따위의 어설픈 절충이 아니라, 전문성과 대중성, 아카데믹한 스타일과 상업적인 스타일 등을 단절시키는 낡은 이분법 자체를 해체하면서, 다채로운 수사학의 생성을 통해 지배적인 글쓰기 권력과의 전투를 수행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분과학의 경계를 넘고 문체적 코드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 연구실은 ‘케포이필리아’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정의 정원’이라는 정도의 뜻을 가진 이 코스는 정규멤버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우선 커리는 동서고금을 망라하는 인문학 전분야를 포괄한다. 한 분야가 끝날 때마다 학인(學人)들은 모두 각기 나름대로 주제를 설정하여 ‘에세이’ 한편씩을 제출해야 한다. 그러면 그것들을 몇몇의 선생 혹은 선배들이 읽고 꼼꼼히 첨삭, 지도해준다. 물론 여기서도 스승과 학인 사이는 분야와 내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한다. 어떤 텍스트를 접해서도 문제를 설정하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서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제도가 지닌 최고의 장점이다.
그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연구자들의 조로 현상은 정말 심각하다. 40이면 벌써 권위가 몸에 배고, 50이 넘으면 아예 스스로 원로의 자리에 오르고자 한다. 대개 30대 후반에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하면, 결국 학위가 종착점이라는 계산이 나오게 된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제도가 부여한 코스를 열심히 습득한 데서 멈춘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학문의 영역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즉 뛰어난 지적 성취를 이룰 수 있는가 여부는 천재적 영감이 아니라, 얼마나 지속적으로 지적 열정을 견지할 수 있는가에 의해 판가름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명말(明末)의 대사상가 이탁오는 평생 동안 유학의 경전을 탐구했으면서도, 54세 이후 다시 승려가 되어 불교에 입문하여 20여년을 쉬지 않고 유․불․도를 넘나드는 학문을 추구했고, 노신 역시 죽음 직전까지 시대와의 팽팽한 긴장을 잃지 않았으며, 들뢰즈나 가타리․푸코 등 현대의 사상가들 역시 모두 그러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런 양상은 예외적 개인들의 기이한 행로라기보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삶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주입된 습속과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되는바, 그럼으로써 더한층 과감한 지적 모험을 감행하게 되는 순리가 아닌가 말이다. 그에 비하면, ‘조로증’을 태연히 받아들이는 우리의 지적 풍토는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새로운 담론의 생산은 이론의 내용 이전에 바로 이러한 지적 배치와 습속을 바꾸는 일, 그 자체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를테면, 전공․세대, 학연, 성별간 위계라는 온갖 훈습에 찌든 ‘정착민적 근성’에서 벗어나, ‘생의 약동’에 몸을 맡기면서 늘 지적 초발심으로 돌아가 경쾌하고도 끈기있게 수행할 수 있는 신체, 이것이 ‘유목적 지식인’의 형상일 터이다.
‘앎과 삶’이 일치되는 축제로!
우리 연구실에는 세미나나 강좌 외에도 다채로운 활동이 있다. 밥상공동체를 지향하는 ‘생활공간’ 및 요가와 명상, 탁구 및 등산 등이 그것이다. 언뜻 보면, 그저 동호인 활동처럼 여겨지겠지만, 이 모든 것은 사실 지적 모색 속에서 도출된 것이다. 근대 지식의 가장 치명적 결함은 지식과 일상, 지식과 삶을 분리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분리의 기저에는 지식과 신체활동의 단절이 자리하고 있다. 몸과 분리된 지식, 그것은 자신조차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런데 하물며, 어떻게 타인을,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따라서 지식의 능동적 흐름은 반드시 신체를 바꾸는 프로그램을 동반해야 마땅하다. 건강한 먹거리를 통해 생태주의적 운동에 참여하는 것, 요가나 명상훈련 속에서 자의식과 아집을 벗어나 공동체적 윤리를 습득하는 것, 산에 오르며 자연과 교감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 등은 지식공동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앎과 삶의 일치는 그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나와 나의 친구들이 꿈꾸는 것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그것은 심포지움을 축제로 만드는 일이다. 예를 들면, 상상력의 경계를 깨부수는 선정적인(?) 테마를 가지고서 다방면의 연구자들이 발제를 한다. 형식은 개별 발표뿐 아니라, 듀엣으로 할 수도 있고, 여럿이서 한조가 되어서 할 수도 있다. 한곳에는 음식과 차가 잔뜩 준비되어 있다. 진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에서는,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다. 중간중간 휴식 시간에는 락, 발라드, 클래식 등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들으면서 친교를 나눈다. 주제와 관련된 슬라이드나 비디오가 상영될 수도 있다. 심포지움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토론인데, 예의나 격식에 따른 언사는 조금도 필요하지 않다. 논쟁을 극한까지 몰고 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매너라든가 형식의 구속이 없기 때문에 토론자나 발표자의 개성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다. 시간 제한도 없고, 배고픔과 지리함을 견뎌야 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밤을 지새워 토론할 수도 있다.
만약 이런 꿈이 실현된다면, 아마 단 하루 동안에 거기에 참여한 이들의 지적 수준은 비약적으로 고양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 활동을 통해 교육과 연구, 지식과 생활은 하나가 되어 모든 이들의 신체에 깊은 흔적을 남기게 될 터이므로. 심포지움이란 일종의 지식인들의 ‘라이브’ 공연이다. 밴드가 음반을 준비하듯, 평소에 세미나와 학습을 통해 갈고 닦은 내용들 가운데 그 에센스만을 간추려 대중 앞에서 한판 쇼를 벌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장을 통해 새로운 지적 동료들을 만나고 거기서 다시 새로운 유형의 팀이 조직되고……. 이런 라이브 성과물들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매체로 집적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억지로 기획하고 의무감에서 잡지를 내는 악전고투를 답습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앞에서 대학 교육의 여러 문제를 두루 짚었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지식의 기쁨’이 사라졌다는 음울한 진단이 자리하고 있다. 온갖 풍요와 편리 속에서 생의 기쁨이 마모되어버린 근대적 일상이 그러하듯이. 그리고 기쁨의 상실은 지식이 삶으로부터 한없이 멀어짐으로써 초래된 것인바, 심포지움은 오직 근엄하고 지리한 학술대회여야 하고, 삶의 기쁨은 다른 장에서 찾아야 한다는 고질적인 이분법은 그 괴리감의 한 표현일 뿐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던져진 화두는 어떻게 이 간극을 넘어 일상의 실천과 지적 열정을 하나로 융합시킬 수 있을 것인가일 터이다.
누구나 지식의 즐거움, 지적 능력의 증식을 통한 자유의 확대, 능동적인 관계의 확충 등을 원한다. 그런데 왜 모두 거꾸로 살고 있는가? 지식은 고된 노동이 되고, 학력이 높아질수록 신체는 더욱 부자연스럽게 되고, 그러는 사이 인적 유대와 지적 상상력은 완전 마모되는 이 악순환의 늪에서 주저앉아 있는가 말이다. 수많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정치경제학적 분석도 가능하고, 문화적 토양, 교육제도의 비리와 모순 등등. 그러나 그 속내에는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똬리를 틀고 있음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미래를 위해 저축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도권에 진입해야 하고, 그러자니 스승, 선후배 등 파벌주의에 편승해야 되고 등등. 말하자면, 결국은 도시 중산층의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대전제가 이념에 관계없이 지식인들 모두에게 그 지독한 악업(惡業)을 묵인하게 하고 있는 셈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지식의 문제는 삶의 윤리학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생생하게 목도하게 된다. 그 말은 결국 앎의 자유를 되찾는 작업은 삶을 생성시키는 새로운 윤리학이 수반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90년대 이후 제도권 외부에 많은 연구단체들이 생겨나고, 대학 안에도 사회교육원 등이 우후죽순격으로 만들어지면서 공교육 외부의 교육 활동이 활발해졌다. 그런데도 지식의 에너지는 여전히 겹겹으로 봉쇄되어 있다. 그것은 이런 매체들 역시 교육이나 지식에 대한 기존의 구도를 고스란히 변주하고 있어서, 거기서 형성되는 대부분의 교육이 일시적인 상품 이상의 기능을 담당하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지식에 대한 수요층은 확산되었지만, 전문가와 대중, 지식과 삶의 경계는 여전히 두텁다는 것이다. 우리 연구실에는 대학을 졸업하고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아무런 대책 없이 그저 공부가 좋아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대학원에 몸담고 있는, 이른바 전문지식인들보다 더 왕성한 지식욕을 지니고 있는 데다가, 그것이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윤리적 욕구와 견고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지적으로 훨씬 풍부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만약 이들이 대학교육만을 유일한 코스로 여겨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면, 그 순간부터 지식은 기쁨이 아니라 질곡이 됨과 동시에 삶에 대한 태도 또한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 회로에서는 달리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식의 생산과 삶의 윤리학은 맞물려 있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이렇게 압축된다. 어떻게 ‘앎과 삶’이 일치되는 교육과 지식의 패러다임을 구성할 것인가? 해답 및 그 실천방식은 각양각색일 수 있다. 우리 연구실이 추구하는 ‘우정의 교육과 지식의 노마디즘’ 역시 그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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