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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신작시> 목수 외 1편/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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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목 수
그는 목수였다. 60평생
60십 채가 훨씬 넘는 집을 지었지만
살아 생전 문패 한번 번듯하게 달아보지 못했다.
집안의 대들보가 흔들리는 줄도 모르고 그는
남의 집 기둥만 세우고 다녔다. 그의 가족은
대가족이었다. 대가족이라 다 모인 적이 드물었다.
다 모여도 댓돌에 신발들 나란히 한 날보다
추녀 밑을 서성댄 날들이 더 많았다.
한여름에도 무서리가 내렸다. 가족의 생계가 대팻날
속으로 들락거렸다.
늘 하늘 가까운 동네를 맴돌았다. 금방 내려올 것이라고, 조금만
조금만 참으라고 가족을 달랬지만
가난에 붙잡힌 발목은 쉽게 풀려나질 않았다. 한번은
그가 지은 집 건넌방에 세들어 살았다.
목청 큰 막내의 울음은 얇은 벽 안쪽에 머물 정도로 낮아졌다.
웃음도 소리 없이 입 속에 머물렀다. 웃음 끝에서
침이 말랐다. 허리는 대팻밥처럼 숙여졌다.
해종일 일을 해도
새우깡 한 봉지 사들고 들어올 수 없었다.
그가 지은 집이 늘어갈수록 근심의
나이테는 왜 자꾸 늘어만 가는지, 톱밥 같은 별빛
또,박, 또박, 밟고 집에 돌아오면
새우 같은 자식들은 발 디딜 틈 없이 누워
잠들어 있었다. 천장에서 쥐가 전쟁을 벌여도 고단한 방은
일어날 줄 몰랐다. 꽃무늬는 쥐오줌에 물들어 있었다.
쥐오줌에 물든 판잣집도 그의 손길이 한번 스치면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되고 구중궁궐이 됐다. 그러나
집안은 폐가처럼 무너져갔다.
그는 목수였다 살아생전 목관(木棺)만한 방조차 장만하지 못한.
혼자된 어머니
쏟아야 할 것은
몽땅
쏟아버려야 한다
눈물 조금 보여도
가정은 금방
불화에 휩싸이고
역성되어 돌아오고, 하여
출가한 자식은
남이다
피를 나눈
남이다
피를 나누지 않은 가족도
남이다 남과
공범이다
남과 공범의 경계에서
찔끔찔끔 내리는
붉은 소나기
김정수
․1963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90년 ≪현대시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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