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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특집>검투사 스파르타쿠스와 ‘반미(反美)’의 깃발/최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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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투사 스파르타쿠스와 ‘반미(反美)’의 깃발
―‘반미문학’의 논의를 중심으로―
최 강 민
(문학평론가)
1. 미국을 향한 일편단심과 배신의 아픔
한민족은 20세기 들어 일본제국주의의 침탈로 인해 고통스러운 시절을 보냈다. 이 질곡의 시간을 종식시켰던 미국과 소련은 비록 점령군의 성격을 띠고 진군했다고 하더라도 한민족에게 구원자로 비쳐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한국전쟁에서 북한의 진격을 격퇴한 일등 공로자인 미국은 남한에서 중국을 대신한 ‘대형이자 보호자’로서 자리매김된다. 한국전쟁은 미국을 향한 남한의 짝사랑이 본격적으로 발현한 지점이자 분단체제가 공고히 되는 시발점이었던 것이다. 열정적인 짝사랑의 열병은 타자에 대한 주체의 무지와 상상적 욕망이 첨가되면서 더욱 심해진다. 이러한 짝사랑의 환상은 주체의 결핍에서 태동한다. 한민족은 일제식민지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근대성의 결핍을 뼈저리게 경험한다. 근대성의 유무에 의해 한 국가의 존망이, 개인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역사적 경험은 그 결핍을 메우려는 욕망을 강하게 동반한다. 여기에서 미국과의 동일시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차원으로 승격된다.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한국의 속도성은, 산업화는 바로 미국을 모방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적 정체성은 빈사 상태에 빠진다.
모든 것이 미국식 사고방식으로 기획되는 상황에서 한미의 동등한 관계는 기만적 꿈일 뿐이다. ‘미국=문명=근대성=선진국’이고 ‘한국=야만=전근대성=후진국’이라는 이항대립적 서열체계의 성립 속에 지배와 종속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이때 남한의 지배이데올로기인 반공이데올로기는 미국을 향한 한국민의 애틋한 애정의 헌사였다. ‘반공’이 아니면 ‘미국’에 의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달리 말한다면 미국과 손잡지 않으면 또 한 번 근대화의 대열에서 뒤처져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할지도 모른다는 집단적 불안감이 한국인의 뇌리에 깊게 뿌리박혀 있었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반미(反美)는 반공이데올로기에 저촉되는 이적 행위로 낙인 찍혀 사회에서 격리 추방된다. 남한의 독재정권은 미국이 교묘하게 주입한 안보 논리인 반공이데올로기와 공모해 진보적 세력을 탄압하면서 정권 기반을 다져나간다.
1980년 5·18 광주민주항쟁은 짝사랑의 환상으로 인해 가려졌던 미국의 실체를 진보적 지식인들과 학생들이 명확하게 깨닫는 계기가 된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정의의 파수꾼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이 부합될 경우 기꺼이 폭력적 독재정권을 용인하고 지지한다는 냉혹한 사실을 그들은 확인했던 것이다. 미국의 야누스적 얼굴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다. 다만 미국을 향한 짝사랑에 눈먼 남한 민중이 신식민주의적 지배 전략을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임을 향한 오매불망의 연정이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순간, 그 대상을 향한 증오의 감정은 짝사랑의 정도에 비례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여기에서 ‘반미문학’은 은폐되었던 미국의 제국주의적 실체와 잃어버렸던 한국의 정체성 찾기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실천적 행위로 해석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외세를 극복해 민족적 동질성을 회복하여 통일된 민족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한다.
‘반미문학’의 함성은 사회주의의 맹주인 소련의 몰락과 전지구적으로 확대된 미국식 자본주의 공세 앞에 1990년대에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21세기 초, 한동안 웅크렸던 ‘반미문학’은 미국인 안톤 오노에게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강탈당한 쇼트트랙 김동성 선수, 미군의 장갑차에 의해 억울하게 압사당한 여중생인 신미순과 김효선,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을 계기로 하여 부활의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유의할 점은 한국에서 공감대를 넓혀가는 ‘반미’가 ‘미군철수’와 같은 주장보다 작전 지휘권 환수와 SOFA 개정같은 한미 관계의 불평등적 구조를 해결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현재에 주류를 이루는 ‘반미’는 미국 자체에 대한 거부라기보다 미정책에 대한 반감의 표현이다. 물론 이런 양상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 글은 반미문학과 관련된 논의를 집중적으로 검토한 평론을 대상으로 하여, 소설을 중심으로 그 성격과 나아갈 방향에 대한 능동적 모색이다.
2. 기지촌 문학과 ‘반미문학’의 등장
대한민국 ‘식민지 일번지’라 불리는 용산.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미8군 용산기지는 강대국에 휘둘린 약소국 한국의 역사를 음울하게 상징한다. 1910년 일본군이 상주하면서부터 시작된 외국군 주둔지라는 ‘용산’의 오명은 8·15해방 이후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그 맥을 이어간다. 잠시 철수했던 미군은 광복 8주년인 1953년 8월 15일에 다시 용산을 차지한다. 광복절 기념일과 외국군 주둔이라는 상반된 풍경의 교차는 이 땅이 짊어진 고통의 역사를 증명한다. 미군 기지는 오랫동안 오욕의 지명 대신 한국 안보의 튼튼한 버팀목이자 신생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원하는 기지로 인식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작가들이 미국을 비판적 시각에서 검토하기는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에 존재하는 ‘미군 기지’는 은폐된 제국의 지배와 억압을 확인할 수 있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한다.
한국의 ‘반미문학’은 일명 ‘기지촌문학’이라 불리는 일련의 작품들에서 출발한다. 미군과 그들을 상대하는 ‘양공주’가 주로 등장하는 기지촌문학은 한국의 대미 종속성과 미국의 우월의식을 우회적으로 형상화한다. 이때 송병수의 「쑈리킴」(1955)에서 보듯 기지촌문학에서 대개 미군 남성들은 ‘풍요=성 소비자=지배자’로 등장하고, 한국 여성들은 ‘빈곤=성 매매자=피지배자’로 등장한다. 한국 여성은 미군 남성의 성적 노리갯감이자 서구우월주의를 확인시켜주는 열등한 대상에 불과하다. 이러한 불평등한 관계는 매매춘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전체에도 동일하게 작동되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 남성은, 이 현상을 바라보는 주체적 시선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성인 남성이 아니라 미처 다 성장하지 못한 소년의 시점으로 텍스트에 존재한다. 그 소년은 미국의 거대한 힘에 압도된 민족적 열등의식과 혹시 미군이 철수할지도 모른다는 당대 사회의 집단적 불안 심리가 만들어낸 인물이다. 이 불안감은 적극적으로 미국의 본질을 형상화하는 것을 가로막는 심리적 기제이자 반공이데올로기의 산물이기도 하다.
80년대 이전에 형상화된 대부분의 기지촌문학 작품과 이것을 분석한 평론은 미국의 지배전략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 채 약자인 한국 여성의 불행한 처지와 그것에 대해 약간의 동정심을 표시하는 것으로 종결된다. 이것은 작가와 평자의 시선이 기지촌이란 공간을 벗어나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돈 현상과 맞물려 있다. 기지촌문학은 미군과 한국인의 갈등을 개인적 차원으로 국한시켜 형상화하는 한계점을 노출했던 것이다. 서구의 대표적 좌파 문학이론가인 프레드릭 제임슨은 제3세계의 문학작품이 개인적 운명을 다룬 이야기라 할지라도, 제국에 의해 험난한 상황에 빠진 문화와 사회적 상황에 대한 민족적 알레고리라고 문학적 의미를 부여한다. 이런 면에서 비록 ‘기지촌문학’이 반공이데올로기의 영향 아래서 적극적으로 반미의식을 표출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텍스트를 읽는 독자에 의해 미약하나마 저항적 목소리를 감지할 수 있었다면 그 의의는 충분히 찾을 수 있다. ‘기지촌문학’의 축적된 성과 속에 본격적인 ‘반미문학’이 출산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기지촌문학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인 남정현의 「분지」(1965)는 미군 기지촌이라는 공간을 뛰어넘어 한미 관계의 구조적 불구성을 지적한 대표적인 ‘반미문학’이라 할 수 있다. 당시 ‘반미=용공=간첩’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분지」가 행한 비판적 성찰은 지금도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홍만수의 비극은 어머니가 미군에게 강간을 당해 자살하고, 여동생 분이는 미군 스피드 상사의 정부가 되어 성적 학대를 받으며 살아가는 모순된 현실에서 기인한다. 만수는 한국을 방문한 스피드 상사의 부인인 비취를 강간함으로써 가족의 복수를 하고 훼손당한 민족의 자신감을 회복한다. 미국의 펜타곤 당국은 이 사실을 알고 이삼억 불의 군비를 사용해 홍만수가 있는 향미산을 폭격한다. 만수는 신묘한 도술로서 미국의 폭력에 당당히 맞서겠다는 자주적 의지를 표출한다. 이것에서 보듯 이 소설은 황당한 구성을 통해 한미 관계의 문제점을 폭로한 민족적 알레고리 소설이다. 알레고리 형식을 통해 미국을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당국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다. 여기에서 보듯 ‘반미’는 결코 언급해서는 안 될 절대적 금기였던 것이다.
문학평론가들은 「분지」를 ‘반미’가 주제가 아니라 민족의 자주성 회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입장과 민족의 자주성 회복과 반미는 불가분의 관계이기에 「분지」는 반미작품이라는 입장으로 크게 양분된다. 이러한 미묘한 입장의 차이는 평자의 세계관에서도 기인하지만 여전히 강고한 힘으로 존재하는 반공이데올로기의 자장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평론가의 고민을 반영한다. 후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문학평론가 최원식은 「분지」를 민중적 웃음의 미학으로 외세에 의해 모독된 조국의 눈부신 부활을 선언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면서 홍만수가 비취를 강간한 부분에 대해 절대적 자유와 평등의 유토피아를 시현하는 민중축제로 해석한다.
향미산 절정에서 벌어지는, 스피드상사 부인 비취에 대한 만수의 강간 장면은 거친 육체적 접촉을 통해 실현되는 절대적 자유와 평등의 유토피아를 시현하는 일종의 민중축제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만수는 미국에 대한 심리적 육체적 압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니, 이 장면은 양반마님들에 대한 성적인 욕설을 통해 양반을 기롱하는 탈춤의 말뚝이과장과 깊이 접맥된다. 말뚝이가 성적인 욕설을 통해 자신의 종속성에서 벗어나듯이 만수는 강간을 통해 주눅으로부터 해방되어 민중영웅 홍길동의 후손으로서의 자긍을 회복하는 것이다.
―최원식, 「민족문학과 반미문학」, ≪창작과비평≫ 1988년 겨울호, 92쪽
이러한 평가에 대해 문학평론가 이성욱은 「반미문학의 전개과정과 과제」(≪실천문학≫, 1989년 봄호)에서 최원식 씨가 과도하게 문학적 의미를 부여했다고 비판한다. 이성욱이 보기에 홍만수의 강간은 “민중이 자기해방을 실현하는 민중축제의 생산적 의의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서 단순비판과 단순파괴가 만들어내는 무정부주의적 민중성이라고 경고한다. 또한 참말뚝이의 전형은 “소모적 풍자가 아니라 생산적인 파괴를 보지하는 전망적 풍자나 공격을 통해 자기해방을 쟁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성욱은 「분지」가 지닌 문학사적 의의를 인정하면서도 낭만성이나 내재적 한계로 인해 전망의 부재를 드러내는 작품의 한계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던 것이다. 서경석도 「한국문학에 있어서 ‘제국주의’의 인식과정」(≪외국문학≫, 1989년 가을호)에서 이성욱의 견해에 동조하면서 「분지」가 노출한 오류의 극복을 위해 대상에 대한 보다 과학적인 파악을 요구한다. 이것은 심정적이고 충동적인 ‘반미’와 텍스트에 대한 과도한 상찬이 오히려 우익 보수층의 결집을 유도해 반미문학의 기반을 잠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에서 보듯 반미문학 작품과 그에 대한 평가가 타당성을 인정받으려면 좀더 섬세한 접근과 논리가 필요하다. 최원식과 이성욱의 견해 차이는 ‘반미문학’의 폭과 깊이를 심화시킬 수 있는 논의를 유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단순히 ‘반미’의 몸짓이 반영되었다고 작품을 과도하게 칭찬하는 것은 편협한 민족주의에 고착되는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반미문학’이 ‘문학’인 이상 그것이 담지하는 역사적 전망 못지않게 미학적 조건에 대한 검토도 병행해야 한다. 또한 ‘반미문학’을 논하는 평자들이 ‘초강대국 미국=악, 제3세계 한국=선’이라는 도식을 선험적으로 규정한 채 작품을 분석하는 것은 아닌지도 반성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서구가 자신을 ‘문명=근대성=우월’로, 제3세계를 ‘야만=전근대성=열등’으로 규정한 오리엔탈리즘의 담론과 일란성 쌍둥이이다. 제국주의의 폭력적 지배담론을 해체하려는 식민지의 저항이 오히려 상대방의 논리를 그대로 모방하는 환원주의에 매몰된다면 새로운 역사의 지평을 기대하기 힘들다.
3. 민족주의의 성장과 내부 식민성
1950, 60년대에 거인인 미국의 위세에 눌린 난장이 한국은 미국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수박 겉핥기식 베끼기 경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모든 것이 미국식 잣대에 의해 규정되던 그 시절, 거울에 비친 모습까지도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의 얼굴이었다. 당시 한국은 미국이 유토피아라는 환상에 중독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라캉이 언급한 상상계에 고착되었던 것이다. 민족주의와 급속한 경제의 성장 속에 점차 자신감을 회복한 1970년대에도 카터 정부의 미군 철수론에 한국이 공포에 휩싸인 것처럼, 몸은 어른으로 성장하였음에도 한국은 여전히 미국에 종속된 상징계에 머무른다. 그러나 1980년대의 반미문학은 미국이 가하는 거세위협에도 불구하고 미국 중심의 지배담론을 단호히 거부한다. ‘반미문학’은 비로소 한국 여성의 개별적 수난사였던 ‘기지촌문학’이란 협소한 시선에서 벗어나 남북분단이 초래된 ‘해방기와 한국전쟁(조정래의 장편 ꡔ태백산맥ꡕ 등)을, 또 하나의 한국전쟁이었던 베트남전쟁(황석영의 ꡔ무기의 그늘ꡕ 등)을, 군사독재정권의 폭력성과 민중의 저항성이 드러난 광주민중항쟁(홍희담의 「깃발」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한 단계 도약한다.
특히 이 시기에 한국의 작가들은 타자인 베트남전쟁(1961∼1975)을 이중의 거울로 활용해 한반도의 현실을 환기한다. 제국주의 논리와 자주적 민족의식이 팽팽하게 부딪친 이 전쟁은 제3세계의 끈질긴 저항이 어떠한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다. 한국은 베트남의 입장에서 보면 민족해방전쟁에 1964년부터 공산주의 저지라는 명분하에 전쟁을 일으킨 미국을 지원하는 용병으로 참가한다. 외세에 의해 남북으로 분리된 한국이 또 다른 식민주의의 닮은꼴을 생산하기 위해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역사의 아이러니. 황석영의 ꡔ무기의 그늘ꡕ(1988)은 베트남 땅에서 방관자의 처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한국인의 곤혹스러움이 잘 드러난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전투 지역과 일정한 거리를 확보한 후방 지역을 중심으로 베트남전쟁과 미국의 역할, 그리고 외세에 짓밟힌 공통의 역사를 지닌 한국과 베트남의 상흔을 객관적으로 형상화했던 것이다. 황석영은 베트남 전사인 ‘팜민’의 목소리를 통해 한반도에 가한 미제국주의의 폭력성과 그 기만성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때 피식민지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인 안영규 상병과 베트남인 팜민은 서로가 상대방을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한다. 그 거울에 드러난 것은 화려한 미사여구에 감춰진 추악한 미제국주의이다.
문학평론가 김철은 「제국주의와 정치적 무의식」(≪문학과사회≫, 1990년 봄호)에서 서구적 시각을 내면화하여 쓴 안정효의 ꡔ하얀 전쟁ꡕ을 비판하면서 한국인의 입장에서 베트남전쟁을 형상화한 황석영의 ꡔ무기의 그늘ꡕ을 높게 평가한다. 김윤태도 「분단극복과 반외세문학」(≪실천문학≫, 1988년 여름호)에서 ꡔ무기의 그늘ꡕ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한국의 제3세계적 동질성 확보의 문제까지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토로한다. 김철이나 김윤태 등이 사용한 비평의 잣대는 외세에 간섭받지 않으려는 ‘민족주의’이다. 이들에게 있어 ‘반미문학’은 분단 극복의 ‘민족문학’으로 귀착된다. 문학평론가 백낙청은 민족문학의 개념을 민족의 주체적 생존과 인간적 발전을 위해 요구되는 문학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여기에서 ‘민족문학’이 외세에 의해 국가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민족의 생존권 보장을 추구하는 대타적 성격의 문학임을 알 수 있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지적한 것처럼 ‘민족’이란 개념은 영구 불변의 개념이 아니라 근대의 산물인 상상적 공동체이다. 상상적 공동체인 민족이라는 울타리는 핍박받는 사람들을 서로 연계시켜 저항하게 만드는 장점을 갖는다. 이런 점에서 민족의 개념은 현재에도 일정 부분 유효하다. 그렇지만 민족의 개념이 절대화된 폐쇄적 민족주의는 순수혈통주의에 사로잡혀 파시즘과 결합된 극단주의로 치달을 위험성이 상존한다.
탈식민주의 이론가인 호미 바바는 식민주의의 유산인 ‘서구/비서구, 중심/주변, 문명/야만, 제 1세계(외세)/제 3세계(민족)’ 등의 이항대립체계를 해체할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이분법은 전지구적으로 확대된 자본주의와 정교하게 작동하는 제국주의 시스템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오히려 현재의 구조를 고착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기존의 낡은 시스템을 해체하고 새로운 저항체계를 구성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본다. 한국의 현대사를 보더라도 유신독재체제를 구축한 박정희 정권은 오히려 민족주의를 이용해 매판적 지배계층의 권력을 강화시킨다. 이처럼 ‘민족주의’는 양날의 칼인 것이다. 신형기도 ꡔ민족 이야기를 넘어서ꡕ(삼인, 2003)에서 “민족적 통합의 상상이 끊임없이 권장되어 왔음은 그것이 오히려 일상화된 억압-배제의 폭력을 재생산해온 구조”였던 것은 아닌가 하고 의구심을 토로한 바 있다. 필자도 그의 견해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더욱이 한국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은 한국의 제3세계적 위치를 모호하게 만든다. 삼성이나 현대 등의 대기업은 세계 곳곳에 공장을 세우고, 현지 노동자를 고용해 이윤을 창출하는 다국적 기업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한국인이 과거에 미국이나 일본 소유의 공장에 고용되어 산업의 역군으로 일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시대의 변화 속에 상황은 역전되어 동남아시아나 중국 및 러시아의 노동자들은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밀입국하거나 위장 취입해 3D업종이나 유흥업소에서 열악한 고용 환경에 시달리고 있다. 이때 그들을 대하는 한국인의 태도는 과거 제국이 취하던 근거 없는 우월의식이 빚은 천박함과 어쩌면 그렇게 닮아 있는지. 불법 취업을 미끼로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임금을 제때에 지불하지 않는 한국인 고용주의 모습에서 제3세계적 동질성을 요구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한국은 현재 제3세계적 위치보다 일종의 유사 제국주의 형태를 보이고 있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게다가 지역소외론이나 가부장제적 남성에 의한 여성의 피해도 내부식민성의 존재를 말해준다. ‘반미문학’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부식민성에 대한 반성 없이 미국을 비판한다면 이것처럼 모순된 일이 없을 것이다. 자기성찰이 전제되지 않는 ‘반미문학’은 또 하나의 기만적 폭력임을 깨닫는 지점에서 21세기의 ‘반미문학’은 새로운 출구를 찾을 수 있다.
한국에 있어 제국으로 인식된 국가가 20세기 전반기에 일본이라면, 후반기에 미국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이 과거형이라면, 미국은 현재형으로서 우리의 주체적 삶을 구속하는 지배력이다. 해방 이후 우리가 강도 높게 비판했던 것은 ‘반미’가 아니라 ‘반일(反日)’이었다. 이것은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을 침략하고 식민지를 직접 경영하였음에 비해 미국은 그러한 원죄가 없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또한 미국이 한반도에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분단을 미·소 강대국의 일차적 책임으로 간주하는 ‘반미문학’의 진영에서 ‘친일문인 비판’과 비슷한 ‘친미문인 비판’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며 문단의 물갈이를 시도한 적이 없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반일’의 빈번한 강조는 민족의 내부적 역량을 일정 부분 소진시켜 ‘반미’의 목소리를 낮추는 데에 일조했던 것이다. 혹시 미국과 결탁한 보수 지배층이 일정 부분 ‘반일’을 희생양 삼아 ‘반미’의 강도를 흐리게 하는 데에 전략적으로 이용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4. 민중적 당파성과 시대의 변화
1980년대의 ‘반미문학’은 미·소의 개입으로 인해 초래되었던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된 조국의 건설을 지향한다. 이것을 위해 외세와 매판적 지배계층에 의해 피해를 많이 당한 노동자, 농민 등의 기층 민중을 저항적 주체로 설정한다. 김윤태는 「분단극복과 반외세문학」에서 분단의식의 내면화가 한국 민중과 외세와의 모순을 독재정권과의 대립관계로 환치시켜 놓음으로써 양자간의 거리를 멀게 했다고 평한다. 그러면서 민중의 생활 현실 속에서 외세의 본질을 찾아내는 데 의식적인 노력이 요청되며, 그것은 민중적 전망의 이념적 선취와 객관적 현실에 대한 과학적 인식의 반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성욱은 「반미문학의 전개과정과 과제」에서 과거의 반미문학 작품들이 대부분 소재적 충동에서 헤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하면서, 그것을 노동자계급의 당파성이 부재한 데에서 찾는다. 특히 조정환은 「민주주의 민족문학론에 대한 자기비판과 노동해방문학론의 제창」(≪노동해방문학≫, 1989. 4)에서 이성욱보다 좀더 급진적으로 나아가 무계급적 민족문학과 무당파적 노동문학과도 분리된 노동해방문학의 입장에서 반미를 주장한다.
이처럼 진보적인 소장 평론가들은 반미문학에 있어 노동자가 중심이 된 당파성과 과학적 인식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80년대를 뜨겁게 달군 민중의 범주와 지식인의 소속에 관한 논란도 이것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민중적 내지 노동자적 당파성은 외세와 매판적 독재정권과 대결하기 위해 다양한 견해와 계층을 아우르기보다 선명하게 반독재와 반외세의 기치를 내건 핍박받는 하위 집단을 주로 끌어안는다. 아직 반미의 담론이 보편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그 불씨를 지필 수 있는 주체로 민중적 당파성을 거론한 것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렇지만 당파적 시각의 견고한 유지는 투쟁의 견고성과 공격의 파괴력을 일순간 높이는 데에 적절할지 몰라도 동시에 그 한계점도 명백하다. 끊임없이 외부의 적을 향한 이분법적 배제의 논리는, 내부를 향한 배제의 논리로 이어지면서 자체의 역량을 갉아먹는 독이 된다.
이 과정에서 진보를 주장한 민주진영 자체의 내부 비판은 적전분열의 이적 행위로 치부되었고, 자체 조직이 지닌 모순은 조직보호논리에 의해 덮여졌다. 모든 것이 ‘거대서사’라는 하나의 목표로 수렴되면서 또 다른 의미의 파시즘적 억압이 자행된다. 그들은 민중적 당파성을 주장하면서도 민중들의 다양한 견해를 자의적으로 하나의 이미지로 균질화시켜 해석하는 오류를 곧잘 저질렀던 것이다. 80년대는 민중의 주도성을 이야기했지만 결과적으로 소수의 엘리트 지도부가 적을 규정하고 다수를 이끌어간 상명하달식 구조였다. 이러한 한계점으로 인해 직선제 개헌을 성취한 민주적 역량은 전체 사회를 뒤바꾸는 동력원이 되기에 그 힘이 부칠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성장한 ‘반미문학’은 그 주도 세력의 한계성과 사회주의권의 몰락이라는 대외적 조건의 변화 속에 침체의 늪에 빠진다. 게다가 1997년에 맞이한 IMF체제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는 미국과의 밀착을 더욱 채찍질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민중 중심의 민족문학을 폐기한 채 반미문학의 전선에 나가야 할까. 현실적으로 저항을 촉발하고 그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중요 기제가 ‘민중과 민족’이라는 점에서 지금 당장 ‘민족문학’을 폐기한다는 것은 제국의 공세에 무방비로 노출될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민족문학’의 존립 방식이 과거처럼 다른 견해를 무조건 억압하는 최상급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민족문학’은 여전히 유효한 이론적 토대가 될 수 있다.
2000년대, 다시 귀환한 반미의 깃발은 이전과 다른 색깔을 선보인다. 마르크시즘의 쇠퇴 속에 상대적으로 노동자 중심의 계급성이 약화되었고, 그 대신 다양한 계층의 2∼30대가 주도하는 대중적 성격으로 탈바꿈했던 것이다. 미국이 가하는 거세위협에도 자유로운 그들은 일종의 네트워크(network) 형태의 유목민적 특성을 공유한다. 주로 인터넷을 활용하여 사안에 따라 의견을 자발적으로 공유하면서 시작도 끝도 없는 미완결형의 서사를 형성한다. 이런 특성을 보이는 그들은 기존의 반미투쟁이 보여주었던 자기폐쇄적 범주를 뛰어넘어 그 영역을 끊임없이 확장시킨다. 어느 특정 세력이 주도하지 않는 열린 의사소통 체계는 성별, 연령, 계급, 민족, 국가의 낡은 틀을 무너뜨리며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다. 그들에게 반미는 정치적 투쟁이라기보다 일상적 삶에서 거침없이 쏟아내는 수평적 대화일 뿐이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 속에 문학평론가 고영직은 문화평론가 이도흠의 견해를 인용하면서 반미문학의 새로운 방향성에 대해 ‘평화와 인권 차원에서 상상력의 국제 연대, 진정한 타자성의 체험과 반성의 사유를 줄 수 있는 대항신화가 담겨진 작품, 미국과 관련한 각종 문제에 대해 인권적 관점의 일상적 관심이 작가들’에게 요청된다고 언급한다. 고영직의 시각은 80년대 ‘반미문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환경 속에서 반미문학의 지평을 확장하려는 올바른 시각으로 보여진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 아쉬운 점은 반미문학이 그 동안 침체된 원인을 분석하는 데에서 발견된다. 고영직은 1990년대 반미문학이 쇠퇴한 이유를 정치와 경제 면에서 미국 주도하의 자본주의의 위력에서, 문학면에서 파시즘문학과 탈민족주의 담론의 세력 확대에서 찾는다.
1980년대 소위 민족문학의 유산을 내면화 또는 자기부정하면서 출발한 1990년대 문학은 골방의 심리주의 문학을 양산했던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 즉 1989년 소련 붕괴 이후 전개된 세계사적 상황에 걸맞는 새로운 문체와 정신을 미처 계발할 수 있는 여력을 소진했던 터이다. 그리하여 우리 문학에는 미국 주도하의 자본주의의 위력을 절감하면서 파시즘 문학의 대두라는 상황을 맞는다. (중략) 어쨌든 1990년대 우리 문학은 분단체제에 대한 인식적 전환은 물론 반외세에 대한 민족적 정당성을 무화하려는 이른바 탈민족주의 담론의 자장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한 결과 1990년대 우리 문학에서 김하기·문부식 등의 후일담 문학 외에는 반외세 주제의 문학은 일제히 퇴각하게 된다.
―고영직, 「한국 반미문학사 서설」, ꡔ전쟁은 신을 생각하게 한다ꡕ, 화남, 2003, 469쪽
그러나 고영직이 제시한 ‘파시즘 문학’은 그 성격이 애매모호할 뿐더러, 90년대 문학의 주류를 파시즘 문학과 골방의 심리주의 문학으로 규정하는 것도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민족문학의 침체를 자체가 지닌 도식적 상상력과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고식적 태도에서 찾지 않고 외부적 조건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책임성이라는 측면에서 당당해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탈민족주의 담론’은 민족주의의 담론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것이 사실이지만 민족주의 내부에서 실행하지 못한 치열한 자기성찰을 촉구하는 긍정적 성격을 갖고 있다. 탈민족주의 담론에 의해 민족주의 담론은 새로운 진로를 모색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탈민족주의 담론으로 인해 ‘반미문학’의 침체를 설명하는 것은 다소 궁색해 보인다.
고대 로마 시절, 자유를 갈망했던 스파르타쿠스는 검투사 훈련소를 뛰쳐나와 로마제국에 저항한다. 폭력적 억압과 굴종보다 차라리 자유와 평등을! 당대 지배층을 전율시켰던 그의 봉기는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하지만 스파르타쿠스의 절규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 검은 색 피부 하얀 가면을 언급한 프란츠 파농, 여중생을 추모하는 서울 광화문의 촛불 시위 등에서도 면면이 이어져 온다. 여기에서 ‘반미문학’이 단순히 미제국에 대한 피식민지인의 저항이라는 구도를 뛰어넘어 보편적 인류의 번영과 공존이라는 더 큰 세계로 확장되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렇지 못할 때 반미문학은 일과성의 행사로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반미문학’은 ‘반미’문학이 아니라 문학성과 실천성이 행복하게 결합된 반미‘문학’이어야 한다.
5. 새로운 패러다임을 기대하며
미·소의 양극 체제가 무너진 이후, 세계에서 유일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자신의 지배력을 유지 확장하기 위해 노골적인 야욕을 드러낸다. 신자유주의를 통해 전 세계를 미국 시스템으로 형질 변경시켰을 뿐만 아니라, 9·11 테러 이후 테러 집단을 공격한다는 명분 하에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여 식민화시켰다. 이러한 일방주의적 패권주의에도 불구하고 반미의 물결은 도도한 역사의 흐름이 되어가고 있다. 이 흐름에서 동떨어진 한국의 친미적 보수 지배계층은 도덕적 명분론과 국익적 현실론 사이에서 후자를 택함으로써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 본심이라고 고백한다. 레드컴플렉스로 무장된 그들의 선택은 미국의 이라크전 승리를 계기로 하여 역사적 정당성을 획득한 것으로 선전된다.
해방 이후부터 우리는 철저하게 미국을 통해 세계를 보았고 꿈을 꿨다. 이것에서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혈관에 흐르는 피는 미국의 버터 냄새를 요란하게 풍긴다. 현재 우리가 믿고 따르는 자유민주주의도 바로 미국에서 직수입한 정전을 열심히 베끼면서 어렵게 배운 것들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배운 대로 상전에게 진정한 민주주의를 준수하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깡패 람보를 향해 ‘양키고홈’이란 ‘반미’의 구호를 외친다. 이렇게 충직한(?) ‘하인’들이 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처럼 ‘반미문학’은 제국의 중심부에서 유통되는 지배담론을 능동적으로 활용해 오히려 역으로 제국을 해체하는 탈식민주의 글쓰기인 ‘전유(專有, appropriation)’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반미문학’은 서구중심주의의 허구적 지배담론을 해체하여 서구와 동양의 공존을 도모하는 탈식민주의문학론의 연장선에서 미 제국주의를 고발하고 투쟁해야 한다.
21세기초, 세계를 대상으로 하여 전략시뮬레이션인 ‘커맨드 앤 컨커(Command & Conquer)’ 전투 게임을 벌이는 미국의 가공할 힘 앞에서 기존의 저항 방식은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최원식, 김윤태, 이성욱, 조정환 등은 반미문학의 역사적 정당성을 부각시키며 일정한 성과를 얻어내었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첨예한 인식은 80년대 상황에 적합하기에 그 논리를 새로운 세기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다. 이것은 문학이 현재의 모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양식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반미문학의 논의에 있어서도 고영직이 일부 제시한 것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첫째, 문학인들이 반미의 문제를 미제국에 대한 저항이라는 단일한 시각에서 벗어나 서구중심주의의 독선에 대한 정당한 문제제기라는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만 ‘반미문학’이 지속성을 지닐 수 있다. 둘째, 저항의 이데올로기로 설정되는 민족문학은 상대적 개념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것은 환경을 중시하는 생태주의문학, 가부장제 권력과 싸우는 페미니즘문학 등 일련의 저항적 문학과 수평적 대화를 통해 연대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셋째, 제국에 대한 비판 못지않게 치열한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이것은 내부식민성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제국과 대항할 수 있는 체질을 강화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작업이다. 넷째, 과거의 식민주의 유산인 ‘중심/주변, 외세/민족, 서구/동양,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 선/악’ 등의 절대적 이항대립체계를 해체하여 저항의 담론을 재구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제국주의적 폭력성을 비판하는 언어학자인 노암 촘스키와 헐리우드 영화배우 팀 로빈슨에서 보듯 미국은 이질적 소수 담론이 아직 살아 숨쉬고 있다. 제1세계나 제3세계라는 낡은 틀에 갇혀 있다면 이들과의 적극적 연대는 생각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저항하는 주체라면 모두가 연대하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다섯째, 반미문학이 용산미군기지 이전 촉구 등의 정치적 실천성을 보이는 것은 좋으나, 그것이 정치에 종속되는 형태로 진행되어서는 곤란하다. 여섯째, 반미문학은 정치 이외에 사회, 문화, 경제, 교육 등에서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미국식 시스템에 대한 성찰과 탈영토화를 시도해야 한다.
“나에게는 꿈이 있다”고 외친 마틴 루터 킹 목사. 나에게도 꿈이 있다. 제국에서 해방되기를! 비록 현실에서 꿈은 일시적으로 패배할지 몰라도, 꿈은 좀더 나은 미래를 호출하는 강력한 SOS 신호이다. 나는 문학을 통해 꿈꾼다. 오, 신이시여!
‘반미(문학)’의 네트워크는 언제나 열려 있다. 문제는 지금 당신이 접속할 의지가 있냐는 것이다. 그 의지가 있다면 방법은 다양하게 그대 앞에 펼쳐질 것이다.
최강민
․200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등단
․중앙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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