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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특집>우리 시 속의 미국, 비극으로 치닫는 ‘파르마콘’의 신화/백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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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 속의 미국, 비극으로 치닫는 ‘파르마콘’의 신화
백 인 덕
(시인)
1. ‘한국’은 없다
1866년 셔만호 사건,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 1882년 조미수교, 1945년 해방 후의 미군 진주 등등, 이런 단편적인 역사적 사실로 한 세기가 훌쩍 넘어버린 한반도와 미 대륙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한 여중생 사망사건과 촛불시위, 이라크전쟁, 북핵문제 등 최근의 사태들을 통해서도 그 가닥을 잡기에는 수월하지 않다. 실제로 한국에서 미국의 존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심지어는 종교에 이르기까지 깊고도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문화 속에 침윤되어 있는 미국’이라는 이번 호의 특집은 그 시의성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별일이다’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삶의 의미 자체, 너무나 당연시되어 왔던 삶의 기반을 되묻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이 ‘이상하다’는 느낌은 곧바로 다른 의문점을 끌어왔다. 어찌된 일인지 ‘우리 안의 미국’, 또는 ‘한국 속의 미국의 의미’를 묻는 글이 생각보다는 매우 적었기 때문이었다. 필자가 과문한 탓이라고 자책한다고 쳐도, 최소한 ‘시’라는 장르에서는 더욱 그러한 물음과 응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민족문학’이라는 개념 틀을 설정하고 나서야 우리는 ‘미국’이라는 외부의 세력의 윤곽 정도를 그려볼 수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몇 가지 원인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한반도와 미 대륙의 만남이 당시의 세계사적인 맥락에서 제국주의의 약소국 침략이라는 측면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제 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세계 제일의 채권국으로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반도의 문인들, 특히 시인들에게서 미국에 대한 어떠한 인식의 단초를 찾아볼 수 없었다. 미국은 단지 일본과 같은 침략 세력에 불과했던 것이다.
둘째로는(오해의 소지가 없지는 않지만) 미국문학 자체의 문제점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20세기 전반까지 미국문학의 경우 ‘미국의 꿈’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고취하는 데 몰두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의식적으로 신대륙을 삶의 근거지로 정복․개척하면서 어떤 강력한 문화적 구심점이 필요했고, 동시에 비록 백인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주민이라는 특성을 희석시키지 않으려는 이중의 고민이 문학 고유의, ‘인간성’에 대한 탐색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특성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결국 한반도에서의 미국에 대한 이해를 그 직접성 이상으로 정치, 경제, 군사적인 측면으로 기울게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미국에 대한 문화적 이해, 특히 문학적 이해는 시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로 치부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로 접어든 지금, 과거에 대한 사적 개관이나 개략적 이해는 이미 그 의미를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단적인 예를 ‘기러기 아빠’라는 신종 현상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이 생활을 위한 터전임에는 분명하지만 후세들의 자유롭고, 창조적인 삶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에는 적절치 못한 곳이다. 이런 인식은 그러나 쉽사리 이민의 보따리를 싸게 하기보다는 가족을 이산하는 것으로 결정난다. 왜냐하면 교육은 미국이 경쟁력 있을지는 몰라도, 이른바 ‘아빠’들의 직장이라는 면에서는 무한경쟁의 미국(해고와 재취업이 빈번한)보다는 한국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은 그 공간상의 거리보다 훨씬 가까이, 우리들 생활에 연결되어 있다.
심층적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글에서는 문화적으로’ 한국인’이 ‘세계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시 속에 투영된 ‘미국문화의 영향’이라는 측면에서 짚어보고자 한다.
2. 가까이할 수 없는 서적(書籍)
한국전쟁이 미국의 위력을 한반도에 깊이 각인시킨 결정적 사건이었다면, 4.19는 미국을 한국 현대시에 부각시킨 결정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미국에 대한 정치, 군사적 이해는 이미 해방 후 미국이 ‘해방자’라는 우리의 인식과는 달리, ‘점령군’을 자처하며 진주했을 때부터 예견되었던 것이다. 비록 소박한 어조이기는 하지만 이는 김수영의 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유는 없다……
가다오 너희들의 고장으로 소박하게 가다오
너희들 美國人과 蘇聯人은 하루바삐 가다오
―「가다오 나가다오」 부분
한국전쟁 후, 그러니까 1950년대는 이승만 독재와 전쟁의 후 폭풍 탓에 미국에 대한 비판 자체가 이적 행위로 치부되었다. 결국 조향, 송욱 등의 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미국의 물질적 위력에 대한 풍자였다면, 이미 1950년대 미국은 한국 현대시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반도와 미 대륙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탐색이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정확하게 문화지체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외세, 이는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으로 대표될 수밖에 없는 외세에 대한 시적 발언은 4.19 이후에나 가능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 멀고 어두운 겨울날
이방인들이 대포 끌고 와
강산의 이마 금그어 놓았을 때도
그 벽 핑계삼아 딴나라 차렸던 건
우리가 아니다
조국아, 우리는 꽃피는 남북평야에서
주림 참으며 말없이
밭을 갈고 있지 않은가.
―「조국」 부분
이 시는 신동엽의 1969년도 작품이다. 그는 이미 1960년대 중반에 「껍데기는 가라」라는 작품을 통해 직접적으로 미국을 지칭하고 있지는 않지만, 반외세 자주통일적인 민족문학의 특성을 구체화한 바 있다. 위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민족 문학적 특성이 한결 더 간결하게 드러나고 있다. ‘미국’을 외세로, 통일의 걸림돌로 보는 이러한 관점은 70년대 민중시를 거쳐, 1980년대에 이르면 김남주, 오봉옥 등에 의하여 한층 더 격렬한 어조를 띄게 된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한국 현대시가 보여준 ‘미국’ 이해가 정치, 경제, 군사적 측면에 몰두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이른바 ‘미국 문화의 힘’에 대한 접근이 맹아(萌芽) 수준에서나마 싹트고 있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가까이할 수 없는 書籍이 있다
이것은 먼 바다를 건너온
容易하게 찾아갈 수 없는 나라에서 온 것이다
주변 없는 사람이 만져서는 아니 될 冊
만지면은 죽어버릴 듯 말 듯 되는 冊
가리포루니아라는 곳에서 온 것만은
確實하지만 누가 지은 것인 줄도 모르는
第二次大戰 以後의
긴긴 歷史를 갖춘 것 같은
이 奄然한 冊이
―「가까이할 수 없는 書籍」 부분
‘문화의 불온성’을 갈파했던 김수영에게 있어서 ‘가까이할 수 없는’ 책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그 단서는 ‘주변 없는 사람이 만져서는 아니 될’이라는 표현이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은 제법 모양(그 형식과 내용)을 갖춘 것인데 ‘미국(캘리포니아)’에서 건너 온 것은 확실하다. 내용에 대한 언급은 시 어디에도 없지만, 김수영이 체계를 갖춘 미국 문화에 놀랐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만약에 그가, 허슬러의 발행인인 휴 헤프너의 말처럼 ‘쓰레기의 표현의 자유조차 존중해야만 그 보다 낳은 표현의 자유도 더 적극적으로 옹호될 수 있다’는 미국의 수정헌법 1조의 정신 알았더라면, 그 충격은 지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시 속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최소한 1970년대 말까지 미국 문화가 한국의 대항문화의 텍스트였음은 자명하다. 장발과 통키타, 생맥주, 미니스커트와 청바지가 다 미국의 반 권위적 대항문화의 아이콘이었고, 그것이 70년대 한국에서는 가부장적 독재체제에 대한 문화적 저항의 아이콘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뿌리칠 수 없는 요정(妖精)의 속삭임
미국문화, 필자는 강의시간에 종종 어줍잖은 소리로 미국을 정의하곤 한다. 그들의 종교는 머니(money)교, 받드는 신은 물신, 성전은 슈퍼마켓, 성가는 록, 기도문은 ‘부자 되세요’, 그리고 선교사는 텔레비전. 잠깐 웃자고 하는 객쩍은 소리에 그만 슬퍼지곤 한다. 바로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방향이 바로 그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와 그 속에서 도태될 초라한 내 운명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적어도 80년대 이후, 미국의 문화적 영향을 논하려들면 두 가지의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 하나는 ‘미국’이야말로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친 최고의 적이라는 이성적 판단 때문이다. 내 세대에 ‘해방전후사의 인식’ 안 읽어본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들은 역사적으로 꼭 한 번은 죄과를 물어야할 대상이었다. 다른 하나는 나 자신이 미국식 교육에 충실하게 길들여진 세대라는 점이다. 기껏 독해할 수 있는 외국어도 영어요, 사 보는 번역본 대부분도 미국에서 출간된 것이다. 이처럼 성장의 자양분이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영향을 부정해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애초부터 거짓말을 하리라고 자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논의의 폭을 최대한 좁혀 ‘시’에 침윤된 미국문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고 해도, 198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사회 전반에서 급격하게 확산된 대중문화와 문화의 상업성이라는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미국문화는 어떤 고유성보다는 바로 대중시대와 함께 성장한 대중문화라는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 더 빠르고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어떻게 정의하던 간에 소위 ‘대중문화’가 제 2차 세계대전 후 ‘팍스 아메리카나’ 시기에 대량생산, 대량 공급, 대량 소비라는 자본주의적 변화와 함께 전지구적으로 확산되었음을 부인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대중문화라는 보다 넓은 틀 안에서 우리 시 속에 스며든 미국문화의 모습을 찾아보고자 한다. 나는 그 프리즘으로 ‘텔레비전’을 사용하고자 한다.
한국은 1985년 흑백 합해 텔레비전 수상기 대수가 1,000만대를 넘어섰다. 이는 자동차는 물론 전화기나 공중목욕탕의 수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별달리 할 일이 없는 한국 사람들은 평일에는 여가시간의 82.1%, 토요일에는 79.2%, 일요일에는 75.2%를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것으로 보낸다. 이쯤 되면 텔레비전이야말로 한국 사람들의 진정한 스승이 되고도 남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통계적 수치가 곧바로 시인들의 감수성에 영향을 끼쳤다고는 보기 어렵다. 이해를 위해서는 약간의 우회로가 필요한데, 평론가 이광호는 이에 대해서 ‘그들은 젊음의 초반에 광주 이후의 억압적인 분위기를 경험했으나,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6월 항쟁과 7, 8월 노동자 대투쟁을 경험했고, 동구의 대변혁을 목격했다. 이러한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이 갖는 의미의 엄청난 간격은 그 사이의 참된 관계를 묻는 노력을 무력하게 했고, 그들을 전망 없는 세대로 몰아갔다.’고 이른바 90년대 시인들의 문화적 불안의 원인을 적고 있다.
결국, 우리 시가 걸어온 오랜 이념 지향적 세계에서 탈출하게 된 것이 어쩌면 순수하게 문화적 산물로서의 ‘시’를 가능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어서 그는 90년대 시인들을 ‘이제 이들에게 현실이란 목표 없는 변화이며, 분명한 것은 인간의 이성적 의지가 아니라 차라리 욕망의 진실이었다.’고 단언하고 있다. 이제 하나의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시점에 이르렀다. 왜, 우리는 그토록 시 속에 침윤된 ‘미국문화’라는 테마에 민감하지 못했을까? 또는 상대적으로 젊은 시인들이 추구했던 그 ‘욕망’의 오브제는 무엇일까? 하는 것 말이다.
TV는 나의 눈
섹스 거짓말 그리고
사회적 폭력 및 성적 불안을 조성하는 혐의로 체포된
통제 불가능한 상상력
―「비디오/TV는 나의 눈」 부분
일단 앞에서 언급된 욕망의 열어제침의 선구자 격이라 할 수 있는 하재봉의 경우, TV는 ‘통제 불가능한 상상력’이라고 인정하는 데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언제나 통제가 가능했던 사회에서 통제 불가능한 상상력을 갖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슈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 상상력의 형질, 규모, 방향성, 지향, 아무 것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 매스컴의 화려한 유혹은 시청자인 나를 티브이 속의 세계로 유혹한다 하여 내가 매스컴 속에 깊이 빨려들어갔을 때 매스컴 속에 깊이 잠식되었음을 깨닫고 바깥으로 나오려고 할 때 매스컴은 나를 가둔 채 OFF할 것이다
―「엑설런트 시네마 티브이․1」 부분
함민복의 앞의 시는 비록 ‘매체’라는 이름으로 장식되어 있지만, 어떤 감당키 어려운 문화적 조류가 한 인간의 정신에 밀물져오는 것에 대한 자기인식이 잘 드러나 있다. 물론 그 내용에 대한 언술은 찾아볼 수 없다. 어떻게 이 두 작품이 ‘미국문화’와 결부될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 그 대답은 자명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욕망이라는 이름 아래 감춘 매체, 혹은 문화라는 이름의 가면, 그 아래 ‘미국 문화=미국적 대중문화’라는 알맹이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콘텐츠’에 대한 불안과 그것을 전파하는 매체에 대한 불안이 없다. 우리는 모두 우리 시대를 산다. 그 시대의 패션, 트렌드, 유머, 심지어는 삶의 목표까지도. 그러나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것이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주어졌는지에 관하여.
비교적 솔직하게 그 자신이 ‘미국문화’(그에게는 그저 대중문화거나 기호가 맞는 정도이겠지만)에 대한 ‘콘텐츠’에 관한 호감과 매료를 밝힌 것은 유하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여동생이 머리에 스프레를 뿌리며 비아냥거린다
그러는 오빤 왜 맨날 쎅시한 여자만 소개시켜 달래?
히힛, 내가 서부영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악당오빠?
웬만한 여자만 보면 저건 내 거야 무조건 젖을 만지면서
여동생에게 찝적대는 자에겐 어떤 놈이야 눈을 부라리며
무조건 총을 갈기는,
―「배드롬 윈도우」 부분
이 시는 대중문화 콘텐츠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 나는 영화나 광고에서 보여주는 하나의 존재로써 위치될 뿐이다. 그러므로 기존의 모든 가치는 실제로 내게서는 무화된다. 바로 이러한 시적 현상이 80년대 말 이후 우리시의 많은 상상력을 추동해 왔다.
시에 있어서 이러한 대중 문화적 콘텐츠에 대한 탐닉은 필연적으로 ‘미국문화’에 대한 탐닉에 다름 아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대중문화라는 것은 미국의 대중문화 콘텐츠를 상업적 이익에 따라 조금씩 변형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문화적 변형에 대하여 이해를 가질 수 없었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도 절실하게 ‘미국’을 정치, 경제적으로 바라보는 데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 대한 문화적 이해는 필연적으로 ‘미국적 문화’의 변동성과 그 궤를 같이한다. 이때 미국문화의 변동성이란 대중문화의 유동성, 혹은 유연성과 다른 이름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미국적인 것이 아닌 것이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 그러므로 문화부에서 애써 외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표현은 거짓말이다.
나는 미국문화가 영상의 가공할 위력과 함께 한반도의 상륙했다고 믿는다. 그 첫 번째 사제는 오해의 소지가 없지는 않지만, 1980년대 후반이후 이데올로기의 상처 입은 젊은 시인들의 자기 위안적 시 쓰기에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김수영의 짧은 시처럼 ‘주변 없는 사람이 만져서는 아니 될’ 책처럼, 미국문화는 진정으로 어려운 문제를 남겨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해답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4. ‘미국’은 없다
이제 더 이상 미국은 없다. 어느 한 철학자의 가슴 아픈 한마디 ‘미국은 자신의 좋은 점은 가장 늦게 보여주고, 자신의 나쁜 점은 가장 빨리 세상에 퍼트린다.’라는 말처럼 이 땅에서 미국문화의 가치와 장단점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미국문화’ 는 더 이상 외부에서 주어지는 하나의 자극이 아니라, 내적 필요에 의해 형성된 삶의 기본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우리들 삶의 기본적인 조건들을 점검해 보아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TV를 켰습니다 저울에 올려진 고기가 클로즈업되자마자 인접성의 코드 체계가 즉시 작동됩니다.
안심/도마/식칼/프라이팬/올리브유/적포도주/간장/육수/다진양파/다진토마토/다진마늘/청주/버터/녹말물/설탕/다진파/참기름/통깨/소금/후춧가루/피클/접시/포크/나이프/냅킨/파슬리/파프리카/안초비………………………………‥채널을 바꿉니다. TV 속은 온통 사막이 펼쳐져 있습니다. 열려 있던 인접성의 코드 체계가 자동적으로 데이터를 전송하기 시작합니다.
―「사이보그․2 ―정비용 데이터 A」 부분
위의 인용시(이원, ꡔ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ꡕ, 문학과지성사, 2001)는 최근 우리 시에서 나타나고 있는 최신의 젊은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이른바 디지털과 사이버네틱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꿈꾸는 세계인은 더 이상 휴머니즘으로 무장한 코스모폴리탄이 아니다. 그들은 모든 경계를 넘나드는 유목민, 이른바 네티즌이 되고자 한다. 이 정보의 유목민들에게는 고정된 의미의 자문화(自文化)나 타문화(他文化)가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코드(code)가 접속(access)되느냐, 안 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처럼 한국의 시인은 민족에서 민중으로, 다시 시민에서 대중으로 그 정체성을 이동해 왔다. 이제 그 모습은 이른바 ‘사이버’ 세계의 시민인 네티즌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문화적 권력’을 더욱 공고화하려는 미국의 세계 전략에 자연스럽게 포섭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다.
미국적 대중 문화와 그 상업성에 절망하여 ‘서서히 사라져버리는 것보다 불타버리는 것이 낫다’고 절규하며 자살해버릴 수밖에 없었던, 저항 그룹 ‘너바나(nirvana)’의 리더 커트 코베인의 죽음마저도 다시 상업적 이슈로 만들어버리는 미국 문화, 그 유연성을 우리는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백인덕
․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ꡔ끝을 찾아서ꡕ ꡔ밤의 못질ꡕ
․현재 한양대, 한양여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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